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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朝鮮(조선) 歌詩(가시)의 연구 ◈

해설본문  1931.3
안확
1
고대 학자들은 문학상의 관념이 박약했다. 혹은 일파는 문학을 의젓한 경술(經術)의 외용물 곧 도학(道學)의 말류(末流)로 놓아두니, 최자(崔滋)·마인순(馬麟淳)들이요, 또 혹은 문학을 일종 기술로 놓아두어 너무 숭상할 필요가 없다 하니, 이수광(李睟光)·이정귀(李廷龜)등의 설이다. 그렇듯 옛 사람은 연문학(軟文學)을 중심잡고 인정의 기미를 묘사한 작품은 대수롭지 않게 친다. 그런 까닭으로 가요(歌謠)를 도외시한 투습이 있어 잡동산이(雜同散異)나 비리(鄙俚)의 물건으로 치고 말았으니, 다시 말하면, 첫째는 조선어로 지은 것은 비리하다 하여 등한히 볼뿐더러 짐짓 한자로 반역(反譯)하여 본색을 고친 것이 많으니, 『고려사』 악지(樂志)의 예가 그것이요, 둘째는 고인이 가요를 지을 때는 각 문집에 산견(散見)한 것처럼 한풍(漢風)의 악부식(樂府式)을 닮아 한시(漢詩)의 모습을 흉내내었으나, 그 역시 언어상 관계로 한의 악부체에는 비슷하지도 않게 지어 용두사미의 가조(歌操)가 되고 마니, 이는 이종준(李宗準)의 「유산악부서(遺山樂府序)」와 신흠(申欽)의 『상촌집(象村集)』에도 설파한 것이다. 셋째로 음악은 대체상 일종의 의식물(儀式物)로만 간주하였다. 그러므로 웬만한 경문학(硬文學)의 재료가 될 만한 것이 있어도 그만 한만한 단속으로 인하여 흐지부지 다 없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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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내가 그러하므로 오늘날 우리들이 고래의 가요를 조사함에 있어서는 끔찍이 생소하여 그 진면을 엿보기가 삭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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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듯 재료가 희귀하고 사실(史實)이 공소한 가요를 연구하는 일은 참말로 힘이 미치지 못하는 일이 되어 논문을 쓰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위의 기술한 것과 같이 가요는 문화사의 가장 중대한 재료인 까닭으로 연구자는 어디까지든지 노력을 가하여 발견 정리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내가 일찍부터 가시(歌詩)를 강구(講究)하여 봄은 실상 진력하여 온 터이나 아직까지도 완전히 투득(透得)하였다는 자신이 없다. 그러나 진보는 계단이 있고 거창한 사업은 여럿의 힘을 요구하는 것이다. 불초의 지금까지 연구한 바가 비록 미완성품에 불과한 것이나 그것을 세상에 발표하여 문예가 여러분에게 참고가 되게 하면 혹시 진보 성취에 한 도움이 될까 하여 이번에 이를 간략히 기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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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처음으로 가악이 발생하기는 전고 원시시대에 있어 제전(祭典)의 의식(儀式)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고대에는 천신(天神)과 물령(物靈)에 제사를 드리는 것이 제일 가는 도덕이요 유일한 정치로 되매 그 제삿날에는 예사로 가무를 흥행하여 명절을 삼으니, 그 절사(節事)를 ‘영고(迎鼓)’라고도 하고 ‘무천(舞天)’이라고도 한 것이었다. 이 말은 『후한서(後漢書)』115권, 『삼국지(三國志)』 또는 『문헌통고(文獻通考)』148권 등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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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가무의 근원을 앞에 든 사적(史籍)에 근거하여 발견할 수 있으나 그 가시(歌詩)의 성질이 어떻다는 것은 채탐(採探)하기가 어렵다. 어느 나라의 내력이든지 고대의 일은 근거가 없어 거의가 추측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조선의 고사(古事)도 문헌이 물려오지 못하는 까닭으로 역시 추측으로 더듬어 볼밖에 없다. 요컨대 고대 가악의 속내는 신사(神事)를 찬송하고 화복(禍福)을 기원하며 또는 신화(神話)를 열거함에 있는 듯하다. 대저 태고인은 심성이 순박하고 분수가 미거하여 사상 및 그 정조(情調)는 전혀 명확한 형상을 내놓지 못하고 혼돈스런 기괴한 마력(魔力)에 눌린 바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정생활은 온통 신령을 지펴 놀았던 것이니, 가악도 어느 것이든지 야릇한 송축(頌祝)의 의미를 머금고 있던 것은 짐작키 용이하다. 그러나 그 가시의 전체에는 고대인의 심적 표상을 다했던 것으로 생각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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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고대 가시는 언어가 곧 문구로서 구두로 탄평(坦平)하게 창(唱)할 뿐이요, 하등 문자의 적바림은 없었다. 그런데 한시가(漢詩家)에서는 고조선인 진졸(津卒)의 처 여옥(麗玉)의 작이라는 「공후인(箜篌引)」1편을 가지고 조선 최고(最古)의 시라 한다. 그러나 이는 『고금주(古今注)』에서 나온 것이요, 고당시(古唐詩)에는 한악부(漢樂府)의 비곡(悲曲)이라 한 것이니, 이것이 참 조선 민족의 작이라 하기는 허락할 수 없다. 고조선 때에는 공후(箜篌)란 악기도 없었고 또한 한문(漢文)이 그처럼 발달하여 하급인이란 뱃사공의 처까지 한시(漢詩)를 지을 능력이 있었던가 함은 아무라도 시인치 못할 것이니, 이는 이덕무(李德懋)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56권에도 나와 같은 논의를 적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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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시로 가장 오랜 것은 『삼국사기』에 있는 고구려 유리왕(類利王)의 작인 「황조가(黃鳥歌)」, 『화동인물총기(話東人物叢記)』에 있는 신라 백결선생(百結先生) 박문량(朴文良)의 「금조(琴操)」 2편을 제하고는 말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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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2편도 작자의 원문인지 후인의 한역(漢譯)인지 알 수 없다 할 것이다. 대저 삼국시대에는 지리적 인물의 관계로 인하여 남북방의 사조가 판이하게 되었다. 북방은 낭만주의의 문학이 흘러나서 기절(奇絶)한 성질의 가시(歌詩)가 행하고, 남방은 불도(佛道)의 효상(爻象)으로 인하여 신비적 상징주의의 문학이 흘러서 고전파의 가시가 행하니, 『삼국유사』에 신라인이 향가(鄕歌)를 숭상하는 자가 많아 천지·귀신을 감동시킨다 함은 그간의 소식을 전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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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신라에서는 정부의 참섭과 무사풍의 화랑도(花郞徒)가 드날리는 경우로 말미암아 가시를 지어 협창(俠唱)하는 일이 아주 습속으로 되었다. 그 노릇이 고려조에 넘어와서는 더욱 고루 퍼져 상하 계급을 물론하고 풍류와 낭영(朗詠)이 가득 넘치고 그 풍도의 여운이 이조에까지 전하여 오니, 오늘날까지도 한량(閑良)의 영가(咏歌)가 남아 있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고려조 일은 3기로 분별할 수 있으니, 초기는 승려의 시가가 한창이었는데 인생의 무상을 말하고 법계(法界)의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찬송하는 빛깔이 있으며, 중기는 자연주의파의 문학이 내달으니, 이는 당시 무관들 야단에 풍겨난 문사들의 반동적 기분으로 발생한 것이니, 그 가시는 연애 및 희사(戱詞)로 생겨난 것이다. 