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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경전(張景傳) 25장본 ◈
해설   본문  
1
화설(話說) 송(宋) 시절에 여남(汝南) 북촌 설학동에 일위(一位) 처사(處士)가 있되, 성(姓)은 장(張)이요 명(名)은 취요, 별호(別號)는 사운선생이니, 공렬(功烈) 후(侯) 장진의 후예라.
 
2
재학(才學)과 도덕이 높으나 집이 가난하여 나이 많도록 취처(娶妻)치 못하였더니. 방주(方州) 서촌에 여공(呂公)이라 하는 사람이 일녀(一女)를 두고 사위를 널리 가리다가, 장취의 어짊을 듣고 매파(媒婆)를 보내어 구혼하니, 장취가 허락하나, 납채(納采)할 형세(形勢) 없어 주야 근심하더니, 혼기(婚期) 미치매 가장(家藏)을 뒤져보니 모친 생시에 가졌던 옥지환(玉指環)이 있거늘, 그로써 예물을 삼아 보내니, 여공의 부인이 납채를 보고 탄식하기를,
 
3
“이것을 보매 그 빈궁함을 가히 알지라. 우리 늦게 딸을 낳아 장중보옥(掌中寶玉) 같이 길러, 이 같은 빈한(貧寒)한 집에 보내어 일생을 곤(困)케 하니, 내 지하(地下)의 돌아가도 눈을 감지 못하리로다.”
 
4
여공 이르기를,
 
5
“혼인에 재물을 의논함은 오랑캐의 풍속이라. 어찌 일시 빈한함을 혐의(嫌疑)하리오.”
 
6
하고 혼구(婚具)를 차려 신랑을 맞을새, 장생(張生)이 비록 의복이 선명치 못하나, 인물과 기상이 비범하여 군자의 풍도(風度)가 있으니, 보는 자가 칭찬 아니리 없더라.
 
 
 
7
이러구러 여러 해 되매, 여공 부부가 우연 득병(得病)하여 마침내 세상을 버리니, 장생이 치상(治喪)하여 선산에 안장한 후, 달 아래 고기 낚기와 구름 속에 밭 갈기를 일삼아 광음(光陰)을 보내더니, 일일은 처사가 여씨에게 이르기를,
 
8
“우리 명도(命途)가 기구하여, 집이 간구(艱苟)하고 또한 자식이 없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리오.”
 
9
여씨 이르기를,
 
10
“오형지속(五刑之屬)의 삼천에 무후(無後)가 크다 하니, 도시(都是) 첩의 죄이오나, 그윽이 들으니, 태항산 천축사에 오관대사가 도덕이 기특(奇特)하여 자식 없는 사람이 정성으로 공양하면, 혹 자식을 본다 하니 우리도 빌어봄이 어떠하리잇가?”
 
11
처사가 웃으며 이르기를,
 
12
“자식을 빌어 낳으면 뉘 자식이 없으리오. 그러하나 지성이 감천하느니 부인 말씀대노 빌어 보리라.”
 
13
하고 삼일 재계(齋戒)한 후, 예단(禮壇)과 향촉(香燭)을 갖추어 천축사의 나아가 일주야(一晝夜)를 극진공양하고 돌아왔더니, 이날 여씨 일몽(一夢)을 얻은 즉, 천축사 부처가 와 이르되,
 
14
“그대 부부의 정성을 세존(世尊)이 감동하사 귀자(貴子)를 점지하시니, 귀(貴)히 길러 문호(門戶)를 빛내라.”
 
15
하거늘 여씨가 처사에게 몽사(夢事)를 이르고 기뻐하더니, 과연 그달부터 태기(胎氣)가 있어, 십 삭(朔)만에 일개(一個) 옥동(玉童)을 생(生)하니, 얼굴이 관옥(冠玉) 같고 소리가 웅장하여, 짐짓 기남자(奇男子)라. 처사가 대희하여 이름을 경(景)이라 하고, 자를 각이라 하다.
 
 
 
16
장경이 점점 자라매 칠 세에 시서(詩書)를 통하며 무예를 좋아하니, 그 부모가 사랑하나, 그 너무 숙성함을 꺼리더니, 일일은 한 도사(道士)가 지나다가 장경을 보고 이르기를,
 
17
“이 아이 초분(初分)이 불길하여, 십 세에 부모를 이별하고 일신이 표박(漂迫)하다가, 길시(吉時)를 만나 명만사해(名滿四海)하여, 부귀영화가 세상의 으뜸이 되리라.”
 
18
하거늘 처사가 가장 의심하여 부인에게 도사의 말을 이르고, 생년월일시와 성명을 써 옷깃에 감추니이라.
 
 
 
19
차시(此時) 천하가 태평하고 사방이 무사하더니, 문득 서량(西凉) 태수(太守) 한복이 표(表)를 올리되,
 
20
‘예주(豫州) 자사(刺史) 유간이 반(反)하여 낙양(洛陽)을 침범하매, 그 형세 가장 강성하이다.’
 
21
하였거늘, 상이 놀라사, 즉시 표기장군 소성운으로 대장을 삼고 설만춘으로 부장을 삼아, 정병 십만을 거느려 유간을 치라 하시니, 소성운이 수명(受命)하고 바로 예주의 이르러 유간과 대진(大陣)할새, 유간이 관군을 능히 대적(對敵)하지 못하여, 예주성을 버리고 여남으로 들어가 인민(人民)을 노략(擄掠)하매, 백성이 다 종남산으로 피란(避亂)하거늘, 유간이 종남산을 둘러싸고 인민을 겁칙(則)하여 군사를 삼으니, 처사가 또한 잡혀가는지라.
 
22
여씨 따라오며 통곡하거늘, 처사가 위로하기를,
 
23
“내 이제 가면 다시 돌아오기 어려우니, 부인은 슬퍼 말고 경을 잘 길러 후사(後嗣)를 잇고 영양(榮養)을 받으라.”
 
24
하고 장경을 안고 체읍(涕泣)하다가 유간의 진으로 가니, 유간이 처사의 수려(秀麗)함을 보고 장수를 삼으니라.
 
25
이때 남은 도적이 재물과 부녀를 겁칙하거늘, 사람마다 목숨을 도망할새 장경이 울다가 잠이 들거늘, 여씨 황황(遑遑)하여 입었던 옷을 벗어 장경을 덮어주고, 모든 사람과 함께 피란하였더니, 장경이 도적의 함성의 놀라 깨어 보니 모친은 간 데 없고, 모친의 옷과 고름에 옥지환이 채였거늘, 옷을 붙들고 울다가 날이 저물매 정처 없이 가니라.
 
26
이적에 도적이 물러간 후 여씨 돌아와 본즉, 장경의 종적이 없거늘 대성통곡하기를,
 
27
“이미 장경을 잃었으니 어느 면목으로 가군(家君)을 보리오.”
 
28
하고, 집에 돌아가 자결(自決)하고자 하더니, 한 계집이 나아 와 절하며 이르기를,
 
29
“소인은 진어사댁 차환(叉鬟)으로 부인을 모셔 피란하였다가 돌아가는 길에 분부하시되, 우리 상공(相公)이 장 처사와 형제 같은 터이니, 우리 상공이 이왕 기세(棄世)하여 계시나, 그 댁 안부를 알아 오라 하시기로 왔나이다.”
 
30
하거늘 여씨 슬픔을 머금고 전후 수말(首末)을 설파(說破)하니, 차환이 빨리 돌아가 고하니, 그 부인이 대경(大驚)하여 즉시 행랑(行廊)으로 교자(轎子)를 가져 가 모셔 오라 하니, 차환이 나아가 어사 부인의 말씀을 전하며 교자를 드리니, 여씨 망극한 중에 또한 다행한 일이라 하여 즉시 교자를 타고 따라가니, 어사 부인이 맞아 위로하기를,
 
31
“이제 난중(亂中)에 가군과 귀자(貴子)를 잃었으니, 그 참혹한 말씀은 다시 이를 바가 없는지라. 부인은 보중(保重)하여 후일을 기다리심이 좋을까 하나니, 나와 함께 가사이다.”
 
32
하며 은근히 청(請)하거늘, 여씨 그 후대(厚待)함을 감격하여 사례(謝禮)하고, 그 부인과 함께 건주(建州)로 가니라.
 
 
 
33
차설(且說) 소성운이 유간을 따라 도적을 쳐 파하고, 유간을 생금(生擒)하여 경사(京師)로 보내니, 천자가 대희(大喜)하사 유간을 처참(處斬)하시고, 그 남은 장수를 운남 절도(絶島)에 위리(圍籬)하시고, 소성운을 돋우어 운주(雲州) 절도사(節度使)를 내리시니,
 
34
처사가 또한 절도에 정속(定屬)한 바가 되어,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여 죽고자 하다가, 부인과 아자(兒子)를 생각하고 사람을 얻어 설학동에 보내어 소식을 통하였더니, 돌아와 보(報)하되, 설학동은 사람은 커니와 그곳이 다 쑥밭이 되었다 하거늘, 처사가 청파(聽罷)에 대성통곡하다가 기절하니, 그 동관(同官)이 위로하여 세월을 보내더라.
 
 
 
35
차시(此時) 장경이 모친을 잃고 전전걸식(轉轉乞食)하여 운주성에 이르니 광음(光陰)이 훌훌하여 나이 십삼 세 된지라. 운주 관노(官奴) 차영이 장경을 보고 묻기를,
 
36
“너를 보매 상인(常人)의 자식이 아닌가 싶으니, 성명은 무엇이며 거주(居住)는 어디이뇨?”
 
37
장경 이르기를,
 
38
“나는 여남 북촌에서 살던 장경이로다.”
 
39
차영 이르기를,
 
40
“나도 너 같은 자식이 있으므로, 너를 보매 가긍(可矜)한지라. 내 집에 있어 사환(使喚)함이 어떠하뇨?”
 
41
장경이 가장 기뻐하거늘, 차영이 데려가 사환을 시키니, 이 사람은 본시 부요(富饒)하므로, 장경을 달래어 제 자식의 방자 구실을 바꾸려 하여, 상하(上下)에 인정(人情)을 후(厚)히 쓰고 상환(相換)하니, 장경이 그날부터 관가(官家) 구실과 잡역(雜役)을 잘 거행(擧行)하니, 관속(官屬)이 다 기특히 여기나, 차영이 무상(無狀)하여 머리도 아니 빗기고 옷도 변변히 입히지 아니 하니, 그 형용이 심히 애긍(哀矜)하매 동료 방자(房子) 등의 구박이 자심(滋甚)하더라.
 
42
일일은 장경이 부모와 신세를 생각하며, 옷을 벗어 이를 잡더니 옷깃 속에 금낭(錦囊)이 있거늘 떼어본즉, 여남 북촌 설학동 장취의 아들 장경이 기사(己巳) 십이월 이십 육일 해시(亥時)생이라 하였으니, 부친의 필적인 줄 알고, 즉시 옥지환과 한데 싸 감추니라.
 
