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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진육조소 (戊辰六條疏) ◈

해설본문  1568년
이황
1
崇政大夫(숭정대부) 判中樞府事(판중추부사) 신 李滉(이황)은 삼가 재계하고 절하며 주상전하께 말씀드립니다. 신은 초야의 미미한 존재로서 재주도 쓸모없고 나라 섬기기도 바로 하지도 못하고 鄕里(향리)에 돌아와 죽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先祖(선조)께서 잘못 아시고 寵命(총명)을 자주 가해 주셨고 전하께 이르러 더욱 잘못을 되풀이하여 금년 봄에 特採(특채) 除授(제수)해 주신데 애해서는 더욱 놀랄 일이었습니다.
 
2
신은 꾸중을 각오하고, 감당 못할 것으로 사퇴하였든 바 諒察(양찰)하여 주심을 입어 책임을 면하였으나, 성품이 고쳐지지 않고 분수에 넘치는 일이 여전하오며, 더욱이 臣(신)은 늙고 병들어 벼슬을 감당할 기력이 조금도 없는데 외람되이 높은 班列(반렬)에 籍(적)을 두어 더욱 부끄럽고 송구스럽나이다.
 
3
있지 못할 자리에 오래 있어 聖朝(성조)에 욕되게 할 수 없나이다.
 
4
다만 이번 臣(신)이 상경하였을 때, 분에 넘치게 常例(상례)와 다른 자애를 받자오니 臣(신)이 비록 평소에 지혜와, 나라 경영하는 정책에 어둡기는 하오나 붉은 정성을 다하여 한가지의 어리석은 뜻을 바치지 아니할 수 없나이다. 구술로만 아뢰면 정신이 흐리고 말솜씨가 없어서, 한 가지를 듣고 만 가지를 빠뜨릴까 염려 되옵기에 이에 감히 글로서 뜻을 진술 하나이다. 모두 모아 역어 六條(육조)로 갈라서 推論(추론)하온 것을 당돌하게도 前疑(전의)에 올려 드리오니 큰 도움은 감히 바라지 못하오나, 인군의 箴(잠)에 다소라도 보탬이 될까 하나이다.
 

 
5
첫째. 繼統(계통)을 重(중)이 하여 仁孝(인효)를 온전하게 할 것.
 
6
臣(신)은 듣자오니 천하의 일이 君位(군위)의 一統(일통)보다 더 큰 것이 없다 하옵니다. 대저 더 큰데 없는 계통으로써 아버지가 자식에게 전하고, 자식이 아버지에게 이어 받으니, 그 일의 지중함이 어떠하겠습니까. 예로부터 人君(인군)은 누구나 至大(지대) 至重(지중)한 계통을 이어 받지 아니한 사람이 없지만 至重(지중) 至大(지대)한 뜻을 잘 아는 사람이 적어 孝(효)로서 부끄러운 것이 있고, 仁(인)으로서 道(도)를 다 하지 못한 자가 많사옵니다.
 
7
正常(정상)의 경우에 處身(처신)함이 그러하거늘, 혹 옆 갈래에서 入繼(입계)한 군주로서 仁孝(인효)의 道(도)를 다하는 자가 더욱 적습니다. 그리하여 인륜의 도리에 得罪(득죄)하는 자가 자주 생기니 어찌깊이 두려워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8
오호라! 하늘에는 두 해가 없고, 집에는 두 尊長(존장)이 없고, 喪事(상사)에는 두 맛 상주가 없습니다.
 
9
옛 성인께서 本生(본생)의 恩(은)이 중차대함을 모르는 것이 아니나, 예법을 제정하여 남의 後(후)가 된 자로 하여금 아들로 삼았습니다. 기왕 아들로 되었으면 仁孝(인효)의 道(도)는 마땅히 後(후)가 된 곳에 오로지 해야 하고 本生(본생)의 恩(은)은 도리어 이와 더불어 竝立(병립)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10
그러므로 성인이 義(의)를 행하여 本生(본생)의 恩(은)을 주리고, 恩(은)을 높여 後(후)된 義(의)를 완수하게 하였습니다. 周易(주역)에, 하나로 돌아감을 밝혔고, 孟子(맹자)는 두 근본을 警戒(경계)하였으니, 사물의 경중이 정해진 곳에 인륜의 법칙이 환 합니다.
 
11
하물며 방계로 入繼(입계)하는 데는, 천명을 받아 寶位(보위)에 오를 때, 宗社(종사)의 부탁이 어떠하였으며, 백성의 기대와 믿음이 어떠하였습니까. 그것은 감히 私慾(사욕)로서 바꾸어, 그 후에 처음 뜻을 더욱 높이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삼가 생각하건데 주상전하께서 王室(왕실) 至親(지친)의 중하신 몸으로 선왕의 대쪽 같은 명을 받들어 대통을 이었으니 인심이 천심과 合(합)하였습니다.
 
12
상중(喪中)에 예(禮)가 극진하시고, 애경(愛敬)이 모든 일에 부족함이 없으시고, 무릇 뜻을 이어 하시는 일이 지성(至性)에 나오고, 애성(哀誠)에 말미암으시면 그 인효(仁孝)의 도(道)에 있어서, 극진하지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위로 묘사(廟社)의 신령으로 부터 아래로 신민(臣民)의 마음에 이르기까지 다 임이 함께 기뻐하고 서로 경하(慶賀)하는 바입니다.
 
13
그러나 마음은 대야의 물 보다 조용히 가지기 어렵고, 선(善)은 바람 앞에 촛불보다 보전하기 어렵습니다.
 
14
고어(古語)에 "나무가 썩으면 벌래가 생기고, 효(孝)는 처자 때문에 쇠퇴한다."고 하였습니다.
 
15
지금 전하(殿下)의 마음은 물이 파도가 일지 않는 것 같고 거울이 먼지 앉지 않은 것 같습니다.
 
16
그러므로 인애(仁愛)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발(發)하여 막힘이 없고, 효순(孝順)의 행(行)이 순수하여 틈새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때에 이르러, 이목(耳目)을 가리는 것이 혼잡(混雜)하게 펴지고, 애증(愛憎)의 흔들림이 아울러 세력을 얻어,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지는 동안 일에 등한 하고 정(情)에 끌리게 되면, 그때 전하의 마음이 능(能)히 밖으로부터의 변화(變化)를 받지 않고 심중(心中)에 변함이 없으며, 지금 같이 의연하게 선(善)을 주장 할 수 있겠습니까?
 
17
진실로 이렇게 하실 수 있다면 만 번 복을 받으시고 백번 근심 할 것이 없습니다.
 
18
혹(或) 불행이 주상의 깊으신 마음이 한 번 변화가 생긴다면 종묘(宗廟)를 받들고, 장락(長樂)을 받드는 바가 어긋나고 태만함이 있기 쉽고, 사람이 혹시 편사(偏私)의 틈을 타서 정경대의(正經大義)에 어긋나는 말로서 꾀이고 영합(迎合)하면, 그 마땅히 높일 것을 줄이고, 줄일 것을 높이는 일이 반드시 없으리라고 어찌 보장 할 수 있습니까?
 
19
이것이 예부터 입계(入繼)하는 임금이 천륜의 가르침에 죄를 짓는 많은 까닭이며, 오늘에 있어서 마땅히 지극한 경계로 삼아야 할 바입니다.
 
20
그러나 이것은 신(臣)이 감히 전하의 본생(本生)을 박(薄)하게 하도록 인도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21
다만 생각 하옵기를, 마땅히 높일 것은 성왕(聖王)의 정법(定法)이 이렇게 되어 있고, 마땅히 주리는 것은 선유(先儒)의 정론(定論)이 쫓을 만한 것이 있다고 해서 그런 것입니다.
 
22
높이고 주리고 하는 것은 즉 천리(天理)와 인욕(人慾)의 극치(極致)이니 한결같이 이에 따라 털끝만한 사사로운 뜻도 그 사이에 섞이지 말아야 인(仁)이 되고 효(孝)가 됨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23
비록 그러나 효(孝)는 백행의 근원이니, 한 가지 행이라도 흠집이 있으면 순효(純孝)가 못 되는 것이며, 인(仁)은 만선(萬善)의 장(長)이니 한 가지 선(善)이라도 불비(不備)함이 있으면 전인(全仁)이 못되는 것입니다. 詩經(시경)에 이르기를 "시작이 없는 것이 아니라 끝을 잘 마치는 것이 적다."고 하였습니다.
 