말기에는 정조주의파의 문학이 퍼지면서 몽고 관계와 조정 쇠운의 시대적 사조가 나란히 흘러 교격(矯激)하고 울분한 가시가 유행한 것이다. 이조 때에는 한시의 풍이 고루 퍼졌으나 세종이 언문(諺文)을 장만한 뒤로 가시의 작풍(作風)이 크게 왕성함을 떨치니, 여기는 낙천쇄락(樂天灑落)의 사상으로 휘갑을 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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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듯 시절의 변천을 거치고 인간의 생활을 누벼서 수천년 인간의 심전(心田)에서 느껴 나온 가시는 그 묘맥이 자못 왁자하여 한만히 일단을 잡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전해 오는 가시를 함빡 모아서 고르고 골라 그의 구별을 해보면 다음 표와 같이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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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歌詩)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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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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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장(樂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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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가(樂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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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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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시(韻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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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歌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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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가시는 반드시 음악에 사용하였기 때문에 그를 쓰는 곳에 따라 구별하면 ① 제의든지 경하(慶賀)든지 정중한 예식에 쓰던 것은 송덕·축복의 뜻으로 내용을 짠 것으로서, 그 선율은 매우 전아하게 된 것이다. ② 일반 연악(宴樂)과 정재(呈才)에 쓰던 것은 그 내용이 신선미(神仙味)로 되거나 또는 정가(情歌)로 된 것인데 그 선율은 순감정적(純感情的)으로 된 것이다. 또 그 다음에는 수사상(修辭上)에 의하여 구별하면 운(韻)이 있고 없는 2종이 있으니, 전자는 운문시로서 선율을 자음(字音)에 둔 것이요, 후자는 무운시(無韻詩)로서 음악적 선율의 미로 치장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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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말하고자 함은 이 운이 없는 가시를 주장으로 해설함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따로 떼어 구별하면 다음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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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의 구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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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삼대목체(三代目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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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정읍체(井邑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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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경기체(景幾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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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첩성체(疊聲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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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장편체(長篇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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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시조(時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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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별로 나눌 수 있으니, 그 성질과 유래는 차례로 다음에 각론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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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三代目體[삼대목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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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진성왕 2년 (888)에 각간(角干) 위홍(魏弘)이 중 대구(大矩)를 데리고 당대에 흩어진 향가(鄕歌)를 수집하여 책명을 『삼대목(三代目)』이라 하였다 한다. 그러나 그는 이제 와서 산일(散佚)하고 『삼국유사』에서 14편, 또한 『교분기원통초(敎分記圓通抄)』에서 중 균여(均如)의 가사(歌詞) 11편을 적발하여 그 25편을 조사해낸 것이 있다. 이는 실상 고문학의 반가운 재료요 향가의 모습을 댈 만한 표준이다. 이 25편의 개괄적 시형(詩形)을 가지고 족히 『삼대목』의 체재를 논란할 수 있으니, 그러므로 이제 이의 율조(律調)를 편의상 삼대목체(三代目體)라 명명하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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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체재의 율미(律美)를 잠깐 말하자면, 대관절 삼대목체는 자수(字數)의 율(律)보다 내용률(內容律)을 주장하겠다. 