 
 
43
그 고을에 창기(倡妓) 있으되, 이름은 초운이라. 시년(時年)이 십삼 세이니 장경의 고상함을 보고, 매일 관가 제반(祭飯)도 얻어 먹이며 머리도 빗겨 주고, 혹 장경이 울면 저도 또한 슬퍼하니, 보는 자가 다 괴이 여기더라.
 
44
초운이 십칠 세에 이르매 운빈화안(雲鬢花顔)이 당세(當世)의 빼어나니, 저마다 천금을 드려 구하되, 초운이 허락하지 아니하고 장경만 잊지 못하여 하거늘, 초운의 부모가 꾸짖어 이르기를,
 
45
“우리 너를 길러 장성하매 마땅히 천만금을 얻어 부모를 효양(孝養)치 않고, 걸인 장경을 따르니 어떤 연고(緣故)이뇨.
 
46
초운 이르기를,
 
47
“내 비록 천기(賤妓)나 천금을 귀히 여기지 아니하나니, 장경이 비록 헌옷에 쌓였으나 형산백옥((荊山白玉)이 진토(塵土)에 묻힘 같은지라. 오래지 않아 대장(大將) 인수(印綬)를 찰 것이니, 이런 사람을 구지부득(求之不得)이매, 이 마음을 어기오지 마소서.”
 
48
하니 그 부모가 악연(愕然)하여 다만 장경을 원망하더라.
 
 
 
49
차설 소성운이 운주에 도임(到任)한 후 삼번(三番) 관속(官屬)을 점고(點考)할 새, 장경의 의복이 남루(襤褸)함을 보고, 제 주인을 불러 옷을 지어 입히라 분부하니, 차영이 낡은 옷 한 벌 지어 입히매 형용이 조금 나은지라. 책방(冊房)에 두고 사환을 시키매 사사(事事)의 백령백리(百怜百俐)하더니, 일일은 소공(蘇公)의 아들 삼형제 모아 풍월(風月)을 화답할새, 장경이 문득 일수시(一首詩)를 지어 읊거늘, 생(生) 등이 대경하여 서책을 주어 읽히니, 정경이 강성(講聲)을 높여 읽으매, 성음(聲音)이 쇄락(灑落)하여 봉황(鳳凰)이 구소(舊巢)에서 우는 듯한지라.
 
50
이때 소공이 동헌(東軒)에서 글소리를 듣고 묻기를,
 
51
“이 글소리가 뉘 소리이뇨?”
 
52
좌우(左右)에서 답하기를,
 
53
“책방 방자(幇子) 장경의 글소리이리다.”
 
54
소공이 책방에 나아가 장경의 글을 보고 칭찬하기를,
 
55
“짐짓 천하의 기재라.”
 
56
하고 그 후부터 구실을 시키지 아니하고 학업에 힘쓰게 하니, 날로 성취하여 문여필(文輿筆)이 당세에 으뜸이라.
 
 
 
57
세월이 여류(如流)하여 소공이 과만(瓜滿)하매 경사(京師)로 돌아올새, 장경을 데려가니, 초운이 비록 장경과 성례(成禮)는 못하였으나, 주야(晝夜) 동거취(同去就)하다가 이별을 당하매 장경의 소매를 잡고 슬피 울며 이르기를,
 
58
“내 비록 창기나 뜻인즉 빙옥(氷玉) 같은지라. 평생을 수재(秀才)에게 의탁고자 하더니, 의외(意外) 서로 이별이 되니 첩(妾)의 일신을 장차 어찌하리오. 일후(日後)의 첩의 정회(情懷)를 잊지 말라.”
 
59
하며 월기탄을 주거늘, 장경이 또한 집수(執手) 낙루(落淚)하여 이르기를,
 
60
“초운의 깊은 은혜는 백골난망이라.”
 
61
하며 일수시를 지어 신물(信物)을 삼으니 그 글에 이르기를,
 
62
“칠년을 초운에게 의탁함이여. 그 은혜 태산보다 낫도다. 오늘날 손을 나눔이여. 눈물이 나삼(羅衫)을 적시도다. 알지 못 게라. 어느 날 장경의 그림자가 다시 운주의 이르러 초운을 반기리오.”
 
63
하였더라. 초운이 글을 보다 품에 품고 눈물을 흘리니, 보는 자가 또한 가련(可憐)히 여기더라.
 
 
 
64
차설 장경이 소공을 따라 경성의 이르러 학업에 힘쓰더니, 일일은 소공이 삼자(三子)를 불러 이르기를,
 
65
“장경은 수중(獸中) 기린(麒麟)이요 인중(人中) 호걸(豪傑)이라. 오래지 아니하여 이름이 사해(四海)에 진동하리니, 내 사위를 삼고자 하나니 너희 소견은 어떠하뇨?”
 
 
 
66
삼자가 대경(大驚)하여 이르기를,
 
67
“장경이 비록 영리하고 문필(文筆)이 절등(絶等)하오나, 그 근본을 모를 뿐더러 문하(門下)에 사환하던 천인(賤人)에 어찌 이런 말씀을 하시니잇고?”
 
68
소공이 탄식하기를,
 
69
“너희 등이 지인지감(知人之感)이 없어, 한갓 근본만 생각하니 왕후장상(王侯將相)이 어찌 씨 있으리오. 이후 깨달음이 있으리라.”
 
70
하더라.
 
 
 
71
이적에 우승상 왕귀는 공후(公侯) 거족(巨族)으로 소년(少年) 등과(登科)하여 부귀공명이 지극하나, 슬하(膝下)의 다만 한 딸이 있으니 이름은 월영이라. 옥모화용(玉貌花容)과 예도(禮道) 재질(才質)이 일세의 빼어났으매, 승상 부부가 과애(過愛)하여 사위를 널리 구하더니, 일일은 승상이 웃음을 머금고 부인과 소저를 대하여,
 
72
“소공의 집에 있는 아이 장경은 문필이 기이하다 하매, 내 구혼(求婚)하고자 하나니 부인 의향은 어떠하뇨?”
 
73
부인 이르기를,
 
74
“그 선불선(善不善)을 규중(閨中)에서 알 바가 아니오니, 상공이 알아 하소서,”
 
75
하거늘 왕공이 즉시 소절도사(蘇節度使)에게 기별하여 장경을 한 번 보기를 청하니, 절도사(節度使)가 장경을 불러 보내거늘, 장경이 승상부(丞相府)의 이르매 승상이 맞아 좌정하고, 차(茶)를 파(破)한 후 승상 이르기를,
 
76
“수재 문필을 한번 구경하고자 하노라.”
 
77
장경이 이르기를,
 
78
“소생이 본디 학업이 없사오나, 어찌 존명(尊命)을 봉승(奉承)치 아니하리잇고.”
 
79
하니 승상이 강운(江韻) 삼십 자를 부르거늘, 장경이 잠시간에 일필휘지(一筆揮之)하여 삼십수 시를 지어드리니, 승상이 보고 대찬(大讚)하기를,
 
80
“내 일찍 문필을 많이 보았으되, 이 같은 문체(文體)와 필법(筆法)은 금시(今時) 초견(初見)이라. 어찌 기특하지 않으리오.”
 
81
하고 시비를 불러 주찬(酒饌)을 내어 권하고 묻기를,
 
82
“수재 본향(本鄕)이 어디며 연기(年紀)는 몇이며, 무슨 일로 소절도의 집에 두류(逗留)하느뇨?”
 
83
장경이 답하기를,
 
84
“소생은 본디 여남 북촌 설학동에서 사옵다가, 난중에 부모를 잃고 동서 개걸(丐乞)하옵더니, 절도사의 애휼(愛恤)함을 입어 머무옵고, 나이는 이십 세로소이다.”
 
85
승상 이르기를,
 
86
“그대 부형(父兄)의 명자(名字)는 무엇이며 무엇을 하시더뇨?”
 
87
장경 이르기를,
 
88
“부친 함자(銜字)는 취요, 항상 글을 좋아하시기로 남들이 부르기를 처사라 하더이다.”
 
89
승상 이르기를,
 
90
“이 아니 사운선생이시냐?”
 
91
경이 이르기를,
 
92
“어려서 부모를 잃었기로 자세히 모르나이다.”
 
93
하고 인하여 하직을 고하니, 승상이 그 손을 잡고 이후 다시 찾음을 당부하여 보내니라.
 
 
 
94
차시 천하(天下)가 태평하고 사방이 풍등(豐登)하므로, 천자(天子)가 경과(慶科)를 뵈실새, 천하 선비가 구름 모이듯 하였는데, 소생(蘇生) 삼인과 장경이 또한 과장(科場)에 들어가 글제 걸렸음을 보고, 장경이 글을 지어 선장(先場)에 바치니, 상(上)이 친히 글을 고르시다 장경의 글을 보시고 대희하사 비봉(祕封)을 떼어보시니, 여남 장경의 연기(年紀)가 이십 세라 하였거늘, 상이 장원을 내리시고 신래(新來)를 재촉하시니, 장경이 즉시 나아와 복지(伏地)하니, 천자 장경의 비범함을 보시고 전교(傳敎)하사 이르기를,
 
95
“수십 년 전에 두우성(斗牛星)이 여남에 비추어 기특한 사람이 나리라 하더니, 과연 이 사람에게 응(應)하도다.”
 
96
하시고 한림학사(翰林學士)를 내리시니, 장경이 천은(天恩)을 숙사(肅謝)하고 궐문을 나매 청홍쌍기(靑紅雙旗)는 반공(半空)에 솟았고, 이원(吏員)의 풍류(風流)는 대노에 진동하여 소절도의 집으로 향하니, 소공이 대희하여 신래(新來)를 진퇴한 후, 내당(內堂)의 들어가 부인과 의논하여 혼사를 뇌정(牢定)하니라.
 
97
이튿날 장학사(張學士)가 왕승상 댁에 나아가 뵈올새, 승상이 사랑하여 신래(新來)를 진퇴를 시키매, 부인이 또한 누각의 올라 구경하며 승상의 지인지감(知人之感)을 탄복하더라.
 
98
승상이 한림(翰林)의 손을 잡고 이르기를,
 
99
“그대 소년에 용문(龍門)에 오르니 치하(致賀)하거니와, 각별히 할 말이 있으매 능히 용납(容納)하시라.”
 
100
한림이 답하기를,
 
101
“무슨 말씀인지 가르치소서.”
 
102
승상이 웃으며 이르기를,
 
103
“노부(老夫) 늦게야 한 딸을 두어 비록 임사지덕(姙姒之德)이 없으나, 군자의 건즐(巾櫛)을 족히 받듦직 한지라. 그대와 더불어 결혼하고자 하나니, 쾌히 허락하여 노부의 무류(無謬)함을 면케 할쏘냐?”
 
104
한림이 사례하고 이르기를,
 
105
“소자가 천은을 입사와 몸이 비록 귀히 되었사오나, 일찍 부모를 잃고 배운 것이 없거늘, 거두어 슬하의 두고자 하시니 불승(不勝) 황감(惶感)하여이다.”
 
106
하거늘 승상이 대희하여 한림을 보내고, 문연각(文淵閣) 태학사(太學士) 원교로 하여금 통혼(通婚)하니, 소공이 회답하되,
 
107
“장한림은 운주서부터 불초(不肖)한 여아(女兒)와 이미 정혼(定婚)하였기로 타처(他處)에 허락하지 못하노라.”
 
