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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트려지는 홍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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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4월
이효석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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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2
“여보세요.”
3
“이야기가 있으니 이리 좀 오세요.”
4
“잠깐 들어와 놀다 가세요.”
5
“너무 히야까시 마시구 이리 좀 와요.”
6
“앗다 들어오세요.”
7
“여보세요.”
8
“여보세요.”
9
“여보세요.”
10
…………
11
저문 거리 붉은 등에 저녁 불이 무르녹기 시작할 때면 피를 말리우고 목을 짜내며 경칩의 개구리 떼같이 울고 외치던 이 소리가 이 청루에서는 벌써 들리지 않았고 나비를 부르는 꽃들이 누 앞에 난만히 피지도 않았다.
12
‘상품’의 매매와 흥정으로 그 어느 밤을 물론하고 이른 아침의 저자 같이 외치고 들끓는 ‘화려한’ 이 저자에서 이 누 앞만은 심히도 적막하였다.
13
문은 쓸쓸히 닫히었고 그 위에 걸린 홍등이 문 앞을 희미하게 비취고 있을 따름이다.
14
사시장청 어느 때를 두고든지 시들어본 적 없는 이곳이 이렇게 쓸쓸히 시들었을 적에는 반드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이 틀림없었다.
 

 
 

2. 2

 
16
몇 백 원이나 몇 천 원 계약에 팔려서 처음으로 이 지옥에 들어오면 너무도 기막힌 일에 무섭고 겁이 나서 몇 주일 동안은 눈물과 울음으로 세상이 어두웠다. 밤이 되어 손님을 맡아 가지고 제 방으로 들어갈 때에는 도살장으로 끌리는 양이었다. 너무도 겁이 나서 울고 몸부림을 하면 어떤 사람은 가여워서 그대로 가버리고 어떤 사람은 소리를 치고 주인을 부르고 포악을 부렸다. 그러면 주인이 좇아와서 사정없이 매질하였다. 눈물과 공포와 매질에 차차 길든다 하더라도 일년 열두 달 하루도 안 내놓고 밤새도록 부대끼고 나면 몸은 점점 피곤하여 가서 나중에는 도저히 체력을 지탱하여 갈 수 없었다. 그러나 병이 들어 누웠을 때면은 미음 한 술을커녕 약 한 첩 안 달여 주었다. —몸 팔고 매 맞고 학대받고……개나 도야지에도 떨어지는 생활을 그들은 하여 왔던 것이다.
17
사람으로서의 대접을 못받아 오는 그들이 불평을 품고 별러온 지는 이미 오래였다. 학대받으면 받을수록 원은 맺혀가고 분은 자라갔다. 비록 그들의 원과 분이 어떤 같은 목표를 향하여 통일은 되지 못하였을망정 여덟이면 여덟 사람 억울한 심사와 한 많은 감정만은 똑같이 가졌던 것이었다.
 