보건대 위의 25편 중에는 보통인의 작은 겨우 4편에 불과하고 21편은 모두 승려의 계통으로 나온바 두탕흔(豆蕩痕) 같은 사설(詞說)이다. 그런즉 『삼대목』의 체재는 대개 당시 문학계의 주장되는 승려의 주법(呪法)에서 나온 것으로 인정하기 주저치 않겠다. 그러므로 그 수사법은 모두 『교분기원통초』에 있는 최행귀(崔行歸)의 서문에 의거하여 짐작하건대, 곧 승려가 불도를 찬양하던 노래는 한시(漢詩)를 조응(照應)하여 조선어로 배열할 때는 부득이 어성(語聲)의 관계로 인하여 장단구가 되는바 운각(韻脚)은 스스로 균제(均齊)치 아니하여 오늘날 소년파(少年派)의 자유시형과 비슷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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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조 이후의 시로서 삼대목체에 속한 것은 고려 예종(睿宗)의 단가, 『악학궤범』에 있는 「진작(眞勺)」「북전(北殿)」 등이니, 예종 단가를 다음에 보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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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장수를 추모하는 노래〔悼二將歌〕[도이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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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을 죽을 땅에서 구하여 완전케 한 마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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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가에 미칠 만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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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몸이 죽어 넋이 한꺼번에 가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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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운지라 그 용감한 무예는
37
우상을 보면 알리라.
38
저 두 공신은 간지가 오랬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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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직한 그 자취는 아직도 나타나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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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乙完乎白乎心[주을완호백호심] 聞際天乙及[문제천을급] 昆魂是去賜矣中[곤혼시거사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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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鳥賜敎職麻又[삼조사교직마우] 欲望彌阿里刺及[욕망미아리자급] 彼可二功臣[피가이공신]
42
良尤乃[양우내] 直隱跡鳥隱現乎賜丁[직은적조은현호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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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고려 초에 김락(金樂)·신숭겸(申崇謙) 2인이 전사(戰死)한 일이 있던바 천수대왕(天授大王:王建[왕건])이 이 2인을 기념하여 가상(假像)을 만들어 놀린 일이 있었다. 그것이 팔관회(八關會)에 나와서 극좌(劇座)를 차지함이 되더니, 마침 풍파(風波)로 등양(騰揚)하던 예종왕(睿宗王)의 눈에 들키매 왕이 그것을 크게 감격한 동시에 이 노래를 지어 추모의 정을 표한 것이다. 이는 전혀 이두문으로 된 것인바 「신장절공행장(申壯節公行狀)」에서 조사해 낸 것이다. 이에 부속한 한자시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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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공신의 상(像)을 뵈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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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는 감회가 흘러넘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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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의 자취가 쓸쓸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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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사적이 남아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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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의는 천고에 밝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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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죽음은 오직 한때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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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위해 칼날에 오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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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부터 왕의 기업(基業)이 보전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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兒二功臣像[아이공신상], 氾濫有所思[범람유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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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山蹤寂寞[공산종적막], 平壤事留遺[평양사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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忠義明千古[충의명천고], 死生唯一時[사생유일시].
