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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소설론(本格小說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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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5
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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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本格小說論[본격소설론]
 
 

1. 1

 
3
적어도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의 조선소설을 읽은 분이 요즈음 발표되는 작가들의 소설을 10편만 읽는다면, 그 가운데 현저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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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띠울 만한 신인들의 作風[작풍]은 물론, 중견이라고 볼 몇사람의 작풍도 어느새 그 전과는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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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으로는 去年[거년]에 작고한 金裕貞[김유정], 李箱[이상]을 비롯하여 玄德[현덕], 鄭飛石[정비석], 金東里[김동리]와 같은 이들, 요컨대 근래로 배출한 신인 가운데서 재능으로나 소질로나 비교적 장래를 기대할 수 있을만한 이들의 태반이 그전 소설의 전통과는 결별하였고, 朴泰遠[박태원], 蔡萬植[채만식], 金南天[김남천], 李孝石[이효석] 같은 이들도 동일한 의미는 아니라 할지라도 새로운 방향의 개척으로 血路[혈로]를 열려고 함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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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을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것은 물론 별개의 課題[과제]고 熟考[숙고]를 요하나, 좌우간 이 위에 열거한 작가들을 빼놓으면 최근 조선 소설은 상당히 읽을 맛이 적어지리라는 것만은 단언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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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말은 그들이 가장 좋은 소설을 쓴다는 의미는 아니다. 凡朴[범박]한 말이나 이런 작가들이 현대 이 순간의 우리의 시대 감각이라든가 생활의식과 가장 밀접히 관계될 수 있는 소설의 저자인 것만은 사실이다. 즉 현대성을 가진 작가들, 오늘날이란 시대의 아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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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과연 문학의 현대성이라고 부를 것이냐? 하는 것도 또한 실로 難問[난문]이라 아니할 수 없으나, 그러나 전시대에 비겨 우리가 현대의 특성이란 것을 이야기하는 한, 벌써 전시대의 특성(이미 알려진 것으로써)을 전제로 한 말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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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前代[전대]에 있던 것이 없어졌다든가 없던 것이 새로 생겼다든가하는 의미, 극히 일반적인 비교 관찰쯤은 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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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먼저도 어느 논문에서 암시한 일이 있거니와, 우선 소설의 형태상의 변화를 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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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川邊風景[천변풍경]」이라든가, 「濁流[탁류]」라든가, 혹은 「祭退膳[제퇴선]」,「요지경」이라든가 「날개」,「終生記[종생기]」같은 소설은 모두 우리 문단에서 새로운 형태에 속하는 시험이다. 작자들이 제 작품을 순수소설이라고 부르든 고발문학이라고 부르던 나는 그 경향에 있어서나 구조에 있어서나, 전자를 세태적 소설, 후자를 심리적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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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이런 관찰을 우리가 恒用[항용] 본격소설이라고 부르는 고전적 의미의 소설을 기준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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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 ‘졸라’, 혹은 ‘톨스토이’‘딕켄스’어느 사람을 물론하고 고전적 의미의 소설은 고전적인 의미의 ‘드라마’와 같이 성격과 환경과 그 사이에 얽어지는 생활과 생활의 부단한 연속이 만들어내는 성격의 운명이란 것을 소설 구조의 基軸[기축]으로 삼었고, 그 구조를 통하여 작가는 제 사상을 표현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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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물론 장편을 의미하나 단편도 이 圈外[권외]에 나서진 않는다) 시민사회의 서사시라 하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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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작가로선 환경을 충분히 묘사하면서 제 사상을 또한 부족없이 표현할 것을 고전적인 소설의 구조가 보장했다고 생각할 수가 있다. 요컨대 구조 내부에 조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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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환경의!)와 표현(자기의!)의 하아모니! 이것이 고전적 소설의 詩的[시적] 기초였다면, 이 하아모니의 소멸, 혹은 분열과 더불어 고전적인 소설을 쓰는 작가가 다시 출현하지 않은 것은 周知[주지]의 또한 자연스런 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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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20세기의 작가로서 푸르스트 또는 조이스를 혹은 울프, 로오렌스를 연상하면 족하다.
 
