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5월 3일 평양에서 창간된 월간 문학 잡지. 그 해 7월호까지 통권 3호를 발행한 후 폐간되었다. 편집인 겸 발행인을 방인근이 맡았고, 주간은 양주동이 맡았다.
편집은 평양에서 하고 인쇄는 서울에서 하였는데, 1929년 4월 30일에 광문사에서 인쇄하여 5월 3일 문예 공론사에서 발행하였다.
창간호에서 밝힌 이 잡지의 창간 의도를 보면, 문예상 모든 의견과 주장을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고 받아들이겠다고 하였다.
당시에는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 가 동맹(KAPF) 작가들이 중심이던 《개벽》과 국민 문학파가 중심이던 《조선 문단》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었는데, 《문예 공론》은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겠다는 중간 입장을 나타내었다.
이러한 입장에 맞게 책머리의 집필자 명단에 최남선· 이광수· 김소월·한설야· 염상섭·이태준 등 40명 가량의 다양한 작가들을 소개하였다. 하지만 실제로 이 잡지에 실린 글들을 보면 국민 문학파 쪽에 훨씬 더 가까웠다.
그 당시 발행되던 다른 잡지들과 마찬가지로 일제의 검열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검열에 의하여 삭제된 글을 보면, 김기진의 평론 《프로 문예의 대중화》와 한설야의 소설 《새벽》 등이다.
최남선· 이광수· 정인보· 이은상 등의 시조, 김억· 박종화· 김소월· 이장희· 양주동 등의 시, 한설야· 염상섭· 김동인·이태준· 현진건· 전영택 등의 소설, 방인근의 희곡 등이 실려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김소월의 시 《길차부》(창간호)와 《단장》(3호), 양주동의 시 《조선의 맥박》(창간호), 김동인의 소설 《태평행》(2호, 연재 도중 중단됨), 이태준의 소설 《누이》(2호), 염상섭 의 평론 《문학상의 집단 의식과 개인 의식》(창간호), 양주동의 평론 《문예상의 내용과 형식 문제》(2호), 심훈 의 평론 《문예 작품의 영화화 문제》(창간호) 등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