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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女子)의 일생(一生) ◈
◇ 시집난(難) 시집 난(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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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5
채만식
1947년 조선타임즈사에서 간행한 『조선 대표작가 전집』 제8권에 실린 작품
1
女子[여자]의 一生[일생]
 
2
1. 시집難[난] 시집難[난]
 
 
3
내일 모레가 추석 ── 열사흘달이 천심 높다랗게 솟아 있다. 일 년 열두달 그중 달이 좋다는 추석달이다. 거진 다 둥그렀고 거울같이 맑다. 밤은 이윽히 깊어 울던 벌레도 잠자고 괴괴하고…… 촉촉한 이슬기를 머금고 달빛만 빈 뜰에 가득 괴어 꿈속이고 싶은 황홀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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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댁 진주는 우물에 두레박을 드리운 채 자아올릴 생각을 잊고 서서 하도 좋은 달밤에 잠깐 정신이 팔린다. 무엇인지 저절로 마음이 흥그러워지려고 하고 이런 좋은 달밤을 두어두고 이내 도로 들어가기가 아까운 것 같았다. 언제까지고 내처 이대로 있었으면 싶었다. 그러나, 또 혼자서 이렇게는 더 아까운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 아까운 것이 가만히 또 재미가 있기도 하였다. 한 어리고 처녀답게 순진스런 감성일 것이다. 시집을 오고 머리쪽을 지어서 이름이 각시니 새댁이니지 아직껏 그는 열두살박이 새서방 준호의 도련님 시중이나 들고 이야기 동무나 하여 주고 하는 곱다시 처녀요 갓 열여덟의 어린 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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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은 비록 나진 않고 애기새서방이더라도 진주에게 가장 가까운 그리고 유일한 이성은 당연히 준호였다. 일상에 즐거운 일이 있을 때나 언짢은 일이 있을 때나 매양 준호가 먼저 생각이 나고 하였다. 일부러 그러자고 하여서 하는 노릇이 아니라 제풀에 마음이 그렇게 가지는 것이었었다. 곧 정(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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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진주는 좋은 달밤이 혼자서는 미흡하던 끝에 저절로 생각나는 것이 역시 준호였다. 마침 이런 때 준호가 돌아와서 좀 같이 놀기도 하고 하였으면 하였다. 논다고 하여도 물론 어려운 시어머니가 계시고 하인이랑 머슴이랑 있고 한데 나이 어린 새서방을 데리고 점잖지 못하게 큰 소리로 지껄이고 웃어대고 뛰어다니고, 달아달아 밝은 달아 창가 부르고 아이들처럼 이럴 수는 없었다. 또 한만히 오래도록 놀고 있을 수도 없었다. 잠깐 그저 나란히 뜰을 거닐면서 달 이야기, 글방에 갔던 이야기, 추석 이야기 같은 것이나 소곤소곤 서로 이야기하다가 웬만큼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걸로써 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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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항용 열한시가 지나서 어떤 때에는 자정에 더러는 자정이 넘어서 돌아오고 하였다. 글방에는 시계가 없고 두꺼비라는 선생의 짐작으로 대중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일정하지가 못하였다. 방금 안방에서 열한시가 거진 되는 것을 보고 나온 생각을 하고 진주는 혹시 오늘은 내일이 파접이고 하니 일찍 돌아오는지도 모를까보다면서 갸웃이 귀를 기울인다. 마악 그러자 쉬었다 다시 시작인지 건넌마을의 글방으로부터 여럿이 어울려 읽는 글소리가 감감하니 손에 잡힐 듯 분명히 좌악 들려왔다. 지금부터 참을 다시 시작하였다면 여느날보다 이르기는새로에 더 늦었던 것이었다. 좀 섭섭하였으나 내일도 날이요 모레도 날이었다. 더구나 내일부터 한동안 글방에는 가지 않고 하니 얼마든지 계제가 있을 터이었다. 그런 내일날을 기다리는 마음도 차라리 한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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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는 천천히 두레박을 자아올려 우물 빈지 위에 놓았던 하얀 분원사기(分院白磁) 대접에다 넘치지 않도록 팔홉은 되게 부은 후 남은 물도 버리지 않고 세수확으로 가지고 가 따른다. 그러고는 두레박을 줄을 고쳐 사려서 두레박 실겅에다 잘 얹어놓는다. 무엇 한 가지 얌전스럽지 아니함이 없다.
 