18
유심히도 피곤한 날이었다.
19
오정 때쯤은 되어서 아침들을 마치고 나른한 몸으로 층 아래 넓은 방에 모였을 때에 누구의 입에선지 이런 탄식이 새어나왔다.
20
“우리가 왜 이렇게 고생을 하는가.”
21
말할 기맥조차 없는 듯이 모두 잠자코 있는 가운데에 봉선이라는 좀 나 어린 창기가 뛰어 나서며 말하였다.
22
“너나 내가 팔자가 기박해서 그렇지 않으냐. 그야 남처럼 버젓한 남편을 섬겨서 아들딸 낳고 잘살고 싶은 생각이야 누가 없겠니 만은 타고난 팔자가 기박한 것을 어떻게 하니.”
23
무엇을 생각하는지 한참이나 잠자코 있던 부영이라는 나 찬 창기가 이 말에 찬동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항의를 하였다.
24
“팔자가 다 무어냐. 다 같이 이목구비를 갖추고 무엇이 남만 못해서 부모를 버리고 동기를 잃고 고향을 떠나 이 짓까지 하게 되었단 말이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왜 모두 그런 기박한 팔자만 타고 났겠니.”
25
“그것이 다 팔자 탓이 아니냐.”
26
“그래도 너는 팔자구나……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팔자밖에 우리를 요렇게 맨들어 놓은 무엇이 있는 것 같더라.”
27
경상도 어느 시골서 새로 팔려와 밤마다의 울음과 매에 지친 채봉이가 뛰어 나서면서 쉬인 목소리로 외쳤다.
28
“내 세상에 보다 보다 ×팔아먹는 놈의 장사 처음 보았다. 문둥이 같은 놈의 세상!”
29
눈물 많은 그는 제 입으로 나온 이 말에 벌써 감동이 되어 눈에 눈물이 글썽하였다.
30
부영이가 그 뒤를 이었다.
31
“그래 채봉이 마따나 문둥이 같은 놈의 세상? 우리를 요렇게 맨들어논 것이 기박한 팔자가 아니라 이 문둥이 같은 놈의 세상이란다.”
32
“세상이 우리를 기구하게 맨들었단 말이냐.”
33
봉선이는 미심한 듯하였다.
34
“그렇지 않으냐. 생각해 보려무나. 애초에 우리가 이리로 넘어올 때에 계약인지 무엇인지 해가지구 우리를 팔아먹은 놈은 누구며 지금 우리가 버는 돈을 푼푼이 뺏어내는 놈은 누구냐. 밤마다 피를 말리우고 살을 팔면서도 우리야 돈 한푼 얻어 보았니.”
35
“그야 그렇지.”
36
“한 사람이 하룻밤에 적어도 육 원씩만 번다고 하여도 우리 여덟 사람이 벌써 근 오십 원 돈을 버는구나. 그 오십 원 돈이 다 뉘 주머니 속에 들어가고 마니. 하루에 단 오 원어치도 못 얻어먹으면서 우리 여덟이 애쓰고 벌어서 생판 모르는 남 좋은 일만 시켜주지 않았니.”
37
한참이나 있다가 봉선이가 탄식하였다,
38
“그러고 보니 우리가 멍텅구리가 아니냐.”
39
“암 그렇구말구. 우리는 사람이 아니구 물건이란다. 놈들의 농간으로 이리저리 팔려 다니며 피를 짜 놈들을 살찌게 하는 물건이란다.”
40
“니 정말 그런고.”
41
“생각해 봐라. 곰곰이 생각해 보려무나 안 그런가.”
42
“그럼 우리가 멀건 천치 아이가.”
43
“천치란다. 멀건 천치란다. 팔자가 기박하고 이목구비가 남만 못한 것이 아니라 이런 천치 짓을 하는 우리가 못났단다.”
44
“…………”
45
“우리가 사람 같은 대접을 받아 왔나 생각해 봐라. 개나 도야지보다도 더 천하게 여기어 오지 않았니.”
46
부영이의 목소리는 어쩐지 여기서 떨렸다.
47
“먹고 싶은 것 먹어 봤니, 놀고 싶을 때 놀아 봤니, 앓을 때에 미음 한 술 약 한 모금 얻어먹었니. 처음 들어오면 매질과 눈물에 세상이 어둡고 기한이 되어도 내놓지 않는구나.”
48
어느덧 그의 눈에는 눈물이 돌았다. 그러나 떨리는 목소리로 여전히 계속하였다.
49
“저 명자만 해두 올 때에 계약한 돈을 다 벌어주지 않었니. 그리고 기한이 넘은 지도 벌써 두 달이 아니냐. 그런데두 주인은 어데 내놓나 보아라. 한 방울이라도 더 우려내고 한푼이라도 더 뜯어낼려고 꼭 잡고 내놓지 않는구나.”
50
이 소리를 듣는 명자의 눈에는 눈물이 괴였다. 기어코 함을 수 없이 그만 울음이 터져 나오고야 말았다.
51
채봉이도 따라 울었다.
52
나 어린 봉선이는 설움을 못 이겨서 몸부림을 치면서 흑흑 느끼기까지 하였다.