55
爲君躋白刃[위군제백인], 從此保王基[종차보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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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가승(申氏家乘)』과 『신씨추원록(申氏追遠錄)』 등에 자세하고 『고려사』 예종본기(睿宗本紀)에는 그 사실만 있고 가사는 빠졌으나 이를 『신씨가승』에서 발견함은 실상 소홀한 재료라 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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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井邑體[정읍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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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의 가요는 2종으로 갈려왔다. 하나는 고전적인 것으로서 이미 앞에서 설파한 삼대목체요, 다른 하나는 기교적(奇巧的)인 것으로서 이제 논란코자 하는 정읍체(井邑體)가 그것이니, 『악학궤범』 권5에 있는 「정읍사(井邑詞)」 1편은 그의 표준적 작품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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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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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하 노피곰 도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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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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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긔야 어강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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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으 다롱디리
64
② 져재 녀러신고요
65
어긔야 즌 드욜세라
66
어긔야 어강됴리
67
아으 다롱디리
68
③ 어느이다 노코시라
69
어긔야 내가논 졈그세라
70
어긔야 어강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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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으 다롱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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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전강(前腔)·후강(後腔)·과편(過篇) 3단의 악절(樂節)로 배포된 것이다. 그 가사의 뜻은 어떤 야행인(夜行人)의 이수(泥水)에 오욕(汚辱)됨을 염려하여 명월(明月)의 고승원조(高昇遠照)를 기망(祈望)한 것이다. 이것을 『고려사』 악지(樂志)에 써 있는 바 정읍가 해제에 대조하면, 백제 때에 정읍현 사람이 행상으로 나갔다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으매 그 처가 산에 있는 바위에 올라가 바라보며 기다리되 그 남편이 야행(夜行)에 해를 입을까함을 이수(泥水)에 비하여 지은 것이라는 것과 부합된 것이다. 이 노래가 악사(樂師)의 구설(口說)로 전하다가 고려 이혼(李混)이 지은 무고(舞鼓)라는 정재(呈才)에 이용된 것이더니, 이조 성종 때에 이르러 이 노래를 언문으로 기입했던바 나의 눈에 들켜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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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읍사」의 문장은 기묘하게 된 것이다. 이를 삼대목체에 비하건대 스스로 4가지의 이색적인 것이 있다. ① 삼대목체는 문사의 문조(文調)로 마련된바 인위적인 시미(詩味)가 있고, 정읍체는 민간의 구조(口調)로 낭영한바 천진(天眞)의 요체(謠體)로 된 것이다. ② 삼대목체는 악절의 구조가 단조로 된 것이요, 정읍체는 내용률의 문맥과 악절의 강엽(腔葉)이 상화(相和)하여 2단 이상의 복조(複調)로 된 것이다. ③ 정읍체는 운각이 일매지고 수식은 구조(口調)에 따라 감동사를 예용(例用)하며 동시에 반복법을 써서 의미의 긴착처(緊着處)를 강하게 한 것이다. ④ 정읍체는 억양 반복의 어구를 중요하게 여길새 특히 후렴을 베풀어 일종 코러스를 지은 것이다. 통괄해서 말하자면 정읍체의 천연적 구조(口調)의 수식은 오히려 삼대목체의 필채적(筆彩的) 문조(文調)의 수식보다 우승한 율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후세 사람은 삼대목체보다 정읍체를 모본(摹本)함이 많으니, 고가(古歌) 중에서 이에 속한 것을 골라 보면 「서경별곡(西京別曲)」「가시리」「청산별곡(靑山別曲)」「쌍화점(雙花店)」「감군은(感君恩)」「정동방(靖東方)」「유림가(儒林歌)」「동동(動動)」 등의 곡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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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疊聲體[첩성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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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발달하여 나가는 서슬에 가법(歌法)도 역시 진보하여 수식법이 새로워지니, 그것은 고대의 통법(通法)인 반복법에서 나온 것이다. 살펴보건대 가사를 수식함에 있어서 요긴한 구절에는 그 지속적인 어구를 맵시 있고 강하게 할 필요가 없지 못할 것이요, 노래를 부르는 악절에 있어서도 문구는 짧고 선율을 길게 할 때는 그 긴 악절을 충전치 아니할 수 없으니, 그런 경우에는 가락을 수식함에 동일한 문구를 곱절로 재창하여 그로써 억양(抑揚)하며 율조를 정리하는 것이 가장 미묘한 방법이 되니, 곧 반복법을 쓴 투식이 발생한 것이 이것이다. 이에 반복법을 씀으로써 일정한 투식을 지은 종류의 가시를 논란함에는 별달리 첩성체라는 표어를 붙임이 편리한 명사가 될 것이다. 여기 속한 것은 「정석가(鄭石歌)」「처용가(處容歌)」「이상곡(履霜曲)」「어부가(漁夫歌)」「봉황음(鳳凰吟)」「사모곡(思母曲)」「문덕곡(文德曲)」「만전춘별사(滿殿春別詞)」등이니, 「정석가」를 다음에 보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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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가(鄭石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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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딩아돌아 당금(當今)에 계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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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아돌아 당금에 계샹이다
79
선왕성대(先王聖代)에 노이와지이다.
80
② 삭삭기 세몰애별헤 나
81
삭삭기 세몰애별헤 나
82
구은밤 닷되를 심고이다.
83
③ 그 밤이 우미 도다 삭나거시아
84
그 밤이 우미 도다 삭나거시아
85
유덕(有德)하신 니믈 여와지이다
86
④ 옥(玉)으로 연(蓮) ㅅ고즐 사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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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으로 연ㅅ고즐 사교이다
88
바회 우희 접주(接柱) 요이다.
89
⑤ 그 고지 삼동(三同)이 퓌거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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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고지 삼동이 퓌거시아
91
유덕신 님 여와지이다.
92
⑥ 므로 텰릭을 아 나
93
므로 텰릭을 아 나
94
철사(銕絲)로 주롬 바고이다.
95
⑦ 그 오시 다 헐어시아
96
그 오시 다 헐어시아
97
유덕신 여와지이다.
98
⑧ 므로 한쇼를 디여다가
99
므로 한쇼를 디여다가
100
철수산(銕樹山)애 노이다.
