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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아씨는 행랑어멈 때문에 속이 썩을 대로 썩었다. 나가라 하자니 그것이 고분고분 나갈 것도 아니거니와 그렇다고 두고 보자니 괘씸스러운 것이 하루가 다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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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멈의 버릇은 서방님이 버려놓은 것이 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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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는 아직 이불 속에 들어 있는 남편 앞에 도사리고 앉아서는 아침마다 졸랐다. 왜냐면 아침때가 아니고는 늘 난봉 피우러 쏘다니는 남편을 언제 한번 조용히 대해볼 기회가 없었다. 그나마도 어제 밤이 새도록 취한 술이 미처 깨질 못하여 얼굴이 벌거니 늘어진 사람을 흔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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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자우? 벌써 열 점 반이 넘었수. 기운 좀 채리우.” 하고 말을 붙이는 것은 그리 정다운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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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서방님은 그 속이 무엇임을 지레 채고 눈 하나 떠보려 하지 않았다. 물론 술에 곯아서 못 들을 적도 태반이지만 간혹 가다간 듣지 않을 수 없을 만한 그렇게 큰 음성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못 들은 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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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면 아내는 제물에 더 약이 올라서 이번에도 설마 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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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여보! 일을 저질러놨으면 당신이 어떻게 처칠 하든지 해야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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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관둬, 다 듣기 싫으니.” 하고 그제야 어리눅는 소리로 눈살을 찌푸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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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 싫으면 어떡허우. 그 꼴은 눈허리가 시어서 두구 볼 수가 없으니 일이나 허면 했지 그래 쥔을 손아귀에 넣고 휘두르려는 이따위 행랑것두 있단 말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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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된통 호령은 하였으나 원체 뒤가 딸리고 보니 슬쩍 돌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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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세상없어도 어떻게 할 수 없으니 당신이 내쫓든지 치갈 하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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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드디어 남편은 열병 든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앉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와 동시에 놋 재떨이가 공중을 날아와 벽에 부딪치고 떨어지며 쟁그렁 하고 요란스러운 소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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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서방님은 머리에 떠오르는 그 징글징글한 기억을 어떻게 털어버릴 도리가 없는 것이다. 하기는 아내를 더 지껄이게 하였다가는 그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올지 모르니 겁도 나거니와 만일에 행랑어멈이 미닫이 밖에서 엿듣고 섰다가 이 기맥을 눈치챈다면 그는 더욱 우좌스러운 저의 몸을 발견함에 틀림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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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밖으로 나간 뒤 서방님은 멀뚱히 앉아서 쓴 침을 한번 삼키려 하였으나 그것도 잘 넘어가질 않는다. 수전증 들린 손으로 머리맡의 냉수를 쭈욱 켜고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 다시 눈을 감아보려 한다. 잠이 들면 불쾌한 생각이 좀 덜어질 듯싶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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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눈만 뽀송뽀송할 뿐 아니라 감은 눈 속으로 온갖 잡귀가 다아 나타난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손톱을 길게 늘인 거지귀신 뿔 돋힌 사자귀신 치렁치렁한 꼬리를 휘저으며 깔깔거리는 여우귀신 그중의 어떤 것은 한짝 눈깔이 물커졌건만 그래도 좋다고 아양을 부리며 “아이 서방님” 하고 달려들면 이번에는 다리 팔 없는 오뚝이귀신이 저쪽에 올룽이 앉아서 “요녀석!” 하고 눈을 똑바로 뜬다. 이것들이 모양은 다르다 할지라도 원바탕은 한바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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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님은 진저리를 치며 벌떡 일어나 앉아서는 권연에 불을 붙인다. 등줄기가 선뜩하며 식은땀이 흥건히 내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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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좋으련만 부엌에서는 그릇 깨지는 소리와 함께 아내가 악을 쓰는 걸 보면 행랑어멈과 또 말시단이 되는 듯싶다. 무슨 일인지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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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님도 행랑어멈의 음성만 들어도 몸서리를 치며 사지가 졸아드는 듯하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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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내 뭘 보구 그랬던가. 검붉은 그 얼굴, 푸르딩딩하고 꺼칠한 그 입살. 그건 그렇다 하고 찝찔한 짠지 냄새가 홱 끼치는 그리고 생후 목물 한 번도 못해봤을 듯싶은 때꼽 낀 그 몸뚱어리는? 에잇 추해! 추해! 내 뭘보구? 술이다, 술. 