24
오직 성명(聖明)께서 유의(留意)하시기를 바라나이다.
 

 
25
둘째: 참소(讒訴)를 막아 양궁(兩宮)을 친하게 할 것.
 
26
신(臣)은 듣자오니 부모가 그 자식을 사랑함이 자(慈)가 되고 자식이 그 어버이를 잘 성김이 효(孝)가 된다고 합니다. 효자(孝慈)의 도(道)는 천성에서 나와서 모든 선의 으뜸이 되는 것으로서 그 은덕이 지극히 깊고, 그 倫理(윤리)가 지극히 무겁고 그 정(情)이 가장 절실합니다.
 
27
지극히 깊은 은(恩)으로서, 지중(至重)한 倫理(윤리)에 따라 가장 적절한 정(情)을 행하는 것이니, 사리로 보아 다하지 못하는 것이 없을 듯 한 대, 혹 효에도 결함이 있고, 자천(慈天)도 흠(欠)이 있는 수가 있으며, 심한 자는 지친(至親)이 승냥이나 이리 같이 되어 거둬 돌보지도 아니하는 경우도 있는데 보통사람에 있어서는 말 할 것도 없고, 제왕의 가정에 있어서도 이런 폐단이 더욱 많으니 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28
대체로 그것은 정(情)이 막히기 쉽고, 참소가 더욱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29
정(情)이 막히기 쉽다는 것은 궁전(宮殿)이라는 처소는 법도가 엄(嚴)하고 날마다 서로 만날 때, 사정상 격리되는 일이 많아 정(情)이 서로 통하지 못하고 뭉치는 일이 수가 있기 때문이요,
 
30
참소가 더욱 많아진다는 것은 양궁(兩宮)사이에 좌우에서 모시는 시신(侍臣)들과 총애를 받으며 심부름하는 시종(侍從)들이 모두 환관과 여인들이 온데, 이 무리들의 본성은 대게 모두 음사(陰邪) 교활(狡猾)하여 간사함을 끼고, 사사로운 생각을 품어 란(亂)을 좋아 하고 화(禍)를 즐기며, 효자(孝慈)가 무엇인지, 예의(禮義)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오직 섬기는 바를 중하다고 하여, 이쪽저쪽으로 서러 세(勢)를 갈라 많은 것을 다투고 작은 것을 비교하는 통에 은원(恩怨)이 손가락질 할 사이에 생기고, 이해(利害)가 등 뒤에서 결정되며, 없는 것을 있다하고 옳은 것을 그르다하며, 그런 정상이 만 가지로 나타나 정상이 도깨비와 같고, 불여우와도 같이, 혹은 격(激)하여 노하게도 하고, 혹은 속여서 무섭게도 합니다. 그런 것에 혹시라도 귀를 기울려 믿게 되면 절로 불행에 빠져서 어버이를 부자(不慈)에 빠트리고 말 것은 필연한 일입니다.
 
31
대개 家法(가법)이 엄정하고 양궁(兩宮)이 서로 기뻐하면, 이 무리들은 그 간교(奸巧)를 쓸 여지가 없어 이(利)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반드시 서로 모함하고, 서로 시기하며, 주인이 어둡고 인륜 도리가 어긋난 다음에야 그 기량(技倆)을 부려 참소가 행해지면서 큰 이득을 보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소인(小人)과 여자의 병폐입니다. 비록 그러하오나 역시 군덕(君德)의 어질고 편협함과, 어(御)거하여 다스림이 엄(嚴)하고 방종(放縱)함에 따라서, 그 반응(反應)이 그림자와 소리 같이 빠른 것인즉, 요는 인군(人君)의 다스림 여하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진실로 능히 자치(自治)만 한다면 또 무슨 걱정이 있습니까?
 
32
신(臣)이 작년에 귀향하는 길가에서 소문을 들으니 즉위(卽位)한 처음에 이 무리가운데서 구은(舊恩)을 믿고 상명(上命)을 기다리지 않고 감(敢)이 나아가 인군을 뵈려고 하는 자가 있었는데, 준엄하게 물리침을 당하고 말았다고 온 나라의 사람들이 모두 대성인(大聖人)의 하시는 일이 보통 사람보다 만 배나 뛰어 난다하며 우러러 칭찬하였습니다. 이로부터 이래로 성덕(聖德)이 날로 들어나고 인효(仁孝)가 틈새 없으니, 이로 미루어 가면 무슨 음사(陰邪)인들 위엄으로 복종 못시킬 것이며, 무슨 악(惡)이 감히 침범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전하(殿下)께서는 이것을 믿고 "상빙(霜氷)"의 계(戒)를 소홀히 생각해서는 결코 아니 됩니다. 대저 전하(殿下)의 효성으로서 일국(一國)의 봉양(奉養)을 극진이 하시면, 그 효(孝)는 크다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식 된 도리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무궁무진하니, 어찌 나의 사친(事親)이 이미 족(足)하다고 만족하며, 다른 것을 걱정할 것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33
또 오늘날 전하의 사친(事親)은 이른바 의(義)로서 은(恩)을 높이고, 변(變)으로서 상(常)에 처함이니 이 두 가지 사이에는 실로 소인(小人) 여자(女子)들이 틈타서 흔단을 일으키려 하는 것입니다.
 
34
신(臣)은 전대의 일을 살펴보니 위로 자친(慈親)이 있고, 아래로 어진 후계자가 있는데, 환관(宦官) 소실(小室)이 그 사이에 있으면서 서로 싸워, 그 효(孝)를 바로 끝맺지 못하는 자가 이루 말 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지금 궁중에는 "숙간(宿姦) 노고(老蠱)가 앞 뒤 조론(朝論)에서 깊이 염려한 대로 아직도 다 제거(除去)되지 못하고 있으니 이것은 아마도 "여윈 도야지의 뜀뛰기"와 같을 뿐만이 아닙니다.
 
35
바라옵건대 전하(殿下)께서는 주역(周易)의 "가인(家人)"의 뜻을 거울로 삼고 소학(小學)의 명륜(明倫)의 훈(訓)을 법으로 삼아 자치(自治)를 엄하게 하시고 정가(正家)를 하시어 사친(事親)이 독실하시며, 자식의 도리를 다하시어 좌우의 근시(近侍)들로 하여금 양궁(兩宮)의 지극한 정(情)은 효자(孝慈)에서 더 중한 것이 없다고 주지시키고, 무리의 참소와 이간(離間)이 통(通)할 수 없다는 것을 다 알게 하고, 또 그 효자(孝慈)를 이루게 하는 자는 안전(安全)을 얻되, 이간을 놓는 자는 죄를 얻는다는 것을 알도록 하면 자연히 음사(陰邪)의 중간 작난하는 폐단이 없어지고 효도(孝道)에 부족함이 없어 질 것입니다. 또 이 마음을 깊이 간직하고, 이 성의(誠意)로서 효경(孝敬)을 드려 언제나 정을 다하고 힘을 다하면 도(道)의 융성이 잇따르고, 인(仁)이 지극하며, 의(義)가 다하여 삼궁(三宮)이 기뻐 화합하고 만복이 갖추어 질 것입니다.詩經(시경)에 이르기를 "조그맣게 시작하여 큰 말썽을 이룬다."하고, 또 이루기를 "깊이 효사(孝思)를 말하니, 효사(孝思)가 바로 법으로 된다." 하였습니다.
 
36
성명(聖明)께서 유의(留意)하시기를 바랍니다.
 

 
37
셋째 성학(聖學)을 돈독(敦篤)히 하여 정치(政治)의 근본을 삼을 것.
 
38
신(臣)은 듣자오니 제왕(帝王)의 학(學)과 요(要)는 대순(大舜)의 우(禹)에게 명한 말에 연원(淵源)하였다. 합니다. 그 말에 이르기를 "인심(人心)은 위태하고 도심(道心)은 은미하니 오직 精(정)하고 一(일)하여 그 中(중)을 잡으라."하였습니다. 대저 天下(천하)를 서로 傳(전)할 때는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편안하게 하려는 것인 만큼 그 부탁하는 말이 정치에서 더 급할 것이 없겠거늘 舜(순)이 禹(우)에게 철저히 타이름이 이 몇 마디에 지나지 않았으니 이 어찌 學問(학문) 成德(성덕)으로써 政法(정법)의 大本(대본)을 삼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39
精一(정일) 執中(집중)은 학문을 위한 큰 법입니다.
 
