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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나바내다의 지식창고】 2018.03.29. 13:11 (2018.03.29. 13:10)

#2 니체의 인생강의 - 이진우

 
처음으로 참석하게된 독서모임에서의 첫 책이었다. 우선, 이 책은 니체의 사상을 바탕으로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가져야할 태도들을 니체의 철학을 통해 말해주고 있다.
처음으로 참석하게된 독서모임에서의 첫 책이었다.
우선, 이 책은 니체의 사상을 바탕으로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가져야할 태도들을 니체의 철학을 통해 말해주고 있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 "왜 사는가?" 라는 근본적인 고민에 대해 사색을 하는 시간이 일상에서 많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책의 첫 부분에서는 니체의 삶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844년 독일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때부터 천재라는 얘기를 들으며 24살때는 대학교 교수가 됬고 그로부터 얼마뒤 교수직을 물러나 지적 여행을 다니며 책을 쓰고
물론 그 중간 고질적인 문제인 약한 몸도 있었고 군대에서 말에 떨어져 크게 다치는 일도 있었지만
철학자로서의 니체는 거만하면서도 겸손하며 시대의 자상을 꿰뚫는 면이 있는 것 같다.
그가 살던 19세기 중반 부터 후반까지의 시기는, 과거 신으로써 모든것이 판단되던 절대적인 진리가 무너지고 있었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물질적으로 풍족해지고 사람들은 세속화되어 갔고, 마음속의 신은 멀어져갔다.
더 이상 삶에서 신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신은 하느님, 알라신 이런 종교의 신이 아니고 하나의 절대적인 진리로서의 신이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신의 죽음' 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한다.
"이 시대 최대의 사건은 신이 죽었다는 사실, 믿어온 가치가 믿지 못할 것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유럽에 처음으로 드리우기 시작한 허무주의의 그림자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p 5)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신은 죽었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듣는이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별다른 반응 없이 그러냐는 표정을 짓고 지나갈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신의 죽음이, 절대적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당연시화 되어버린 사회이다.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과 가치관이 달라 믿는 것이 달라도 그 다름마져도 당연한 것으로 인정되는 사회.
"그것이 자신과 상관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신의 죽음과 허무주의가 일상이 된 사회" (p13)
모두가 짐작하겠지만 "신은 죽었다"라는 발언이 그 시대의 큰 파장을 일으킨건 당연했다.
대다수의 철학자 종교인이 그를 욕했고 그의 사상은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허무주의는, 너희가 믿는 것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이런 세속화 시대의 허무주의는 우리에게 다가올 무시무시한 손님 중 하나일 것이다." 라고 말했던 것처럼 그가 죽기 10년전부터 그의 사상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신을 죽였다. 너희와 내가!
우리 모두가 신을 죽인 살인자다!
하지만 어떻게 우리가 이런 일을 저릴렀을까?" <즐거운 학문> 중에서
 
허무주의는 신이 없다는, 즉 절대적 진리가 없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허무주의에도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수동적 허무주의 이고 다른 하나는 능동적 허무주의이다.
바로 여기서 나머지 것들이 연결이 된다.
우선 "수동적 허무주의는 '왜'라는 물음에 대답할 수 없는 상태, 어떤 것도 진리가 아닌 상태에서 삶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다" (p 48)
어떤 것도 진리가 없다는 사살을 인정은 하지만, 그 상태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왜 공부하는지도 모르고 왜 사는지도 모르는 아무런 목표도 없이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는 삶이 바로 수동적 허무주의 이다.
반대로 능동적 허무주의는 "내가 내 삶의 목표를 스스로 설정할 수 있는 상태 즉 삶의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는 자기 자신이 결정하는 생태" (p51) 이다.
신이 죽었으니,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며, 인격이 되고 자신의 자아를 찾게 되는것, 이것이 니체가 말하는 신의 죽음의 핵심이자 허무주의의 핵심이 아닐까.
 
또 니체는 낙타, 사자, 어린아이의 세가지 상태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낙타는 무거운 짐을 감내할 수 있으며, 복종하는 것이 바로 낙타라는 것인데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짐만 진다면 다음 단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무엇이 무거운 것인지 질문을 던질 줄 알아야 자기의 삶을 변화 시킬 수 있고 이렇게 삶은 견뎌내는게 낙타의 태도라고 한다.
사자는 기존의 가치, 기존의 관습, 규범을 부정할 수 있는 힘을 자진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이 부정은 새로운 가치를 위한 부정이다.
쉽게 말하자면 스스로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상태가 사자의 상태이다.
 
"자유를 얻어내고
의무에 대해서조차도 신성하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사자가 되어야 한다."
 
<차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마지막으로는 어린아이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낙타와 사자의 상태를 거치다 보면 우리 삶이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데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이 세계를 유희로 받아들이고 삶을 긍정하기 위해 따라야할 규칙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어린아이 같은 태도를 가질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삶의 무게를 너무 무겁다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를 새롭게 놀이판으로 만든다면 우리의 삶이 가벼워져요. 최고의 에술 작품은 나의 삶입니다. 따라서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모든 사람은 예술가입니다." (p 144)
 
마지막으로 허무주의를 극단적으로 생각한다면 삶은 곧 영원회귀라는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같은 강물에 두번 발을 담글 수 없다"라는 말처럼 삶은 역동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큰 그림에서 보자면 이런것들이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흔히들, 5년뒤에는, 10년 후라는 생각을 하지만 이런생각이 죽을때까지 이어진 다는 것이다.중요한 것은 미래가 아닌 현재
그리고 현재가 아닌 순간이라는 것이다.
"언젠가는 삶에 마침표가 찍힐 거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면, 우리는 삶을 훨씬 더 책임감 있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결국 영원회귀 사상은 삶을 긍정하고, 순간을 긍정하고, 죽음을 긍정하는 것입니다." (p 120)
 
어제 독서모임에 갔었을때 오신 분들중 저를 제회하고는 전부 사회인이었습니다. 사실 이유모를 조바심도 들었던게 사실입니다.
그 힘들다는 취업의 문턱을 깨고 지금 당장 저보다는 사회적으로는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러면서도 책과 사색을 놓치지 않는 그들의 삶의 대한 진지한 태도가 부러웠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 한분이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강연을 하는데 대학생들에게 "대학을 왜갔어?" 라고 물어봤는데 소름끼칠정도의 정적이 흘렀다고
그렇게 만들 의도가 아니었는데 정적이 흘러서 당황스러웠다고.
전 그 정적이 아마 겉으로는 들어내지 못하는 마음속에서의 정직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에서 '왜'라는 생각을 할 조차 여유도 가지지 못한채 대학에 들어가 취업을 해야하는 우리의 삶에서
왜라는 질문을 듣는 순간 가슴속에서의 스스로의 정직함이 그런 정적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니까요. 불확실하니까요.
 
'왜?' 라고 항상 물어보며 살아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신이 죽은, 우리 스스로가 가치를 만들어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시대의 일원으로서, 왜라는 질문을 통해 스스로의 절대적 진리를 만드는것이 우리의 사명이자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 활동 지역 : 핼리팩스(Halif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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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