18
이것은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으나, 결국은 환경과 작가와의 점점 커가는 부조화의 결과라 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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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미 19세기의 문화 유물로 돌아가려는 본격소설의 전통은 환경과 작가와의 분열을 다시 회복할 때 문학정신에 의하여 소생될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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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傾向作家[경향작가]가 기획한 소설의 구조를(그것이 시민소설과 별개의 방향을 가졌다는 것을 잠간 問題外[문제외]로 두고])이러한 것으로 해석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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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曙海[서해]로부터 비롯하여 民村[민촌], 宋影[송영], 雪野[설야], 南天[남천]에 이르는 조선소설의 전통도 역시 이런 것이라 할 수 있다.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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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春園[춘원], 想涉[상섭], 東仁[동인] 혹은 泰俊[태준] 같은 이의 즉 경향문학에 선행했다고 할 소설들도 역시 경향소설과는 달은 즉 고전적의미의 소설 전통을 불충분하게일 망정 조선에 移植[이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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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학은 西欧[서구]가 19세기에 통과한 정신적 地帶[지대]를 겨우 1920년대에 들었었으니까……. 그런데 여기 看過[간과]치 못할 문제의 하나는 조선적 본격소설과 경향소설의 過渡點[과도점]이 과연 서구의 20세기 소설에서 보는 그러한 危機[위기]로서 표현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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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의 순서로 보면 당연히 한사람의 푸루스트 한사람의 조이스가 있어야 할 것이나 어쩐 일인지 이렇다 할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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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겨우 최근에 와서 李箱[이상]이라든가 泰遠[태원]이라든가 (川邊風景[천변풍경]이전에)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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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째 이 필연의 과도점을 안가졌는가가 의문인데 이점에서 나는 稻香[도향]을 조선 심리소설의 鼻祖[비조]가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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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선소설의 전통은 불충분하나마 의연히 본격소설에 있었다고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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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조선문학의 移植性[이식성], 즉 한 계단의 소설을 내용으로나 구조로나 완성하기 전에 또한 潮流[조류]가 들어와서 交代[교대]하고 相爭[상쟁]하여 일종의 混流[혼류] 또는 並列[병렬], 혹은 누적의 相[상]을 呈[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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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때까지의 조선소설이 고전적 의미의 소설, 소위 본격소설의 면모를 잃지 않었었드라는 것인데 물론 먼저도 언급한 것처럼 그것은 완성된 전통적 성격으로서가 아니라 미완의 그러므로 완성에의 志向[지향]으로 표현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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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물론 문학에(혹은 문화의) 있어 근대적인 것의 완성을 도모코자 하던 광범한 노력의 一部面[일부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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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소설이란 문학 장르의 본격성을 유지시키는 정신적 원천이 된 작가들이 가진 문학정신의 대립은 어떤 意義[의의]를 갖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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泰俊[태준]과 民村[민촌]은 (혹은 雪野[설야]와 春園[춘원]이래도 좋다) 一目[일목]에 瞭然[요연]한 차이를 가진 작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故鄕[고향]」이나 「第二[제이]의 運命[운명]」, 또는 「黃昏[황혼]」과 「흙」과 같은 작품이 가지고 있는 공통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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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흙」과 「故鄕[고향]」, 「黃昏[황혼]」과 「第二[제이]의 運命[운명]」등이 전혀 상반된 대조라는 것과 질에 있어 도저히 동시에 論[논]키 어려운 성질의 작품인 것은 이곳에서 생각치 않는다면 우리는 중대한 혼란에 빠진다. 그러나 최근에 씌여지는 몇 작가들의 작품에 비하여 前記[전기]한 작품들은 그 상호간에 대단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개의 공통성이 있지 않은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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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소설이란 ‘장르’의 양식상 견지에서 볼 때 그것들은 모두 고전적, 본격적인 의미의 小說型[소설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데서 말을 만들자면 형태상의 공통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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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 형태상의 공통성을 가능케 한 기반, 바꿔 말하면 그들의 문학정신 가운데 무슨 근접될 요소가 있었던가를 생각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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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周知[주지]하는 바와 같이 5,6년 전이면 공통성은 커녕 조선문예사상 정신적 대립이 가장 격렬하던 시대다. 결국 이런 가운데서 近接[근접]된 요소를 찾는다는 것은 일종 나무에서 고기를 찾는 짓이라 할 수 있는데 실상 좀더 들어가 생각하면 기묘하게도 뜻아닌 곳에 한개의 공통된 요소가 들어 있다. 우선 우리가 주의할 것은 그들 兩潮流[양조류]가 다 소설(물론 문학 전반의)의 근대적 전통이 수립되지 않은 조선사회에서 제 문학을 세워 갈려고 한 점을 생각지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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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의미에서나 그들은 소설 그것의 완성을 통하여 현실을 묘사하고 제 자신을 표현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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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지음은 아직껏 한사람의 졸라나 발자크가 나타나지 않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작가들은 고전적 형태의 소설과 결별하고 있지 않은가? 하고 반문할 이가 있을지 모르나, 실상 이 돌연한 것과 같은 문학적 變容[변용] 가운데 정신적 핵심을 찾아내는 것이 비평의 임무다.
 