40
大法(대법)으로서 大本(대본)으로 한다면 천하의 정치는 다 이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41
옛 성인의 말씀이 이러함으로 臣(신) 같은 어리석은 자로서도 聖學(성학)이 정치의 근본이 됨을 알고 외람되이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그러하오나 舜(순)의 이 말은 그 위태롭고 은미한 것만 말하고, 그 위태롭고 그 은미한 까닭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42
그러므로 精一(정일)만 가르쳐 주고 精一(정일)하는 법은 보여주지 아니하여 뒷사람이 이에 依據(의거)하여 道(도)를 참으로 알고 참으로 實踐(실천)하려고 해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43
그 뒤에 많은 성인 나타나고, 이어 孔子(공자)에 이르러 그 法(법)이 크게 갖추어지니 大學(대학)의 格致(격치) 誠正(성정)과, 中庸(중용)의 明善(명선) 誠身(성신)이 그것입니다.
 
44
그 뒤에 많은 학자가 가 번갈아 일어나, 朱子(주자)에 이르러 그 설이 크게 밝혀지니 大學(대학) 中庸(중용)의 章句(장구) 或問(혹문)이 그것입니다. 이제 이 두 책을 배워 바른 것을 알고 실천하는 학문으로 하면 中天(중천)에 해가 뜬 것 같아서 눈 뜨면 다 보이고 큰길이 앞에 놓인 것 같아서 발을 들면 밟을 수 있습니다. 걱정되는 것은 지금 까지 세상의 人君(인군)으로서 能(능)히 이 學問(학문)에 뜻 두는 사람이 적다는 것입니다. 或(혹) 뜻을 두더라도 能(능)히 시작해서 끝을 맺은 사람은 더욱 적습니다. 嗚呼(오호)라!
 
45
이것이 도가 전하지 못하고 政治(정치)가 옛적 같지 못하는 까닭이니 아마 성군을 기다려서 그런 것일까요?
 
46
삼가 생각 하옵건대 주상전하께서 神聖(신성)한 자질이 하늘에서 태어 나셨고, 밝은 학문이 날로 새로워지시어 儒臣(유신)의 講官(강관) 들이 감복하여 찬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사오니 그러면 殿下(전하)께서는
 
47
이 학문에 資質(자질)이 있으시고 그 뜻이 있으신 것이며 사물의 도리를 깨닫는 방법과, 힘써 공부를 함에 있어서도 그 始初(시초)가 되어 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48
그러나 臣(신)은 이것으로써 곧 能知(능지) 能行(능행)이리고 할 수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49
청컨대 致知(치지)의 일로써 말씀 드리겠습니다.
 
50
나의 性情(성정) 形色(형색)과 日用(일용) 하는 모든 것의 가까운 것 부터 천지만물과, 古今事變(고금사변)의 잡다한 것에 이르기까지 至實(지실)한 이치와 지당한 법칙이 존재하지 않음이 없으니 이른바 天然自有(천연자유)의 中(중)이란 것이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배움을 널리 하지 않을 수 없고, 물음을 자세히 하지 않을 수 없고, 생각을 깊이 하지 않을 수 없고, 辨別(변별)을 분명히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 네 가지는 致知(치지)의 節目(절목)입니다. 네 가지 중에서도 생각을 삼감이 더욱 중요합니다.
 
51
생각이란 무엇인가요?
 
52
마음에 구하여 證驗(증험)이 있고, 얻음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53
능히 마음에 증험하여 그 "理(리) 辱(욕)" "善(선) 惡(악)"의 幾微(기미)와 "義(의) 利(리)" "是(시) 非(비)"의 판별을 밝게 가려 精微(정미)롭게 연마하고 조금도 틀림이 없으면 이른바 "危(위) 徹(철)"의 까닭과 "精(정) 一(일)"의 방법이란 것이 과연 이것이라 함을 참말로 알아서 의심됨이 없이 될 것입니다.
 
54
이제 殿下(전하)께서 네 가지의 공부에 대하여 이미 그 시초를 열어 發端(발단)을 하였으니 臣(신)은 청컨대 그 發端(발단)으로 인하여 더욱 그 功夫(공부)를 잘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55
그 절차와 조목은 或問(혹문)에 자세히 알려져 있습니다.
 
56
거기에 의하면 敬(경)으로써 중요한 방법을 삼고, 事事(사사) 物物(물물)에 있어서 그 所當然(소당연)과 所以然(소이연)의 까닭을 窮究(궁구)하지 않음이 없으며 깊이 생각하고 反覆(반복)하며, 글의 깊은 뜻을 몸소 깨달아 극치에 이르게 하여 시간이 오래되면 功力(공력)이 깊어지고, 공력이 깊어지면 하루아침에 모든 의문이 녹아 풀리고, 모든 의문이 한하게 貫通(관통)하여 짐을 절로 느끼게 되는 것이 오니, 이때에 비로소 "體(체)와 用(용)이 한 근원이요, 顯(현)과 微(미)가 틈이 없다"는 말이 진실로 그러 하구나 함을 알아서 "危(위) 微(미)에 昏迷(혼미)되지 아니하고 精一(정일)에 眩惑(현혹)되지 아니하여 中(중)을 잡을 수 있게 될 터이오니, 이것을 일러 참말로 아는 것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57
臣(신)은 청컨대 다시 力行(역행)의 일로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58
誠意(성의)는 반드시 幾微(기미)에 살펴 털끝만한 不實(불실)도 없이하고, 正心(정심)은 반드시 動靜(동정)에 살펴서 한 가지라도 不正(부정) 없이하고, 修身(수신)은 一僻(일벽)에 빠지지 않도록 하고, 齋家(재가)는 一偏(일편)에 버릇되지 않게 하여, 戒懼(계구) 愼獨(신독)하고 强志不息(강지불식)하는 이 몇 가지가 力行(역행)의 節目(절목)이오며, 이 가운데서도 心(심)과 意(의)가 가장 관계가 크옵니다.
 
59
心(심)은 天君(천군)이요, 意(의)는 그 發(발)한 것입니다.
 
60
먼저 그 말을 眞實(진실)되게 하면 하나의 眞實(진실)됨이 족히 만 가지 거짓을 씻어 없앨 수 있고, 그리하여 그 天君(천군)을 바르게 하면 명령에 따라 행하는 모든 것이 眞實(진실)이 아님이 없을 것입니다.
 
61
이제 전하께서 이 몇 가지 功夫(공부)에 대하여 그 시초를 열어 그 端緖(단서)를 잡으셨으니 臣(신)은 請(청)컨데 그 端緖(단서)로 인하여 더욱 그 친절한 功夫(공부)를 이루시기 바랍니다.
 
62
그 規模(규모)와 宗旨(종지)는 두 책에 제시된 교훈에 따르면, 敬(경)을 主(주)로 하여 항상, 어느 곳에서나, 생각마다 이를 잊지 말고, 일마다 조심하여 수행하면, 욕심이나 마음이 깨끗이 씻어지고, 五倫(오륜) 百行(백행)이 지극히 잘 연마되어, 평소 생활 하는 데나 신하들과 대화하는 대도 의리에 잠겨 벗어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懲忿(징분)과 遷善(천선) 改過(개과)에 있어 "誠(성) 一(일)"에 힘쓰며, 廣大(광대) 高明(고명)하되 禮法(예법)에 떠나지 않고 "參贊(참찬) 經綸(경륜)"하되 다 屋漏(옥루)에 근원하도록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참된 공부를 쌓아 시일이 오래되면 자연히 義(의)가 精(정)해 지고 仁(인)이 익숙하여 그만 두려 해도 그만 둘 수 없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聖賢(성현)의 中和(중화)의 경지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 實踐(실천)의 효과가 이에 이르면 道(도)가 이룩되고 德(덕)이 서게 되나니 爲治(위치)의 근본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63
사람을 取(취)하는 법칙은 과연 자기 몸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오니 自身(자신)만 바르면 절로 群賢(군현)이 함께 나아오고 功績(공적)이 크게 빛나 융성한 세상을 이루어 백성을 仁(인) 壽(수)의 경지에 까지 인도함도 어렵지 않게 될 것입니다.
 