9
구름 한 조각 지나가는 자취 없고 달은 한결같이 밝다. 우물 저편쪽 한편을 울타리한 동청(冬靑)나무 잎사귀가 달빛을 받아 수없이 매끄럽게 반뜩인다. 우물 두던의 돌틈에서리라. 귀뚜리가 꼭 한 마리 생각난 것처럼 가르르스러질 듯 울음을 낸다. 그 스러질 듯 가늘게 우는 소리가 조금도 이 밤의 적요함을 헤뜨리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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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소리는 꾸준히 들을 건너 가암감 들려온다. 어쩌면 처음보다 한결 가까이 혹은 높이 들리는 것도 같았다. 진주는 문득 여럿이 어울려 읽는 소리에서 준호의 목소리가 따로이 들리기나 하나 하고 물대접을 집으러 오다 말고 서서 가만히 또 귀를 기울인다. 귀에다 온 총력을 모아가지고 이윽고 듣는다. 그러나 목소리는 졸연하여 분간을 할 수가 없고 그 대신 여럿 틈에 끼여 글을 읽고 있는 모양이 서언히 머릿속에 떠올랐다. 늘 듣는 이야기라 그래도 상상이 되어지던 것이다. 한 무릎 꿇고 한 무릎 세우고 세운 무릎을 깍지손하여 끼고 앉아서 끄덱끄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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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묘지택(五畝之宅)에 수지이상(樹之以桑)이면 오십자 가이의백의(五十者 可以衣帛矣)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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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맹자』양혜왕장의 한 대문을 읽고 있다. 오늘 이 대문을 배우는 줄을 진주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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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돈구체지축(鷄豚狗彘之畜)을 무실기시(無失其時)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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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덱끄덱 몸을 끄덕이는 대로 그 가느다란 목 위에서 커다란 상투가 무긋무긋이 따라 흔들린다.(이 볼성없고 손질 성가시고 남의 조롱거리요한 상투를 어머니가 두려워 차마 깎아버리지는 못하고 안타까와만 하는 준호를 위해 진주는 또 얼마나 안타까왔던고. 하기야 안타깝기로 말하면 상투 외에도 이루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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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상 졸 텐데…… 졸다가 그 사정없이 후린다는 선생의 매끝에 몹시 얻어 맞지나 않는지…… 이런 생각이 나면서 진주는 갑자기 아미가 흐린다. 밤이나 낮이나 어린 준호의 그 고단하여 하는 양이며, 졸려서 졸려서 못견디어 하는 양이란 차마 애처로와 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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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여섯시만 땡 치면 모친 박씨부인의 호령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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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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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는 소리에 일분 어기지를 못하고 안 떨어지는 눈을 비비면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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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 즉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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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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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대답과 함께 벌떡 일어나는 동정이 없어? 재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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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 준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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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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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은 곧 무서운 달초였다. 그러나 두 번째 불러서 안 일어날 적은 별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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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에서 잤으면 그대로 건넌방에서 잤으면 안방으로 건너와서 박씨부인 앞에 무릎을 꿇어앉아 우선 그 안날 밤 글방에서 배운 한문글을 강(講)해 바친다. 못 외바치면 물론 달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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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을 강해 바치고 나서는 한 시간 가량 그 안날 낮에 학교에서 배운 과정 전부를 복습한다. 그러고는 일곱시에 조반을 먹고 학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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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읍내의 보통학교까지 꼬바기 십 리다. 초립 쓰고 책보와 점심을 갈라 들고 십 리 걸어서 학교엘 가 온종일 여러 가지 학과를 배우고 체조랑 실습도 하고 참참이 뛰고 놀기도 하고,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서 다시 십 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오면 날은 다 저물고 열두살박이 소년의 몸은 지칠 대로 지친다. 저녁 수저를 놓던 길로 쓰러져 자더라도 오히려 잠이 나쁠 판이다. 그러나 저녁 수저를 놓던 길로 소위 참글이라는 것을 배우러 글방엘 가야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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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부인은 학교 공부는 개글이었다. 시체는 그것도 조금 지녀야 원님(郡守)도 하고 관찰사(觀察使 : 道長官[도장관])도 하고 한다니 마지못해 시키기는 시키던 것이지만 글은 한문이 원글이요, 한문이라야 참글이었다. 풍월한 수 할 줄 알고 깨끗한 글씨와 더불어 간찰 한 장 얌전히 꾸밀 줄 알고 눈 따악 감고 앉아서 사서삼경 어느 대문 서슴지 않고 좌악좍 외울 줄 알고 이래야 왈 선비요 글한 보람이 있고 양반이었다. 기집애들이나 하는 언문으로 오정 친다 밥 먹어라, 옥히야 숭늉 다고 냉수는 차서 싫다 따위나 배우고 왜붓(鉛筆) 꼬투리에다 침 묻혀가면서 오불탕꼬불탕한 것 그려놓고는 수 한답시고 하나에 둘 보태면 셋이요 따위나 배우고, 이런 것이야 어린애 장난이요 개글이지 만날 학문일 턱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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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졸면서 건넌마을의 글방으로 간다. 가서는 뜻도 모르고 재미도 없는 한문 한 대문을 졸면서 매로 후려갈기우면서 열한시까지 자정까지 꼬바기 앉아서 읽는다. 그러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밤참이나 먹고 하면 항용 한시 때로는 두시가 가깝다. 이튿날 아침 여섯시까지 겨우 네 시간이나 다섯 시간 밖에는 잘 시간이 없다. 대단한 무리였다. 잠은 그리하여 소년 준호에게 가장 핍절한 욕망이요 큰 동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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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백 날만 실컷 자보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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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아프기나 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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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집은 제사두 퍽 쉽게 돌아오구 허드만서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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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면서, 저녁에 글방엘 가려면서 곧 울상으로 가끔 혼잣말 같이 그렇게 중얼거리고 하였다. 하도 고단하여 하도 졸려 갱신을 못하고 안타까이 그러는 정상을 볼 때마다 진주는 그만 애처로와 눈물이 핑 돌 적도 있었다. 대신하여 줄 수 있는 노릇이라면 죄다 대신하여 주고 싶었다. 잠도 대신 많이씩 자주고 글방에도 대신 가주고 달초도 대신 맞아주고 하였으면 작히나 좋으랴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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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하 고요하여 그런지 당혜 바닥에서 징소리가 유난히 다그락거린다. 진주는 되도록 돌을 피해 디디면서 물대접을 집어 들고 마당으로 내려선다. 마당을 지나면서도 사풋사풋이 신발소리를 죽여 걷는다. 밤에 혼자라도 새며느리란 건 본시가 걸음걸이 하나 함부로 하기를 삼가야 하는 법이지만, 남달리 엄한데다 겸해서 까다롭기까지 한 홀시어머니 밑에서 벌써부터 말 많은 시집이고 보매 일동일절 무엇 한 가지 각별히 조심되지 아니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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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밤의 조심은 그러나 조심이 재앙이었다. 아니 재앙은 진작에 마련되어 가지고 있었고, 조심과 또 우연한 사건 하나가 들어서 그 화약 노릇을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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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부인이 퇴침을 돋우 베고 누워 『삼국지』를 보다가 잠깐 잠이 들었었다. 그러다 어찌해서 깨어 보니 한옆으로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던 며느리가 보이지 아니하였다. 바느질하던 것은 다 그대로 놓아둔 채…… 아마 소피엘 갔나보다고 거기까지는 심상하였다. 그러자 우물에서 달그락 거리는 당혜 소리에 섞여 두레박 다루는 기척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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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
두레박을 다룰진댄 소피에 다녀 손을 씻으러 우물로 간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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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엔 어찌? 야밤중에! ……’
 