분명히 술의 작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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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또다시 애꿎은 술만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생각을 안 하려 하여도 그날 밤 지냈던 일이 추악한 그 일이 저절로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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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새벽녘 집에 다다랐을 때쯤 하여서는 하늘 땅이 움직이도록 술이 잠뿍 올랐다. 택시에서 내려 엎어지고 다시 일어나다가 옆집 돌담에 부딪쳐 면상을 깐 것만 보아도 취한 것이 확실하였다. 그러나 대문을 열어주고 눈을 비비고 섰는 어멈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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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즉 안 왔어요. 아마 며칠 묵어서 올 모양인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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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안심하고 그 허리를 콱 부둥켜안고 행랑방으로 들어간 걸 보면 전혀 정신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왜냐면 아침나절 아범이 들어와 저 살던 고향에 좀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하고 나간 것을 정말 취한 사람이면 생각해냈을 리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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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년의 행실이 더 고약했는지도 모른다. 전일부터 맥없이 빙글빙글 웃으며 눈을 째긋이 꼬리를 치던 것은 그만두고라도 방에서 그 알량한 낯판때기를 갖다 비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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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서방님허구 살구 싶어요. 웬일인지 전 서방님만 뵈면 괜스레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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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뭐 많이도 바라지 않아요 그저 집 한 채만 사주시면 얼마든지 살림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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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장 이쁜 듯이 팔로 그 목을 얽어들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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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아요? 서방님! 제가 뭐 기생첩인가요 색시첩인가요 더 바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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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앙큼스러운 것은 나중에 발뺌하는 그 태도였다. 안에서 이 눈치를 채고 아내가 기겁을 하여 뛰어나와서 그를 끌어낼 때 어멈은 뭐랬는가. 아내보다도 더 분한 듯이 쌔근거리고 서서는 그리고 눈을 사박스리 홉뜨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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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랑어멈은 일 시키자는 행랑어멈이지 이러라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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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바로 호령하지 않았던가. 뿐만 아니라 고대 자기를 보면 괜스레 좋아서 죽겠다던 년이 딴통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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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범이 없길래 망정이지 이걸 아범이 안다면 그냥 안 있어요. 없는 사람이라구 너무 업신여기지 마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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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것이 주인아씨에게 대하여 저의 면목을 세우려는 뜻도 되려니와 하여튼 년도 무던히 앙큼스러운 계집이었다. 그러고 나서도 그 다음날 밤중에는 자기가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술 취한 사람을 되는대로 잡아끌고서 행랑방으로 들어간 것도 역시 그년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잘 따져보면 모두가 자기의 불근신한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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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방 하나만 더 넘어서면 곱고 깨끗한 아내가 있으련만 그걸 뭘 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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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해보니 곧 창자가 뒤집힐 듯이 속이 아니꼽다. 그러나 이미 엎지른 물이니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째보려야 어째볼 엄두조차 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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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님은 생각다 못하여 하릴없이 궁한 음성으로 아씨를 넌지시 도로 불러 들였다. 그리고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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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설혹 내가 잘못했다 합시다. 이왕 이렇게 되고 난 걸 노하면 뭘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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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내가 나서서 나가라 마라 할 면목은 없소. 