64
혹은 말하기를 帝王(제왕)의 학은 "經生(경생) 學子(학자)"와 같지 않다고 하오나 이것은 글 뜻이나 캐고 책 읽기를 잘하는 類(류)의 일을 말하는 것이고, 敬(경)으로 근본을 삼고,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는, 知(지)를 다하고 몸에 돌이켜 실천을 이행하는 일 같은 것에 이르러서는 그야 말로 묘한 心法(심법)이며 道學(도학)을 전하는 要諦(요체)인데, 帝王(제왕)과 常人(상인)이 무슨 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65
그런데 眞知(진지)와 實踐(실천)은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서 하나가 빠져도 안 되며, 사람의 두 다리와 같아서 서로 기다려 함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66
그러므로 程子(정자)는 이르기를 "致知(치지)하면서 敬(경)에 있지 않은 자가 없다."하였고, 朱子(주자)도 이르기를 "躬行(궁행)함에 공부가 없으면 理(이)를 窮究(궁구)할 곳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67
그러므로 이 두 가지 공부는 합해서 말하면 서로 始終(시종)이 되고, 나누어 말하면 또 각각 始終(시종)이 없습니다.
 
68
嗚呼(오호)라! 始(시)가 없으면 終(종)이 없는 것은 물론이나, 終(종)이 없으면 始(시)가 무슨 쓸데가 있겠습니까? 人主(인주)의 學(학)이 대개 始(시)가 있고 終(종)이 없거나, 始(시)에 부지런하고 終(종)에 개으르며, 始(시)에 조심하고 終(종)에 放逸(방일)하여 들락날락하는 마음으로 하다 말다 하다가 마침내 德(덕)을 멸하고 나라를 그르치는 결과로 되고 마는 자가 많으니 이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69
위태로운 것은 人心(인심)이라 欲(욕)에 빠지기 쉽고 理(리)에 돌아가기 어려우며, 隱徹(은철)한 것은 道心(도심)이라, 잠깐 理(이)에 눈을 뜨다가도 곧 欲(욕)에 눈을 감아버리기 때문입니다.
 
70
이제 빠지기 쉬운 것으로 하여금 물러서 일어나지 못하게 하고, 잠깐 눈 뜨는 것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中斷(중단)이 없게 하여, 帝王(제왕)이 서로 전하는 執中(집중)의 實(실)을 成就(성취)시키려면, 精(정)하게 하고 一(일)하게 하는 功夫(공부)가 아니고 무엇으로 할 수 있겠습니까?
 
71
傳說(전설)은 말하기를 "學(학)은 뜻을 겸손하게 하고 始終(시종) 끈임 없이 배움을 생각하면 그 德(덕)이 모르는 사이에 닦아진다."고 하였으며, 孔子(공자)는 말하기를 "이를 대를 알아 이르면 可(가)히 더불어
 
72
道(도)에 가까이 할 수 있으며, 그칠 대를 알아 그치면 더불어 義(의)를 保存(보존)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오직 聖明(성명)께서 留意(유의)하시기 바라나이다.
 

 
73
넷째 道術(도술)을 밝혀 人心(인심)을 바로 잡을 것.
 
74
臣(신)은 듣자오니 唐虞(당우) 三代(삼대)의 盛世(성세)에는 道術(도술)이 크게 밝아 다른 岐路(기로)에 미혹됨이 없으므로 人心(인심)이 바르고 정치가 행하기 쉬웠는데, 衰周(쇠주) 이후로는 도술이 밝지 못하여 사특한 학설들이 함께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人心(인심)이 바르지 못하여 다스려도 다스려지지 않고, 敎化(교화)시키려 해도 교화되기 어려웠습니다.
 
75
무엇을 道術(도술)이라하는가?
 
76
도술이란 天命(천명)에서 나와서 倫理(윤리)로서 행하여 天下(천하) 古今(고금)이 같이 말미암은 길입니다.
 
77
堯舜(요순) 三王(삼왕)은 이것을 알고 그 왕위를 얻었으므로 惠澤(혜택)이 천하에 미쳤고, 孔(공) 曾(증) 思(사) 孟(맹)은 이것을 알지만 왕위를 얻지 못하였으므로 가르침이 萬世(만세)에 傳(전)하였습니다.
 
78
후세의 人主(인주)들이 그 敎(교)로 因(인)하여 道(도)를 얻어서 세상에 밝히지 못하였기 때문에 眞理(진리)를 混亂(혼란)시키는 異端(이단)의 說(설)과, 正道(정도)를 더럽히는 功利(공리)의 무리들이 煽動(선동) 誘惑(유혹)하며 돌아다녀 人心(인심)을 흩트리니 그 화근이 하늘에 닿아 救(구) 할 수 없이 되었습니다.
 
79
중간의 宋代(송대) 諸賢(제현)들이 이 道(도)를 크게 闡明(천명)하였으나 모두 當世(당세)에 등용되지 못하여 그 敎(교)를 밝히고, 人心(인심)을 바로잡는 것도 당시에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萬世(만세)에 전할 뿐이었습니다. 하물며 우리 동방은 海隅(해우)에 치우쳐 있어서 箕子(기자)의 洪範(홍범)이 傳(전)함을 읽고, 지나온 世代(세대)가 茫茫(망망)하여 알 수가 없다가,麗末(려말)에 程朱(정주)의 글이 처음 들어와서 道學(도학)을 알 수 있게 되었고, 本朝(본조)에 들어와서 聖王(성왕)들이 서로 이어 業(업)을 創建(창건)하고 전통을 드리웠사온데 그 規模(규모) 典章(전장)은 대개 모두 이 道(도)의 천명 이였습니다.
 
80
그러나 開國(개국)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200년이 되어 가는데 治效(치효)를 어루만져보고 先王(선왕)의 道(도)로서 헤아려 보면, 列聖(열성)의 마음에 모호한 생각이 있음을 면치 못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역시 道術(도술)이 밝아지지 못하고, 다른 岐道(기도)의 說(설)들이 人心(인심)을 害(해)함이 많기 때문입니다.
 
81
이제 主上殿下(주상전하)께서 堯舜(요순)의 자질로서 帝王(제왕)의 學(학)을 몸소 공부하시어 옛 道(도)에 뜻을 두시고 政治(정치)를 하시기를 목마르듯 하시어, 장차 유교의 학문을 일으켜 一世(일세)를 唐虞三代(당우삼대)의 隆盛(융성)에 올려놓으실 생각이시니, 진실로 우리 동방에서는 千載(천재)一時(일시)의 機會(기회)로서 朝野(조야)가 기뻐하여 눈을 씻으며 서로 慶賀(경하)하지 않은 이 없습니다.
 
82
그러나 만약 先王(선왕)의 道術(도술)을 밝히어 一代(일대)의 나갈 바를 정하여 引率(인솔) 指導(지도)하지 않으면, 어떻게 나라 사람으로 하여금 쌓인 疑惑(의혹)을 풀고 빗나간 길을 버리고 一變(일변)하여 나의 大中至正(대중지정)한 가르침을 따르게 할 수 있겠습니까?
 
83
그러므로 臣(신)은 道術(도술)을 밝히고 人心(인심)을 바로잡음으로써 新政(신정)의 獻策(헌책)으로 삼는 바입니다. 비록 그렇기는 하오나 그 밝히는 일에 있어서 또 本末(본말), 先後(선후), 緩急(완급)의 施策(시책)이 있고 그 本末(본말)에 또 虛實(허실)의 다름이 있으니, 人君(인군)이 몸소 실천함과, 心得(심득)한 것에 근본 하여 民生(민생)의 人倫(인륜)日用(일용)의 교화에 行(행)하는 것이 근본이요, 남의 法制(법제)를 따르고 문물의 겉치레나 하고 現行(현행)의 것을 예 것으로 고치어 모방하고 비교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84
本(본)은 먼저 할 바이니 급한 것이요, 末(말)은 뒤에 바이니 천천히 해도 좋은 것입니다.
 
85
그러나 그 道(도)를 얻어 君德(군덕)이 이루어지면 本末(본말)이 다 實(실)하여 唐虞(당우)의 治(치)가 되고, 그 道(도)를 잃어 君德(군덕)이 글러지면 本末(본말)이 다 虛(허)하여 말세의 화가 되는 것이니 虛名(허명)을 믿고 聖治(성치)가 이루어지기를 바랄 수 없음은 물론이요, 要法(요법)에 어두워 가지고 心得(심득)의 妙(묘)를 구한다는 것도 안 되는 일입니다.
 