40
괴이하다는 것이었다. 야밤중에 우물엘 갔기론 괴이할 것이 없을 수도 있는 것이지만, 시어머니 따라 그때의 기분 따라 넉넉히 괴이할 수도 없지 아니하였다. 며느리가 미우면 발뒤꿈치가 달걀같이 고와도 흉이란 말이 있거니와 참으로 며느리가 한번 눈에 벗기로 들면 한정이 없는 것이었다.
 
41
흔히 중년과부란 그 생활 조건과 심리 관계로 인하여 성질이 다소간 편협괴벽하기 쉬운 법이요, 이윽고 그가 단산기(斷産期)를 당하여 히스테리증이 생기게 되고 보면 그 경향이 일단 더 짙어진다. 물론 병이다. 그러나 가벼우면 사람이 좀 까다로운 정도에 그치고 말지만 병이 심한 경우면 신경이 몹시 예민 쇠약하여져 가지고 성격과 생활에 큰 어지러운 변화를 일으킨다. 변덕이 죽끓듯하고 억지가 엿가래 같은 것쯤 차라리 초기적인 현상이다. 환상적인 엉뚱스런 독단을 하여 놓고는 남은 웃을 일을 울고 남이 울 일을 웃는다. 한번 무엇이 이렇다 하고 생각을 하면 꼭 그 곬으로만 그 곬으로만 무섭게 심각코 날카론 천착을 일삼는다. 그러나 필경 얼토당토 아니한 결론에 빠져가지고 과대망상증이니 피해망상증이니 하는 데까지 이르는 수가 왕왕 있다. 보아야 겉으로는 신수 멀쩡하다. 그러나 그는 이미 구할 수 없는 병인이다. 박씨부인이 불행 그러한 병이 골수에까지 깊은 병인이었었다. 그리고 그 병독이 똘똘 몰아 죄다 와서 떨어지는 곳이 어느 곳이냐 하면 며느리 진주였다. 잘하는 일이거나 잘못하는 일이거나 간에(별로 잘못하는 일도 없지만) 며느리가 하는 일이면 덮어놓고 마음에 맞지 않고 새김질하여 보아지고 하였다. 발뒤꿈치가 계란같이 맵시 있어도 흉인 것처럼 말이었다. 그래서 야밤중에 우물에 간 것도 예사롭지가 않고 괴이하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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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박씨부인을 일러 여장부라고 한다. 혹은 여걸이라고도 한다. 언변 좋고 감대 괄괄하고 한문이 웬만한 선비 뺨쳐 먹을 만큼 도저하고 체집 크막하고 기운 세고 진시 여장부였다. 삼백여 호나 되는 이 향교골(校洞[교동]) 온 마을을 쥐락펴락한다. 마을은커녕 한번인가는 세미(稅米 : 納稅[납세])로 갈등이 나 가지고 동헌(東軒 : 郡廳[군청])엘 쫓아들어가서 원님을 다 혼을 내준 여인이었다. 서른한 살 때 갓 제 돐 잡힌 외아들(준호) 하나를 데리고 과부가 되어 이래 십 년 남짓한 동안에 적수로 백여석거리 성세를 장만하였으니 그 또한 장한 일이었다. 그러나 여장부는 여장부요 병든 홀시 어머니는 따로이 또 병든 홀시어머니였다.
 
43
‘자리끼 숭늉이 있는데 하필 냉수며…… 정히 냉수를 먹을 양이면 부엌 물독에도 있을 터요, 또 하인이 그 옆에서 저렇게 자고 있으니 깨서 시킬 일이지 바느질은 몰렸으면서 굳이 제가 우물엘 가야 할 일이 무어란 말인고?’
 
44
‘으응! ……’
 
45
단박이었다. 삽시간에 눈과 얼굴은 험하여진다.
 
46
‘맘이 달떠서! 달밤에 맘이 잔뜩 달떠서!’
 
47
무어 영락없었다.
 
48
‘나이는 찼겠다, 서방은 어리겠다, 으음 오두가 나서! 발광증이 나서!’
 
49
커다랗게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인다.
 
50
‘그러면 그렇지! 누가 아니랬어!’
 
51
박씨부인은 며느리를 대하여 저것이 외양으로는 제법 얌전을 부리고 끔찍다 흠선히 하는 체하지만 서방 명색이 나이 어려 아무 흥도 없고 한데 속도 저렇듯 태연 심상할까? 태연 심상할까? 이런 의혹을 한동안 품어왔었다. 하다가 그것이 어느 겨를에 그렇거니 하는 인정으로 변하였다. 분명 속은 딴속이지. 미흡해서 만사에 뜻이 없고 저 혼자 있을 때면 호올홀 한숨이나 쉬고 하지. 팔자 자탄을 하지. 이렇게…… 했던 것이 아니나다를까 오늘 밤에 보니 짐작은 외수없이 들어맞은 것이었었다.
 