101
⑨ 그  철초(銕草)를 먹거아
102
그  철초를 먹거아
103
유덕신 님 여와지이다.
104
⑩ 구스리 바회예 디신
105
구스리 바회예 디신
106
긴힛 그치리잇가
107
⑪ 즈믄 외오곰 녀신
108
즈믄 외오곰 녀신
109
신(信)잇 그치리잇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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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景幾體[경기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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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초기에는 승려의 문학이 왁자하매 그 가시(歌詩)의 태도는 『보한집(補閒集)』에 있는 윤우일(尹于一)의 말마따나 두탕흔(豆蕩痕)·사수적(捨水滴)·소순기(蔬笋氣)의 3격(格)이 있어 가단·문단의 감고(監考)가 되던 것이다. 중엽에 도달해서는 무신이 분탕을 치고 천인 출신의 남반(南班)이 정권을 농락하는 바람에 문신들은 쫓겨나서 산중으로 은둔하여 자연을 즐기며 혹시 조정에 접근한 자는 외형은 아세적(阿世的) 행동을 취하나 내심으론 불평이 가득찼다. 그런 일부 문사들은 스스로 자기네 심사대로 사출(寫出)하던 시격(詩格)이 있으니, 그 대표자는 소위 7현파(七賢派)라는 이인로(李仁老)·오세재(吳世才)·임춘(林椿)·조통(趙通)·황보항(皇甫抗)·함순(咸淳)·이담지(李湛之) 등의 구조(口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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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사상은 그의 동접(同接)이던 이규보(李奎報) 문집에 적혔으니, 그들은 시대의 반동적 요구로 말미암아 절대 자유주의를 부르짖을새 우주도 자연이요 상제도 자연이요 인생·도덕도 자연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생활도 역시 진실로 기뻐하거나 슬퍼할 것 없이 만판 마음대로 지냄이 도리라하여 이상경(李想境)을 무위청령(無爲淸靈)에 두며, 슬며시 선풍(仙風)을 띠어 삼천 옥경(三天玉京)을 이 세상에 건설코자 하는 기풍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행색은 무쌍한 호방(豪放)으로 방약무인하게 지내니, 당세인들은 광객(狂客)이라 지목하였다. 이 일파의 시가는 그 마음속에 있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사상을 토해내어 희작적(戱作的)·소견적(消遣的) 또는 불기쇄락(不羈灑落)한 연애적으로 율미(律美)를 이루니, 그 대표적 작품은 「한림별곡(翰林別曲)」이란 것이 꼭대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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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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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원순문(元淳文) 인로시(仁老詩) 공로사륙(公老四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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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언(李正言) 진한림(陳翰林) 쌍운주필(雙韻走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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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기대책(庶基對策) 광균경의(光鈞經義) 양경시부(良鏡詩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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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시장(試場) ㅅ경(景)긔 엇더니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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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학사(琴學士)의 옥순문생(玉笋門生)
119
금학사의 옥순문생
120
위 날조차 몃부니잇고
121
② 당한서(唐漢書) 장노자(莊老子) 한유문집(韓柳文集)
122