86
이제 殿下(전하)께서 진실로 虛名(허명)의 믿지 못할 것을 아시고 要法(요법)을 구하여 道學(도학)을 밝히려고 하시거든 臣(신)이 앞서서 論(론)한 眞知(진지), 實踐(실천)의 說(설)을 깊이 명심하시어 敬(경)으로써 시작하고, 敬(경)으로써 끝을 맺으시기 바랍니다.
 
87
시작하실 때 아는바가 애매하여 明徹(명철)하지 못하거나 行(행)하는 바가 혹 矛盾(모순)되어 잘 들어맞지 않더라도 이것 때문에 함부로 기피하거나 주저하는 마음을 가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88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은 "聖人(성인)은 나를 속이지 않는다. 다만 나의 功力(공력)이 이루지 못했을 뿐이다."고만 생각하시고 힘쓰고 힘써 중도에 그만 둠이 없이 오래 功力(공력)을 쌓아 익숙해지면 절로 "精義入神"(정의입신)의 경지에 이르러 환하게 내다보이고 얼굴과 몸에 수양의 공덕 효과가 넘쳐흐르고, 신변의 사물이 어느 것이나 나의 수양의 資源(자원)이 되지 않는 것이 없이 되나니, 이것을 일러 躬行(궁행) 心得(심득)하여 道(도)가 자기에게 밝아졌다고 하는 것이며, 堯舜(요순), 文王(문왕)의 克明德(극명덕)이란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89
이로부터 미루어 가면 어디를 가나 道(도)가 아닌 것이 없으니, 九族(구족)을 親(친)하게 하고, 百姓(백성)을 공정하게 정치하게, 되며 關휴(관휴) 麟趾(인지)의 化(화)로 부터 鵲巢(작소) 騶虞(추우)의 덕에 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90
지금이라고 어찌 堯舜(요순) 文王(문왕)의 때와 다르겠습니까?
 
91
德化(덕화)가 향기롭게 풍기어 안과 밖이 融化(융화)하고 조정에는 敬(경)과 讓(양)이 지켜지고 가정에는 孝悌(효제)가 행해지며, 선비는 學(학)을 알고, 백성은 義(의)를 알게 되니 人心(인심)이 어디 바르지 못할 것이 있으며 道術(도술)이 어찌 밝지 못할 것이 있겠습니까?
 
92
荀子(순자)는 이르기를 "임금이란 사발이다. 사발이 모나면 물이 모 난다. 임금이란 표말이다.
 
93
말뚝이 바르면 그림자가 곧다."고 하였습니다.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94
비록 그러하오나 시의 사사로운 근심이요 지나친 생각인지 모르오나 臣(신)은 人心岐惑(인심기혹)의 說(설)에 대하여 특히 더 느끼는 바가 있습니다.
 
95
臣(신)은 생각하기를 異端(이단)의 害(해)는 佛氏(불씨)가 가장 甚(심)하여 高麗(고려)는 이로 인하여 망국에 이르렀고, 我朝(아조)의 盛治(성치)로서도 그 根底(근저)를 아직도 끊어버리지 못하여, 이따금 때를 타서 일어납니다.
 
96
비록 先王(선왕)이 그 그름을 곳 깨닫고 소재해 버렸사오나 여파와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있고 老莊(노장)의 허망한 설은 가끔 즐겨 숭상하여 聖人(성인)을 회책하고 禮義(예의)를 경시하는 風(풍)이 간간이 일어나며, 管仲(관중) 商앙(상앙)의 述(술)은 요행이 전술되지는 않았으나 計功(계공) 謀利(모리)하는 폐단은 아직도 고질로 되어 있고, 향리의 덕을 어지럽히는 습관은 末流(말류)들의 世上(세상) 아첨에서 시작되었고, 속된 학문의 방향과 혼미의 폐단은 과거보는 사람들의 명리추구에서 더욱 甚(심)해졌습니다. 하물며 名利(명리)를 찾고 仕官(사관)을 구하는 길에 있어서, 기회를 엿보고 틈새를 타서 요리 붙고 조리 붙는 무리들이 또 어찌 다 없어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97
이로써 보면 오늘날의 人心(인심)의 不正(부정)은 심합니다.
 
98
만약 불행이 主上(주상)께서 道(도)를 지향하는 마음이 당초만 못하게 되어 혹 好惡(호악)의 편파에 나서나고, 혹 자신의 틈새로 새어 나간다면,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반드시 혼잡하게 함께 나와, 도깨비처럼 妖術(요술)을 피우며 백방으로 뚫고 들어오려고 할 터이오니, 한번 그것에 넘어가면 곧 그들과 더불어 化(화)하여 버리게 됩니다.
 
99
그쪽에 좋아하면 이쪽에 싫어하고, 그 쪽에 편들면 이쪽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100
自古(자고)로 人君(인군)이 처음에는 淸明(청명)하여 그 정치가 볼만 하다가도 얼마 뒤는 奸邪(간사)에 넘어가고, 異端(이단)에 感(감)하여 功(공)을 무너뜨리고 나라를 亡(망)치는 자! 마치 宋(송)의 哲宗(철종), 徽宗(휘종), 寧宗(영종), 理宗(이종) 같이 되는 자 얼마든지 있습니다.
 
101
엎드려 바라옵건대 殿下(전하)께서는 옛 사람들의 失道(실도)한 것을 오늘의 明鑑(명감)으로 삼아 뜻을 굳게 잡으시고 시종일관 변함없으시고 道(도)를 日月(일월)같이 밝히시어 妖氣(요기)를 물리쳐, 간여 못하게 하시고, 講道(강도)나 求治(구치)나 다 항구함을 요하여 마지않으시면, 다만 일어나려고 하는 선비와 스스로 새로워지려고 하는 백성이 다 大道(대도)에 오를 뿐 아니라 전날의 간사한 무리들도 장차 감화에 따라 변하게 될 것이 오니, 어찌 감히 나아와 나의 걱정이 되겠습니까!
 
102
易(역)에 이르기를 "聖人(성인)은 그 道(도)에 오래있으면 天下(천하)가 化(화)한다." 하였고, 맹자는 이르기를 "군자는 常道(상도)에 돌아 갈 뿐이다. 常道(상도)가 바르면 서민이 道義(도의)에 일어나고, 서민이 일어나면 邪思(사사)가 없어진다."고 하였습니다. 聖明(성명)께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03
다섯째. 腹心(복심)을 미루어 耳目(이목)을 통할 것.
 
104
臣(신)은 듣자오니 一國(일국)의 體(체)는 한 사람의 몸과 같다 하옵니다. 사람의 한 몸에 머리가 위에 있어서 아래를 통솔하고, 腹心(복심)이 가운데서 이어받아 일을 맡고, 耳目(이목)이 곁으로 퍼져 호위하고 일깨워 주어야 몸이 편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人主(인주)란 一國(일국)의 元首(원수)입니다. 大臣(대신)은 그 腹心(복심)이요, 臺諫(대간)은 그 이목입니다.
 
105
三者(삼자)는 서로 기다리어 서로 이루는 것이니, 이는 나라를 가지는 常勢(상세)요 천하고금이 다 아는 바입니다. 옛 人君(인군)으로서 大臣(대신)을 신임하지 않고 대간의 말을 듣지 않는 者(자)가 있었는데 이는 비유하면 사람이 그 腹心(복심)을 스스로 끊으며, 그 이목을 스스로 막는 것과 같으니, 머리만으로 홀로 사람이 될 이가 없는 것입니다.
 
106
或(혹) 大臣(대신)을 신임하는 자가 있어도, 신임이 그 道(도)에 따르지 않고, 그 求(구)함이 능히 잘못을 바르게 고치고, 왕을 輔弼(보필)할 수 있는 賢者(현자)를 구하지 않고 오직 阿諂(아첨)하고 잘 따르는 자를 구하여 써 그 私(사)를 이루려고 하니, 그 얻는 것이 奸邪(간사)하여 정치를 어지럽히는 사람이 아니면 반드시 凶惡(흉악)하여 權力(권력)을 휘두르려 하는 사나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107
임금이 이런 사람으로서 자기욕심을 채우는 腹心(복심)으로 삼으면, 신하는 이런 임금으로써 자기의 욕심을 채우는 元首(원수)로 삼아, 상하가 서로 가리우고 서로 結託(결탁)하여 남이 그것을 干與(간여)할 수 없이 됩니다. 혹 剛直(강직)한 선비가 있어서 그 銳鋒(예봉)을 건드리면 반드시 誅殺(주살)을 가하여 양념가루로 만들어 버리고야 맙니다.
 