52
‘내가 무슨 탁에 남의 어린 자식 데려다 애먼 혐의를 두어? 다아 번연한 노릇이길래 그런 것이지. 내 눈이 어떤 눈이라고!’
 
53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더니 옛말이 하나 그른 말이 없어! 제마다 얌전하다는 칭찬이요, 생김새도 밉지 않고 무던하길래 혼인을 했더니 아뿔싸 그만!’
 
54
‘아무렴. 나도 홀에미로 자식을 길렀지만 에미 애비 없이 할멈 할아범 손에서 함부로 자란 자식이란 어디가 표가 나도 나거든! 할 수 없어!’
 
55
‘저 저 숭포스런 것이! …… 시방 누가 알세라 들을세라 사풋사풋 신발 소리 안 내고 걷느라고 앨 쓰는 거동 보래도! 에잉 천하 요사스런 것!’
 
56
벌떡 일어나 앉는다. 그러면서 동시에 사뭇 동네방네 떠나가게 그 우렁찬 목청을 질러
 
57
“삼월아!”
 
58
불러댄다. 하인년 삼월이가 죄 있을까마는 여느때대로
 
59
‘새악아?’
 
60
하고 직접 부를 계제도 아니요 겸하여 고함을 지르잔 노릇이라 만만한 삼월이던 것이다.
 
61
잠이 들어놓으면 묶어가도 모르는 삼월이가 한번에 냉큼 대답이 있을리 없었고, 또 부르는 편에서도 고함지르며 들레기가 주장이지 대답은 문제 밖이었다.
 
62
장죽을 집어 놋재털이가 깨어지도록 땅따앙 두드리면서 연거퍼
 
63
“이년 삼월아!”
 
64
불러 외치는 소리를 받아
 
65
“네에.”
 
66
하는 며느리의 연삽한 대답이 대뜰 바로서 들린다.
 
67
‘얌사한 것!’
 
68
눈을 그쪽으로 잔뜩 흘기다가 문득
 
69
‘진작 좀 내다보들랑 아니하고……’
 
70
하면서 얼른 영창 앞으로 다가앉는다. 영창에는 유리가 한칸 붙여 있어 그리로 달 휘영청 밝은 바깥이 환히 내어다보인다. 그 유리쪽에다 바싹 얼굴을 대고 앉던 박씨부인은 그러다 다음 순간 거진 소리를 내어
 
71
“응?”
 
72
하면서 가볍게 놀란다.
 
73
‘용길이가? ……’
 
74
머슴 겸해 와서 의탁하고 있는 용길이었다. 며느리는 물대접을 들고 마악 대뜰로 올라서는 참이고 용길이가 뚝배기를 들고 성큼성큼 우물 두던으로 올라가고 하고 있었다.
 
75
‘마침 물을 뜨러 들어오던 길인지?’
 
76
아니어야 할 것 같았다.
 
77
‘두 것이 여지껏 같이 우물에서 있었지?’
 
78
그런 것 같고 속이 후련하였다.
 
79
‘그렇지만 용길이놈은 지금 마악 들어오고 있는데?’
 
80
이 번연한 사실이 어떤 심술꾸러기처럼 밉광스러웠다. 잠시 혼란이 있은 뒤에
 
81
‘아니, 그건 달리 무슨 까닭이 있었고…… 분명 두 것이 같이 있었어!’
 
82
‘정녕? 그럼 정녕!’
 
83
‘하! 이런 변괴가? ……’
 
84
당장 벼락치듯 영창을 열어젖히면서
 
85
‘이 죽일 년놈들!’
 
86
하고 호통을 하겠는데 용길이를 꺼려 참는다. 머슴은 며느리처럼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또 친정 사촌형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데려다 이내 자식 다음 가게 길러오던 아이라 어디로 치나 싸고 돌아야 할 의리였었다. 그도 증거가 역력하다면 모르거니와 기연가미연가 한 생각만 가지고 일을 지레 떠벌려놓기는 제아무리 좀 주저롭지 아니치 못하였다. 장차 형세를 두고 보는밖에 없는데, 그러나 이 자리를 이대로 참고 넘길 수는 없었다. 어쨌든 간 한바탕 화풀이는 하여야만 하였다.
 
87
진주는 마당 한가운데쯤서 시어머니의 고함 소리를 들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하마터면 물대접을 놓칠 뻔하였다.
 
88
정신이 황망하고 그런데다 연다른 고함소리와 재털이 뚜드리는 소리에 막히어 등 뒤에서 차면 안으로부터 나는 밭은기침 소리도 성큼거리고 우물로 걸어가는 발자죽 소리도 통히 들리지 아니하였다. 따라서 용길이가 들어온 줄도 까맣게 끝까지 그는 몰랐었다.
 
89
‘주무시다 별안간 웬 일이실까? 잠드실 때까지도 아무 다른 기색 없이 책 보시다 이야기하시다 하시던 어른이. 하기야 느닷없이 잘 역정을 내시는 어른은 어른이시지만…… 혹시 바느질하다 말고 나왔다고 그러시나. 그럼 잘못 했게? 좀 참을걸 괜히 나왔지…… 그래도 잠깐 우물에 나왔다고 저다지 역정이 나실까? 그렇지만 또 누가 알아?’
 
90
어찌해서 났던지 큰소리가 난 것만은 사실이요, 큰소리가 난 이상 책망은 당해 둔 것이었다. 그 사정없은 책망…… 아뜩 겁이 질렸다. 마루로 올라섰다. 가슴이 맞방망이치듯 두근거리면서 문고리를 쥐려는 손끝이 바르르 떨렸다. 그때였다.
 