108
하거늘 원교가 돌아와 이대노 고하니, 승상이 대노하며 이르기를,
 
109
“내 벌써 한림과 혼삿말을 의논할 제, 이런 사색(思索)이 없더니, 소절도가 어찌 나의 대사를 위협하리오.”
 
110
하고 이튿날 조회(朝會)에서 이 사연을 아뢰니, 상이 소성운을 돌아보아 이르기를,
 
111
“승상이 이미 장경과 정혼하였다 하거늘 경이 거절함은 어쩐 일이뇨?”
 
112
소성운이 답하기를,
 
113
“신(臣)이 운주부터 장경을 여차여차 하옵고, 여식과 정혼하여 미쳐 성례(成禮)를 못하였는데, 의외로 중매를 보내었기로 신의 뜻을 통하였나이다.”
 
114
하거늘 왕승상이 또 주하기를,
 
115
“소성운은 삼자 일녀를 두옵고 신은 다만 한 딸을 두었기로, 장경을 얻어 후사를 잇고자 하나이다.”
 
116
상이 이르기를,
 
117
“소성운은 삼자 일녀를 두었고, 왕귀는 다만 일녀를 두어 후사를 의탁(依託)고자 하니, 그 경상(景狀)이 가긍(可矜)하매 다시 다투지 말라.”
 
118
하시고 승상에게 사혼(賜婚)하시니 소절도가 어찌할 수 없어 물러나거늘, 상이 다시 하교(下敎)하기를,
 
119
“장경은 부모가 없으니, 짐이 주혼(主婚)하리라 하시고 예부(禮部)의 전지(傳旨)하사 혼구(婚具)를 차려 주시니, 길일(吉日)이 다다르매 한림이 위의(威儀)를 갖추어 승상부(丞相府)의 이르러 전안(奠雁)하고 신부와 더불어 교배(交拜)할새, 한림의 선풍(仙風)옥골(玉骨)과 소저의 설부(雪膚)화용(花容)이 진실로 일대가우(一代佳偶)요 천정배필(天定配匹)이라.
 
120
만좌(滿座) 빈객(賓客)의 칭찬과 승상 부부의 즐김이 측량없더라. 날이 저물매 한림이 신방에 나아가 촉을 밝히고, 소저를 살펴보니 일지(一枝) 홍련(紅蓮)이 벽파(碧波)에 피어나며, 총명과 덕행이 외모에 솟아나고, 쇄락(灑落)한 용모가 짐짓 절대가인(絕代佳人)이라. 촉을 물리고 금금(錦衾)에 나아가매, 원앙이 녹수(綠水)에 놀며 비취(翡翠)가 연리지(連理枝)에 깃듦 같더라.
 
121
예(禮) 삼일에 한림이 입조(入朝) 사은(謝恩)하니, 상이 아름다이 여기사 벼슬을 돋우어 이부시랑(吏部侍郎) 겸 간의태부(諫議太傅)를 내리시니라.
 
 
 
122
이적의 소절도가 삼자(三子)를 꾸짖어 이르기를,
 
123
“당초 너희 등이 아니런들, 어찌 장경 같은 시랑(侍郞)을 왕승상에게 빼앗기리오.”
 
124
하고 타처에 구혼(求婚)하려 하더니, 소저가 듣고 나아가 고하기를,
 
125
“이 일은 규중(閨中) 처녀가 간섭할 바가 아니로되, 이미 장생에게 통혼하시고 이제 또 타인에게 구혼(求婚)하고자 하시니, 이는 규중 행실이 아니온지라. 옛날 초(楚) 공주는 오 세 적 일을 잊지 아니하여, 동문 밖 백성에게 하가(下嫁)하였사오니 소녀는 차라리 규중에서 늙을지언정, 결단코 타인을 좇지 못하리로소이다.”
 
126
소절도가 침음양구(沈吟良久)에 이르기를,
 
127
“장경의 벼슬이 이부시랑에 거(居)하였으니, 족히 두 부인을 두려니와, 왕녀(王女)의 버금됨이 부끄럽지 아니하리오.”
 
128
소저가 이르기를,
 
129
“여자의 행실을 지키려 할진대, 어찌 그 두 셋째를 혐의(嫌疑)하리잇고.”
 
130
소절도가 그러이 여겨 이튿날 원학사를 청하여 이 사연을 이르고, 중매를 청하니, 학사가 응낙하고, 즉시 왕부(王府)에 가 한림을 보고 소절도가 청하던 사연을 전하니,
 
131
한림이 유예(猶豫)하다가 이르기를,
 
132
“잠깐 머물라.”
 
133
하고 내당(內堂)에 들어가 왕씨에게 이르기를,
 
134
“복(僕)이 팔자가 기험(崎險)하여 삼 세에 부모를 잃고 동서 유리(流離)하다가, 천행(天幸)으로 소절도가 거두어 양육(養育)하심을 입어, 이름이 용문(龍門)에 오르고 벼슬이 재상의 올랐으니, 그 은혜 바다와 태산 같은지라. 어제 소절도가 통혼(通婚)하였으나 존공(尊公)의 즐거움이 족하므로 시행치 못하고 거절하였으니, 내 마음이 심히 불평(不平)한지라. 부인 향의(向意)는 어떠하뇨?”
 
135
왕씨 이에 흔연(欣然)히 이르기를,
 
136
“이는 상공(相公)이 재취(再娶)를 구함이 아니라 형세가 마지못함이니, 쾌히 허락하여 소절도의 대은을 저버리지 마르서.”
 
137
하니 시랑(侍郞)이 왕씨의 뜻을 시험하고자 하다가, 왕씨의 흔연한 기색을 보고 대희하여 원학사를 나와 보고 허혼(許婚)한 후 승상께 이 일을 고하니, 승상이 여아(女兒)를 기특히 여기며 이르기를,
 
138
“이 혼인을 내 마땅히 주장(主掌)하리라.”
 
139
하고 택일(擇日) 납채(納采)하고, 이튿날 시랑이 소절도 부중(府中)의 나아가 전안(奠雁) 교배(交拜)한 후 밤을 지내고 소절도 부부께 뵈오니, 새로이 즐거워함이 측량없더라.
 
140
수일을 머문 후 왕부(王府)에 돌아오니, 왕씨 신인(新人) 얻음을 치하하며 만면희색(滿面喜色)이요, 조금도 좋지 아니한 기색이 없는지라. 이후로부터 화목하여 정(情)이 골육(骨肉)같으니, 상하 노복(奴僕)이 다 왕씨의 덕을 칭찬하더라.
 
 
 
141
차시 운남절도사 장계(狀啓)에 표(表)를 올렸으되,
 
142
‘선우마갈이 서융(西戎) 왕 휼육 등과 더불어 정병(精兵) 삼십 만을 일으켜, 각처 고을을 쳐 파하고, 운남을 범하다.’
 
143
하였거늘, 천자가 대경하사, 문무(文武)를 모으시고 도원수(都元帥)를 택할새 대신이 주(奏)하기를,
 
144
“지금 적세(敵勢) 창궐(猖獗)하매 경적(輕敵)하지 못하오리니, 이부시랑 장경은 문무겸전(文武兼全)하옵고 지략(智略)이 유여(有餘)하오매, 장경으로 대원수를 삼아지이다.”
 
145
하거늘, 상이 대희하사 즉시 장경을 명초(命招)하사 이르기를,
 
146
“짐이 경의 충성을 아나니, 어찌 남만(南蠻)을 근심하리오.”
 
147
하시고 대사마(大司馬) 대장군(大將軍)을 내리시고 정병 사십 만을 주시니, 원수가 사은하고 집에 돌아와 처부모(妻父母)께 하직하고 왕씨와 소씨를 이별할 제, 멀리 떠남을 연연(戀戀)하여 하거늘, 왕씨 위로하기를,
 
148
“대장부가 세상의 나매, 태평한 때는 천자를 도와 치국안민(治國安民)하고 난세(亂世)를 당하면 고업(高業)을 세워, 이름을 죽백(竹帛)에 드리움이 떳떳하거늘, 어찌 아녀와 일시 이별을 아끼리오.”
 
149
원수가 부인의 통달함을 사례하고, 인하여 교장(敎場)에 나아가 장졸을 점고하여 다섯 대(隊)로 분배하니, 제일로는 좌선봉 유도와 우선봉 양철이요, 제이로는 좌장군 백운과 우장군 진양이요, 제삼로는 원수가 스스로 표기장군 맹덕과 진남장군 설만춘과 더불어 병을 총독(總督)하고, 제사로는 거기장군 기신과 호위장군 한복이요, 제오로는 정남장군 사마령과 정서장군 진무양 등이 각각 육만 병씩 거느렸으니, 금고(金鼓)는 산천을 움직이고 검극(劍戟)은 일월(日月)을 가리었더라.
 
150
원수가 머리에 일월(日月) 용봉(龍鳳)투구를 쓰고, 몸에 황금 쇄자갑(鎖子甲)을 입었으며, 손에 각처 병마사 명기(命旗)를 쥐고, 천리(千里) 토산마(土産馬)를 탔으니, 위풍이 늠름하고 진세(陣勢) 성성한지라. 행군한지 수 삭 만에 남성(南城)에 이르니, 태수 양제 나와 마자 군례(軍禮)로 맞고 좌정한 후, 원수가 양진(兩陣) 승패를 묻고 운남 지도를 올리라 하여 지세(地勢)를 살핀 후, 신기한 모책을 제장에게 약속하니, 제장이 청령(聽令)하고 믈러나니라.
 
 
 
151
차시에 남만(南蠻) 왕 마갈이 원수의 대군이 이름을 듣고, 바삐 대진(對陣)할새 적진 중에서 한 장수가 나와 크게 외치기를,
 
152
“송진(宋陣)에 나를 대적할 이 있거든 빨리 나와 승부를 결(結)하자.”
 
153
하거늘 원수가 금안(金鞍) 백마(白馬)로 진문(陣門) 앞에 나서며 크게 꾸짖어 이르기를,
 
154
“무지한 오랑캐 강의(剛毅)를 믿고 천병(天兵)에 항거하니, 네 머리를 베어 위엄을 뵈리라.”
 
155
하고 제장을 돌아보니, 문득 아문장군 왕균이 창을 빗기고 말을 달려 나와 바로 마갈을 취하니, 적장 공길이 또한 창을 둘러 맞아 싸워 수십 합이 못 되어 왕균의 칼 아래 놀란 넋이 된지라. 그 부장 굴통이 또 나오거늘, 왕균이 맞아 싸워 수 합이 못 되어 창으로 굴통을 찔러 죽이니, 마갈이 연(連)하여 두 장수가 죽음을 보고 진문(陣門)을 굳게 닫고 나지 아니하거늘,
 
156
원수가 한 계교(計較)를 내여 일모(日暮)하기를 기다려, 초경(初更)에 밥 먹고 이경(二更)에 행군하여, 바로 적진의 이르러 크게 호통하고 적병을 짓치니, 적병이 불의지변(不意之變)을 당하매, 마갈이 황황급급(遑遑急急)하여 필마단기(匹馬單騎)로 싸인 데를 헤치고 달아나더니, 운수탄에 이미 복병을 하였는지라.
 
