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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동화사(桐華寺)
동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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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사 (桐華寺)
대구 광역시 동구 도학동 팔공산 기슭에 있는 사찰. 대한 불교 조계종의 제9교구 본사이다.
▣ 지식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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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사 근/현대 수필 백신애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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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 東區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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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광역시 동구 도학동 팔공산 기슭에 있는 사찰. 대한 불교 조계종의 제9교구 본사이다.
 
한자 를 풀이하면 '오동나무꽃'이 되는 동화사의 역사는 신라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493년(신라 소지왕 15)에 극달화상이 처음 이 절을 짓고 '유가사(瑜伽寺)'라 하였다. 832년(흥덕왕 7)에 신라 헌덕왕의 셋째 왕자인 심지 스님이 이 절을 확장하여 다시 지어올릴 때 겨울철인데도 오동나무 꽃이 만발해 있는 것을 기이하게 여기고 사찰의 이름을 ' 동화사'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후 이 사찰은 여러 차례 보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극달이 유가사를 창건했던 493년은 신라에 아직 불교가 공인되기 전이어서 이 때 법상종의 성격을 띤 유가사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리는 없을 것이므로, 심지 스님이 동화사를 창건한 것이 아닌가 추정하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 《삼국유사》 권4 '심지계조조'에는, 신라 헌덕왕의 아들이었던 심지가 갖은 고행 끝에, 속리산의 영심대사가 진표율사로부터 받은 불골간자를 전수받고 팔공산으로 돌아와, 불골간자를 모실 절터를 찾기 위하여 간자를 던져 멀리 떨어진 곳에다 절을 짓고 '동화사 '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문종 때에는 동화사에서 원천 법천사의 지선국사가 나왔고, 그 문하에서 속리산 승통 금산사 주지 혜덕왕사 소현을 비롯하여 1,000여 명의 승려들이 나왔다.
 
1190년(명종 20)에 지눌이, 그리고 1298년(충렬왕 24)에는 국사 홍진이 다시 사찰을 확장하였으며, 조선 시대에 와서도 중창과 중건은 계속되었다. 1606년(선조 39)에 유정이, 1677년(숙종 3)에는 상숭이 동화사를 중건하였다.
 
조선조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선조 31)에 이르는 7년에 걸친 임진왜란 때에는 동화사가 모두 불에 타 버렸으며, 1608년(광해군 1)에 절을 다시 지으면서 화주 학인이 미륵전을 올렸고, 1725년(영조 1)에 사찰을 확장하였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의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건물은 대부분 영조(재위 1724~1776) 때 세워진 것이다.
 
경내에는 1732년(영조 8)에 중건된 대웅전과 극락전을 비롯하여 연경전과 천태각 영산전·봉서루·응향각 등 20여 채의 큰 건물이 있다. 부속 암자로는 금당암을 비롯하여 비로암·내원암·부도암·염불암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에는 삼존 불상·후불 탱화·삼장 탱화·제석 탱화 등이 있으며, 천장의 극락조는 빼어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건평 50평으로 1976년에 세워진 금당암은 사찰 문화재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고 있다.
 
극락전을 법당으로 삼고 있는 금당암에는 아미타삼존불이 봉안되어 있으며, 극락전 앞뜰에는 보물 제248호인 동화사 금당암 삼층 석탑 2 기가 동서로 마주 보고 서 있다. 두 탑이 모두 고준하고 경쾌한 느낌을 주는데, 옥개석 네 귀에 풍경이 달려 있다. 그리고 동화사 사적 비문에 의하면, 이 탑은 863년(경문왕 3)에 건립되었으며 불사리 7과가 봉안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기타 문화재로는 당간을 받쳐 세우기 위한 기둥인 보물 제254호 동화사 당간 지주 를 비롯하여, 보물 247호인 동화사 비로암 삼층 석탑과 보물 243호인 동화사 입구 마애불 좌상, 보물 제244호인 동화사 비로암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 및 보물 제601호인 달성 도학동 석조 부도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신라 흥덕왕 때 심지가 조각한 마애불좌상은 동화사 입구에 있는 주차장 오른쪽 큰 암벽에 높이 새겨진 불상으로, 머리 위에는 바위가 튀어나와서 불상을 보호하고 있는 듯하다. 아울러 섬세한 수법과 부드러운 감각으로 자비로운 모습이 인상적이다. 비로전의 비로자나불좌상 역시 심지의 작품이다. 동화사 에서 약 7㎞ 떨어져 있는 관봉에는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638년에 원광의 수제자인 의현이 어머니를 위하여 이 불상 을 조성하였는데, 머리에 커다란 갓을 썼다 하여 '갓바위'라고도 부른다. 이 불상에 불공을 드리면 효험이 많다고 하여 지금도 참배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불상의 전체 높이는 4m이다.
 
이 밖에도 동화사에는 미륵보살이 진표에게 주었고, 다시 영심을 거쳐 심지에게 전해졌다는 《패엽경》과, 예종 이 이를 잃어버리고 송나라에서 전해 온 부처님 어금니 1개를 대신 보냈다는 불아, 당나라에서 만든 요령, 우정이 사용하였던 금강저·소라고동·구룡대 등이 있다.
 
특히 1992년에 조성된 세계 최대 규모의 석조약사여래불상은 12층 높이의 아파트와 맞먹는 30m 높이의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다. '통일기원 약사여래석조대불'의 몸체 안에는 미얀마 정부로부터 기증받은 부처님 진신 사리 2과가 봉안되어 있어 그 웅장함과 신비스러움을 더해 주고 있다. 분단의 벽을 허물고자 하는 불교계의 간절한 발원을 모아 건립된 대불 앞쪽으로 역시 국내 최대 규모인 높이 17m의 통일석탑 2 기와 7.6m의 통일석 등 2 기가 함께 놓여 있다.
 
동화사는 한때 유정이 영남도총섭으로서 승려들로 구성된 군대를 지휘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달성군·청도군·칠곡군·성주군 등 모두 4개군에 걸쳐 있는 동화사 주위에는 무심봉의 흰구름, 제천단의 소낙비, 적성성의 맑은 달, 백리령의 쌓인 눈, 금병장의 단풍잎, 부도암의 폭포, 약사봉의 새벽별, 동화사의 종소리 등 공산 팔경이 있으며, 약수암 앞 수숫골과 폭포골 사이에는 구세 약수가 있다.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맑고 찬 이 약수는 간장병에 특효가 있다고 알려져, 이 곳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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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 북도 청원군 남이면 문동리에 있는 사찰. 태고종에 속하는 동화사(東華寺) 사찰로, 기록이 없어 창건된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전라 남도 순천시 별량면 대룡리 개운산에 있는 사찰. 대한 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작은 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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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정보
백과 참조
우리나라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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