이두집(李杜集) 난대집(蘭臺集) 백낙천집(白樂天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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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상서(毛詩尙書) 주역춘추(周易春秋) 주대례기(周戴禮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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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주(註)조쳐 내외온경(景)긔 엇더니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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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광기(太平廣記) 사백여권(四百餘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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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광기 사백여권
127
위 역람(歷覽) ㅅ경(景)긔 엇더니잇고
128
③ 진경서(眞卿書) 비백서(飛白書) 행서초서(行書草書)
129
전류서(篆籀書) 과두서(蝌蚪書) 우서남서(虞書南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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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필(羊鬚筆) 서수필(鼠鬚筆) 빗기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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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딕논경(景)긔 엇더니잇고
132
오생유생(吳生劉生) 양선생(兩先生)의
133
오생유생 양선생의
134
위 주필(走筆) ㅅ경(景)긔 엇더니잇고
135
④ 황금주(黃金酒) 백자주(栢子酒) 송주예주(松酒醴酒)
136
죽엽주(竹葉酒) 이화주(梨花酒) 오가피주(五加皮酒)
137
앵무배(鸚鵡盃) 호박배(琥珀盃)예 득 브어
138
위 권상(勸上)ㅅ경(景)긔 엇더니잇고
139
유령도잠(劉伶陶潛) 양선옹(兩仙翁)의
140
유령도잠 양선옹의
141
위 취(醉)혼경(景)긔 엇더니잇고
142
⑤ 홍모란(紅牡丹) 백모란(白牡丹) 정홍모란(丁紅牡丹)
143
홍작약(紅芍藥) 백작약(白灼藥) 정홍작약(丁紅芍藥)
144
어류옥매(御柳玉梅) 지지동백(芷芝冬栢)
145
위 간발(間發)ㅅ경(景)긔 엇더니잇고
146
합죽도화(合竹桃花) 고은두분
147
합죽도화 고은두분
148
위 상영(相映)ㅅ경(景)긔 엇더니잇고
149
⑥ 아양금(阿陽琴) 문탁적(文卓笛) 종무중금(宗武中琴)
150
대어향(帶御香) 옥기향(玉肌香) 쌍가야고(雙伽倻고)
151
김선비파(金善琵琶) 종지해금(宗智稽琴) 설원장고(薛原杖鼓)
152
위 과야(過夜)ㅅ경(景)긔 엇더니잇고
153
일지홍(一枝紅) 빗근적취(笛吹)
154
일지홍의 빗근적취
155
위 들고아 드러지라
156
⑦ 봉래산(蓬萊山) 방장산(方丈山) 영주삼산(瀛州三山)
157
차삼산(此三山) 홍루각(紅樓閣) 작약선자(婥妁仙子)
158
녹발액자(綠髮額子) 금수장리(錦繡帳裏) 주렴반권(珠簾半捲)
159
위 등망오호(登望五湖)ㅅ경(景)긔 엇더니잇고
160
녹양녹죽(綠楊綠竹) 재정반(栽亭畔)애
161
녹양족죽 재정반애
162
위 전황앵(囀黃鸎) 반갑두셰라
163
⑧ 당당당(唐唐唐) 당추자(唐楸子) 조협(皂莢)남긔
164
홍(紅)실로 홍(紅)글
165
위 내가논 갈셰라
166
삭옥섬섬(削玉纖纖) 쌍수(雙手)ㅅ길헤
167
삭옥섬섬 쌍수ㅅ길헤
168
위 휴수(携手)ㅅ경(景)긔 엇더니잇고
 
169
이는 『고려사』 악지에 있는데 거기는 한문으로 쓰고 어맥의 중요한 곳은 이어(俚語)라 하여 삭제한바 모호한 글발로 되었으나 『악장가사』 대금후보(大琴後譜) 등에는 그의 전모를 그려놓았는바 앞에 나온 것과 같다. 작자는 고려 고종 때의 제유(諸儒)의 공작(共作)이라 하니, 그 내용은 저들의 자유청담(自由淸談)한 심사를 도장 찍어서 하등의 욕심 없이 자연의 즐거움과 소한화락(消閒和樂)의 풍취를 그린 것이다.
170
그 문장은 미묘하고 대우(對偶)로서 유례(類例)를 부섬(富贍)하게 열거하며, 3자 4자의 수로서 경쾌한 음각(音脚)의 치장이 균제할새 의미의 긴착처(緊着處)에는 으레 ‘景[경]긔 엇더니잇고’라는 감탄사구를 삽입하니 이 역시 첩성체의 일종이라 할 것이다. 그 시상(詩想) 및 미묘히 균제된 율형(律形)으로 보아서 일체(一體)로 내세울 수 있으니, 그러므로 나는 이를 ‘경기체(景幾體)’라 이름하고 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경기체의 율조는 자연주의파의 창의가 아니라 악단 정재(呈才)에서 부르던 「신선가(神仙歌)」를 본뜬 것인 듯하다.
171
본래 음악은 위안을 목적한바 진사속상(塵思俗想)을 초월하여 화락안신(和樂安神)한 별천지가 되는 신선계를 구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거기는 신선풍과 연애풍의 가시를 많이 썼다. 여기 속한 것은 안축(安軸)의 「관동별곡(關東別曲)」「죽계별곡(竹溪別曲)」변계량(卞季良)의 화산별곡(華山別曲), 권근(權近)의 「상대별곡(霜臺別曲)」, 정극인(丁克仁)의 「불우헌곡(不憂軒曲)」, 김구(金絿)의 「화전별곡(花田別曲)」, 주세붕(周世鵬)의 「태평곡(太平曲)」「도동곡(道東曲)」「문현가(文賢歌)」「엄연곡(儼然曲)」, 『세종실록』에 있는 「성덕가(聖德歌)」「성수가(聖壽歌)」, 중 말계(末繼)의 「기우목동가(騎牛牧童歌)」, 『악장가사』에 있는 「오륜가(五倫歌)」「연형제곡(宴兄弟曲)」등이다.
 
172
5. 時調[시조]
 
173
시조(時調)는 고려 중엽에 발생한바 가장 미율(美律)로 된 것이니, 이조에는 이별(李鼈)의 6가를 종(宗)하여 중종 시대 전후로 발달할새 고절 청렴(高節淸廉)의 인사, 한유 호방(閒遊豪放)의 한량(閑良), 화류 시정(花柳市井)의 누구든지 그 문체를 모작(慕作)치 않음이 없게 발달한 것이었다.