108
이 때문에 忠臣(충신)과 賢人(현인)이 다 쫓겨나서 국내가 空虛(공허)하게 되고 耳目(이목)의 司職(사직)은 모두 권력을 잡은 자의 私人(사인)으로 되어 버립니다.
 
109
그렇게 되면 소위 耳目(이목)이란 것이 元首(원수)의 이목이 아니라 당로자의 이목이 되는 것입니다.
 
110
이로서 이목을 빙자하여 勢(세)를 올리고, 氣焰(기염)을 부채질하여 權臣(권신)의 惡(악)을 편들어주면 腹心(복심)으로 말미암아 禍(화)가 쌓여 마침내 서로 싸우고, 邪惡(사악)을 이루어 놓고는 오만하게 각자 자기의 원대로 자만하지만, 실은 元首(원수)의 毒氣(독기)가 腹心(복심)에서 발했고 腹心(복심)의 毒蟲(독충)이 耳目(이목)에서 起因(기인)한 것인 줄을 모릅니다.
 
111
이것은 예나 이제나 같은 그 범주인데 前轍(전철)이 넘어져도 뒤에 오는 者(자), 그것을 경계 삼을 줄 모르고 잇따라 그 길을 밟아 마지아니하니 實(실)로 통탄스러운 일입니다.
 
112
오늘날 朝廷(조정)의 일은 이와 달라서 聖智(성지)의 德(덕)은 출중하여 정통의 體(체)로서 일국의 元首(원수)로 되셨고, 腹心(복심)의 바탕과 耳目(이목)의 관원도 다 뭇 사람 중에서 골라 뽑아 그 책임을 무겁게 하였습니다. 易(역)에 이르지 않았습니까?
 
113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이 서로 求(구)하며, 물은 습한 대로 흐르고, 불은 마른 곳으로 붙으며,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른다."고하였습니다.
 
114
위에는 聖主(성주)가 있으니 賢臣(현신)이 없을 것을 염려 되지 않습니다.
 
115
臣(신)은 바라옵건대 聖上(성상)께서는 오직 하늘의 明命(명명)을 돌보시고 몸을 공경 되게 하여 南面(남면)의 자리를 지키시고 腹心(복심)에게 정성을 미루시고 밝은 눈, 밝은 귀로 民(민)에게 中(중)을 세우고 위에서 極(극)을 세우시어 一毫(일호)의 私意(사의)도 그 사이에 끼어들어 흔들지 못하게 하시면 제상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다 착한 마음으로, 좋은 계책을 세우고 도리에 맞게 경전의 정신으로써 자기의 책임을 삼을 것이요, 諫諍(간쟁)의 있는 사람은 누구나 대면해서 꾸짖고, 쟁송을 연기하고, 기관을 보필 하고, 허물을 보충함으로써 그 직책을 삼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116
세 가지 형세가 서로 연이어 상통하여 精(정)을 모두고 神(신)을 모아 通(통)해서 일체가 되면, 이렇게 되고서 朝廷(조정)에 善政(선정)이 없고, 나라에 善治(선치)가 없고, 세상이 평화롭고 융성하지 못한다는 것을 臣(신)은 들은바 없습니다.
 
117
비록 그러하오나 益(익)이 舜(순)을 훈계하여 이르기를 "근심 없을 때 경계하고 법도를 잃지 말고 安逸(안일) 淫樂(음락)에 빠지지 말고, 어진 이에 반기면 의심하지 말고 私慝(사특)함을 버리면, 果斷(과단)있게 하라."라고 하였습니다. 人主(인주)의 마음이 한번 警戒(경계)를 태만히 하여 쾌락에 빠지게 되면 곧 뒤따라 법도가 무너질 뿐 아니라 어진이도 마침내 맡겨 쓰지 못하고 姦邪(간사)도 능히 버리지 못하게 되는 것은 세상 돌아가는 이치의 필연입니다. 그러므로 잘 다스리는 朝廷(조정)일지라도 或(혹) 불행하게 이러한 징조가 있게 되면 大臣(대신)들 가운데는 반드시 임금의 惡(악)에 迎合(영합)하여 國權(국권)을 도적질 할 것을 꾀하려는 者(자) 있고, 小臣(소신)들은 반드시 勢力(세력)있는 자에 아첨하여 자기의 사리를 탐하려는 자가 있어서 드디어 前日(전일)의 腹心(복심)이 변하여 오늘의 도적이 되고 전일의 耳目(이목)이 변하여 오늘의 눈가림이 되고, 전일의 一體(일체)가 변하여 오늘의 胡越(호월)이 되어 쇠퇴의 형세와, 위험한 멸망의 사태가 다른 때를 기다리지 않고 곧 목전에 당도하게 됩니다.
 
118
阜陶(부도)의 노래에 이르기를 "元首(원수)가 죄를 지으면 팔다리가 개으르고 만사가 문어진다."고 하였습니다. 만사가 문어지는 것은 그 책임이 元首(원수)에 있다는 말입니다.
 
119
宋(송)나라 신하 王介之(왕개지)는 말하기를 "宰相(재상)으로서 宮禁(궁금)의 意向(의향)을 만들며, 給舍(급사)로서 宰相(재상)의 風旨(풍지)를 받들게 되면 朝廷(조정)의 기강은 땅에 떨어지고 만다."라고 하였습니다. 邪徑(사경)의 해로움이 腹心(복심), 耳目(이목)의 處地(처지)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말 헌 것입니다. 呂公弼(여공필)의 仁宗(인종)에게 諫(간)한 말에는 諫官(간관)은 耳目(이목)이 되고, 執政(집정)은 股肱(괴굉)이 된다. 股肱(괴굉)과 耳目(이목)은 반드시 서로 用(용)이 되어야 온 몸이 현안하고 웃머리인 元首(원수)가 높아진다."고 하였습니다.
 
120
그러므로 邪徑(사경)을 밟지 않고, 서로 用(용)이 되는 것이 至善(지선)의 道(도)라고 하옵니다.
 
121
부디 聖明(성명)께서 留意(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22
여섯째. 修省(수성)을 정서스러이 해야 하늘의 사랑(天愛)을 이어 받음.
 
123
臣(신)은 듣자오니 董仲舒(동중서)가 武帝(무제)에게 고하는 말에 이르기를 "國家(국가)에 失道(실도)하는 큰 잘못이 있으려 할 때는 하늘이 먼저 災害(재해)를 내려 견책하는 뜻을 알리고, 그래도 自省(자성)할 줄 모르면 또 怪異(괴이)를 내려 놀라게 하고, 그래도 變(변)할 줄 모르면 傷敗(상패)가 이르나니, 이것으로서 天心(천심)이 人君(인군)을 사랑하여 그 亂(란)을 그치게 하려고 함을 알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뜻 깊은 말입니다.
 
124
萬世(만세)의 人主(인주)는 마땅히 龜鑑(귀감)으로 삼아 가볍게 여기지 못할 일입니다.
 
125
그러하오나 人主(인주)는 이에 있어서 또 마땅히 天心(천심)이 나를 사랑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를 알아야 하고, 또 마땅히 내가 천심을 받드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126
이것을 깊이 생각하고 익숙히 강구하여 참되게 體行(체행)해야 거의 天心(천심)을 받들고 君道(군도)를 다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27
請(청)컨데 그 까닭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128
臣(신)은 이르기를 天地(천지)의 大德(대덕)은 生(생)이라고 합니다.
 
129
무릇 天地(천지) 사이에 生(생)을 먹음은 類(류)가 부지기수이니 움직이는 것, 땅에 박힌 것, 큰 것, 작은 것이 모두 하늘이 덮어주고 사랑해 주는 것인데, 特(특)히 우리 사람에 있어서는 形象(형상)이 닮았고 가장 신령하여 천지의 心(심)이 되어 있는 것이니, 그 仁愛(인애)는 더욱 말 할 것 없습니다.
 