91
‘어려운 일을 당하거든 마음을 먼저 갈앉혀라. 당황하지 말고 태연해라. 네가 눈 큰 값을 하느라고 겁이 많아. 부디 어려운 일을 당하거든 마음을 먼저 갈앉혀라. 당황하지 말고 태연해라.’
 
92
이 말이 방금 할머니가 거기 계신 것처럼 또렷이 귀에 울렸다. 시집오던 그 안날 밤 할머니가 마지막 앞에 앉히고
 
93
“첫째 분수를 지키고…… 세상 만사가 제가끔 다 분수가 있는 법이니라. 작은일이나 큰일이나 꼬옥 제 분수에 맞추어 분별을 하고 아야 억지를 하질랑은 마라! 애들 신발을 어룬이 신자고 드는 것도 분수에 어긋나는 일이요, 창칼로 정자나무를 자르자고 드는 것도 분수에 벗는 일이니라. 그러고 어려운 일을 당하거든……”
 
94
하시면서 타이르시던 두 가지의 신칙이었다. 시집 온 지 반 년 그동안 분수에 대한 것은 이렇다고 할 겪음이 없었으나 어려운 일은 (주장 시어머니의 책망 듣기였지만) 많이 당하였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의 그 말씀이 생각나고 그러면서 마치 배 아플 때 할머니가 손으로 쓸어주시면 시원하고 아픈 기가 가시듯이 이상히 마음 당황하던 것이 갈앉고 태연하여지고는 하였었다. 오늘밤도 곧 그러하였다.
 
95
‘그럼! 이왕 당하는 일이니 더 잘못이나 않도록 잘이나 당해야지! 정신을 차려가지고 조심해서……’
 
96
배운 바를 일에 임하여 능히 행할 줄 아는 지각이었다. 열여덟 살, 물론 어리었다. 아직 소녀요 한 안해로서는 어리었다. 그러나 한 며느리로서는 훨씬 철이 나고 어른스러웠다.
 
97
조용히 윗문을 여닫고 들어서 그대로 소곳하고 문치에 가 선다. 문치에 가 소곳하고…… 우선 대죄(待罪)였다.
 
98
아랫목으로부터는 깜박 아무 동정이 없다.
 
99
이내 아무 동정이 없다고 언제까지든 그러고만 또 서 있어서는
 
100
‘자, 어서 죄를 내리시오.’
 
101
하는 것 같아서 이짐스럽고 도리어 어른의 성정을 돕는 것이 되는 것이다.
 
102
적당히 잠시 후 진주는 가만히 걸음을 옮기어 뒤 곁으로 건너가 손의 물대접을 넌지시 한옆에다 치우듯 비껴서 내려놓고 그러고는 자리에 앉아 바느질을 집어 든다. 바느질은 추석날 새서방 준호가 칠 모시행전이었다.
 
103
“무어냐? 명색이……”
 
104
마악 한코 뜨려고 할 즈음 비로소 박씨부인은 한소리 모질게 지른다. 밑도 끝도 없이 첫마디가 그렇게 나오는 말투도 말투려니와 더욱 그 음성은 방금 삼월이를 불러대더니와는 자못 달라 곧 살기가 뎅겅뎅겅 듣는 듯하였다. 그것은 며느리의 뺨에 가 못질한 듯 박혀 있는 독한 눈매와 더불어 어른으로 아랫사람을 질책하는 음성이요 눈매요 하다기에는 너무도 노골히 어떤 독특한 반감과 증오를 머금은 음성이요 눈매요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비밀이었다. 어리고 아직 감정이 정갈한 진주는 말할 것도 없는 것이지만 당자 박씨 부인 자신으로도 그런 줄을 모르는 맹랑한 비밀이었다. 동시에 이미 쩔어져 만성 된 비밀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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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부인은 실상 며느리가 방으로 들어서기가 멀다하고 잔뜩 벼르고 있었다. 무릎을 도사리고 장죽은 재털이를 두드리던 채 그대로 느직이 올려들고 윗문께를 부릅떠보고 앉아서 마침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서는 즉시 한통
 
106
‘그래 너는 어디를 갔다 오느냐?’
 
107
하고든 무어라고든 하여간 추상같이 ── 하되 우선 준절히 ── 꾸짖어 잡도려댈 참이었었다. 그러나 막상 며느리가 들어서 호흡을 다스리느라 잠깐 그를 노려보아 하는 동안 문득 한 맹렬한 적의(敵意)가 무럭무럭 잡도리고 호통이고는 한옆으로 밀어젖히고 따로이 가슴 저 밑으로부터 치달아올랐다.
 
108
고운 살쩍 아래로 도독이 살진 연한 뺨! 가서 박박 할퀴어놓고 싶게 그 앳되고 화사함의 시기스럽기더라니…… 치렁치렁 뽀얀 버선등 위를 치렁거리는 남갑사 치맛자락! 박박 가서 뜯어발기고 싶게 그 칠보족도리 갓 벗은 듯 새각시태 면면함의 시기스럽기더라니……
 
109
들였던 병아리를 이윽고 쪼아쌓고 독살 부리는 암탉이라면 모르되, 이른바 만물의 영장(靈長)된 체면이 무색할 일이었다. 그러나 인류가 나이는 비록 몇백만 살 더 먹어 어른 뻘이랄값에 좀처럼 프로이드라더냐의 해괴한 저술(著述)을 서재로부터 용감히 끌어내어 불사르지 못하는 약점이 무릇 거기에 있는 것일진댄 속절없은 노릇이었다.
 
110
눈이 뒤집힌다, 혹은 무엇이 바뀐다 하거니와 박절한 대로 박씨부인이 시방 그러하였다. 그렇더라도 방금 아까도 보던 번연히 그 며느리요 그 차림차리였건만 며느리가 무단히 그렇게 젊고 어여쁘고 새각시태 면면하고 한 것처럼 금시로 비위가 더욱 거슬리면서 밉새웁고 울화가 나고 하는 것이니, 도저히 신경 건전한 사람에게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위험스런 환자가 아닐 수 없었다.
 