 
174
6. 長篇[장편]
 
175
가시(歌詩)의 계통을 만약 초목에 비하면, 삼대목(三代目)·정읍(井邑) 두체는 2대 근경(根莖)이 되고, 다른 체는 다 그 지엽(枝葉)이다. 곧 정읍체에는 첩성체·경기체가 묶이고 삼대목체에는 장편·시조가 속하는 것이다. 대저 장편은 장황한 문구로 되었는바 어맥을 임의로 서술하는 율조로 된 것이니, 곧 시인이 무량한 회포를 토로할 때에 절략(節略)한 한배(限配)의 구속을 초탈하고 흉중에서 샘물같이 솟구치는 어사(語詞)를 제한 없이 열거하여 긴 문장으로 제작된 것이다. 이를 문예적 가치로 보아서는 혹시 함축과 여운의 묘미가 약하다 할 것이로되 만강(滿腔)의 흉금을 남김없이 모조리 토파함에 있어서는 만판 자유의 기색이 깔려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76
이 장편은 신라 고시(古時)에 있어 감정의 발표력이 강한 때부터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니, 『삼국사기』해론전(奚論傳)에 그때 사람이 해론을 추도 했다는 장가, 실혜전(實兮傳)에 실혜가 감정을 스스로 기술한 장가가 그것이다. 그러나 그 2편은 오늘날에 전해 오지 못하매 그 시형은 어떠한지 알 수 없고 오직 문자상으로만 짐작할 것이다. 고려 오세재(吳世才)가 「역대가(歷代歌)」를 지었다 하니, 이도 응당 장편으로 된 것일 터이나 전하지 못하여 알기가 어렵다. 이조 때에 언문이 생긴 뒤로부터는 성편(成編)되어 전한 것이 더러 있으니, 세종의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세조의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정극인(丁克仁)의 「상춘곡(賞春曲)」, 정철(鄭澈)의 「사미인곡(思美人曲)」「관동별곡(關東別曲)」「성산별곡(星山別曲)」, 박인로(朴仁老)의 「선상탄(船上歎)」, 김현중(金鉉中)의 「화류사(花柳詞)」 등이다.
177
이 문체는 너무나 장황하여 하나라도 예를 들지 못하거니와 대저 장편은 다만 3종으로 됨을 알 것이다. 첫째는 일정한 가곡이 있는 것이요, 둘째는 즉흥적으로 낭영하는 것이요, 셋째는 극시로 된 것이다.
 
178
제1종의 예
179
「납씨가(納氏歌)」(鄭道傳)[정도전]
180
「신도가(新都歌)」(鄭道傳)[정도전]
181
「관음찬(觀音讃)」(世祖)[세조]
182
제2종의 예
183
「태평사(太平詞)」(朴仁老)[박인로]
184
「화류사(花柳詞)」(金鉉中)[김현중]
185
「관서별곡(關西別曲)」(白光勳)[백광훈]
186
「백구사(白鷗詞)」(洪國榮)[홍국영]
187
제3종의 예
188
「춘향가(春香歌)」(작자 미상)
189
「흥부가(興夫歌)」(작자 미상)
190
「범벅타령」(작자 미상)
191
「꿩타령(雉打令)」(작자 미상)
192
「심청가(沈淸歌)」(작자 미상)
 
193
그런데 장편의 율조는 어느 것이든지 4·4조로서 8자 1운각(韻脚)을 지어 천편일률로 된 것인데 그 문조(文調)는 조금도 이색적인 게 없다.
 
194
7. 歌詩[가시]와 민족성
 
195
이상에 개론한 가시는 전혀 조선인의 심전(心田)에서 피어나온 정화(精華)다. 이미 그 정화의 전체를 살펴본 이상은 다시 최후에 다다라 그 정화에 맺혀 있는 정신인 민족성을 탐구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민족성의 어떠함을 설파하여 본문의 결론을 마감코자 한다.
196
민족성 문제는 참말로 조심스런 일이니, 그러므로 소홀히 입을 열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방면에 나타난 것은 말할 것 없고 오직 가요에 관한 일면을 잡아 말하면, 조선 민족성은 다만 특징이 없이 순탄 화평하다 할 것이다. 그 심법이 너무 야박하지도 않고 또 너무 관대치도 않다. 조선인은 끔찍이 선량한 심법을 가진 민족이다. 그러므로 옛날부터 동방 군자의 나라라 자칭하며, 또한 고대 중국인도 말하되 선인(善人)이라 함이 있었다. 이성미의 온순한 것은 그 살고 있는 거룩한 지리·기후의 감명으로써 이룩한 성미인 것이다. 조선의 산천은 무던히 명미(明媚)하며 기후는 춥고 더움의 도가 극도로 됨이 없고 매우 온화하다. 그 진진한 자연미에 목욕한 정조(情調)가 스스로 순아(淳雅)하여진 때문에 그 심정을 표창(表彰)한 일반 시문에는 거의 낙천적인 풍운(風韻)이 많다.