53
이렇게 하여 이윽고 각각 설운 처지를 회상하는 그들은 일제히 울어버리고야 말았던 것이다.
54
부영이만은 입술을 징긋이 깨물고 울음을 억제하면서 말 뒤를 이었다.
55
“우리는 사람이 아니다. 이 개나 도야지만도 못한 천대를 너이들은 더 참을 수 있니. 꾸역꾸역 더 참을 수 있겠니.”
56
“…………”
57
“이 천대를 더들 참을 수 있겠니.”
58
“참을 수 없으면 어이 하노.”
59
채봉이는 눈물 섞인 목소리로 한탄하였다.
60
부영이는 한참 동안이나 대답이 없었다.
61
그러다나 마침내 그는 좌중을 돌아보면서,
62
“울지를 말아라. 울면 무엇하니.”
63
하고 고요히 심장에서 울려내는 듯이 한마디 또렷또렷이 뱉어냈다.
64
“울지 말고 우리 한번 해보자!”
65
“무얼 해보노.”
66
“우리 여덟이 짜고 주인과 한번 해보자!”
67
“해보다니 어떻게 한단 말이냐.”
68
눈물어린 얼굴들이 일제히 부영이를 향하였다.
69
“우리 원이 많지 않으냐. 그 원을 들어달라고 주인한테 떼서 보자꾸나.”
70
“우리 원을 주인이 들어준다디.”
71
채봉이 생각에는 얼토당토않은 듯하였다.
72
“그러니까 떼써서 안 들어주면 우리는 우리 할대로 하잔 말이다.”
73
“우리 할대로?”
74
눈물에 젖은 눈들이 의아하여서 다시 부영이를 바라보았다.
75
“모두 짜고 말을 안 들어주면 그만이 아니냐. 돈을 안 벌어주면 그만이 아니냐.”
76
“그렇게 하게 하겠니.”
77
“일제히 결심하고 죽어도 말 안 듣는데 제인들 어떻게 한단 말이냐.”
78
“옳지!”
79
“그렇지!”
80
그들은 차차 알아들 갔다.
81
마침내 부영이의 설명과 방침을 잘 새겨들은 그들은 두 손을 들고 기쁨에 넘쳐서 뛰고 외쳤다.
82
“좋다!”
83
“좋다!”
84
“부영아 이년아, 니 어디서 그런 생각 배웠나.”
85
“그전에 공장에 다니던 우리 오빠에게서 들었단다. 그때 공장에서도 그렇게 해서 월급 오르고 일시간 적어지고 망나니 감독까지 내쫗았다더라.”
86
“니 이년아 맹랑하다.”
87
“우리도 하자!”
88
“하자!”
89
“하자!”
90
수많은 가냘픈 주먹이 꿋꿋이 쥐이고 눈물에 흐렸던 방안은 이제 계획과 광명에 활짝 개어 올랐다.
91
이렇게 하여 결국 그들은 어여쁜 결심을 한 끈에 맺어 일을 단행하게 되었다. 이때까지 이 세상에서 받아온 학대에 대한 크나큰 원한과 분이 이제 이 집주인과의 대항이라는 한 구체적 형식으로 표현되었던 것이다.
92
처음인 그들은 일의 교섭을 부영이에게 일임하였다. 부영이는 전에 오빠에게서 들은 것이 있어서 구두로 주인과 담판하기를 피하고 오빠들의 예를 본받아서 요구서 비슷한 것을 작성하기로 하였다.
93
여덟 사람 입에서 나오는 수많은 조목 중에서 대강 다음과 같은 요구의 조목을 추려서 능치는 못하나 대강 읽을 줄 알고 쓸 줄 아는 부영이는 한 장의 종이를 도톨도톨한 다다미 위에 놓은 채 그 위에 연필로 공을 들여서 내려 적었다.
94
—. 기한 넘은 명자를 하루라도 속히 내놓을 일.
95
—. 영업시간은 오후 여섯 시부터 새로 두 시까지로 할 일. (즉 두 시 이후에는 손님을 더 들이지 말 일.)
96
—. 낮 동안에는 외출을 마음대로 시킬 일.
97
—. 한달에 하루씩 놀릴 일.
98
—. 처음 들어온 사람을 매질하지 말 일.
99
—. 앓을 때에는 낫도록 치료를 하여 줄 일.
100
이렇게 여섯 가지 조목을 적고 그 다음에 만약 이 조목의 요구를 하나라도 안 들어주면 동맹하여 손님을 안 받겠다는 뜻을 간단히 쓰고 끝에 여덟 사람의 이름을 연서하고 각각 제 이름 밑에 지장을 찍었다.
101
다 쓴 뒤에 부영이가 한번 읽어 주었다. 제 입으로 한마디 한마디 떠듬 떠듬 뜯어들 읽기도 하였다.
102
다 읽은 뒤에 그들은 벌써 일이 다 되고 주인이 굽실굽실 꿀려오는 듯 하여서 손을 치고 소리지르고 한없이 기뻐들 하였다. 전에는 생각지도 못하였던 합력의 공이 끔찍이도 큰 것을 처음으로 안 것도 기쁜 일이었다.
103
뛰고 붙으고 마음껏 기뻐들 한 끝에 그들은 제비를 뽑아서 공을 집은 사람이 요구서를 주인한테 가지고 가서 내기로 하였다.
 