157
마갈이 운수탄을 지날 즈음에 문득 방포일성(放砲一聲)에 복병이 내달아 전후로 엄살(掩殺)하니, 마갈이 능히 벗어나지 못하고 난군(亂軍) 중에 살을 맞고 몸을 번 듯 쳐 말에서 떨어지거늘, 진무양이 그 머리를 베어 대진(大陣)에 드리니, 원수가 제장의 공로를 기록하고 첩서(捷書)를 경사(京師)로 보내니, 차시 천자가 첩서를 보시고 그 소년(少年) 재략(才略)을 칭찬하시며, 왕씨로 정렬부인(貞烈夫人)을 봉(封)하시고, 소씨로 공렬부인(功烈夫人)을 봉하사, 그 영총(榮寵)을 빛내게 하시니라.
 
 
 
158
차설 원수가 운남을 평정하고, 황해 서융의 진으로 갈새, 길이 운주를 지나는지라. 운주성에 이르매 절도사(節度使) 마등철이 칭병(稱病)하고 군례를 행치 아니하거늘, 원수가 대노하여 이르기를,
 
159
“군법은 사정(私情)이 없느니라.”
 
160
하고 마등철을 베어 원문(院門)의 회시(回示)하고, 하리(下吏)를 불러 묻기를,
 
161
“이 고을에 초운이란 기생이 있느냐?”
 
162
답하기를,
 
163
“과연 초운이 있사오나, 해포 동안 병들어 지금 죽게 되었나이다.”
 
164
원수가 이르기를,
 
165
“내 일찍 초운의 이름을 들었더니, 비록 병중이나 한 번 보고자 하노라.”
 
166
하리가 급히 초운의 집에 가 영(令)을 전하니, 이때 초운이 장수재를 이별하고 주야 생각하다가, 성병(成病)하여 죽기에 이르렀더니 이 말을 듣고 대경하여 이르기를,
 
167
“내 병 이러하니 어찌 일신을 기동(起動)하리오.”
 
168
관속(官屬)이 발 구르며 이르기를,
 
169
“우리 절도사 상공이 여차여차하여 죽음을 듣지 못하였느냐. 만일 더디 가면 목숨을 보전치 못하리라.”
 
170
하며 재촉하니 초운이 마지못하여 사람에게 붙들려 관문(官門)에 대령하고 거래(去來)하니, 원수가 즉시 불러드리매 초운이 계하(階下)에 배복(拜伏)하거늘, 원수가 분부하여 당상(堂上)으로 오르라 하매, 전일을 생각하여 슬픈 마음이 간절하나 짐짓 묻기를,
 
171
“네 이름이 근방에서 유명하기로 한 번 보고자 하더니, 병세 이 같으니 무슨 병증으로 저렇듯 신고(辛苦)하뇨?”
 
172
초운이 낙루(落淚)하며 이르기를,
 
173
“당돌히 아뢰옵기 황공하오되, 소인의 병세는 다름 아니오라, 연전(年前)에 이 고을에 장경이란 사람과 언약이 중하옵더니, 구관(舊官) 노야(老爺)가 데려가시매, 이별 삼 년에 연연(戀戀)한 마음을 금치 못하여, 자연 성병(成病)하였사오니, 돋는 해와 지는 달에 다만 슬픈 눈물만 흘리고 죽을 때만 기다릴 따름이로소이다.”
 
174
하거늘, 원수가 이 경상을 보고 마음이 감동하여 녹는 듯하나, 또 물어 이르기를,
 
175
“네 말이 가히 헛된 말이로다. 구관(舊官)이 나와 일가(一家)가 됨으로, 그 집을 익히 아나니, 장수재란 말은 금시초문이라. 필연 다른 연고가 있도다.”
 
176
초운이 놀라며 이르기를,
 
177
“만일 이 같을진대, 소절도 상공이 중로에서 버려 계시거나,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죽었도소이다.”
 
178
하며 길게 흐느끼거늘, 원수가 능히 참지 못하여 눈물 흐름을 깨닫지 못하고 이르기를,
 
179
“그 병 고칠 약이 내게 있노라.”
 
180
하고 낭중(囊中)에서 월기탄을 내어 초운을 주며 그 손을 잡고 이르기를,
 
181
“칠년 동고(同苦)하던 장경을 네 알소냐?”
 
182
하니 초운이 이 말을 듣고 눈을 들어 원수를 보고, 일희일비(一喜一悲)하여 어리는 듯 취한 듯 자주 흐느껴 기절하였다가, 이윽고 정신을 정하여 원수의 소매를 잡고 누수(淚水)가 종행(縱行)하는지라. 원수가 그 손을 잡고 위로하기를,
 
183
“초운이 나를 위하여 이렇듯 괴로움을 감심(甘心)하니, 어찌 감격하지 아니하리오. 차후(此後)로 백년해로(百年偕老) 하리니 마음을 상해(傷害)하지 말라.”
 
184
초운이 눈물을 거두고 이르기를,
 
185
“소첩(小妾)이 잔명(殘命)을 보존하였다가 오늘날 맛날 줄 어찌 뜻하였으리잇고.”
 
186
하며 묵은 병이 점점 풀리어 수일 내에 설부화용이 완연히 절대가인(絕代佳人)이라.
 
 
 
187
운주 일읍(一邑)이 금일 대원수가 전일 장경인 줄 알고 크게 놀라며, 칭찬 아닌 이 없더라. 원수가 차영 부부와 관속 등을 불러, 금은 채단을 나눠 주어 옛날 정을 표하고, 초운의 부모에게 은금(銀金) 한 수레를 주니 그 부모가 일변 부끄러워 고두사례(叩頭謝禮)하더라.
 
188
인하여 초운에게 이르기를,
 
189
“내 이제 서융(西戎)을 치러 가나니, 너는 먼저 경사(京師)로 가라.”
 
190
하고 심복 사람으로 초운을 호송(護送)한 후, 행군하여 황하(黃河)의 이르니 그곳 절도사 신담이 영접하여 군례를 행한 후, 적세(敵勢)를 고하니 대원수가 이르기를,
 
191
“조그만 서융을 어찌 근심하리오.”
 
192
하더라.
 
 
 
193
차시 서융이 대강(大江)에 결진(結陣)하고 만왕(蠻王)의 승패 소식을 탐청(探聽)하더니, 원수가 절도사를 명하여 불로 칠 기계(奇計)를 준비한 후 격서(檄書)를 전하니, 서융이 즉시 장수 척발규로 하여금 수군(水軍)을 거느려 막으라 하거늘, 척발규 군사를 재촉하여 전선(戰船)을 버리고 크게 싸울새, 원수가 바람을 좇아 화전(火箭)을 놓으니, 화광(火光)이 충천하여 적선의 다다르매 적병이 불의 타 죽는 자가 부지기수(不知其數)라.
 
194
척발규가 능히 대적하지 못하여 잔군(殘軍) 거느리고 본진으로 향할새, 원수가 승승장구하여 급히 따르며 엄살하니, 서융이 황황(皇皇) 망조(亡兆)하여 제장으로 더불어 의논하기를,
 
195
“우리 등이 만왕(蠻王)의 달램을 입어 이곳에 이르렀더니, 이제 만왕이 이미 죽고 허다 장졸이 다 망하였으니, 우리 어찌 홀로 천병(天兵)을 당하리오. 일찍 항복할만 같지 못하다.”
 
196
하고 항서(降書)를 써 올리거늘, 원수가 장대(將臺)의 앉고, 서융을 불러 수죄(受罪)하며 이르기를,
 
197
“방금 천자가 성신문무(聖神文武)하시거늘, 네 미친 마음으로 군사를 일으켜 조정을 배반하니, 그 죄 만 번 죽여 아깝지 아니하되, 아직 용서하나니 다시 이심(異心)을 품지 말라.”
 
198
하고 저들의 장졸과 마필(馬匹) 등물(等物)을 다 주어 보낸 후, 인민을 안무(按撫)하고 첩서(捷書)를 닦아 주문(奏聞)하니라.
 
 
 
199
이적에 원수가 회군하여 황하에 이르러 사오 일을 쉬더니, 일일은 절도사 신담이 원수를 모셔 한담(閑談)하다가, 그 옥모(玉貌) 선풍(仙風)을 사랑하여 묻기를,
 
200
“원수는 어디서 사시며 부모가 구존(俱存)하시니잇가?”
 
201
원수가 문득 낙루(落淚)하며 이르기를,
 
202
“학생이 팔자가 기구하여, 일찍 부모를 잃고 동서유리(東西流離)하다가 천은(天恩)을 입어 영귀(榮貴)하였으나, 부모 존몰(存沒)을 모르오니 천지간 죄인이로소이다.”
 
203
하며 누수(淚水)를 금치 못하거늘, 절도사가 또한 감동하며 이 말 함을 뉘우치더라. 이때 장처사(張處士)가 관노(官奴)가 되었으므로, 절도사를 좇아 이곳에 왔다가 이 수작(酬酌)을 들으매, 분명 장경 같되, 어려서 잃었으므로 얼굴이 의회(疑懷)하고 위풍이 늠름하니, 감히 개구(開口)치 못하고 다만 눈물만 흘리다가 절도사가 나오기를 기다려 조용히 물어 가로되,
 
204
“상공과 원수가 수작(酬酌)하심을 들은 즉, 소인의 잃은 자식 같사오되, 당돌히 개구치 못하였거니와, 소인은 본디 공렬 후 장진의 후예로 여남 북촌 설학동에서 사옵고, 글을 좋아 하기로 남이 처사가라 일컫는 바이라. 늦게야 아들을 낳으매, 도사가 보고 여차여차 이른 고로, 여남 북촌 설학동 처사 장취의 아들 경의 나이 기사 십이월 이십구일 하시 생이라 써 옷깃 속의 넣었더니, 유간의 난에 피난하였다가 처자를 다 잃고 도적에게 잡혀, 마침내 본주(本州) 관노가 되어 사온지라. 바라건대 상공은 소인을 위하여 명일 탐지(探知)하여 보소서.”
 
205
하거늘 절도사가 청필(聽畢)에 일변 괴이 여기며, 일변 기이(奇異)여겨 아직 물러나라 하더라.
 
 
 
206
날이 저물매 대원수가 부모와 이왕(已往)을 생각하여 슬픔을 금치 못하여 야심토록 잠을 이루지 못하더니, 문득 한 노승이 육환장(六環杖)을 짚고 장대의 올라 장읍(長揖)하고 이르기를,
 
207
“원수가 이제 몸이 귀히 되었으나 어찌 부모를 생각하지 아니하는고?”
 
208
원수가 황망히 내려 맞으며 이르기를,
 
209
“존사(尊師)는 나의 부모 계신 곳을 가르쳐 주시면 결초보은(結草報恩)하리이다.”
 
210
노승이 웃으며 이르기를,
 
211
“지성이면 감천하나니 이 성중에서 부친을 만날 것이요, 버금 대부인을 뵈오려니와, 만일 그렇지 아니면 부모를 찾지 못하리라.”
 