 
 

3. 3

 
41
사실 요즈음 작가는 벌써 조선에 있어 고전적(그것은 근대적이다) 의미의 소설 様式[양식] 완성의 지향을 버린 것 같다. 그들은 이미 소설을 春園[춘원]이나 泰俊[태준]이나, 民村[민촌], 혹은 雪野[설야]와 같이 해석치는 않는다. 그들보다는 더 많이 서구의 20세기 작가들과 접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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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학정신이 솟아나오는 곳을 역시 우리는 작가와 현실과의 관계, 즉 산 생활 가운데서 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조선소설의 고전적 면모를 유지해 오던 이들에게서 그들이 서로 가지고 있던 상호간의 큰 차이에도 불구하고 지금 작가들보다는 더 적극적인 열의와, 희망을 현실에 대하여서나 저 자신에 대하여 품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43
물론 어디까지든지 비교의 域[역]을 넘지 않으나, 그들이 역시 당시에 예술파라고 불러지던 이들이라 할지라도 지금 작가들보다는 문학을 사상으로 이해하였다고 말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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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粗笨[조분]함을 면치 못한다 할지라도 그때의 작가는 내셔널리즘, 소셜리즘 중 그 어느것에나 심리적으로 기울어지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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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개인적인 예외가 있었다 하더라도 시대의 정신적 조류로서 우리는 정상히 그렇게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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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이 격렬했다 하는 것도 그들이 현실에 대하여 적극적이었던 證左[증좌]라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소설형식의 완성이란 것이 어느 한편에선 의식적(형식주의적으로!)으로 강조되고, 다른 편에선 의식되지 않고(내용만능주의로!) 기도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実[실]은 문학 논쟁의 진정한 승부 장소였다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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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자에선 어디까지 형식적 假構的[가구적]인 의미의 완성이었고 후자에 있어선 내용적 실질적 의미의 완성에의 노력이었다. 내용의 의미에 있어 진실로 最良[최량]의 의미로 해석된 근대정신의 확립 없이는 소설 형식은 완성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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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런 점에서 泰俊[태준](그는 25년 이후의 非傾向文學[비경향문학]이 낳은 가장 큰 작가다)을 볼 때 형식적 부분적인 진보를 인정하면서도 구조, 성격, 전체의 콤포지션에 있어 春園[춘원], 想渉[상섭]에 미치지 못함을 단언할 수가 있다. 연약하게 세련된 春園[춘원]이나 想渉[상섭]의 전통이 泰俊[태준]의 소설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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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미에서 傾向文學[경향문학], 民村[민촌]이나 雪野[설야]는 문장이나 형식에서 눈에 띄는 진보라는 것은 볼 수 없다 하더라도 스케일의 웅대, 구조의 強固[강고], 성격의 확실성이 있어 春園[춘원]과 想渉[상섭]의 훨신 前方[전방]에 진출한 이들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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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周知[주지]하듯이 이런 쌍방의 노력에 불구하고 드디어 고전적 의미의 소설은 조선에 확립되지 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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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그때의 불충분하나마 조선소설의 本格性[본격성]을 유지해 오던 공통성이 전혀 형식상의 그것에 지내지 않었던 무엇보다도 웅변스런 證左[증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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累言[누언]하는 바와 같이 소설은 개인으로서의 성격과 환경과 그 운명을 그리는 예술이므로 서구적 의미의 完美[완미]한 개성으로서의 인간 또는 그 기초가 되는 사회생활이 확립되지 않는 한, 소설양식의 완성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53
이런 의미에서 진정으로 개성이기엔 다분히 봉건적인 신문학, 또한 개성적이라기보다는 지나치게 집단적인 경향문학은 결국 조선의 소설양식을 완성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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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시민적 개성의 문학을 집단적인 개성으로 瀘過[노과]하므로 제 독특한 (19세기의 소설과 구별되는) 소설 (혹은 敍事詩[서사시])을 형성할 경향문학으로써 아직 시민적 의미의 개성도 형성되지 않은 땅에서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두려운 모험이었다.
 