 
 

3. 3

 
105
“아 요런 년들.”
106
“아니꼬운 년들 다 보겠다.”
107
“되지 못한 년들.”
108
“주제넘은 년들.”
109
주인 양주는 팔짝 뛰면서 번차례로 외치면서 방으로 좆아왔다.
110
“같지않은 년들 이것이 다 무어냐.”
111
요구서가 약 오른 그의 손끝에서 바르르 떨렸다.
112
“너이 할 일이나 하구 애초에 작정한 돈이나 벌어주면 그만이지. 요 꼴들에 요건 다 무어냐.”
113
한 사람 한 사람씩 노리면서 그는 떨리는 손으로 요구서를 쪽쪽 찢어 버렸다.
114
“되지못한 년들, 일일이 너이들 시중만 들란 말이냐. 돈은 눈꼽만큼 벌어주고 큰소리가 무슨 큰소리냐.”
115
분은 터져 오르나 주인의 암팡스런 권막에 모두들 잠자코 있는 사이에 참고 있던 부영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116
“당신이 그럼 우리를 사람으로 대접해 왔단 말요.”
117
“이년아 그럼 너이들을 부자집 아가씨처럼 대접하란 말이냐.”
118
“부자집 아가씨구 빌어먹을 것이구 당신이 우리를 개나 도야지만큼이나 여겨 왔소.”
119
“그렇게 호강하고 싶은 년들이 애초에 팔려 오기는 왜 팔려왔단 말이냐.”
120
“우리가 팔려오고 싶어 팔려 왔소.”
121
“그러세 말이다. 한껏 이런 데 팔려오는 너이 년들이 무슨 건방진 소리냐 말이다.”
122
“이런 데 팔려오는 사람은 다 죽을 거란 말요. 너무 괄세 말구려.”
123
“요 꼴들에 괄세는 다 무어냐 같지않게.”
124
“같지않다는 건 다 무어야.”
125
“아, 요런 년 버릇없이.”
126
팔짝 뒤면서 그는 부영이의 따귀를 잘삭 갈겼다.
127
순간 약오른 그들의 얼굴에는 핏대가 쭉 뻗쳐올랐다.
128
“이놈아 왜 치니.”
129
“무슨 재세로 사람을 함부로 치느냐.”
130
“너한테 매여만 지낼 줄 알었드냐.”
131
“발길 놈아.”
132
“죽일 놈아.”
133
그들은 약속한 바 없었으나 약속하였던 것같이 일제히 일어서서 소리 높이 발악을 하였다.
134
“하, 같지않은 것들.”
135
주인은 ‘같지않아서’ 보다도 예기치 아니한 소리 높은 발악에 기를 뺏겨서 목소리를 낮추고 주춤 물러섰다.
136
“이때까지 너이들 먹여 살린 것이 누구냐. 은혜도 모르고 너이들이 그래야 옳단 말이냐.”
137
“은혜? 같지않다. 누가 누구의 은혜를 입었단 말이냐.”
138
“배가 부르니까 괜 듯만 싶으냐. 밥알이 창자 속에 곤두서니까 너이들 세상만 싶으냐.”
139
“두말 말고 우리 말을 들어줄랴면 주고 안 들어줄랴면 그만이고 생각대로 하구려.”
140
“흥, 누가 몸이 다나 두고 보자. 굶어 죽거나 말거나 이년들 밥 한술 주나 봐라.”
141
이렇게 위협하면서 주인은 방을 나가 버렸다.
142
“원 나중엔 별것들 다 보겠네.”
143
한쪽 구석에 말 없이 서 있는 주인여편네도 중얼거리며 따라 나갔다.
 

 
 

4. 4

 
145
이렇게 하여 주인과 대전한지 사흘이었다.
146
식료는 온전히 끊기었었다.
147
사흘 동안 속에 곡식 한 톨 넣지 못한 그들은 기맥이 쇠진하였다.
148
오늘도 명자는 이층 한구석 제 방에서 엎드려 울기만 하였다.
149
며칠 동안 손님을 안받으니 몸이 거뿐하기는 하였으나 그 대신 배가 고파서 견딜 수 없었다.
150
“공연히 이 짓을 했지, 이 탓으로 나갈 기한이 더 늦어지면 어떻게 하나.”
151
고픈 배를 부둥켜안고 엎드렸다 일어났다 하면서 그는 걱정하였다.
152
이 생각 저 생각에 설어지면 품에 지닌 사진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꺼내보았다. 사진을 들여다보면 그는 재 없이 한바탕 울고야 말았다. 그러나 눈물이 마를 만하면 그는 또다시 사진을 꺼내 보았다.
153
이 지옥에 들어온지 삼년 동안 그 사진만이 그의 유일한 동무였고 위안이었다. 그것은 정든 님의 사진이 아니라 그의 어렸을 때의 집안 식구와 같이 박은 것이었다. (그의 집안은 그때에는 남부럽지 않게 살았던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가 뒤에 서고 그는 어린 동생들과 손을 잡고 앞줄에 서서 박은 것이다. 추석날 읍에서 사진쟁이가 들어왔을 때에 머리 빗고 새옷 입고 박은 것이었다. 벌써 칠년 전이다. 그 후에 어찌함인지 가운이 기울기 시작하여 집에 화재가 난다 땅이 떠내려간다 하여 불과 사년 동안에 가계가 폭삭 주저앉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삼 년 전에 서리서리 뒤틀린 괴상한 연줄로 명자가 이리로 넘어오게까지 되었었다. 고향을 끌려나올 때에 단 한 가지 멈에 지니고 나온 것이 곧 이 한 장의 사진이었다.
154
어머니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마다 동생들이 생각날 때마다 그는 사진을 내보고 실컷 울었다. 집도 절도 없는 고향에 지금 아버지 어머니가 있을 리 만무할 것이다. 그릇 이고 쪽박차고 알지 못하는 마을을 헤매이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도 저것도 고향에 가야 알 것이다. 얼른 고향에 가야 그들의 간 곳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155
이렇게 생각하는 그는 하루도 몇 번 사진과 눈씨름하면서 얼른 삼년이 지나 계약한 기한이 오기만 고대하였다. 그러나 삼년이 지나 기한이 넘어도 주인은 그를 내놀려고 하지 않았다.—
156
이 생각 저 생각에 분하고 원통하여서 오늘도 종일 사진을 보며 울기만 하였다.
 