212
하고 문득 간 데 없거늘, 심신이 산란(散亂)하여 절도사를 청하여 몽사(夢事)를 일러 이르기를,
 
213
“절도사는 나를 위하여 나의 부친을 방문(訪問)하여 주소서.”
 
214
신담 이르기를,
 
215
“몽사가 여차하니 금일 경사(慶事)가 있으리라.”
 
216
하고 또 묻기를,
 
217
“원수가 여남 북촌 설학동에서 살았으리잇가?”
 
218
원수 이르기를,
 
219
“그러하이다.”
 
220
신담 이르기를,
 
221
“어려서 고향을 떠났으면 어찌 지명(地名)을 아시니잇고?”
 
222
원수가 추연(惆然)하여 이르기를,
 
223
“장성(長成) 후 부친 유서(遺書)를 보고 아나이다.”
 
 
 
224
절도가 이르기를,
 
225
“그러하면 그 유서에 여차여차히 써 있더니잇가?”
 
226
원수가 대경하여 이르기를,
 
227
“어찌 우리 유서 사연을 알으시니잇고? 빨리 가르치소서.”
 
228
절도사 그제야 장처사의 전후사연을 고하고, 즉시 처사를 청(請)하니, 처사 마침 대하(臺下)의 있어 수작을 듣다가, 또 청함을 보고 심신이 황홀하여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치 못할 즈음에,
 
229
원수가 대하의 내달아 엎드려 유서와 모친의 옥지환을 드리며 방성대곡(放聲大哭)하거늘, 처사가 또한 울다가 원수의 손을 잡고 이르기를,
 
230
“네 군중(軍中)의 오래 노곤(勞困)하였으니 슬픈 마음을 억제하여, 노부(老父)의 심회(心懷)를 위로하라.”
 
231
할새, 절도사와 제장(諸將) 등이 부자가 상봉함을 치하함이 분분한지라. 원수가 눈물을 거두고 전후 고생하던 일과, 용문(龍門)에 올라 귀히 된 말씀을 일일이 고하기를,
 
232
“천우신조(天佑神助)하여 금일 부친을 뵈었거니와, 또 어느 때 모친을 만나리잇고?”
 
233
하며 또 낙루하니 처사가 또한 기쁜 중 비창(悲愴)하여 하더라. 원수가 부친을 위하여 신원(伸冤)할새, 표(表)를 닦아 주문(奏聞)하니, 가로되,
 
234
“대사마 대장군 대원수 겸 이부시랑 간의태부 문연각 태학사 신 장경은 삼가 황제께 올리옵나니, 소신이 본디 남방 천루지인(賤陋之人)으로, 조실부모(早失父母)하고 유리표박(流離漂泊)하옵다가, 소성운에게 의지하여 장성하매, 외람히 대은(大恩)을 입사와 벼슬이 한원(翰苑)에 이르렀사옵기 삼가 감읍(感泣)하와, 성덕(聖德)을 만분지일(萬分之一)이나 갚사올까 하옵더니, 이미 폐하의 홍복(洪福)을 힘입어 남만 서융을 소제(掃除)하옵고, 황하의 이르러 만행(萬幸)으로 부자 상봉하오니, 이 또한 성은이 망극하온지라. 신의 아비 장취가 역적 유간의 난(亂)을 만나 피란(避亂)하옵다가 도적에게 잡힌 바가 되어 휘하(麾下)의 충수(充數)하오매, 죽으려 하오나 능히 뜻을 이루지 못하여 누덕(累德)을 실어 마침내 황하에 위로(危路)하였다가, 오늘날 만났사오니, 신의 벼슬을 들어 아비 죄를 속할까 하옵나니, 성상(聖上)은 신의 정성을 어여삐 여기사, 신의 벼슬을 거두심을 천만 바라옵니다.”
 
235
하였거늘, 상이 보시고 칭찬하시며 제신에게 이르기를,
 
236
“장경이 한번 출사(出師)하매 남만을 평정하고 부자가 상봉하다 하니, 심히 아름다운지라. 또 장취는 사세부득(事勢不得)이 한 일로 절도(絶島)에 정속(定屬)까지 함이니, 어찌 다시 죄를 의논하리오.”
 
237
하시고 특별히 벼슬을 주어 아들의 영총(榮寵)을 빛내리라 하시고, 장취로 초국공(楚國公)을 봉하시니, 사명(使命)이 조서(詔書)를 받자와 황하에 이르니, 원수 부자가 북향사배하고 인하여 행군할새, 도로에 관광자(觀光者)가 무수한지라.
 
 
 
238
차시 진어사 부인이 장취 부인과 더불어 동산의 올라 구경하더니, 원수의 대군이 지나가며 서로 이르되,
 
239
“우리 원수 어려서 난중에 잃었던 부친을 만나 함께 오시니, 세간의 드문 일이라,”
 
240
하며 기리는 소리가 도로에 자자하거늘, 여씨 이 말을 듣고 문득 처사 부자를 생각하여 슬픈 마음을 금치 못하여, 문득 실성통곡하거늘, 진부인이 위로하여 만류(挽留)하더니, 원수가 부인의 곡성을 듣고 자연 감동하여, 모친을 사모하여 소교(小嬌)를 불러 그 우는 연고를 알아오라 하니, 소교 돌아와 보(報)하되,
 
241
“그 집은 진어사댁이요, 우시는 부인은 여남 장처사댁 부인이라 하더이다.”
 
242
원수가 듣고 가장 의혹하고 중군에 전령하여 노상(路上)의 유진(留陣)하고, 단기(單騎)로 진어사집에 나아가 시비를 불러 묻기를,
 
243
“아까 우시던 부인이 장처사 부인이라 하니, 뉘시며 무슨 일로 통곡하시뇨?”
 
244
시비 향난이 답하기를,
 
245
“그 부인 여남 북촌 설학동 장처사 부인이 난리(亂離)에 처사와 공자(公子)를 잃고 이 댁에 의탁(依託)하여 매양 슬픈 마음을 정치 못하여 우시나니이다.”
 
246
원수가 크게 의혹하여 이르기를,
 
247
“네 들어가 부인께 묻자와 아이를 몇 살에 잃었으며 무슨 신물(信物)이 있는가 알라오라.”
 
248
향난이 들어가 원수의 말씀을 고하니, 여부인이 괴이 여겨 이르기를,
 
249
“대원수 이렇듯이 사정을 물으니 반드시 연고가 있도다.”
 
250
하고 향난에게 이르기를,
 
251
“네 나가 아뢰되, ‘나의 아들은 칠 세에 잃고 옷고름에 옥지환(玉指環)을 채웠나이다.’ 하라.”
 
252
하니 원수가 그제야 분명한 모친인 줄 알고 크게 통곡하며, 부친의 유서와 옥지환을 내어 향난에게 이르기를,
 
253
“불초자 장경이 왔음을 아뢰라.”
 
254
하니 향난이 전지도지(顚之倒之)히 들어가 이 사연을 고하니, 부인이 보고 통곡하며 급히 나와 원수를 붙들고 이르기를,
 
255
“너를 잃고 이때가지 설움을 견디지 못하더니, 어찌 금일에 살아 만날 줄 뜻하였으리오.”
 
256
하며 방성대곡하거늘 원수 눈물을 거두고 위로하기를,
 
257
“소자가 모친을 잃고 여차여차 하였나이다.”
 
258
하고 전후 사연(事緣)을 낱낱이 고하니, 부인이 청파(聽罷)의 놀라서 반겨 이르기를,
 
259
“이는 하늘이 도우심이로다.”
 
260
하며 진부인과 상하 노복이 그 모자 상봉함을 못내 칭찬하더니
 
261
이때 초공(楚公)이 대진(大陣) 뒤에 쫓아오다가, 이 기별을 듣고 빨리 진어사집으로 나아가 부인을 붙들고 반기며 슬퍼하는지라. 원수가 재삼 위로하며 시비로 하여금 진어사 부인께 문안하고 은혜를 사례하니, 어사 부인이 화답하고 인하여 여부인께 청하여 이르기를,
 
262
“우리 이곳에 머무른 지 십여 년에 형제 같은 은정(恩情)이요, 내 나이 또한 반백이니 원수를 봄이 허물되지 않으리니, 부인은 원수를 데리고 들어오심을 바라나이다.”
 
263
하거늘, 부인이 나아가 갖추어 말한 후, 원수와 내당에 들어가 어사 부인과 서로 배례하고 원수가 이르기를,
 
264
“환난(患難) 중의 모친 구호(救護)하던 은혜를 갚을 바를 알지 못하나이다.”
 
265
진부인이 손사(遜辭) 이르기를,
 
266
“환난 중에 사람 구함이 어찌 은혜라 하리오.”
 
267
하며 여부인을 향하여 이르기를,
 
268
“이제 부인은 가군(家君)과 아자(兒子)를 맛나 영화(榮華)로이 돌아가시거니와 저는 본디 한낱 딸이 있으나, 아직 성취를 못하였으니 뉘를 의지하리오.”
 
269
하며 낙루하거늘, 여부인이 위로하기를,
 
270
“첩이 가군과 아자를 만남이 다 부인의 은혜라. 원컨대 나와 함께 경사로 가 평생을 동기(同氣) 같이 지냄이 어떠하니잇가?”
 
271
진부인 이르기를,
 
272
“부인 말씀이 감사하거니와, 내게 간절한 소회(所懷) 있으니 용납하시리잇가?”
 
273
여부인 이르기를,
 
274
“원컨대 듣고자 하나이다.”
 
275
진부인이 침음양구(沈吟良久)에 이르기를,
 
276
“첩에게 한 딸이 있음은 부인의 아시는 바이라. 비록 불민(不敏)하나 군자 건즐(巾櫛)을 받듦 즉하니, 만일 원수와 진진(秦晉)의 좋음을 맺으면, 첩의 후사를 의탁할까 하나이다.”
 
277
여부인이 청파의 그 경상을 가긍히 여겨 이르기를,
 
278
“부인 말씀이 가장 마땅하오니, 비록 아자가 두 아내를 두었으나 내 일찍 보지 못하였고, 하물며 영애(令愛)의 재덕은 첩이 익히 아는 바이라. 어찌 다시 의심하리오.”
 
279
하고 초공께 이 말을 통하니 초공이 또한 그 은덕을 생각하여 허락하되, 원수는 세 부인이 과(過)함을 염려하여 묵묵부답(黙黙不答)이거늘, 부인이 그 뜻을 알고 이르기를,
 
280
“왕씨는 황상(皇上)이 사혼(賜婚)하신 바이요, 소씨는 왕승상이 주혼(主婚)한 바이니, 이번은 우리 주장(主掌)함이 옳고, 하물며 진소저의 덕용(德容) 색태(色態)는 내가 아는 바이라.”
 
281
하고 원수를 불러 문의(問議)하니, 원수가 답하기를,
 
282
“삼처(三妻)를 둠이 과하오나, 어찌 존명을 받들지 아니하리잇고.”
 