55
조선의 경향소설은 그런 때문에 개성의 가치를 자기의 입장에서 평가하고 再生[재생]시키는 것을 没却[몰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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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역시 개성의 가치를 알려 줄 소설의 근대적 전통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방, 본래로 보면 개성의 위대한 기념비를 창조할 신문학은 泰俊[태준]에 와서 이미 衰微期[쇠미기]의 정신으로 나타났다.
 
57
그들은 개성의 사회성을 이해하기엔 너무 非社會的[비사회적]이었다. 즉 성장하기도 전에 깊은 分裂相[분열상] 가운데 빠진 생활 속에 있었던 것이다.
 
58
그러나 근대적으로 이해된 사회성의 정열 없이는 근대적인 개성의 형성도 불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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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신문학의 후예들 속엔 사회성에서 분열된 形骸[형해]로써의 개성의 幻影[환영]이 남게 되고 경향문학에는 산 개성의 豊饒性[풍요성]에서 떨어진 鈍重[둔중]한 사회성의 實體[실체]만이 들어난 것이다.
 
60
순서상으로 보면 후자의 사회성이 당연 신문학이 달성치 못할 개성의 확립을 자각하고 그들이 말해 오던 社會性的[사회성적], 개성적인 二重[이중]의 과제를 수행하게 될 것이나, 그들 자신의 無力[무력] 또는 현실의 조건 모든 것이 이롭지 않게 되었다.
 
61
이렇게 근대적 전통의 결여가 조선의 소설 발전 내지 완성에 치명적 결함으로 나타날 때, 문학은 점점 더 괴로운 생활을 인내하지 아니할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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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상은 작가가 현실에 대하여 갖는 태도를 근본적으로 고칠 정도로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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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前代[전대]에 비하여 작가들의 달라진 현실에 대한 태도, 그것이 前日[전일]의 소설과 금일의 소설을 형식상으로까지 다르게 한 기초다.
 
 
 

4. 4

 
65
적극성과 희망 대신 退嬰[퇴영]과 소극성과 절망의 意識[의식]이 탄생하였다. 내셔널리즘도 소셜리즘도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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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조금치라도 거친 현실과 부딪치고 싶지 않은 심리, 어찌해야 좋을지 모를 焦慮[초려], 그렇다고 그대로 있을 수도 없는 불안, 결국 전체로써 자꾸만 제 無力[무력]이 새삼스럽게 의식되고 이 自覺[자각]만이 심화되어 간다.
 