130
그러나 하늘은 이 마음은 있어도 스스로 베풀지 못하고, 반드시 가장 신령한 것 가운데서도 그 聖哲(성철)한 으뜸 되는 자로서 德(덕)의 神(신), 人(인)의 和協(화협)한 者(자)를 돌보아 임금으로 삼고 백성을 길러 양육하는 일을 부탁하여서 그 仁愛(인애)의 政治(정치)를 行(행)하는 것입니다.
 
131
이미 하늘이 命(명)하고 도와주고 四方(사방)을 편안하게 해주었으나, 그래도 或(혹) 개을러서, 難(난)이 소홀한데서 생길까 염려하여 이에 또 이른바 災殃(재앙)과 警鐘(경종)의 가책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132
하늘이 임금에 대하여 다시금 친절하게 하는 까닭은 다름이 아니라 이미 仁愛(인애)의 책임을 여기에 맡겼으니 마땅히 仁愛(인애)의 보답을 이쪽에서 개을리 하지 말아야 하겠기 때문입니다.
 
133
진실로 人君(인군)된 者(자)로써 하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는 것이 공연히 그런 것이 아님을 안다면 반드시 그 임금 노릇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요, 반드시 天命(천명)이 쉽게 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며, 반드시 높이 위에서 날마다 말마다 여기를 내려다보고 감시하는 것이 있다는 말이 조금도 거짓말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134
능히 이렇게 되면 평소에도 반드시 마음먹고 몸을 愼(신)하여 敬(경)과 誠(성)으로써 上帝(상제)를 받들어 빛나게 함이 극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災殃(재앙)을 만났을 때는 반드시 허물을 反省(반성)하고 政事(정사)를 고쳐 닦아 愼(신)과 實(실)로써 하늘의 뜻을 感激(감격)시킴에 더욱 마음을 쓰게 될 것입니다.
 
135
그러게 되면 政治(정치)가 交欄(교란)에 이르지 않도록 바로잡히고, 나라가 危機(위기)에 이르지 않도록 安保(안보)될 것입니다. 失敗(실패)없이 안전함을 여기서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136
오직 天心(천심)을 모르고 그 德(덕)을 삼가지 않는 者(자) 만이 모든 것을 이와 反對(반대)로 합니다.
 
137
그래서 上帝(상제)가 震怒(진노)하여 禍敗(화패)를 내리는 것이니, 이는 하늘이 不得已(부득이)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 또한 심히 두렵지 않습니까?
 
138
지금 主上(주상)께서는 登極(등극)하신지 1년이 되옵는데 항상 하늘을 공경하고, 아래를 근심하시고 修德(수덕) 行政(행정)하시는 사이에 人心(인심)에 거슬리거나 上帝(상제)께 罪(죄)지은 일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139
그런데 天變(천변)이 자주 일고 재앙이 함께 생겨 和氣(화기)가 應(응)하지 않아 보리농사가 全滅(전멸)되고, 水災(수재)의 慘酷(참혹)함은 만고에 없던 바요, 우박과 황충 같은 갖가지 怪異(괴이)가 다 나타나니, 上天(상천)이 殿下(전하)께 무엇을 노하여 이렇게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140
天道(천도)는 멀지만 實(실)은 가까운 것이며, 하늘의 위엄은 至嚴(지엄)하여 장난으로 볼 수 없습니다.
 
141
小臣(소신)은 우매하와 敢(감)히 함부로 헤아려 말할 수 없사오나 가만히 董仲舒(동중서)의 말로 미루어 보면, 이것은 天心(천심)이 殿下(전하)를 사랑함이 깊고 경계함이 지극한 때문인가 합니다.
 
142
또 지금 殿下(전하)께서 이미 天命(천명)을 받아 人牧(인목)이 되었으니, 자리에 올라 정치를 圖謀(도모)하시는 마당에 있어서, 喪中(상중)에 있으시며 道(도)를 생각하시는 날이 곧 根本(근본)을 바로잡고 始初(시초)를 바르게 할 때 이며, "哲命(철명)을 스스로 끼쳐 줄" 때입니다.
 
143
만약 晏然(안연)한 寵愛(총애)가 있는 줄만 알고, 놀라만한 威嚴(위엄)이 있는 줄을 모르면 하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날로 해이해 지고 邪慝(사특)한 情(정)이 도리어 放逸(방일)해서, 강물의 둑을 터놓은 것 같아야 아니하는 짓이 없게 될 것입니다.
 
144
그러므로 災害(재해)를 내려 警告(경고)해 놓고 또 怪異(괴이)를 내려 敬懼(경구)하게 하는 것이니, 天心(천심)의 殿下(전하)를 仁愛(인애)함이 깊고 절실하며 매우 크다 할 수 있습니다.
 
145
모르오나 殿下(전하)께서는 장차 어떻게 自修(자수)하여 天意(천의)에 當(당)하고 화근을 없애려 하십니까?
 
146
옛적에 孔光(공광)은 天道(천도)를 걱정 할 것 없다하였고, 安石(안석)은 天變(천변)을 두려워 할 것 없다고 하였으나, 다 속이고 아첨하는 간사한 말로서 하늘에 罪(죄)를 짓는바 크거니와, 董仲舒(동중서) 劉向(유향)의 무리는 또 아무 災(재)는 아무 잘못의 反應(반응)이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또 너무 拘拘(구구)하고 滯(체)하여, 或(혹) 相應(상응)되지 않는 것이 있으면 도리어 人君(인군)으로 하여금 天意(천의)를 두려워 아니하고 염려하지 않는 버릇을 열러 주기에 알맞으니 亦是(역시) 잘못입니다.
 
147
그러므로 臣(신)은 생각하기를 임금은 하늘에 대하여 마치 자식이 어버이에 대한 것과 같아서, 어버이의 마음이 자식에게 怒(노)함이 있으면 자식은 두려워하고 반성하여 怒(노)한 일이나 怒(노)하지 않은 일이 나를 불문하고 일마다 정신을 다하고 효도를 다하면, 어버이는 그 誠(성)과 孝(효)에 기뻐하여 노하던 일 까지도 함께 감싸주어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148
그러지 아니하고 꼭 어느 한 가지 일을 지정하여 이에 대해서만 恐懼(공구) 修省(수성)하고 다른 일은 여전이 放恣(방자)하게 되면 효도를 다함에 誠實(성실)히 못하여 거짓으로 함께 될 것이니 어찌 어버이의 노여움을 풀고 어버이의 기뻐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149
바라옵건대 殿下(전하)께옵서는 어버이 섬기는 마음을 미루어 하늘 섬기는 道(도)를 다하시어 어느 일에나 修省(수성)하지 아니함이 없고, 어느 때나 恐懼(공구)아니함이 없으시고, 임금자신에는 비록 過失(과실)이 없더라도 心術(심술)의 隱微(은미)한 사이에 쌓여 있는 흠과 병통을 깨끗이 씻어버려야 하며, 宮禁內(궁금내)에서는 비록 家法(가법)이 본시 있겠지만 戚屬(척속)의 음흉한 무리들이 올려 바치고 찾아뵙고 안개처럼 모여드는 따위 들을 막아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諫言(간언)을 들음에는 비록 "圓(원)을 돌리듯"하는 美德(미덕)을 가지시지만, 때로 私意(사의)로써 굳게 거부하시는 일이 있으시면 마땅히 그쳐야 할 것이요, 善(선)을 즐김에는 비록 色(색)을 좋아 하듯 하는 誠意(성의)는 가지시지만 或(혹) 虛(허)로써 억지로 求(구)하는데 까지 이르는 일이 있으시면 마땅히 살피셔야 할 것입니다. 벼슬과 賞(상)은 함부로 하여 功(공)없는 者(자)가 요행으로 얻고 功(공) 있는 자가 不平(불평)으로 돌아서게 해서는 안 되며, 赦免(사면)과 罪罰(죄벌)은 악한자로 하여금 罪(죄)를 면하고, 善(선)한 자로 하여금 害(해)를 받게 해서는 안 됩니다.
 
 
150
節義(절의)를 崇尙(숭상)하고 廉恥(염치)를 장勵(장려)하여 名敎(명교)의 防衛(방위)를 굳건하게 하는 일을 疎忽(소홀)히 해서 안 되며, 儉約(검약)을 숭상하고 奢侈(사치)를 금하여 公私(공사)의 財力(재력)을 通裕(통유)있게 하는 일도 누그러지게 해서 안 됩니다.
 