283
하거늘 부인이 대희하여, 즉시 예단(禮單)을 갖추어 납채하고 성례하니라.
 
284
차설 초공이 원수에게 이르기를,
 
285
“나는 선산에 소분(掃墳)하고 쫓아 갈 것이니, 너는 빨리 행군하여 올라가라,”
 
286
하니 원수가 수명하고 먼저 경사로 가니라.
 
 
 
287
선시(先時)에 초운이 경사의 이르러, 왕승상댁을 찾아 원수의 서찰과 명첩(名帖)을 드리니, 소씨 초운의 왔음을 듣고, 왕씨에게 운주에서 지내든 일과 초운의 행적을 대강 이르니, 왕씨 기특히 여겨 즉시 불러볼새, 좌를 주고 살펴보니 운빈화안(雲鬢花顔)은 선연작약(嬋姸綽約)하고 공순(恭順) 정정(貞靜)한 덕이 외모에 나타나는지라. 왕씨 그 손을 잡고 이르기를,
 
288
“내 일찍 초운의 아름다운 말을 듣고 한번 보고자 하더니, 금일 서로 만나매 어찌 반갑지 아니하리오.”
 
289
초운이 절하여 이르기를,
 
290
“첩은 본디 하방(下方) 천인(賤人)이라. 이 같이 관대를 입사오니 부인 성덕을 가히 알리로소이다.”
 
291
하거늘 왕씨 그 말씀이 유순(柔順) 은근(慇懃)함을 더욱 기특히 여겨, 시비를 명하여 별당에서 함께 머물게 하니라.
 
 
 
292
차설 장원수가 건주를 떠나 반월(半月)만의 황성의 다다르매, 천자가 백관을 거느리시고 영접하실새, 원수가 말에서 내려 배복하며 만세를 부르니, 상이 기뻐하사 이르기를,
 
293
“경이 한 번 출전하매 변방(邊方)을 평정(平定)하고, 또 잃었던 부모를 만났으니 천고(千古)에 드문 일이라. 장차 무엇으로 그 공덕을 표하리오.”
 
294
원수가 부복 돈수(敦壽)하여 이르기를,
 
295
“이는 폐하의 홍복이라. 어찌 신의 공이리잇고.”
 
296
하며 또 건주서 노모 만난 사연과 진씨 취한 말씀을 주달(奏達)하니, 상이 더욱 기특히 여기사, 즉시 대연을 배설하여 삼군을 향사(饗賜)하시며 출전 제장의 벼슬을 돋우시고, 원수에게 금은 채단과 별궁(別宮)을 사급(賜給)하시니, 원수가 사은한 후 집에 돌아오매 가중(家中) 상하(上下)와 친척 노소(老小)의 치하하는 소리가 분분하더라.
 
 
 
297
이때 초공이 여부인과 진어사 집 일행을 거느려 설학동에 이르러 선산에 소분하고, 인하여 길을 떠나 여러 날 만에 경성의 이르매, 원수가 멀리 나와 본댁으로 나아갈새, 왕승상과 소절도가 맞아 반기며, 왕(王) 소(蘇) 이부인(二婦人)이 칠보(七寶) 단장(丹粧)으로 구고(舅姑)께 현알(見謁)할새, 초공 부부가 그 쇄락(灑落)한 골격(骨格)과 단아(端雅)한 거지(擧止)를 보고 대열(大悅)하여, 그 손을 잡고 이르기를,
 
298
“우리 환난(患難) 여생(餘生)으로 황천(皇天)의 도우심을 입어 부자가 상봉하고, 또 이 같은 현부(賢婦)를 보니 이제 죽어도 무한이로다.”
 
299
이렇듯 말씀할새, 초운이 또한 응장성식(凝粧盛飾)으로 계하에서 고두(叩頭)재배(再拜)하거늘, 초공 부부가 당상(堂上)에 좌(座)를 주고 당초(當初)에 아자(兒子)를 두호(斗護)하던 은공을 일컬으니, 초운이 불감당(不堪當)임을 사례한 후, 진부인께 뵈오니 진부인이 답례하고, 이날부터 삼 부인이 서로 화목하여 은정이 형제 같더라.
 
 
 
300
수일 지난 후의 원수가 별궁으로 올라갈새, 주란(朱欄) 화각(畫閣)이며 분벽(粉壁) 사창(紗窓)이 찬란(燦爛) 조요(照耀)하여 서기(瑞氣) 영롱(玲瓏)한지라. 각각 처소를 정할새, 만수각과 천수당은 초공 부부의 처소(處所)요, 화심당은 진어사 부인의 처소요, 백화당은 왕씨 처소요, 추화당은 소씨 처소요, 천향각은 진씨 처소요, 화류당은 초운의 처소요, 은향각은 원수 처소로 정하고, 그 나머지는 각각 시비의 침소(寢所)로 정하니라.
 
 
 
301
익일(翌日)은 원수가 초공을 모셔 황극전에 조회(朝會)하니, 천자가 하교하사 이르기를,
 
302
“장경은 충의(忠義)겸전(兼全)하고 국가에 대공이 있으니 어찌 기특하지 아니리오.”
 
303
하시고 특별히 우승상(右丞相)을 내리시고, 왕귀로 태사를 봉하고, 소성운으로 대사마 대장군을 내리시니, 원수가 굳이 사양하다가 어쩔 수 없어 사은하고 물러나와, 낮이면 천자를 도와 정사를 다스리고, 밤이면 부모를 효양(孝養)하며 세 부인과 초운으로 더불어 동락하더니,
 
304
흥진비래(興盡悲來)는 고금(古今)상사(常事)이라.
 
305
초공 부부가 우연 득병하여 백약이 무효하매, 인하여 세상을 버리니 승상 부부 등의 애통함이 과도(過度)하고, 예로 치상(治喪)하여 선산의 안장한 후, 또 왕태사 부부가 연(連)하여 세상을 이별하매, 승상이 상례(喪禮)를 극진히 삼 년을 지내매, 광음(光陰)이 훌훌하여 육칠 년이 되었는지라.
 
 
 
306
차시 천자 성후(聖候)가 불평(不平)하사 날로 위중하시매, 승상을 명초(命招)하사 이르기를,
 
307
“짐이 불행하여 다시 정사를 살피지 못할 것이요, 태자가 어리고 형제 많으매 반드시 후환(後患)이 있을 것이니, 경은 충성을 다하여 사직(社稷)을 안보(安保)하라.”
 
308
하시고 붕(崩)하시니, 춘추(春秋)가 칠십칠 세요, 재위 이십구 년이라. 승상이 문무를 거느려 발상(發喪)하고, 태자를 세우니 춘추가 십사 세러라.
 
 
 
309
각설 연왕(燕王) 건성은 황제의 차형(次兄)이라. 가만히 불측지심(不測之心)을 두어 만조백관(滿朝百官)을 체결(締結)하여 대위(大衛)를 앗고자 하나, 오직 장경을 꺼려 감히 생(生)하지 못하더니, 일일은 일계(一計)를 생각하고, 사람을 보내어 승상을 청하니, 승상이 가장 괴이 여겨 칭병(稱病)하고 가지 아니하니, 건성이 대노하여 천자께 여쭈오되,
 
310
“승상 장경을 청하여 국사를 의논하고자 하오나, 장경이 매양 신을 업수이 여기오니, 폐하는 살피소서.”
 
311
하고 참소(讒訴)하거늘, 상이 즉시 승상을 인견(引見)하사 이르기를,
 
312
“연왕은 선제(先帝)의 중신(重臣)이요, 짐의 형이라. 국사를 의논하고자 하거늘 경이 가지 아니함은 어찌된 일이뇨? 서로 찾아 부디 좋은 뜻을 상하지 말라.”
 
313
하시니 승상이 심히 불쾌하나 마지못하여 연왕 부중(府中)의 이르니, 건성이 흔연(欣然) 관대(寬待) 이르기를,
 
314
“방금 천자가 연소(年少)하시고, 조정(朝庭)이 해이(解弛)하기로 승상과 상의하고자 하거늘 어찌 더디 오뇨?”
 
315
하며 주찬(酒饌)을 내와 은근이 권하거늘, 승상이 마지못하여 두어 잔을 먹으니 그 술이 독한지라.
 
316
이윽고 대취하여 인사(人事)를 모르거늘, 건성이 거들어 옷을 벗기고 선제의 총첩(寵妾) 비군을 달래어 금은을 후히 주고, 승상 곁에 누웠다가 여차여차하라 하더니, 날이 밝으매 승상이 술을 깨어 보니, 몸이 연왕 부중의 누웠고 곁에 한 계집이 있거늘, 대경하여 묻기를,
 
317
“연왕 전하는 어디 계시뇨?”
 
318
비군 이르기를,
 
319
“전하는 내전으로 들어가시고 첩은 선제를 뫼시던 비군이러니, 승상이 풍채를 구경하고자 나온 즉, 승상이 취중에 겁칙하심을 잊어 계시니잇가?”
 
320
하거늘, 승상이 청파에 건성의 꾀인 줄 알고 대경실색하여 아무리 할 줄 모르더니, 건성이 모르는 체하고 나오다가 이 거동을 보고 거짓 놀라며, 무사를 명하여 승상을 동여매고 천자께 아뢰되,
 
321
“승상 장경이 여차여차 하다가 발각하였기로 잡아 대령하였나이다.”
 
322
상이 놀라시며 이르기를,
 
323
“장경은 충효(忠孝) 군자(君子)이니 어찌 이런 행사를 하리오.”
 
324
하시고 방송(放送)하라 하시니, 모든 종실(宗室)과 시신(侍臣)이 일시에 여쭈오되,
 
325
“장경이 비록 외모는 충성(忠誠)되오나, 음란지사(淫亂之事)는 일로 측량치 못하옵나니, 폐하는 살피사 국법을 정(正)히 하소서.”
 
326
하거늘, 상이 본디 총명하시나 마지못하여 비군을 잡아드려 사실(査實)하시니, 비군이 아뢰되,
 
327
“신첩이 연궁(燕宮)의 갔다가 돌아 오옵는 길에 숭상 장경이 대취하고, 억지로 겁칙하오매 마지못하여 몸을 에게이옵고, 다만 죽고자 하옵니다.”
 
328
하거늘 상이 또한 어쩔 수 없어 비군을 내옥(內獄)에 가두고, 장경을 정위(廷尉)에 내리시니, 승상이 옥중에 나아가매 분기(憤氣) 충천(衝天)하나 무가내(無可奈)해라. 이에 원정(冤情)을 지어 올리니, 하였으되,
 
329
“소신 장경은 본시 남방천인으로 외람히 선제의 지우(知遇)하신 천은을 입사와, 벼슬이 일품에 거하옵고, 삼처 일첩을 두었사오니, 어찌 천앙(天殃)이 없사오리잇고. 이러므로 주야에 동동촉촉(洞洞燭燭)하와 행여 성은을 저버릴까 하옵더니, 이제 생각지 않은 죄명(罪名)을 짓사오니, 다만 청천(靑天)을 부르짖을 따름이요, 달리 발명(發明)하올 길이 없사오매, 복원(伏願) 성상(聖上)은 신의 머리를 베어 국법을 정히 하소서.”
 
