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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82년 6월 13일 (양 7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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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음. 2경(更) 쯤, 중궁전하께서 벽동(碧洞) 익찬(翊劗 민응식(閔應植)집에 거동하셨다. 옥후(玉候)가 인후증세 (咽喉症勢)로 편찮으셨다. 박하유(薄荷油)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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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882년 6월 14일 (양 7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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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더웠다. 새벽에 민응식과 진사 민긍식(閔肯植)과 현흥택(玄興澤), 계집종(婢子) 1명이 중궁전하를 모시고 가 광주 (廣州) 취적리 임천군수 이근영(李根永)집에 이르러 점심을 자시고 조현점사(鳥峴店舍) 숙소에 이르렀다. 옥후가 더 불편했다가 4경이 지나 조금 평순(平順)해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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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882년 6월 15일 (양 7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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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더웠다. 새벽에 모시고 가 이천읍 점사(店舍)에 이르러 점심을 자시고, 여주 단강 권삼대(權三大) 집 숙소에 이르렀다. 전 오위장 민영기(閔泳綺)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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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882년 6월 16일 (양 7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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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더웠다. 밤에 이슬비가 왔다. 중궁전하께옵서 같은(동네) 이웃 한점대(韓点大)집으로 옮기셨다. 환후는 한결 같았다. 감길탕(甘吉湯) 두 첩, 박하탕에 용뇌(龍腦)를 타서 올리니 자셨다.(含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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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882년 6월 17일 (양 7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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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더웠다. 소나기가 왔다. 그대로 머무르셨다. 감길탕 1첩, 박하탕에 용뇌를 타서 올리니 드셨다. 옥체 다리부스럼 난 곳에 고름이 나서 고약(膏藥)을 부쳐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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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882년 6월 18일 (양 7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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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종일 왔다. 그대로 머무르셨다. 환후는 그만했다. 오후에 인후증세가 있었다. 부스럼은 저절로 터졌다(헐었다). 감길탕 1첩, 개고기국(狗羹) 한 보시기(甫兒), 붕어를 진하게 삶은 국물(鮒魚膏) 한 보시기를 올렸다. 민긍식이 먼저 충주 노은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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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882년 6월 19일 (양 7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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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비가 오다가 오후에 잠간 개었고 오후 신시(오후 5시) 넘어서는 계속 퍼부어댔다. 새벽에 모시고 가 충주 매산에 이르러 오봉학(吳鳳鶴)집에서 점심을 자셨다. 사창 민응식의 향제를 숙소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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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882년 6월 20일 (양 7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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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다 구름 끼다 했다. 그대로 머무르셨다. 대나무 통으로 환처에 붕사(硼砂)를 조금 붙여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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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882년 6월 21일 (양 7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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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더웠다. 어둑새벽에 모시고 가 노은(충주) 유학 이시일(李是鎰)집에서 머무르셨다. 감길탕 1첩, 박하탕이 용뇌를 타서 올리니 드셨다. 옥후가 점차 나아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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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882년 6월 22일 (양 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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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음. 그대로 머무르셨다고 판서 민승호 처 정경부인 이씨, 전 참판 민영익 처 정부인 김씨가 죽산에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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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882년 6월 23일 (양 7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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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음. 그대로 머무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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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882년 6월 24일 (양 8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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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음. 그대로 머무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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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882년 6월 25일 (양 8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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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가랑비가 왔다. 그대로 머무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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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882년 6월 26일 (양 8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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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비가 왔다. 그대로 머무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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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882년 6월 27일 (양 8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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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머무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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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882년 6월 28일 (양 8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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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음. 오후5시 넘어서 모시고 가 매산(충주) 전 판서 민영위(閔泳緯)집으로 옮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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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882년 6월 29일 (양 8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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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음. 그대로 머무르셨다. 가미양위탕(加味養胃湯) 두 첩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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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82년 6월 30일 (양 8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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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음. 그대로 머무르셨다. 가미탕 한 첩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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