허니 당신이 날 살리는 셈 치고 그걸 조용히 불러서 돈 십 원이나 주어서 나가게 하도록 해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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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못 내보내는 걸 내 말은 듣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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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는 아까에 윽박질렸던 앙가프리로 이렇게 톡 쏘긴 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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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친구들에게 이런 걸 발설한다면 내가 이 낯을 들고 문밖엘 못 나설 터이니 당신이 잘 생각해서 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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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혼잣소리로 쫑알거리고는 밖으로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더 비위를 긁었다가는 다시 재떨이가 공중을 날 것이고 그러면 집안만 소란할 뿐 외려 더욱 창피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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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는 마루 끝에 와 웅크리고 앉아서 심부름하는 계집애를 시켜 어미를 부르게 하고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보니 어멈도 물론 괘씸하거니와 계집이면 덮어놓고 맥을 못쓰는 남편도 남편이렷다. 그의 번처라는 자기말고도 수하동에 기생첩을 치가하였고 또는 청진동에 쌀 나무만 대고 드나드는 여학생 첩도 있는 것이다. 꽃 같은 계집들이 이렇게 앞에 놓였으련만 무슨 까닭에 행랑어멈을 그랬는지 그 속을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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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두 외양이나 잘났음 몰라두 그 상판때기를 뭘 보구? 에! 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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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아씨는 자기가 치른 것같이 메스꺼운 생각이 안 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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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일이란 언제든지 계집이 먼저 꼬리를 치는 법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선 행랑어멈 이년이 더욱 흉측스러운 굴치라 안 할 수 없었다. 처음 올 적만 해도 시골서 살다 쫓겨올라온 지 며칠 안 되는데 방이 없어서 이러고 다닌다고 하며 궁상을 떤 것이 좀 측은히 본 것이 아니었던가. 한편 시골 거라 부려먹기에 힘이 덜 드려니 하고 든 것이 단 열흘도 못 되어 까만 낯바닥에 분때기를 칠한다 머리에 기름을 바른다 치마를 외로 돌아입는다 하며 휘즐르고 다니는 걸 보니 서울서 닳아도 어지간히 닳아먹은 계집이었다. 그렇다 치더라도 일을 시켜보면 뒷간까지도 죽어가는 시늉으로 하고 하던 것이 행실을 버려놓은 다음부터는 제가 마땅히 해야 할 걸레질까지도 순순히 할랴질 않는다. 그리고 고기 한 메를 사러 보내도 일부러 주인의 안을 채기 위하여 열 나절이나 있다 오는 이년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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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가 하 기가 막혀서 이렇게 꾸중을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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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세상없는 일이라도 빨리는 못 다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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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시퉁그러진 소리로 눈귀가 실룩이 올라가는 이년이 아니었던가. 그나 그뿐이랴. 아씨가 서방님과 어쩌다 같이 자게 되면 시키지도 않으련만 아닌 밤중에 슬며시 들어와서 끓는 고래에다 불을 처지펴서 요를 태우고 알몸을 구워놓은 이년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면 막벌이를 한다는 그 남편놈이 더 흉악할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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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년의 소견으로는 도저히 애 뱄다는 자세로 며칠씩 그대로 자빠져서 내다주는 밥이나 먹고 누웠을 그런 배짱이 못 될 것이다. 아씨가 화가 치밀어서 어멈을 불러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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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어떻게 된 사람이길래 그리 도도한가. 아프다고 누웠고 애 뱄다고 누웠고 졸리다고 누웠고 이러니 대체 일은 누가 할 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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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눈이 빠지라고 톡톡히 역적을 내었을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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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밴 사람이 어떻게 일을 해요? 아이 별일두! 아씨는 홑몸으로도 일 안하시지 않어요?” 하고 저도 마주 대고 눈을 똑바로 뜬 걸 보더라도 제 속에서 우러나온 소리는 아닐 듯싶다. 순사가 인구 조사를 나왔다가 제 성명을 물어도 벌벌 떨며 더듬거리는 이년이 아니었던가. 이렇게 생각하면 아씨는 두 년놈에게 쥐키어 그 농간에 노는 것이 고만 절통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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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자네가 쥔아씨 대우로 받쳐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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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별 말씀을 다 하셔요. 누가 아씨로 받쳐달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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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멈은 저로도 엄청나게 기가 막힌지 콧등을 한번 씽긋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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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밴 사람이 어떻게 몸을 움직이란 말씀이야요? 아씨두 온 심하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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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애 허니 뉘 눔의 앨 뱄길래 밤낮 그렇게 우좌스레 대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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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 눔의 애라니요? 아씨두! 그렇게 막 말씀할 게 아니야요. 애가 커서 이담에 데련님이 될지 서방님이 될지 사람의 일을 누가 알아요?” 