157
사진 보고 생각하고 울고 하는 동안에 오늘 하루도 다 가고 어느새 밤이 되었다.
158
명자는 눈물을 씻고 일어나서 커튼을 열었다.
159
창밖에는 얿은 장안이 끝없이 깔렸고 암흑의 거리거리가 층층의 생활을 집어삼키고 바다같이 깊다.
160
그 속에 수많은 등불이 초저녁의 별같이 쏟아져서 깜박깜박 사람을 부르는 듯하였다.
161
명자는 창을 열고 찬 야기를 쏘이면서 시름없이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162
그 속은 어쩐지 자유로울 것 같았다. 속히 이곳을 벗어나 저 속에 마음껏 헤엄쳐 볼까 하도고 그는 생각하였다.
163
매력 있는 거리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그는 다시 창을 닫고 커튼을 쳤다.
164
새삼스럽게 기갈이 복받쳐 왔다.
165
그는 그 길로 바로 곧은 층층대를 타고 내려가 층 아랫방으로 갔다.
166
넓은 방에는 사흘 동안의 단식에 눈이 푹 꺼진 동무들이 맥없이 눕기도 하고 혹은 말없이 앉았기도 하였다.
167
“배고파 못살겠다.”
168
명자는 더 참을 수 없어 항복하여 버렸다.
169
말없는 그들도 따라서 외쳤다.
170
“속 쓰리다.”
171
“배고프다.”
172
“이게 무슨 못할 짓인고.”
173
“×을 팔면 팔지 내사 배곯구는 몬살겠다.”
174
누웠던 부영이가 일어나서 그들을 진정시키려고 쇠진한 의기를 채질 하였다.
175
“사흘 동안 굶어서 설마 죽겠니. 옛날의 영악한 사람은 한달이나 굶어도 늠실하였다드라.”
176
“옛날은 옛날이고 지금은 지금이 아니냐.”
177
“지금 사람이 더 영악해야 하잖겠니. 저의가 아수운가 우리가 꿀리나 어데 더 참아 보자꾸나.”
178
부영이가 이렇게 말하면,
179
“죽든지 살든지 해보자!”
180
“더 참아 보자!”
181
하는 한패와 그래도,
182
“못살겠다.”
183
“못 견디겠다.”
184
“배고파 죽겠다.”
185
하는 패가 있었다.
186
“그다지도 고프냐.”
187
부영이는 이제 더 달래갈 수는 없었다.
188
“눈이 뒤집히는 것 같고 몸이 뒤틀리는 것 같아서 못살겠다.”
189
“그럼 있는 대로 모아서 요기라도 하자꾸나.”
190
부영이는 치마춤을 뒤지더니 백통전을 두어 잎 방바닥에 던졌다.
191
“자, 너이들도 있는 대로 내놓아라. 보자.”
192
치마춤에서들 백통전이 한 잎 두 잎식 방바닥에 떨어졌다.
193
그것은 손님을 받을 때에만 가외로 한 잎 두 잎 얻어둔 것이었다.
194
볼 동안에 여남은 잎 모인 백통전을 긁어모아서 부영이는 채봉이에게 주었다.
195
“자, 너 좀 가서 무엇이든지 먹을 것을 사오려무나.”
196
채봉이는 돈을 가지고 건너편 가게에 나가서 두 팔에 수북이 빵을 사들고 들어왔다.
 

 
 