197
그 천품의 순후한 성격은 신라 국보인 옥대(玉帶)·옥탑(玉塔)·옥적(玉笛) 3물에 있어서도 비겨볼 만하니, 이 3대 국보라 한 것은 사물 모양은 각각이나 그 물질은 동일한 옥(玉)으로 된바 그 개념의 옥미(玉美)딴은 실상 민족성의 표장(標章)이 됨을 짐작할 수 있다. 옥은 유리같이 투명치 않고 돌덩이같이 암탁(暗濁)치도 않다. 청징(淸澄)의 취미가 있고 온윤(溫潤)의 광채가 있는 것이다. 그 옥의 품질같이 일반 가요는 스스로 내명(內明)한 심정을 나타내며, 스스로 청정(淸淨)한 풍치를 띠었다. 다시 말하면, 근년의 가영풍요(歌詠諷謠)는 옥빛과 같이 온윤의 광명과 원융(圓融)의 상(相)으로서 순수한 꾸밈을 이룰새 그 명청(明淸)한 품격은 아주 철저한 의사와 신묘한 운미(韻美)를 나타냄이 아니라 자연을 진솔(眞率)로 묘사하며 실정을 꾸밈없이 표현함을 힘썼던 것이다.
198
그러므로 조선 민족성은 옥의 품질과 같이 온량(溫良)하고 명정(明淨)하여 극히 순정(純正)하다 할 것이다. 다만 옥을 중시함은 동양의 공통성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 사람은 오직 옥 한가지만을 중히 여김이 아니라 각기 성정에 합한 다른 사물을 부가하였다. 중국인은 옥에 금을 곁들여 정금미옥(精金美玉)·금성옥진(金聲玉振)등의 투어를 쓴다. 그러므로 중국 민족성은 금·옥의 겸비로써 강유(剛柔)를 합하여 양극단으로 달리는 행색이 있다. 일본의 신기(神器)는 옥에 경(鏡)과 검(劍)을 삼동(三同)하니, 그 옥같이 밝되 경같이 공백(空白)하고 검같이 용감 예리하여 곧바로 나아가는 심정을 표한 것이다. 그러나 조선 신기(神器)는 하등의 부대품이 없이 오직 옥 한가지만으로 만든 것이니, 인품에 있어서도 얌전하고 온량한 사람을 옥골(玉骨)·옥인(玉人)이라 함은 항다반으로 하는 소리요, 연애의 극정(極情)을 형용함에도 옥에 비하여 옥 같은 님이라 하니, 그러므로 옥은 곧 조선 민족성의 표장이다.
199
중국인을 이지적이라 하고 일본인을 감정적이라 하면 조선인은 자연적이라 할 수 있다. 중국 한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염(廉)과 운(韻)이 있어 규범이 자못 번거롭고 그 문자는 음 외에 뜻이 따로 있는 것이다. 일본의 고가(古歌 )는 돌발적인 감정어가 많아서 그것이 후일에 이상한 침사(枕詞)라는 것이 되었다. 그 문자는 1음 1자로서 변통 없는 단조로운 표음문자다.
200
조선의 가시는 보통 4·4조로서 4개의 음수로 되었다. 이는 생리상 호흡과 맥박의 일강일약한 자연스런 음조로 된 것이요, 이것이 저 이지적·감정적과는 크게 판이한 자연적인 성질 또는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따듯한 도를 드러낸 성질로 된 것이다.
201
그 밖에 조선인의 본성을 드러냄은 신기(神器)·옥대(玉帶)에서 연상되는 바 의복에서 백색을 숭상함에 있어서도 알 수 있다. 이 백색은 푸른색이든지 붉은색이든지 그런 특색이 없는 순수한 색이니, 곧 백의를 숭상함은 온순하고 자연적인 특장이 없는 민족성의 표장이라 할 것이다.
202
그 중미(中味)로 된 사고법과 상상법으로 나온 고래의 예술은 신기·옥탑으로 연상되어 일종 선미(線美)의 특징이 있다. 말하자면 중국인이 좋아하는 형미(形美)도 아니요, 일본인이 즐기는 색미(色美)도 아니다. 오직 선미(線美)에 있다. 곧 회화든지 건축이든지 또 조각이든지 다 형보다 또는 색보다 다만 선의 미가 많으니, 이는 일본 유종열(柳宗悅 : 야나기 무네요시)군의 조선 예술론에도 일찍이 말한 바이다. 대저 선이란 것은 곡선이든지 직선이든지 다 강세력(强勢力)에게 피동(被動)되거나 일점에서 다른 점으로 움직여 가는 것인바 스스로 높이 나는 태도도 아니요 스스로 침착한 형적도 아니다. 중간에 요동되어 무상하고 불안정한 태도의 취미가 있는 것이다.
203
신기·옥적을 연상하여 일반 가법(歌法)의 음률을 살피건대 그 선율 진행의 종결은 중도에 끝나도 하등의 기결 수미(起結首尾)의 조응됨이 없으니, 이는 민요의 가보(歌譜)를 보아도 스스로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노래의 성조는 매우 비애(悲哀)하게 되니, 이 비애는 선의 성질과 같이 세상의 무상을 느낀 심정이 불안정하여 부동 갈앙(浮動渴仰)하는 정서로 풀린 구조(口調)이다. 곧바로 특장이 없고 온순하고 자연적이고 부동적인 심상(心像)은 조선 민족성의 본질인 동시에 그것이 특성이다.
 
204
<朝鮮[조선] 제161호, 193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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