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 지은 가사. 낙빈사· 강촌별곡 ·강촌사·안빈낙도가라고도 불린다. 정확하게 언제 지어졌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조선의 제21대 임금인 영조 (재위 1724~1776)나 제22대 임금인 정조(재위 1776~1800) 이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
청구영언》에 따르면 낙빈가의 지은이를 조선 시대의 문신인 퇴계
이황(1501~1570년)이나 율곡
이이(1536~1584년)로 볼 수도 있고, 《잡가》에 따르면 낙빈가의 지은이가
이이로 되어 있으나, 이것은 모두 확실하지 않다.
낙빈가는 총 51구로 이루어졌으며, 형식은 3·4조 또는 4·4조가 주를 이룬다. 도학 사상을 지닌 관료가 벼슬자리에서 물러난 뒤 자연에 파묻혀, 가난한 처지에서도 평안한 마음으로 도를 지켜 즐기는 시골의 한가하고 조용함을 읊은 작품이다. 고요한 산림 속에서의 한가한 생활을 동경하는 내용의 「환산별곡」과 성격이 비슷하다.
낙빈가는 “이 몸이 쓸듸 업셔, 성상이 바리시니, 부귀를 하직하고, 빈천을 낙을 삼아…….”로 첫머리가 시작되며, 《청구영언》 《교주가곡집》 《잡가》 등에 실려 있다.
《
청구영언》은 조선의 제21대 임금인 영조(재위 1724~1776) 4년에
김천택이 시조 1,000여 수를 모아 엮은 책이고, 《
교주가곡집》은 일본의 한국어 통역관이자 고서(古書) 연구가인 마에마 교사쿠(1868~1942)가 조선 시대에 송계 연월옹이 엮은 시가집 《
고금가곡》 《
시조유취》 등 10여 종을 합하여 1,780수를 실어 크게 하나의 체계를 이룬 우리 나라의 시조집이며, 17권 17책으로 되어 있다.
또 《잡가》는 엮은이와 연대가 알려져 있지 않은 가사집으로, 지금까지 알려져 있지 않던 가사가 많이 실려 있다. 우리말과 한문을 섞어 사용하였으며, 17편의 작품이 1책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