67
그리하여 단호한 勇斷[용단]과 최대의 성의가 오늘날에 와선 슬금슬금 남의 눈치를 보아 가면서 현실을 다시 곰곰이 관찰하게 되고, 제 자신의 무력에 제 자신이 怒[노]하게 된다.
 
68
요컨대 전혀 새로워진 우리의 생활은 일찌기 조선소설이, 정신적 대립에도 불구하고 가지고 있던 형태상의 공통성을 一朝[일조]에 수난의 공통성으로 고쳐 버렸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융합되는 것이 아니라 혼합되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쭈그러져 버렸다.
 
69
혼돈! 혼돈! 몇십번 한가지 단어가 단조로히 되풀이 되고, 마치 사람들은 조선문학엔 다시 질서가 없는 듯이 당황하였다.
 
70
그러나 우리들에게 명백히 된 사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작가가 홀몸으로 현실 앞에 서게 된 것이다. 이 홀몸으로서의 자기를 작가가 어떻게 의식하느냐가 오늘날 우리의 문학이 어떠한 성격을 呈[정]하느냐를 결정하는 커다란 사실이 되었다.
 
71
이곳에서 우리는 豫期[예기]하지 않고 일찌기 훌륭히 지내친 조선문학[혹은 소설]의 근대적 전통의 문제와 邂逅[해후]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조선사람과 같이 유별난 생활과정을 가진 나라의 소설의 타고난 숙명이다.
 
72
당연히 우리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혹은 10년 전처럼 개성 즉 자기라는 것을 그 어떠한 사회적 추진의 動力[동력]의 일부분으로 또는 하나의 힘의 體現者[체현자]로서 자기라는 것을 느껴져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들의 先進者[선진자]는 적지아니 이런 긍지를 느꼈고 그것은 春園[춘원], 想渉[상섭], 東仁[동인]의 문학을 낳었다. 그러나 미쳐 한사람의 全土的[전토적] 작가를 만들기 전에 이러한 사고방식은 한개 前代[전대]의 思惟[사유] 방식으로 돌아갔다.
 
73
그러나 이제 다시 우리들로 하여금 자기를 의식시키는 금일의 단계는 그것과는 전혀 相反[상반]된 것이다.
 
74
결국 현실에 대한 작가의 태도로부터 생활적인 적극성이 희박해가므로써 소설의 본격성도 드디어 상실되기 시작한 것이다.
 
75
우리가 잘 알듯이 하나의 무력한 실체로써 자기를 의식한다던가 자기에 대한 의식이 矜持[긍지]가 아니고 참기 어려운 환멸과 고통인 사실은, 바로 20세기의 西欧小説[서구소설]을 만들어 낸 정신적 地盤[지반]이다.
 
76
李箱[이상]이라든가, 泰遠[태원]이라든가, 또는 南天[남천]이라든가, 먼저 말해 온 신인들은 사실 조선소설의 낡은 전통과 관계하고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20세기 서구문학과 가까히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77
그러나 이곳에서 잠시 유의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은 누차 말해 온 세태소설의 문제다.
 
78
세태소설은 과연 조선소설 발전 위에 미친 20세기적 정신의 산물인가 아닌가?
 
79
우리들에게 알려진 세태묘사의 방법은 일반적으로 고전적 의미의 소설이 남겨 놓은 유산, 散文芸術[산문예술]의 특징 있는 성과의 하나로 구체적으론 자연주의가 완성한 수법이다.
 
80
자연주의가 비로소 세태묘사를 소설의 필수한 그러나 從屬的[종속적]인 수법에서 소설의 성격적 방법에까지 올려 놓은 것이다.
 