하고 저도 모욕이나 당한 듯이 아씨 붑지않게 큰소리로 대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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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는 이 말에 가슴뿐만 아니라 온 전신이 고만 뜨끔하였다. 터놓고 말은 없어도 년의 어투가 서방님의 앨지도 모른다는 음흉이리라마는 설혹 그렇다면 실지 지금쯤은 만삭이 되어 배가 태독 같아야 될 것이다. 부른 배를 보면 댓 달밖에 안 되는 쥐새끼를 가지고 틀림없이 서방님 건 듯이 이렇게 흉증을 떠는 것을 생각하니 곧 달려들어 뺨 한 개를 갈기고도 싶고 그러면서도 일변 후환이 될까 하여 가슴이 죄어지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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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는 이렇게 맘을 다부지게 먹고 중문을 들어서는 어멈에게 매서운 시선을 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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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렇다고 얼러 딱딱거렸다가는 더욱 내보낼 가망이 없을 터이므로 결국 좋은 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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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게! 자네에게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은 좀 뭣하나” 하고 점잖이 기침을 한번 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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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더러 나가라는 건 나부터 좀 섭섭한데 말이야. 자네가 뭐 밉다든가해서 내쫓는 게 아닐세. 그러면 자네 대신 다른 사람을 들여야 할 게 아닌가? 그런 게 아니라 자네도 아다시피 저 마당에 쌓인 저 시간을 보지? 인제 눈은 내릴 터이고 저걸 어떻게 주체하나? 그래 생각다 못해 행랑방으로 척척 들이쌓으려고 하니까 미안하지만 자네더러 방을 내달라는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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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차차 추워질 텐데 갑작스레 어디로 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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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랑어멈은 짐작치 않았던 그 명령에 고만 얼떨떨하여 찔쩍한 두 눈이 휘둥그렜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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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말이지 이런 일은 번이 없는 법이지만 내가 돈 십 원을 줄 테니 이걸로 앞다리를 구해나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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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그렇지만 그렇게 곧 나갈 수는 없을걸요.” 하고 주밋주밋 돈을 받아 들고는 좋아서 행랑방으로 삥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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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도 이만하면 네년이 떨어졌구나 하고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마는 단오 분이 못 되어 어멈이 부리나케 들어오더니 그 돈을 도로 내놓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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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해보니까 못 떠나겠어요. 어떻게 몸이나 풀구 한 두어 달 지나야 움직일 게 아냐요? 이 몸으로 어떻게 이사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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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또라지게 딴청을 부리는 데는 아씨는 고만 가슴이 다시 달롱하였다. 이년이 필연코 행랑방에 나갔다가 서방놈의 훈수를 듣고 듣고 와서 이러는 것이 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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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는 더 말할 형편이 아님을 알고 돈을 받아 든 채 그대로 벙벙히 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한참 지난 뒤에야 안방으로 들어가서 서방님에게 일일이 고해바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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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할 수 없소. 당신이 내쫓든지 어떡허든지 해보우!” 하고 속 썩는 한숨을 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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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 뱅충맞게 해야 돈을 주고도 못 내보낸담? 쩨! 쩨! 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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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서방님은 도끼눈으로 혀를 찬다. 어멈을 못 내보내는 것이 마치 아씨의 말주변이 부족해 그런 듯싶어서이다. 그는 무엇으로 아씨를 이윽히 노려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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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 보기 싫여!” 하고 공연스레 역정을 벌컥 내었다. 마는 역정은 역정이로되 그나마 행랑방에 들릴까 봐 겁을 집어먹은 가는 소리로 큰소리의 행세를 하려니까 서방님은 자기 속만 부적부적 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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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그럴 것이 서방님은 이걸로 말미암아 사날 동안이나 밖으로 낯을 들고 나오지 못하였다. 자기를 보고 실적게 씽긋씽긋 웃는 년도 년이려니와 자기의 앞에 나서서 멋없이 굽실굽실하는 그 서방놈이 더 능글차고 흉악한 것이 보기조차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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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님은 이불을 머리까지 들쓰고는 여러 가지 귀신을 손으로 털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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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끙! 끙!” 하고 앓는 소리를 치고 하였다. 그리고 밥도 잘 안 자시고는 무턱대고 죄 없는 아씨만 대구 들볶아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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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왜 이렇게 차? 