330
하였거늘 상이 보시고 그 애매(曖昧)함을 이르시나, 건성과 대신이 굳이 다툼으로 인하여 절도(絶島)에 정배(定配)하라 하시니, 법관(法官)이 황토(荒土)섬으로 마련하거늘, 이때 삼 부인이 이 말을 듣고 황황망조하여 문밖에 나와 이별할새, 승상이 눈물을 흘려 이르기를,
 
331
“내 이제 누명을 쓰고 만리 적소(謫所)에 가니, 어느 때 서로 볼는지. 부인은 각각 자녀를 거느려 보중(保重)함을 바라노라.”
 
332
하고 또 초운을 불러 가만히 이르되,
 
333
“왕부인은 무해(無害) 무덕(無德)하고, 진부인은 어질거니와, 소씨는 천성이 편벽(偏僻)되니, 각별 조심하라 하고 떠날새, 삼 부인이 흐느끼며 이르기를,
 
334
“상공은 보중하사 누명(陋名)을 신설(伸雪)하시고 수이 돌아오심을 주야 축원하나이다.”
 
335
하며 누수(淚水)가 여우(如雨)이거늘, 승상이 위로하고 발행(發行)하니라.
 
 
 
336
원래 소씨 초운의 지모(智謀)를 승상이 애중(愛重)함을 시기하여 매양 해(害)하고자 하더니, 마침 승상이 없는 때를 타 계교를 생각하고, 시비 춘향을 불러 초운의 필적을 도적하여 서간을 위조(僞造)하고, 초운의 사환 손침을 후히 뇌물을 주어 이르기를,
 
337
“네 이 서간을 가지고 병마총독 정사운에게 가 여차여차 하라.”
 
338
하니 손침이 허락하고 바로 정사운에게 가니, 정사운이 본디 무과출신으로 운주병마사로 있을 때에 초운을 흠모하던 바이라. 의외로 초운의 서간이 왔음을 듣고 대희하여 서간을 떼어 보니, 하였으되,
 
339
“초운은 삼가 글월을 정장군 좌하(座下)의 올리옵나니, 첩이 운주 있을 제 장군이 사랑하시매, 첩이 매양 뫼시고자 하다가 마침 여의치 못하고 장승상이 데려오시매 주야 사모하는 정이 간절하더니, 이제 승상이 절도 정배하매 돌아올 기약이 없는지라. 원컨대 장군은 모일(某日)에 장승상 집을 겁칙하고 첩을 데려 가소서.”
 
340
하였거늘 정사운이 간파(看破)에 대희하여 즉시 답서를 닦아주거늘, 손침이 돌아와 전하니, 소씨 기뻐하여 춘향을 주어 이르기를,
 
341
“네 이 서간을 가져다가 가만히 초운의 서안(書案) 밑에 감추라.”
 
342
하고, 이윽고 소씨 시비를 데리고 초운에게 가니, 초운이 일어나 사례하고 이르기를,
 
343
“부인이 누지(陋地)에 하림(下臨)하시니 불승(不勝)황감(惶感)하이다.”
 
344
소씨 이르기를,
 
345
“승상이 적소의 가신 후로 자연 심사가 울울하기로 초운을 보러 왔노라.”
 
346
하며 서책(書冊)을 뒤져 보는 체하다가 서간을 얻어 내어 이르기를,
 
347
“이 편지 어디서 왔느뇨?”
 
348
초운이 놀라 보니, 피봉(皮封)에 ‘정총독의 초운에게 회답하노라.’ 하였거늘, 이에 실색(失色)하여 이르기를,
 
349
“실로 알지 못하나이다.”
 
350
소씨 이르기를,
 
351
“그대 방중(房中)에 있는 것을 어찌 모르노라 하느뇨?”
 
352
하며 떼어 보니 기서(其書)에 하였으되,
 
353
“전에 운주에 있을 제, 낭자를 흠모하여 한 번 보고자 마음이 평생 간절하더니, 의외 수찰(手札)을 보매 일촌(一村) 간장(肝腸)이 녹는 듯한지라. 반가운 정회(情懷)는 장차 하려니와, 기별한 말은 그대로 할 것이니 근심 말라.”
 
354
하였거늘, 소씨 견필(見畢)에 대노하여, 시비로 하여금 초운을 결박하고 꾸짖어 이르기를,
 
355
“일시 승상이 아니 계시다 하여, 이런 행실을 하니 어찌 통한치 아니하리오.”
 
356
하고 즉시 왕씨와 진씨를 청하니, 두 부인이 이 소식을 듣고 화류당의 이르니, 초운을 결박하여 꿇렸거늘 대경하여 그 연고를 물으니, 소씨 서간을 내여 뵈며 이르기를,
 
357
“이런 행실을 가졌을 줄 어찌 뜻하였으리오. 두 부인은 알아 하소서.”
 
358
두 부인 이르기를,
 
359
“우리 총망(悤忙) 중의 어찌 처치(處置)함을 생각하리오.”
 
360
소씨 이르기를,
 
361
“정사운이 오늘밤에 오마 하였으니, 음녀(淫女)를 아직 가두고 기미(幾微)를 보사이다.”
 
362
하거늘 두 부인이 각각 침소로 돌아 가니라. 이때 소씨 모든 노복에 분부하여 준비하고 정사운이 옴을 기다리더니, 밤든 후 과연 정사운이 가정(家丁)을 데리고 바로 문을 깨치며 들어오거늘, 노복 등이 일시의 내달아 정사운을 결박하고 삼 부인에게 고하니, 정사운이 불의지변을 당하여 초운의 서간을 내어 드리며 애걸하거늘, 모두 보니 초운의 필적이라.
 
363
소씨 이르기를,
 
364
“정사운은 실로 무죄하니 방송하라.”
 
365
하다.
 
 
 
366
이적에 진씨 침소(寢所)에 돌아와 시비 향난을 불러 이르기를,
 
367
“초운의 빙옥(氷玉) 같은 절개로 누명을 써 죽게 되가니, 어찌 가련(可憐)치 아니하리오. 너는 모름지기 나의 서간과 먹을 것을 가지고 가만히 옥중의 가 전하라.”
 
368
향난이 수명(受命)하고 밤을 기다려 초운의 갇힌 곳에 나아가, 시비 취향을 불러 부인 서간과 음식을 드리니, 차시 초운이 불의에 누명을 쓰고 옥중의 갇힌 신세를 생각하고 혼절하였다가, 취향의 구함을 입어 겨우 정신을 차려 진씨의 은혜를 감격하여 하며 서간을 보니, 하였으되,
 
369
“우리 전생 연분으로 승상 건즐(巾櫛)를 받들다가 가운(家運)이 불행하여 승상이 원적(遠謫)하시고, 또 낭자가 동렬(同列)의 시기를 입어 이 지경의 이르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리오. 그러하나 천도(天道)가 소소(昭昭)하시니, 원컨대 복중(腹中)의 아이를 돌아보아 몸을 버리지 말고 후일을 기다리라.”
 
370
하였거늘 초운이 간파(看破)에 흐느끼며 향난에게 이르기를,
 
371
“애긍한 나를 물으시니 마땅히 결초보은하리라.”
 
372
하고 회답(回答)을 써 주니, 향난이 가지고 돌아와 진부인께 드리니, 진씨 받아 보니, 하였으되,
 
373
“천첩(賤妾)이 본디 하방(下方) 천인(賤人)으로 승상 은애(恩愛)와 삼 부인 덕택을 입사와 일신이 영귀하더니, 조물(造物)이 시기하와 천고 누명을 입사오니, 이제 잔명(殘命)을 마침이 아깝지 아니하오나 복중 유아(幼兒)와 함께 명을 맞게 되오니, 다시 부인 존안(尊顔)을 뵈올 날이 없사온지라. 바라건대 부인 귀체(貴體)를 보중하오서. 일후 승상이 돌아오시거든 첩의 누명을 신설(伸雪)하여 주시면 황천지하(黃泉之下)에 눈을 감을까 하나이다.”
 
374
하였거늘, 진씨 간파에 눈물 내림을 깨닫지 못하는지라.
 
375
인하여 시비를 데리고 모화당의 가니, 소씨 왕씨와 더불어 말씀하다가 진씨를 대하여 이르기를,
 
376
“초운의 일을 어찌 처치하여야 가(可)하리오?”
 
377
진씨 문득 한 계교를 생각하고 이르기를,
 
378
“초운의 죄상이 가장 통분(痛憤)하니, 바삐 문적(文蹟)을 만들어 명일 법사(法司)에 고하여 엄형(嚴刑)으로 다스림이 마땅할까 하노라.”
 
379
소씨 대희하여 이르기를,
 
380
“부인 말씀이 옳도다.”
 
381
하고 왕씨와 더불어 문적 초(草)를 잡거늘, 진씨 처소로 돌아와 밤들기를 기다려 향난을 불러 이르기를,
 
382
“네 가만히 옥중에 들어가 초운을 데려오라.”
 
383
하니 향난이 옥문에 이르러 옥졸이 잠듦을 보고 들어가 초운에게 이르기를,
 
384
“일이 위급하니 낭자는 빨리 나와 나를 따르소서.”
 
385
하거늘 초운이 취향을 데리고 향난을 좇아 바로 진부인 침소의 이르니, 진씨 초운의 손을 잡고 낙루하며 이르기를,
 
386
“낭자의 액화(厄禍)는 이로 성언(聲言)치 못하거니와, 이제 사세(事勢) 위급하여 날이 밝으면 대환(大患)이 있으리니, 바삐 취향을 데리고 성문 열기를 기다려 양자강(揚子江)을 건너, 바로 승상 적소로 찾아 가라.”
 
387
하며 은자(銀子) 오십 냥을 주거늘, 초운이 부인 은덕을 사례하고 즉시 취향을 데리고 양자강의 이르러 선가(船價)를 후히 주고 배의 올라가더니, 문득 광풍이 대작(大作)하여 배를 몰아가매 사공이 능히 걷잡지 못하는지라. 이틀 만에 한 곳에 다다라 바람이 자니 이곳 지명은 사공도 모르는지라. 노주(奴主)가 언덕에 올라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배고파 행(行)치 못하매, 노주가 서로 붙들고 울더니, 문득 한 여승(女僧)이 지나다가 묻기를,
 
388
“두 낭자는 어디 계시며 무슨 연고로 이곳의 왔느뇨?”
 
389
초운이 반겨 이르기를,
 
390
“우리는 남방 사람으로서 운주를 차자 가거니와 존사(尊師)는 어디 계시뇨?”
 
391
여승 이르기를,
 
392
“소승(小僧)은 이 산 동녘 암자에 있더니, 마침 촌가(村家)의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로소이다.”
 
393
초운 이르기를,
 
394
“존사는 우리를 데려다가 구제하심을 바라나이다.”
 
395
하거늘, 여승이 불쌍히 여겨 초운 노주를 데리고 절 동구(洞口)에 이르니, 모든 승(僧)이 나와 노승(老僧)을 맞으며, 초운과 취향을 청하여 들어가 좌정 후 석반(夕飯)을 드리거늘, 노주가 요기(療飢)하고 묻기를,
 
396
“예서 황성과 황토섬이 얼마나 하뇨?”
 
