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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첫 서울은 직산지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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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2023년 2월 1일
8. 역사의 복원
about 백제의 첫 서울은 직산지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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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2023.02.01. 18:00) 
◈ 8. 역사의 복원
BC 37년 북부여를 탈출한 주몽(朱夢)이 졸본지역에 이르러 고구려를 건국하고 졸본지역의 족장(族長)인 연타발(延陁勃)의 딸 소서노(召西奴)를 비(妃)로 삼아 두 아들을 두었다. 그 큰 아들이 비류(沸流)이고 둘째가 온조(溫祚)다
BC 37년 북부여를 탈출한 주몽(朱夢)이 졸본지역에 이르러 고구려를 건국하고 졸본지역의 족장(族長)인 연타발(延陁勃)의 딸 소서노(召西奴)를 비(妃)로 삼아 두 아들을 두었다. 그 큰 아들이 비류(沸流)이고 둘째가 온조(溫祚)다.
 
졸본지역에 살던 족장 연타발은 재산을 많이 가진 부호(富豪)로 그가 죽은 뒤에 딸 소서노는 많은 재산을 기울여 주몽의 고구려 건국과 국세 확장에 힘썼다.
 
그러나 북부여를 탈출하기 이전에 어머니 유화부인(柳花夫人)을 모시고 있으면서 부인 예씨(禮氏. 松妃)를 맞았다. 그 후 예씨부인은 아들(유리)을 낳고 남편인 주몽이 부탁대로 북부여 땅을 탈출하여 모자가 졸본지역의 아버지를 찾아온다.
 
그러나 아버지인 주몽은 이미 재혼하여 소서노와의 사이에 두 아들이 있었으나 첫 부인 예씨는 더 우대하고 송비(松妃)로 하는가 하면 그가 낳은 아들 유리를 태자로 책봉하였다. 이에 불만스러운 졸본가족 즉 소서노와 두 아들은 고구려를 떠나 망명행각인 남유(南遊)의 길을 떠나 남쪽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내려와 대방고지(帶方故地)에서 백제를 건국한다.
 
여기까지를 잠시 분석해 보면,
 
지금까지 복원하려는 역사는 삼국사기 백제건국편의 온조왕조에 이설(異說)을 중심으로 하겠음
 
주몽의 생애는 BC58년에서 BC19년까지 이므로 40세를 살았다고 보면 그가 졸본지역에서 고구려를 건국할 때의 나이는 21세가 되던 해다. 그러므로 북부여 땅에 어머니와 아내를 두고 탈출했을 때의 나이도 그와 같은 21살 때로 보아야겠다. 망명하던 그 해에 졸본지역에 와서 고구려를 건국하고 소서노를 비로 맞아 아들을 두었다 하더라도 그 후 주몽의 통치가 19년간 이었으므로 온조의 나이가 18~19세였다. 그렇다면 비류는 더 많은 나이였을 것으로 보아 이는 주몽이 낳은 생자(生子)로 볼 수 없어 삼국사기 서문에 소서노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본다.
 
소서노는 처음 우태(優台)라는 사람에게 출가하여 비류와 온조를 낳고 우태가 죽어 과부가 되어 친정에 돌아와 있다가 주몽을 만나게 되었다. 그 후 주몽은 북부여에서 온 초취(初娶)인 송비(松妃)와 아들 유리를 더욱 중히 여겨 각각 비(妃)와 태자(太子)로 하니 이에 불만스러웠던 소서노의 가족은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대방땅에서 처음으로 백제를 건국하였다.
 
대방고지에서 백제를 건국한 그들은 낙랑과 말갈의 공격에 견딜 수 없고 국가의 보위가 어려워 더욱 남쪽으로 내려온다. 그들은 대방고지를 떠나 예성강과 임진강을 건너고 여기서 해로(海路)로 경기만을 거쳐 아산만의 밀두리에 이른다. 그들은 조수를 타고 안성천을 거슬러 올라 배를 대고 이곳에서부터 내를 타고 도보로 아홉 명의 신하와 더불어 용인 부아산(負兒山)에 오른다.
 
부아산에 오른 이들은 주변의 지형과 지세를 살펴보고 그곳에서 얼마 덜어지지 않은 직산지방을 도읍지로 적당하다고 정한다. 이곳이 바로 오늘날의 성환, 입장, 성거, 직산과 안성의 외곽과 평택의 남부지역이다. 그들이 이 지역에 자리 잡은 것이 바로 위례성이다. 중심지역인 직산은 넓은 평야가 펼쳐 있고 안성천이 대하가 흘러 낮은 구릉조차 없다. 인간 활동에는 편리해도 전쟁과 내란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할 자연의 방패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읍성(邑城)인 위례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북면 위례산에 산성을 쌓고 국가와 백성을 보위하게 된다. 이 산성이 바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위례산성이다.
 
그 후 온조는 십신(十臣)의 보필을 받으면서 위례성에서 시정(施政)을 하다가 BC 6년에 뜻하지 않은 전란을 맞아 산성으로 백성들을 옮겨 항전하고 어머니 소서노를 잃고 많은 전사자를 내면서 전란이 멎자 BC 5년 정월에 한산(漢山)지방으로 서울을 천도한다.
 
이상이 직산 위례성의 역사를 간추려 본 내용이다.
 
 
 

1. □ 백제의 천도 과정

 
▷직산 위례성(BC18~BC5 : 온조왕). 직산지방(13년간)
▷한산(BC5~AD371 : 온조왕~근초고왕). 광주지방(376년간)
▷북한산(AD371~AD475 : 근초고왕~개로왕). 서울지방(104년간)
▷웅진(AD475~AD538 : 문무왕~성왕). 공주지방(65년간)
▷사비성(AD538~AD661 : 성왕~의자왕). 부여지방(123년간)
【논문】 백제의 첫 서울은 직산지방이다
• 9. 결 론
• 8. 역사의 복원
• 7. 위례성 주변의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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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