111
“으응? 무엇허는 명색이냐?”
 
112
눈도 깜짝 않고 여전히 며느리의 뺨을 지질 듯 노리고 앉았다. 이번엔 손의 장죽이 상앗대질까지 쑥 나가면서 또 한번 고함청을 지른다. 그러고는 곧 같은 소리를 다시
 
113
“무엇허는 명색이야? 명색이……”
 
114
소리는 같은 소리라도 노기는 무섭게 더하여 거의 머리끝이 곤두설 지경이었다.
 
115
숨도 쉬는 듯 마는 듯 진주는 소곳하고 앉아 한코 한코 바느질만 뜨고 있다. 또옥또옥 바늘코 소리조차 그는 조심되고 민망스럽다. 항차 말대답이리요. 그러나 참새는 찍하여도 죽이고 짹하여도 죽이고 찍짹하여도 죽이듯이 며느리란 사람은 시원시원 대답을 하면 말대답한다고 흉이요 아니하면 아니 한다고 탓이었다.
 
116
“아니, 별안간 꿀먹은 벙어리가 됐단 말이냐아 으응? ……”
 
117
“………”
 
118
“내 말이 동네 개 짖는 소리만두 못헌가보구나?”
 
119
이러는 데야 유구무언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얼굴을 조금 드는 듯하고
 
120
“어머님 잘못했어요! 다신……”
 
121
“듣기 싫구나! 누가 그런 소리 듣겠다드냐?”
 
122
“………”
 
123
“어디 무엇허러 갔드냐?”
 
124
“………”
 
125
“시에미 잠든 새 살금 나갔다 오는 데가 어디야?”
 
126
심상치 아니한 말이었다. 진주는 가슴이 선뜩하면서
 
127
“하두 갈증이 나서…… 시언한 우물물을……”
 
128
“핑계는 좋구나? 냉수가 먹구 싶으면 하인이 없드냐아? 부엌 물독에 물이 없드냐?”
 
129
“………”
 
130
“요망스런 것 같으니로고! 누가 제 속 모르는 줄 알구?”
 
131
“………”
 
132
“흥! 맘두 들뜰 만허지! 오두발광두 날 만허지! 서방은 어려, 나인 찼어, 달은 휘영청 밝어…… 맘두 들뜰 만허구말구! 오두발광두 날 만허구말구.”
 
133
진주는 기가 막혔다. 시집 온 지 다섯 달, 그동안 하루가 멀다하고 큰 소리가 나고 책망을 듣고 하였지만 이런 무정지책은 처음이었다. 김치가 너무 짰느니 너무 싱겁느니, 새서방 두루마기가 품이 너무 컸느니 깃이 너무 처졌느니 따위의 트집과는 판이히 다른 것이었었다. 억색하여 눈물이 핑 돌았다. 부엌 물독에는 물이 없었다. 삼월이는 깨우기가 시끄럽고 성가실뿐더러 어린 년이 곤히 자는 것을 깨워 일으키느니 내가 잠깐 수족을 놀리기만 못하였다. 그러나마 밤중에 우물엘 내려가기가 새삼스런 일이었을새 말이지…… 달도 무심코 나가서 보니 그렇게 밝았지, 달이 밝거니 하고 나간 것이 아니었다. 더우기 새서방이 어리네 마음이 달떴네 소리는 하늘이 내려다 보시지만 진정 애매하였다. 일찌기 새서방이 어린 것을 미흡히 여긴 적도 없었거니와 도대체 무엇을 가르쳐 마음이 달뜬다 하며 오두발광이 난다 하는 것인지 그것부터가 똑똑히 모를 말이었다.
 
134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시어머니가 저대도록 성정이 났을 바엔 무슨 잘못이든 잘못이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135
‘무엇일까?’
 
136
‘어디가 잘못되었을까?’
 
137
‘하시던 말씀대로 잠드신 새 나간 것이?’
 
138
‘물이나 냉큼 떠가지고 들어오들랑 않고 한참 충그린 것이?’
 
139
억색하던 것은 그 순간이요 진주는 잘못을 찾아내기에, 얼른 잘못을 찾아내지 못해 마음이 급하고 애가 쓰였다.
 
140
박씨부인은 한호흡 깊이 들이쉬더니 호통은 고함으로 돌변하여
 
141
“으응? 날 만두 허구말구우! ……”
 
142
하고 끝목을 길게 빼어 지른다. 그 높고 거친 품이 흡사 황소의 영각이었다. 진주는 하마 바느질을 떨어뜨릴 뻔하였다.
 
143
머슴 사랑에서랑 이웃에서랑은 아닌밤중에 비상한 음향에 놀라 일단 잠들이 깨기는 깨었으나 곧 그 정체를 알고는
 
144
‘또야? …… 또!’
 
145
‘가끔 한번씩 저 짓거리를 해야만 밥이 잘 내리는감!’
 
146
하고 시들하여 하면서 도로들 잠이 들어버린다. 삼월이년만은 그나마 깨지도 않고. 혹 산에 갔다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듣고 무서하는 꿈을 꾸는지 몰라도. ──
 
147
“오두발광이 날 만두 하구말구우! 날 만두 허구말구! 보구 밴 것이 그뿐이구말구우! 그뿐이구말구! 으응? ……”
 
148
어깨를 휘저으면서 구들장이 꺼지라고 밑을 구르면서 발작은 각각으로 심하여 가 지르는 소리도 마침내 인간이라고 하기보다는 더 많이 맹수의 성난 울음에 가까운 포효였다.
 