151
祖宗(조종)의 成法(성법) 舊章(구장)도 오래면 弊(폐)가 생기는 것이니 약간 變通(변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그 良法(양법) 美意(미의)까지 모두 뜯어 고치면 반드시 큰 憂患(우환)을 일으키며, 벼슬아치로서 正(정)을 미워하고, 異(이)를 싫어하여 틈을 타서 事端(사단)을 일으키는 者(자)들은 미리 鎭靜(진정)시켜야 하는 것이나, 그러나 혹 어질고 착한 사람들 類(류)에서 혼자 떨어져 나감으로 인해서 서로 排擊(배격)하게 되면 반드시 도리어 傷處(상처)를 입게 됩니다.
 
152
오로지 옛것만 지키고, 하던 일만 하는 신하에게만 依賴(의뢰)하면 至治(지치)를 奮發(분발) 振興(진흥)시킴에 방해되고, 새로운 일을 꾀하고 일 하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맡기면 禍亂(화란)의 端緖(단서)를 挑發(도발)하게 됩니다.
 
153
京外(경외)의 관리들과 그 奴僕(노복)들은 貢納品(공납품)을 이리같이 뜯어먹고 오히려 부족하여 國庫(국고)를 도적질하여 비우고, 浦口(포구) 將帥(장수)들은 軍卒(군졸)을 호랑이 같이 삼키고도 오히려 차지 못해 주변 백성에게 까지 害毒(해독)을 퍼트립니다.
 
154
饑荒(기황)은 이미 극심했어도 救濟(구제)는 대책이 없으니 뭇 도적이 일어날 것 같고, 邊方(변방)은 空虛(공허)한데 남북으로 틈이 벌어지니 小賊(소적)들의 뜻밖의 습격이 염려됩니다.
 
155
이런 등등의 일은 臣(신)이 일일이 열거 할 수 없습니다. 오직 殿下(전하)께서 하늘이 이처럼 사랑해 주심이 헛된 일이 아니란 것을 깊이 아시고 안으로 心身(심신)에 反省(반성)하여 敬(경)으로 일관해서 中斷(중단)하심이 없으시고, 밖으로 정치에 行(행)을 닦아 誠(성)으로 일관하여 거짓 꾸밈이 없으시고, 天人(천인)의 하시는 일에, 자신이 해야 될 일은 이미 앞에 말씀 드린바와 같으니 극진히 하시면 비록 旱水(한수)의 災(재)와 꾸지람의 경계가 到來(도래)해 있더라도 오히려 恐懼(공구) 修省(수성)의 힘을 베풀어 하늘이 주시는 仁愛(인애)의 마음을 이어 받을 수 있을 것이며, 臣(신)이 論(론)한 여섯 가지의 일 같은 것도 漸次(점차) 解消(해소)되고 고쳐지어 治平(치평)에 이를 수 있습니다.
 
156
만약 그렇지 못하여 自身(자신)에 根本(근본)을 세우지 않고 世上(세상)이 다스려 지기를 바라거나, 그 德(덕)을 변함없이 지니지 않고 하늘의 報應(보응)이 있기를 責(책)하거나, 平時(평시)에는 敬天(경천) 恤民(휼민)할 줄 모르고 災變(재변)을 만나면 自省(자성)의 形式(형식)만 갖추어 어리석게 응한다면 臣(신)은 말씀 하건대 "否(부) 泰(태)가 서로 極(극)"이 되고 治亂(치란)이 서로 기회를 타서, 수 백 년 나라가 태평한 끝에 國事(국사)가 염려됨이 장차 오늘의 弊害(폐해)보다 몇 배 더할 것이며, 天心(천심)의 殿下(전하)를 사랑함이 도리어 自暴自棄(자포자기)하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157
書痙(서경)에 이르기를 "皇天(황천)은 친함이 없이 오직 잘 공경하는 者(자)를 친하며, 백성은 못 잊어하는 사람이 없이 오직 仁德(인덕)가진 자를 못 잊으며, 귀신은 늘 받는 祭享(제향)이 없이 오직 정성어린 祭享(제향)만 받는다."하였고 詩經(시경)에 이르기를 "天(천)의 威(위)를 두려워 언제나 그 뜻을 保全(보전)하라."고 하였습니다. 오직 聖明(성명)께서 留意(유의)하시기 바라나이다.
 

 
158
위 六條(육조)에 기록한 바는 다 무슨 사람의 耳目(이목)을 놀랠만한 굉장한 말씀이 아닙니다.
 
159
그러나 實(실)은 性(성) 道(도)에 뿌리박고 聖賢(성현)에 근거하되 中庸(중용) 大學(대학)에 맞추고 史傳(사전)에 상고하여 時事(시사)에 증험하여 말씀 드린 것입니다.
 
160
바라옵건대 殿下(전하)께서는 卑近(비근)하다 해서 할 것이 못 된다 마시며 실제와 관련이 없다 해서 할 필요 없다 마시고 반드시 먼저 처음 二條(이조)로서 근본을 삼으시고 더욱 聖學(성학)의 功夫(공부)에 부지런하시기 바랍니다.
 
161
빨리 효과를 보려하지 마시고 스스로 한계를 긋지도 마시고 그 極致(극치)를 다하여 과연 여기에 얻은바 있으시면 나머지 다른 일들도, 날을 따라, 일을 따라 더욱 밝아지고 더욱 충실하게 되어, 理義(이의)가 내 마음을 기쁘게 함이 참말로 소고기 도야지 고기가 입을 기쁘게 하듯이 될 것입니다.
 
162
吾人(오인)의 性情(성정)은 참으로 堯舜(요순)이 될 수 있는 것이니 卑近(비근)하고 淺小(천소)한 것을 떠나지 않아도 實(실)은 高深(고심)하고 遠大(원대)하며 무궁한 것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163
옛 사람이 이른바 深淵(심연)을 찾아 治道(치도)를 밝혀내고 本末(본말)을 貫通(관통)하여 大中(대중)을 세운다는 것이 여기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164
이에 이르러 비로소 小官(소관)의 말씀이 다 祖述(조술)한 바 있고 架空(가공)으로 지어내어 殿下(전하)를 속이는 것이 아님을 믿게 되실 것입니다.
 
165
그러하오나 臣(신)은 이 學問(학문)에 대하여 들어 안 것인 이미 늦었고 病(병)이 또 깊어서 이것을 힘써 實踐(실천)하여 자기의 것으로 삼지 못하였사오니 殿下(전하)의 盛意(성의)에 報應(보응)해 드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恐縮(공축) 황공하여 감히 오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166
이제 할 수 없이 이 걸음을 하였사오니 또 감히 이 말씀을 감추고 다른 말씀으로 대신 할 수도 없습니다.
 
167
殿下(전하)께서 다른 사람 때문의 말 때문이 이 말을 버리지 않으시고 이에 取(취)하는 바 있으시면, 지금의 公卿(공경)大夫(대부)들이 다 이 說(설)을 誦習(송습)하고 이 道(도)에 從事(종사)하는 사람들이오니 위에서 좋아하는 者(자) 있으면 아래에 반드시 더 甚(심)한 자가 있는 법입니다.
 

 
168
殿下(전하)께서 "묻기를 좋아하시고 가까운 말을 잘 살피시며 사람에게 取(취)하여 善(선)을 함을 즐겨하여" 밝은 덕의 功夫(공부)를 날로 더 하시면 누가 감히 全心(전심)을 바쳐 成德(성덕)을 助成(조성)하려고 아니하겠습니까? 그러면 臣(신)은 비록 田間(전간)에 病(병)들어 누워있어도 날마다 聖德(성덕)에 接近(접근)함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169
巖穴(암혈)에서 枯死(고사)하여도 萬生靈(만생령)과 더불어 聖澤(성택)의의 흐름에 같이 몸을 적시겠나이다. 懇切(간절)히 비는 마음 맡길 때 없어, 오직 죽음을 무릅쓰고 삼가 들려 올리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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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 참조
이황의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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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참조
 
▣ 기본 정보
◈ 기본
# 무진육조소 [제목]
 
이황(李滉) [저자]
 
1568년 [발표]
 
◈ 참조
? 선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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