5. 5

 
198
“년들 맹랑하거든.”
199
하루도 채 못 가 항복하리라고 생각한 것이 사흘이나 끌어왔으니 주인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년들의 소행이 괘씸’하기도 하였으나 애초에 잘 달래놓을 것을 그런 줄 모르고 뻗대온 것이 큰 실책인 듯도 생각되었다. 하룻밤이 아까운 이 시절에 사흘 밤이나 문을 닫치는 것은 그에게 곧 막대한 손해를 의미한다. 더구나 다른 누보다도 유달리 번창하는 이 누이니만치 손해는 더욱 큰 것이다. 숫자적 타산이 언제든지 머리 속을 떠날 새 없는 주인은 한 시간이 아까워 견딜 수 없었다. 더구나 밤이 시작됨을 따라 밖에서 더욱 요란하여지는 사내들 노래를 들으려니 한시도 더 참을 수 없어서 그는 또 방으로 좆아왔다.
200
“얘들 배 안 고프냐.”
201
목소리를 힘써 부드럽게 하였다.
202
“우리 배 고프든 안 고프든 무슨 상관이요.”
203
용기를 얻은 봉선이는 대담스럽게 톡 쏘아붙였다.
204
“공연히 그렇게 악만 쓰면 너이만 곯지 않느냐. 이를 때에 고분고분히 잘 들으려무나. 나중에 후회 말구.”
205
“우리야 후회를 하든지 말든지 남의 걱정 퍽 하우.”
206
이제 빵으로 배를 다진 그들은 쉽게 넘어가지는 않았다.
207
“제발 그만들 마음을 돌려라.”
208
“그럼 우리의 원을 들어주겠단 말요.”
209
“아예 그런 딴소리는 말고 밥들이나 먹고 할 일들이나 해라.”
210
“딴소리가 다 무어요. 우리의 원을 들어주겠느냐 안 들어주겠느냐 말요.”
211
“자, 일어들 나거라. 벌써 사흘 밤이 아니냐.”
212
“사흘 아니라 석 달이래도 우리는 원을 이루고야 말 테예요.”
213
“글쎄 너이들 일이 됐니. 밥 먹여 살리는 주인한테 이렇게 대드는 법이 세상에 어데 있단 말이냐.”
214
“잔소리는 그만두어요. 우리의 원을 들어주겠으면 주고 싫으면 그만이지 딴소리가 웬 딴소리요.”
215
부영이가 한마디 한마디 또박또박 캐서 들여 밀었다.
216
“너이 년들 말 안들을 테냐.”
217
누그러졌던 주인은 별안간에 빨끈하였다. 노기에 세모진 눈이 노랗게 빛났다.
218
"얼리니가 괜 듯만 싶어서 년들이.“
219
“앗다 얼리지 않으면 어떻게 할 테요. 어떻게 할 테야.”
220
“그래도 그년이.”
221
“그년이란 다 무어야.”
222
“이, 요런 년.”
223
주인은 팔짝 뛰면서 부영이의 볼을 갈겼다. 푹 고꾸라지는 그의 머리통을 뒤미처 갈기고 풀어진 머리채를 한 손에 감아쥐면서 그는 큰소리로 그들을 위협하였다.
224
“이년들 다들 덤벼 봐라.”
225
그러나 악 오른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226
동무가 이렇게 얻어맞고 창피한 욕을 당하는 것을 보는 그들은 일시에 똑같이 분이 터져 올랐다. 전신에 새빨간 핏대가 쭉 뻗쳤다. 그러나 너무도 악이 복받쳐서 한참 동안은 벌벌 떨기만 하고 입이 붙어 말이 안나왔다.
227
“이년들 다들 덤벼라.”
228
놈은 머리채를 징긋이 감아쥐면서 범같이 짖었다.
229
“이놈아 사람을 또 친단 말이냐.”
230
“너 듣기 싫으면 피차 그만이지 왜 사람을 치느냐.”
231
“몸쓸 놈아!”
232
“개 같은 놈아.”
233
맥은 없으나마 힘은 모자라나마 그들은 악과 분을 한데 모아 일제히 놈에게 달려들었다. 놈의 옷자락도 붙들고 놈의 따귀도 치고 놈의 머리도 들고 놈의 다리에도 매달리고 놈의 살도 물어뜯고 그들은 악 나는 대로 힘자라는 대로 벌떼같이 놈의 몸에 움켜 붙었다.
234
나 찬 몸에 힘이 좀 부치기는 하였으나 원체 뼈대가 단단하고 매서운 사나이라 놈은 몸에 들어붙은 그들을 한 손으로 뿌리쳐 뜯기도 하고 발 길로 차서 떨어트리기도 하면서 여전히 부영이의 머리채를 휘어잡은 채 이 구석 저 구석 넓은 방안을 질질 몰고 다녔다.
235
밑에서 밟히고 끌리는 부영이의 입에서는 피가 흘렀다. 이리저리 끌리는 대로 넓은 방바닥에 핏줄이 구불구불 고패를 쳤다.
236
이윽고 한쪽에서는 분을 못이기는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237
“몹쓸 놈아 쳐라.”
238
“너도 사람의 종자냐.”
239
“벼락을 맞을 놈아.”
240
“혀를 빼물고 꺼구러져도 남지 않을 놈아.”
241
“사람을 죽이네!”
242
“순사를 불러라!”
243
그들은 소리를 다하고 악을 다하였다. 나중에 주인 여편네가 기급을 하고 좇아왔다.
244
옷이 찍기고 멍이 들고 피가 흘렀다.
245
그것도 저것도 다 헤아리지 않고 그들은 온갖 힘을 다하여 이를 악물고 놈과 세상과 접전하였다.
 