149
“서방 어리다구우! 으응? 달밤에 오두발광 나서어! 으응? …… 자알 배워 먹었구나아! 자알 배워먹어! 으응? 으응? ……”
 
150
불끈 떨치고 일어선다.
 
151
“예라! 예라! 나는 못본다! 그런 꼴 나는 못본다아! 나는 못본다! 못보지이, 못보지! ……”
 
152
상인의 집안에서는 시어머니가 예사로 며느리를 두들겨패는 풍습이 없지 아니하다. 머리끄덩도 움키고 꼬집어뜯고 물어떼이기도 하고 간혹 방망이찜도 하고. 그러나 소위 선비네 집안에서는 아무리 어떤 일이 있더라도 며느리를 손찌검토록은 하는 법이 아닌 것으로 엄연히 법도(法度)가 되어 있다. 만일 그러한 법도의 제약이 아니었다면 이 밤에 이 자리는 무난히 수라장으로 변하고 말았을 것이었다. 며느리의 뺨에는 흉한 손톱자죽이 여러 개 나고, 몸은 함부로 피멍이 지고, 많은 머리칼이 뽑히고, 남갑사 치마는 발기발기 찢어지고 하고라야 말았을 것이었다.
 
153
그러기만 하였으면 박씨부인은 약간 좀 직성이 풀릴 수도 있는 것인데 그러지를 못하니 사뭇 몸부림이 나는 것이었었다. 쾅쾅 두 발을 구르면서 그 큰 몸집을 뒤흔들면서
 
154
“예라아, 썩 내 눈앞에 뵈지 마라! 당장 네 집으루 가거라! 썩 네 집으루 가구 내 눈앞에 뵈지 마라아, 당장! 당장! ……”
 
155
“어머님! ……”
 
156
푹 엎드러질 듯 몸을 앞으로 숙이면서 진주는 거진 울음 섞어 애절히 빈다.
 
157
“다신…… 다신 그러거든 죽여주시구 한번만 참아 주세요! 어머님!”
 
158
“당장! 네 집으루 가거라! 못보지! 나는 그런 꼴 못보지이. 썩 네 집으루 가거라아 썩!”
 
159
“어머님! 어머님!”
 
160
“썩 못 가느냐? 썩 못 가? 으응?”
 
161
“제발 어머님! 이 자리서 죽여주시지 어머님! 제발……”
 
162
“못 가아? 썩 못 가아? 으응?”
 
163
한 고함에 성큼 한 발짝 또 한 고함에 성큼 한 발짝 세 발짝만에 며느리의 바짝 앞에 이르러 그들먹히 막아선다. 그대로 원비(!)를 늘여 덤쑥 머리끄덩을 움킨다면 정히 큰 솔개미가 병아리를 채인 형국이 도는 판이었었다. 과연 박씨부인은 팔이 움칫움칫 얼마나 거기 눈 아래로 며느리 맵시 나는 머리쪽을 와락 움켜 태질치고 싶었던고.
 
164
숨을 허얼헐 기운을 부려댈 무엇 만만한 것이 없나 하고 둘러보면서 일변
 
165
“으응? 으응? ……”
 
166
하고 을러메다가 마침 바느질꾸리가 눈에 뜨이자 그대로 번쩍 들어 윗문에다 대고 동댕이를 친다. 쾅 와시르르, 문이 힘없이 삐그덕 열린다.
 
167
“나가거라! 당장 네 집으로 가거라! 하누님이 말려두 네 꼴 못본다! 당장 어서 네 집으루 가거라!”
 
168
진주는 그저 죽어지이다고 빌 뿐이었다. 그러나 박씨부인은 좀처럼 갈앉기는새로에 점점 기승이 더하여만 가더니 그러다 필경엔
 
169
“정녕 네가 이럴 테냐? 정녕 이 이퉁을 쓰고 앉았을 테냐? …… 오냐, 으응 두구 보아라! ……”
 
170
하고 우르르 아랫목 발치의 장롱 앞으로 달려가 벼락치듯 문짝을 열어젖히고는 주섬주섬 옷을 꺼내면서 일변 갈아 입으면서
 
171
“내가 나가지! 내가 나가지이, 내가…… 내가 쫓겨나가지! 으응! 내가 나가지이! ……”
 
172
일은 졸연치 아니하였다. 단순한 역정이나 책망이 아니라 기어코 친정으로 쫓을 거조 같았다. 진소위 청천벽력이었다.
 
173
시어머니가 한번 죽으라는 영이면 곧 그 자리에서 죽는 시늉이라도 하여야 하는 것이 며느리요, 그런 중에도 남달리 순종하는 진주였다. 그러나 진주는 이 깊은 밤 들을 건너고 산을 타는 오십여 리 친정집을 느닷없이 간다는 것도 감히 생의치 못할 일이거니와, 가사 교군을 차려주어서든 혹은 바로 이웃간이어서든 가기가 어렵지 아니한 형편일값이라도 쫓겨서 친정으로 가는 그 행보 그 영만은 선뜻 거행할 수가 없었다. 친정으로 쫓겨가기를 저어함은 일반으로 며느리의 본능이라고도 할 것이었다. 친정으로 쫓겨가기처럼 며느리에게 무서운 것은 없었다. 호랑이보다도 귀신보다도 무서운 것이 그것이었다. 하루 아침 시집을 못 살고 친정으로 쫓겨가는 날이면 그로써 여자는 일생을 그르치는 것이었다. 죽은 목숨이나 일반이었다. 차라리 죽는 편이 나았다. 강선달네 양념이는 시집을 갔다 쫓겨오더니 어떤 활량의 첩으로 들어가더니, 갈리고 오더니 그럭저럭 몇 손길 넘나들더니 마지막 술에미로 떠나가고 말았다. 정자나무집 큰딸은 공방이 들어 친정으로 시집으로 오락가락하더니 머슴과 배가 맞아 종적없이 어디로 달아나 버렸다. 인물 좋기로 소문난 최학자네 필순이는 소박데기로 친정살이가 섧다고 들보에 목을 매고 죽어버렸다. 그야 제마다 다 그 신세가 되랄 법은 없는 것이지만, 열에 아홉은 시집을 쫓겨나 성히 평생을 마치는 사람이 드물었다. 또 성히 평생을 마친다 하더라도 따라진 목숨이지 좀 기구할 바 없는 것이었다. 여자는, 며느리는 그러므로 시집 쫓기기를 죽음보다 두려워하며 한사코 그를 면하려고 든다.
 