81
발자크라든가, 고전작가의 커다란 想像性[상상성]이라든가, 역사적 파악의 능력이라든가, 보편적 구성력 대신에 다시 말하면 소설사에서 보면 고전소설의 기술적인 퇴화의 산물로 세태묘사가 소설적 방법의 基幹[기간]이 된 것이다.
 
82
그러나 周知[주지]하는바와 같이 서구의 20세기 소설은 현실이나 세태로부터 훨쩍 뛰어 飛翔[비상]한다든가, 아주 욱으러저 들어가 內省[내성]한다든가 하였지 구구히 세태묘사에 악착하지는 않았다.
 
83
그러면 심리적 혹은 내성적 소설이란 것은, 분명히 20세기적인 서구정신의 혈통이라 할지라도 세태소설은 그렇다 할 수 없지 않은가?
 
84
사실 그렇다고 볼 수 있으면서도 다른 곳에 그 實[실]은 조선소설 발전의 특이성이 표현되어 있지 않은가 한다.
 
85
문제 된 泰遠[태원]의 「川邊風景[천변풍경]」은 졸라 딕켄스的[적]인 세태소설은 아니다. 또한 蔡萬植[채만식]의 「濁流[탁류]」도 「川邊風景[천변풍경]」보다는 19세기적 소설이라 할지라도 아주 그런 작품은 아니다.
 
86
泰遠[태원]은 주인공을 무시하고 에피소드의 몽타주로 소설을 만드는 조이스라든가 그런 流[류]의 형식적 구조의 영향을 가지고 있고, 蔡[채]씨는 풍자라든가 대중소설의 방법을 빌어 19세기적 소설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87
이 점에선 물론 다시 낡은 의미의 세태소설이 두번 거퍼 소설사 위에 나타날 수 없는 不可反復性[불가반복성]을 증명하나 우리는 이런 작자들이 여러가지 현대적 挾雜物[협잡물]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에서는 19세기 寫實小說[사실소설]이 자연주의도 퇴화하던 그런 어떠한 推移[추이]가 이 세태소설들 가운데 표현되어 있지 않은가 하고 생각해 볼 수는 있다.
 
88
조선적인 본격적 소설의 衰微[쇠미]를 따라 나타난 퇴화된 본격소설의 수법의 遺物[유물], 혹은 수법을 방법에까지 高揚[고양]한 소설 형태로써 말이다.
 
 
 

5. 5

 
90
이 점은 「世態小說論[세태소설론]」에서도 잠깐 언급한 것처럼 조선소설사에 있어서 묘사수법의 전통의 결여와도 관계되는 문제로 조선소설 위에 이식되는 20세기적인 서구문학 정신의 조선적인 制約[제약]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것은 현대의 우리에게 있어 개성의 無力化[무력화]라는 것이 서구에서 보는 바와 같은 爛熟[난숙]된 뒤에 오는 腐爛[부란]이 아니라 아직도 完成[완성]에의(개성의) 理想[이상]을 잃지 않은, 따라서 현실에 대하여 단순히 환멸, 절망할 따름이 아니라 그 不調和[부조화]의 감정이 꼬집어 뜯는 정도에서일망정 적극적인 성질로 표현되지 아니할 수 없는 생활의 特異性[특이성]의 산물일 것 같다.
 
91
따라서 심리적 내성적인 소설이라 할지라도 李箱[이상]이나 泰遠[태원]의 작품처럼 완전한 인간의 개체나 무력의 고요한 省察[성찰]이기보다는 차라리 南天[남천]의 그것처럼, 자기라든가 환경이라든가를 어찌할 것을 요망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제 자신에 대한 격렬한 憤懣[분만]이 오히려 우리의 문학심리로써 현실적이다.
 
92
말하자면 無力[무력]을 그냥 의식해 버리는 省察[성찰]이 아니라 무력을 否定[부정]하는, 따라서 強[강]함을 의식하려는 즉, 굳세게 되지 못하는 저 자신에 대한 집중된 憤懣[분만]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93
그러나 제 자신의 무력의 의식이라는 한가지 공통성에서 돌아볼 때 그것은 소설의 형태를 심리적 내성적인 방법으로 제약하고 말았다.
 