397
제승(諸僧) 이르기를, 황성은 칠천여 리요, 황토섬은 사천여 리니이다.“
 
398
초운 이르기를,
 
399
“황토섬 가는 길이 어떠하뇨?”
 
400
노승 이르기를,
 
401
“큰 바다가 있어 가기 어렵사외다.”
 
402
초운 이르기를,
 
403
“우리 가장(家長)이 황토섬의 적거하여 계시기로 찾아 가려하더니, 능히 가지 못할지라. 원컨대 승이 되어 존사(尊師)를 의지하고자 하나이다.”
 
404
하고 울기를 마지아니하거늘, 노승이 그 경상을 잔잉이 여겨 즉시 머리를 깎아, 이름을 명현이라 하여 노승의 상좌(上佐) 되고, 취향은 청원이라 하여 명현의 상좌가 되니라.
 
 
 
405
이적의 소씨 고관(告官)할 문서를 가지고 초운을 잡아 오라 하니, 옥졸이 급히 보(報)하되 초운이 도주했다 하거늘, 소씨 대노하여 사면으로 찾되, 종적이 없는지라.
 
406
차시 초운이 매일 불전(佛殿)에 나아가 승상이 수이 돌아옴을 축수(祝手)하더니, 이왕 잉태(孕胎)한지 이미 십 삭이 된 지라. 곁 막에 나가 임산(妊産)하여 일개(一個) 옥동(玉童)을 생(生)하매 골격이 승상과 방불(髣髴)하거늘, 일희일비(一喜一悲)하여 이름을 희라 하다.
 
 
 
407
각설 연왕 건성이 장경을 모함하여 내치고, 기탄(忌憚) 없이 천자를 폐하여 황토섬에 안치(安置)하며, 황후를 심궁(深宮)에 가두고 스스로 대위(大位)에 올라, 중신(重臣)을 살해하며 장경을 죽이려 하여 잡으러 보내다.
 
408
이적의 천자가 적소로 갈 새 승상을 생각하고 통곡하고 이르기를,
 
409
“내 불명(不明)하야 장경을 멀리 보내고 이 지경(地境)을 당하니, 뉘를 한하며 뉘를 원하리오.”
 
410
하시더라.
 
 
 
411
차설 장경이 황토섬에서 시사(時事)를 생각하고 한탄하더니, 일일은 한 노승이 육환장을 짚고 와 이르되,
 
412
“이제 국사(國使)가 변복(變服)하여 사재(四宰) 잡으러 오거늘, 어찌 앉아 죽기를 기다리느뇨.”
 
413
하거늘 문득 깨달아 생각하되,
 
414
‘이 반드시 건성이 모역(謀逆)하고 나를 죽이려 함이로다.’
 
415
하고 행장을 수습하여 황하의 이르러 사공을 부르니, 별장(別將)이 놀라 이르기를,
 
416
“승상은 나라 죄인이거늘 임의로 어디를 가려 하느뇨.”
 
417
하며 군사를 호령하여 길을 막고 잡으려 하거늘, 승상이 대노하여 칼을 빼어 들고 이르기를,
 
418
“내 이 칼로 남만(南蠻) 서이(西夷)를 벤 지 오래더니, 다시 시행하리라.”
 
419
하고 말을 마치며 별장을 베고 사공을 호령하여, 배에 올라가더니 문득 광풍이 대작하여 배를 몰아 한 곳에 다다라, 배에서 내리니 풍경 소리가 들리는지라.
 
420
수 리를 나아가더니, 이때 춘향이 동구에서 나물을 캐다가 승상을 보고 반가움을 이기지 못하여 큰 소리를 지르고 달려들거늘, 승상이 놀라 이르기를,
 
421
“어떤 승이기에 무심중(無心中) 사람을 놀래느냐.”
 
422
취향이 체읍(涕泣)하여 아뢰기를,
 
423
“소비(小婢) 취향을 몰라 보시니잇가?”
 
424
승상이 그제야 취향인 줄 알고 급히 묻기를,
 
425
“어이하여 이곳에 있느뇨?”
 
426
취향 아뢰기를,
 
427
“낭자도 이곳에 계시니 바삐 들어가시면 자연 아시리이다.”
 
428
하고 인도하거늘, 승상이 놀라 급히 들어가니, 초운이 아이를 안고 있다가 승상을 보고 말을 못하고 눈물만 흘리는지라. 승상이 또한 놀라 그 연고를 물으니, 초운이 슬퍼하며 소씨 무함(誣陷)하던 사연과, 진씨 구호하던 곡절과, 이곳의 와 삭발한 후 해복(解腹)한 말을 낱낱이 설파(說破)하거늘, 승상이 일변(一邊) 물으며 일변(一邊) 개탄하더니, 일일은 한 여승이 황성에서 와 제승에게 이르기를,
 
429
“연왕이 황제를 황토섬에 안치하고 황후를 내치며, 장승상을 잡으려 하다가 벌써 알고 달아났기로, 그 집을 적몰(籍沒)하고 여러 가속(家屬)을 관비(官婢) 정속(定屬)하고, 각도에 행관(行關)하여 잡아들이라 한다.”
 
430
하거늘 승상이 이 말을 듣고 망극함과 분기를 참지 못하여, 즉시 초운과 작별하고 형주의 이르러 신담을 보고 장탄(長歎)하며 이르기를,
 
431
“이제 천지 번복(飜覆)하였기로, 내 남정(南征)하던 제장을 회합(會合)하여 국은을 갚고자 하나니, 그대의 의향은 어떠하뇨?”
 
432
신담이 대희하여 이르기를,
 
433
“내 이미 이 뜻 있으되, 의논할 이 없어 주야 한탄하더니, 이제 승상이 이르니 이는 하늘이 지시하심이로다.”
 
434
하고 주찬으로 대접하며, 동 십일월 망간(望間)에 기병함을 상약(相約)한 후, 승상이 발행(發行)하여 회남도독 설만춘과 양주자사 기신과 병마절도사 한복과 운주절도사 맹덕을 보고, 이 뜻을 효유(曉諭)하니, 제장이 다 낙종(樂從)하거늘, 승상이 대희하여 기회(機會)를 정하고, 바로 황하를 건너 황토섬에 들어가 폐제(廢帝)를 뵈옵고 복지 통곡하니,
 
435
이때 폐제 매일 승상 소식을 듣보려다가, 문득 승상을 보시매 방성대곡하시며 승상을 내치던 일을 못내 사과하시니, 승상이 고두하고 제장을 취합(聚合)함을 고하여 이르기를,
 
436
“기병할 기약이 당두(當頭)하였사오니, 폐하는 형주(荊州)로 가사이다.”
 
437
하고 즉시 함께 배에 올라 형주에 이르니, 각처의 군마(軍馬)가 다 모였는지라. 즉시 대군을 몰아 경사로 향하니 건성이 대경하여 성문을 굳이 닫고 지키거늘, 신담은 남문을 치고 설만춘은 서문을 치고 기신은 북문을 치고, 승상은 맹덕과 더불어 동문을 치니, 성중 백성이 또한 건성을 원망하는 바이라.
 
438
대장 진악이 가만히 격서를 만들어 살에 매어 승상 진중의 쏘아 이르기를,
 
439
“소장이 내응(內應)이 되어, 금야(今夜)에 동문을 열어 승상을 맞으리라.”
 
440
하였거늘 승상이 대희하더니, 과연 밤에 동문을 열거늘, 승상이 장졸을 재촉하여 바로 대궐로 들어가니, 차시 건성이 불의지변을 당하여 황망이 북문으로 내닫거늘, 맹덕이 급히 따라 창으로 건성의 탄 말을 찔러 엎지르고, 건성을 생금(生擒)하여 돌아오고 제장은 모두 문무(文武)를 사로잡은지라.
 
441
이에 승상이 쟁(錚) 쳐 군사를 거두고, 방(榜) 붙여 백성을 안무한 후, 황제를 모셔 복위(復位)하시고, 건성은 해도(海島)의 안치(安置)하여 주려 죽게 하고, 모역하던 신하는 처참(處斬)하고, 대사천하(大赦天下)하며 제장을 논공(論功)할새, 승상으로 연왕을 봉하시니, 연왕이 겸양하다가 사은하고 집의 돌아오매, 삼 부인과 모든 자녀가 반기거늘, 연왕이 정죄(定罪)하여 묻기를,
 
442
“초운은 어디 있느뇨?”
 
443
소씨 먼저 내달아 전후 수말(首末)을 횡설수설(橫說竪說)하거늘, 연왕이 못 들은 체하고 바로 외당에 나와 소씨의 시비를 다 잡아드려 장문(杖問)할새, 취향이 불하일장(不下一杖)에 개개(箇箇) 직초(直招)하거늘, 왕이 대노하여 춘향 등을 가두고 이 사연으로 천자께 주하니, 상이 통한(痛恨)히 여기사 손침과 춘향 등을 처참하고, 소씨를 사사(賜死)하라 하시니, 연왕이 다시 주하되,
 
444
“신이 소성운의 은혜를 입었사오니 소씨를 신이 처치할까 하나이다.”
 
445
상이 의윤(依允)하시고, 초운으로 정숙왕비로 봉하사 그 절개를 표하다.
 
446
연왕이 진부인 아자를 청운산 승당(僧堂)에 보내어 초운을 맞아 오니, 왕과 왕 진 이 부인이 반기며 서로 치하함이 측량없더라. 왕이 연국으로 갈새, 소씨는 본집으로 가 행실을 닦은 후 오라 하고, 두 부인과 왕비를 데리고 본국의 이르니 그 부귀영광이 측량치 못할러라.
 
 
 
447
이때 나라가 태평하매 왕이 후원에 잔치를 배설하여 즐기다가, 난간을 의지하여 졸더니, 한 선관(仙官)이 왕에게 이르기를,
 
448
“인간 재미 어떠하뇨? 칠월 망간에 왕비와 함께 천상으로 모으리라.”
 
449
왕이 이르기를,
 
450
“어찌 왕비만 함께 가려오?”
 
451
선관 이르기를,
 
452
“전생의 왕비는 정처(正妻)요, 소씨는 첩으로서 초운에 투기 심하기로 차생에 그 보복을 받게 함이라.”
 
453
하고 문득 간 데 없거늘 깨달으니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 가장 신기히 여겨 즉시 왕자 희를 세워 세자를 봉하고, 사자(使者)를 보내어 소씨를 데려오고, 칠월 망일의 대연을 배설하고 즐기더니, 문득 천지 아득하고 상서(祥瑞)의 구름이 일어나며 왕과 왕비 붕(崩)하니, 세자가 문무백관 등을 거느려 발상(發喪) 거애(擧哀)하고, 능침(陵寢)을 정하여 안장 후, 세자가 위(位)에 나아가니 국태민안(國泰民安)하여 대대로 왕작(王爵)을 이어 영화(榮華) 장구(長久)하고 자손이 면면(面面)하여 천추(千秋)의 전하니라.
【원문】장경전(張景傳) 25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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