174
그와 같은 원리(며느리의 본능) 말고도 진주는 따로이 또 한 가지의 위협이 있었다. 진주가 가고 보면 단 하루를 부지할까 싶지 아니한 새서방 어린 준호를 혼자 두고 가는 것이었다. 애처로와 차마 못할 노릇이었다. 만일 불행하여 정말로 쫓겨가고 마는 것이라면 쫓겨가서 장차 신세가 어찌 되고 할 걱정이나 그런 것보다도 준호와 함께 있어 주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더 절박한 고통이요 슬픔이었다. 아닐말로 어린 자식을 떼어놓고 가지 못하여 하는 어머니나 진배없는 안타까움이었다.
 
175
어디로 보든 가지는 못하는 것이요 가서는 아니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불 같은 저 시어머니의 성화는? …… 일시 엄포가 아니라 짜장 당신이 나가시기라도 할 채비인 걸 어떻게 가만히 보고만 있더란 말인고.
 
176
박씨부인은 연방 그 내가 나가지, 내가 쫓겨나가지를 외치면서 고름을 매면서 아래 영창을 크게 열고 거침없이 앞마루로 나선다.
 
177
바느질고리 뒤엎은 것을 주워 담고 있던 진주는 윗문으로 달려나가 앞지르듯 시어머니의 팔에 매달린다.
 
178
“어머님! 한번만 참으세요! 절 죽여주세요 어머니!”
 
179
“예라 비껴라! ……”
 
180
허잘것없이 뿌리쳐버리고 도방으로 내려서면서
 
181
“네 고집이 이기나 내 고집이 이기나 보자! 두구 보아!”
 
182
벽에다 머리를 부딪고 쓰러진 진주는 정신이 아찔하였으나 얼른 몸을 일으켜 천방지축 버선발로 달려내려간다. 고요한 뜰에는 아까와 다름없이 달빛만 가득히 괴어 있다.
 
183
진주는 시어머니의 앞으로 나서서 아랫도리를 얼싸안고 주저앉는다.
 
184
“어머니! 그럼 지가……”
 
185
“갈 테냐? 네 집으루 갈 테냐?”
 
186
“네!”
 
187
“정녕?”
 
188
“………”
 
189
“정녕?”
 
190
“네!”
 
191
“가거라! 당장 이 길루…… 뒤두 돌아볼라 말구 당장 이 자리서!”
 
192
“어머님?”
 
193
“어서!”
 
194
“날이나 새거든 낼 아침에 가께요!”
 
195
“요망스런 것! 구미호 같은 것!”
 
196
비웃듯 그러면서 떼쳐버리고는 쿵쿵쿵 팔을 휘젓고 차면께로 걸어나간다.
 
197
진주는 급한 대로 꾸며댄 말이었었다. 우선 가마고 하여놓고 그랬다가 날이 밝거든 그야말로 작두를 베고 거적에 누워 빌려니…… 하면 밤 사이 역정도 많이 삭고 하실 터인즉 웬만큼 풀어지시려니 하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재치를 낸 것도 아무 보람이 없었다.
 
198
시어머니는 벌써 보이지 않는다. 울 안에서라면 죽으동살동 언제까지고 매달리고 빌고 한다지만 행길까지 쫓아나가는 수는 없었다. 마당 가운데 주저앉은 채 두 손으로 얼굴을 싸고 흐느껴 운다.
 
199
대문 밖에서부터 시작하여 손뼉을 땅땅 목청껏 지르는 왜장 소리가 새판으로 인다.
 
200
“동네방네 다아들 듣소오! 엊그제 시집온 며느리한테 수절과부 시에미가 쫓겨난다네에! 동네방네 다아들 듣소오 다아들 들어! 김진사 김학선네 집에서 며느리가 시에미 쫓아냈다네에 시에미를! 이 밤중에 시에미를 쫓아냈다네!”
 
201
이웃에서 젊은 양주가 또 한번 잠이 깨었다. 소곤소곤 주고받는 이야기가……
 
202
“오늘 저녁은 유난히 더허우?”
 
203
“저 아씨가 올에 몇?”
 
204
“마흔둘이라든가? 셋이라든가……”
 
205
“아직두 멀었구면! 영감이나 하나 얻겠지? 저 병엔 신효한 약이니……”
 
206
“그럴래믄야 여태 수절했겠어요?”
 
207
“저럴래서야 어디 수절한 생색이 있나? 개가살이하니보다 더 망신이지!”
 
208
“며느리가 그 어린 것이 무슨 죄다짐이람! 쯧쯧!”
 
209
“난 애야, 사십 전에 죽는다면 이녁더러 삼년상만 치르구 나서 팔자 고치라구 수결 한 장 써놓구 죽을 테야!”
 
210
“숭헌! ……”
【원문】시집난(難) 시집 난(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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