94
이것은 세태소설이 가지는 형태상의 공통성과 똑같은 것이다.
 
95
요컨대 본격소설의 衰微[쇠미]와 더불어 소설은 세태, 심리, 兩個[양개]로 분열한 것이다.
 
96
요컨대 시대정신의 변천이 소설의 스타일을 고친 것이다.
 
97
여기서 따로히 생각할 것은 소위 사상과 문학의 진정한 交渉領域[교섭영역]으로서의 소설이란 것의 문제다. 소설이란 물론 문학의 장르다. 그러나 장르, 즉 소설, 희곡 등이란 문학이란 것이 존재하는 진정한 실체다.
 
98
그러면 문학이란 것은 무엇이냐 하면 실체(문학으로서의 장르)가 존재하는 구체성 가운데서 일반적으로 抽象[추상]된 하나의 일반 세계다. 즉 논리적 체계적인 思惟[사유]의 세계와 구별되는 의미에서 생각되는 形象的[형상적] 想像的[상상적]인 세계의 假稱[가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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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언어에 의한 형상적 사유의 세계로서의 문학은 제일 思想[사상]에 가까웁고 따라서 문학의 실체로서의 소설 장르와 사상이 교섭할 때는, 언제나 서로 抽象[추상]된 것으로서의 문학이란 것을 중간에 두고 관계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사상이 문학 가운데 실체적으로 실현되려면 장르가 되지 아니하면 아니되나, 그러나 문학이란 一般者[일반자]의 관문을 통과하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100
그러나 前言[전언]한 것처럼 문학이란 장르에 공통한 그러면서 또한 다른 소위 사상 혹은 과학, 종교와는 구별되는 一般者[일반자]의 세계인만큼 우리는 사상과 문학이 교섭되는 진정한 구체적 영역으로서 소설 장르를 생각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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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시대정신의 변천이 소설 스타일을 고쳤다는 것은 시대정신이 현대의 문학적 사상의 성질과 방법을 고쳐, 그것이 소설 가운데 투영된 것이라고 이해되지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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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지금 문학적 사유의 성질이나 방법이 변했다는 것이다. 이 변화된 문학적 사유의 구체적 産物[산물]이 累述[누술]한 세태소설과 심리소설이다.
 
103
만일 이 2종류의 소설이 본격소설에 있어 부분을 구성하는데 불과한 一手法[일수법]인, 세태묘사나 심리묘사를 각각 일방적으로 高揚[고양]하여 다시 말하면 수법을 방법에까지 높인 것이라면 현대 작가의 思惟[사유]가 부분적인 場內[장내]로 蟄居[칩거]함을 의미한다. 즉 枝葉[지엽]의 세계에 악착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들의 이런 정신적 성격이 소설 구조에 결정적으로 영향한 것인데, 우리는 이런 소설들에게서 부분의 완성, 細工[세공]의 精密[정밀] 등을 기대할 수 있어, 애써 그것을 부정해 버릴려고 하지 않는다. 세태의 묘사라든가, 심리의 묘사 등은 소설의 중요한 二大要素[이대요소]이고, 또한 과거의 조선소설이 이 영역에서 規範[규범]될 만한 아무것도 만들어 놓지 못하였던 만큼, 그것의 성과라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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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지음 소설에선 미약하나마 形成[형성]되려 하던 본격 소설에의 志向[지향]이 쇠퇴하고 의연히 조선에선 고전적 의미의 소설 양식의 완성이란 것이 당면의 숙제로 남아 있음을 잊어선 아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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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의 완성 없이는 아무리 화려한 세태묘사나 정밀한 심리묘사의 技倆[기량]이 진보한다 하더래도 조선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소설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도 우리는 銘記[명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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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5)
【원문】본격소설론(本格小說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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