아주 얼음을 깨오지 그래.” 어떤 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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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누가 불을 때랬어? 끓여 죽일 터이야?” 이렇게 까닭 모를 불평이 자꾸만 자꾸만 나오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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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는 전에도 서방님이 이렇게 앓은 경험이 여러 번 있으므로 이번에도 며칠 밤을 새우고 술을 먹더니 주체가 났다 보다고 생각할 것이 돌리었다. 부모가 물려준 재산을 왜 온전히 못쓰고 저러나 싶어서 딱한 생각을 먹었으나 그래도 서방님의 몸이 축갈가 염려가 되어 풍로에 으이를 쑤고 있노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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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 전 오늘 이사를 가겠어요.” 하고 어멈이 앞으로 다가선다. 아씨는 어떻게 되는 속인지 몰라서 떨떠름한 낯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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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앞다리도 다 정하고 해서 지금 이삿짐을 옮기려구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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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어멈은 안마당에 놓였던 새끼 뭉텅이를 가지고 나간다. 그 모양이 어떻게 신이 났는지 치마 뒤도 여밀 줄 모르고 미친년 같이 허벙거리며 나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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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는 이 꼴을 가만히 보고 하여튼 앓던 이 빠진 것처럼 시원하긴 하나 그러나 년이 급작이 떠난다고 서두는 그 속이 한편 이상도 스러웠다. 좀체로 해서 앉은 방석을 아니 뜰 이년이 제법 훌훌이 털고 일어설 적에는 여기에 딴속이 있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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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아씨는 궁굼한 생각을 먹고 문간까지 나와보니 어멈네 두 내외는 구루마에 짐을 다 실었다. 그리고 바구니에 잔 세간을 넣어 손에 들고는 작별까지 하고 가려는 어멈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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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또 행랑살이로 가나?” 하고 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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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뭐 행랑살이만 밤낮 하는 줄 아셔요?” 하고 그전부터 눌려왔던 그 아씨에게 주짜를 뽑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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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글세는 왜 또 사글세야요? 장사하러 가는데요!” 하고 나도 인제는 너만 하단 듯이 비웃는 눈치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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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라니 밑천이 있어야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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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뿌 술집 할 테니까 한 이백 원이면 되겠지요. 더는 해 뭘 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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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네 보란 듯 토심스레 내뱉고는 구루마의 뒤를 따라 골목 밖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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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는 가만히 눈치를 보아하니 저년이 정녕코 돈 이백 원쯤은 수중에 가지고 희짜를 빼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어제 저녁 자기가 뒤란에서 한참 바쁘게 약을 끓이고 있을 제 년이 안방을 친다고 들어가서 오래 있었는데 아마 그때 서방님과 수작이 되고 돈두 그때 주고받은 것이 확적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고분고분 떠날 리도 없거니와 그년이 생파같이 돈 이백 원이 어디서 생기겠는가. 그렇게 따지고 보면 벌써부터 칠팔십 원이면 사줄 그 신식 의걸이 하나 사달라고 그리 졸랐건만도 못 들은 척하던 그가 어멈은 하상 뭐길래 이백 원씩 희떱게 내주나 싶어서 곧 분하고 원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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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는 새빨간 눈을 뜨고 안방으로 부르르 들어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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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년에게 돈 이백 원 주었수?” 하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었다.그러나 서방님은 암말 없이 드러누워서 입맛만 다시니 아씨는 더욱 더 열에 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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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이백 원이 얼마란 말이오? 그년에게 왜 주는 거요. 그런 돈 나에겐 못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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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포악을 쏟아놓다가 급기야엔 눈에 눈물이 맺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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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서방님은 입을 꽉 다물고는 대답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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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끙! 끙!” 하고 신음하는 소리만 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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