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1 ~ 1778] 자(字)는 양보(良輔), 호조(戶曹)참판(參判) 대성(大成)의 손자(孫子)이고 생원(生員) 진사(進士) 진위(眞偉)의 아들이다. 서대문(西大門)밖 반송방(盤松坊)에서 독자로 출생(出生)하였다. 10세에 부친상(父親喪)을 당하자 모친(母親) 은진송씨의 뜻에 따라 강화도 사기리에 장사지내고 그 묘 밑에서 기거하였다. 이로 인하여 그곳은 한말 건창·건승 형제의 대에 이르기까지 6대 250년 동안
양명학(陽明學) 강화학파의 근거지가 되었다.
사곡에서 10여 리 떨어진 진강에 사는
정제두에게서 양명학을 전수(傳受)받았으며, 선생의 총애(寵愛)를 받아 손녀(孫女) 사위가 되었다. 강화(江華)에 은둔(隱遁)하여 학문(學問)에 정진하다가 55세 되던 1755년(영조 31) 백부(伯父)
진유에게 추시(追施)된 반역죄(反逆罪)에 연루되어 갑산에 유배되었다. 24년간의 유배 끝에 세상을 떠났다.
유배 중에 지은 '증 참의 적소시가(贈 參議 謫所詩歌)'속에 들어있는 가사 1편과 시조 3수, 산문 풍속도(風俗圖)인 '이쥬풍속통'이 국문학사상 중요자료로 인정받고 있으며, 국사편찬위원회(國史編纂委員會)에 소장되어 있다.
배위(配位)는 연일정씨 부사(府使) 후일(厚一)의 딸이다.
묘소(墓所)는 인천시 강화군 사곡 건좌(乾坐)에 있고 지문은 아들 충익(忠翊)이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