 
 

6. 6

 
247
“문 열어라.”
248
“자고 가자.”
249
밤이 익어 감을 따라 문밖에서는 취객들의 외치는 소리가 쉴새없이 높이 났다.
250
“다들 죽었니.”
251
“명자야.”
252
“부영아.”
253
“채봉아.”
254
문 두드리는 소리가 새를 두고 흘렀다. 그래도 안에서 대답이 없으면 부서져라 하고 난폭하게 한참씩 문을 흔들다가는 무엇이라고 욕지거리를 하면서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255
이렇게 한떼 가버리고 나면 다음에 또 한떼가 나타났다.
256
“문 열어라.”
257
“웬일이냐 사흘이나!”
258
“봉선아.”
259
“채봉아.”
260
“봉선아.”
261
방에서는 모두들 맥을 잃고 누웠었다.
262
극렬한 싸움 뒤에 피곤—하였다느니보다도 실신한 듯이 잔약한 여병졸들은 피와 비린내와 난잡 속에 코를 막고 죽은 듯이 이리저리 눕고 있었다. 분이 나서 쌔근쌔근—하지도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기에는 너무나 기맥이 쇠진하였었다. 말없이 죽은 듯이 그들은 다만 눕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 사람도 아직 그들이 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잠시 피곤할 따름이다. 맥이 나면 놈과 또다시 싸워야 할 것이다—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263
“봉선아.”
264
“내다, 봉선아.”
265
“너 이년 나를 괄세하니.”
266
“봉선아.”
267
“봉선아.”
268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하도 시끄럽기에 봉선이는 일어나서 방을 나가 문을 열었다.
269
“봉선아, 너 이년 나를 몰라보니.”
270
하면서 달려드는 사내는 자기를 맡아 놓고 사주는 나지미였다. 그러나 봉선이는 오늘만은 그를 반가운 낯으로 대하지 않았다.
271
“아녜요. 오늘은 안돼요.”
272
하면서 그를 붙드는 사내를 밀치고 문을 닫치려 하였다.
273
“안되긴 왜 안된단 말이냐. 사흘이나.”
274
사내는 그를 붙들고 놓지 않았다.
275
“주인 녀석과 싸우고 벌이 않기로 했어요.”
276
“주인과 싸웠어?”
277
사내들은 새삼스럽게 그의 찢긴 옷, 헤크러진 머리, 피 흔적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278
“자, 다음날 오구 오늘들은 가세요.”
279
“아니, 왜 싸웠단 말이냐.”
280
“주인놈이 몹쓸 녀석이라우……우리 말을 들어주기 전에는 우리가 일을 하나 봐라.”
281
“주인이 몹쓸 놈이어서 싸웠단 말이냐.”
282
봉선이는 주춤하고 뜰을 내려서서 목소리를 높였다.
283
“사람을 굶기고 그 위에 죽도록 치고……주인놈이 천하에 고약한 놈이지 지금 저 방에는 죽도록 얻어맞고 피를 토한 동무들이 죽은 듯이 눕고 있다우.”
284
하면서 방을 가리키는 그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285
봉선이의 높은 목소리에 이웃집 문전에서 떠들고 흥정하고 노래하던 사내와 계집들이 한 사람 두 사람씩 옹기종기 이리로 모여들었다.
286
봉선이는 설어서 견딜 수 없었다. 맡길 곳 없는 설움을 이제 이 많은 사람 앞에서 마음껏 하소연하여 보고 싶었다.
287
그는 뜰에 올라서서 두 손을 들고 고함을 쳤다.
288
“들어보시오! 당신들도 피가 있거든 들어보시오! 우리는 사람이 아니요. 우리가 사람 같은 대접을 받아 온 줄 아오. 개나 도야지보다도 더 천대를 받아 왔소. 당신네들이 우리의 몸을 살 때에 한번이나 우리를 불쌍히 여겨본 적이 있었소. 우리는 개마도 못하고 도야지마도 못하고, 먹고 싶은 것 먹어 봤나 놀고 싶을 때 놀아 봤나 앓을 때에 미음 한술 약 한 모금 얻어먹었나. 처음 들어오면 매질과 눈물에 세상이 어둡고 계약한 기한이 지나도 주인놈이 내놓기를 하나. 한 방울이라도 더 울려내고 한푼이라도 더 뜯어낼려고 꼭 잡고 내놓지 않는다. 우리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아니구 물건이다. 애초에 우리가 이리로 넘어올 때에 계약인지 무엇인지 해 가지고 우리를 팔아먹은 놈 누구며, 지금 우리의 버는 돈을 한푼 한푼 다 빨아내는 놈은 누군가. 우리는 그놈들을 위해서 피를 짜내고 살을 말리우는 물건이다. 부모를 버리고 동기를 잃고 고향을 떠나 개나 도야지마도 못한 천대를 받게 한 것은 누구인가. 누구인가.”
289
그는 흥분이 되어서 그도 모르게 정신없이 이렇게 외쳤다. 며칠 전 부영이에게서 들어두었던 말이 이제 그의 입에서 순서는 뒤바뀌었을망정 마치 제 속에서 우러나오는 말같이 한마디 한마디 뒤를 이어서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장황은 하나 그는 이것을 다 말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그는 여전히 흥분된 어조로 계속하였다.
290
“다같은 이목구비를 갖추고 무엇이 남보다 못나서 이 짓을 하게 되었나. 이 더러운 짓을 하게 되었는가. 남처럼 버젓하게 살지 못하고 왜 이렇게 되었는가. 우리의 팔자가 기박해서 그런가. 팔자가 무슨 빌어먹을 놈의 팔잔가.”
291
사흘 전에 부영이에게 반대하여 팔자를 주장하던 그가 이제 와서 확실히 팔자를 부정하였다. 그는 벌써 사흘 전의 그는 아니었다. 사흘 후인 이제 그는 똑바로 세상을 볼 줄 알았던 것이다.
292
“이 문둥이 같은 놈의 세상이, 놈들의 농간이, 우리를 이렇게 기구하게 맨들지 않았는가.”
293
봉선이가 주먹을 쥐고 이렇게 높게 외치자 사람 숲에서는 여러 가지 소리가 들려오고 가운데에는 감동하여 손뼉 치는 사람도 있었다.
294
“옳다!”
295
“고년 맹랑하다.”
296
“똑똑하다.”
297
같은 처지에 있으니만큼 그 중에 모여 섰던 이웃집 창기들에게는 봉선이의 말이 뼈 속까지 젖어 들어가서 그들은 감격한 끝에 길게 한숨도 쉬고 남몰래 눈물도 씻으면서 얕은 목소리로 각각 탄식하였다.
298
“정말 우리는 사람이 아니다.”
299
“개마도 못한 천대를 받아오지만 않니.”
300
“부모 형제 다 버리고 이것이 무슨 죄냐.”
301
“몹쓸 놈의 세상 같으니.”
302
맡길 곳 없는 설움을 이제 이렇게 뭇사람 앞에서 마음껏 하소연한 봉선이의 속은 자못 시원하였다. 동시에 여러 사람 앞에서 한 번도 지껄여 본 적 없고 남이 하는 연설 한마디 들어본 적 없는 무식하고 철모르던 그가 어느 틈에 이렇게 철이 들고 구변이 늘었는가를 생각하매 자기 스스로 은근히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303
그는 이를 악물고 높은 구변으로 계속하였다.
304
“우리는 이 천대를 더 참을 수 없다. 천치같이 더 속아넘어갈 수 없다. 우리는 일제히 짜고 주인놈과 싸웠다. 놈은 우리의 말을 한마디도 안 들어주고 우리를 사흘 동안이나 굶기면서 됩데 우리를 때리고 차고 죽일 놈 같으니. 지금 저 방에는 죽도록 얻어맞은 동무들이 피를 토하고 누워있다. 저 방에, 저 방에.”
305
하면서 가리키는 그의 손을 따라 사람들은 그쪽을 향하였다.
306
정신없이 지껄인 바람에 잠깐 사라졌던 분이 이제 또다시 그의 가슴에 새삼스럽게 타올랐다. 그는 악을 다하여 소리 소리쳤다.
307
“주인놈이 죽일 놈이다. 우리가 다시 일을 하나 봐라. 다시 이 짓을 하나 봐라. 우리는 벌써 너에게 매인 몸이 아니다. 깍정이 같은 놈. 다시 돈 벌어주나 봐라.”
308
주인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그는 눈을 노리고 욕을 퍼부었다.
309
분통이 터져서 전신이 바르르 떨렸다.
310
“다시 일을 하나 봐라. 이 놈의 집에, 이 더러운 놈의 집에 다시 있는가 봐라.”
311
그는 이제 집 그것을 저주하는 듯이 터지는 분과 떨리는 몸을 문에다 갖다 탁 부딪쳤다.
312
문살이 부서지며 유리가 깨트러졌다.
313
미친 사람같이 그는 허둥지둥 다시 일어나 땅에서 돌을 한 개 찾아 들더니 <봉학루>라고 쓰인 문 위에 달린 붉은 등을 겨누었다.
314
다음 순간 뎅그렁 하고 깨트려지는 홍등이 땅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으싹 하고 조밥이 되어 버렸다.
315
해끗한 유리조각이 주위에 팍삭 날고 집 앞은 순식간에 암흑으로 변하였다.
316
잠시 숨을 죽이고 그의 거동을 살피던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수물거리기 시작하였다.
317
“봉선아, 너 미쳤구나.”
318
“주인놈을 잡아내라!”
319
“잘 깼다. 질내 이놈의 짓을 하겠니.”
320
“동맹파업이다.”
321
“잘했다!”
322
“요 아래 추월루에서도 했다드라!”
323
깨트려진 홍등. 어두운 이 문전을 중심으로 이 밤의 이 거리, 이 저자는 심히도 수물거리고 동요하였다.
【원문】깨트려지는 홍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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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석(李孝石)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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