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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임경업 장군의 어렸을 때 이야기인데 여러분도 이미 다 아시다시피 이분은 충청북도 충주라는 한 조그만 촌락에서 나신 어른으로 어렸을 때부터 힘이 장사요 또한 활발하고 용맹스러워서 누구에게든지 한번도 굽혀본 적이 없고 또 무슨 불평스러운 일을 보고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단 18살 때 시골서 처음으로 서울을 향하여 오느라고 한강 노들 나루터에서 배를 탔습니다. 그런데 그 배에는 아무도 없고 오직 부인네 세분과 어여쁜 처녀 하나와 임 장군 - 도합 다섯 사람이 타고 있었습니다. 배는 차츰차츰 흘러서 어느덧 저쪽 강변까지 거의 가 닿게 되었을 때인데 갑자기 지금 건너오던 맞은편 언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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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호통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공은 이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흘낏 돌아다보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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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연방 지르며 다 건너온 배를 도로 돌려 대었습니다. 그래서 임 장군은 즉시 사공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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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소! 같이 선가 내고 타는 바에야 먼저 탄 사람을 마저 건네주고 배를 돌려대는 것이 옳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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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말한즉 사공은 한숨을 휘 내어 쉬며 빈정대는 웃음을 웃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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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당신 정신이 있소? 없소? 저 양반이 사람 잡아먹고 된똥 싸는 세도 댁 양반이라오. 만일 조금만 틀리면 당신네나 나 같은 목숨은 파리 목숨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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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임장군의 말은 들은 척도 안하고 뱃머리를 돌린 채 땀을 흘려가며 자꾸 노를 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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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어디 구경이나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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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생각하고 그대로 내버려두었습니다. 그럭저럭 배가 다시 돌아서 건너오던 언덕에 가 닿을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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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 죽일 놈! 빨리 배를 대라니까 겨우 인제야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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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다짜고짜로 사공 놈의 뺨을 치고 발길로 차고 한 후에야 개 몇 마리와 매 한 마리를 가진 그들 패 4,5인의 장정이 올라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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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다시 오던 길을 향하여 미끄러져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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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마침 매란 놈이 푸드덕 날더니 그 옆에 앉아 있는 처녀의 머리위에다 똥을 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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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는 무심중에 매 똥을 머리에 받게 되니까 깜짝 놀라 얼른 손으로 머리를 만지다가 매란 놈을 건드려서 매의 털이 한 개 빠졌습니다.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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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년! 괘씸한 년! 이 매가 누구의 매 인줄 알고 털을 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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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한 놈이 벌떡 일어나더니 당장 그 처녀의 뺨을 올려붙입니다. 그러나 처녀는 얼굴만 빨개져서 아무런 반항도 못하고 그저 울기만 합니다. 다른 부인들은 일시에 일어나서 그들에게 백배사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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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애걸복걸을 합니다. 그러나 그놈들은 여전히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아까부터 이것을 한 쪽에서 바라보고 있던 임 장군도 이제는 더 참을 수 없었습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벌떡 일어서는 그는 당장에 뱃전을 힘 있게 차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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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죽일 놈들!! 이 개 같은 놈들!! 조그만 새 짐승의 털 하나 때문에 사람을 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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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당장에 그 한 놈이 들고 있는 매를 빼앗아 모가지를 뽑아 물 속에 텀벙 던져버렸습니다. 그러니까 그놈은 하도 어이가 없던지 멍하니 섰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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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한다 잘 뽑는다. 너! 이 녀석 내 모가지도 그렇게 뽑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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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빈정대었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벌써 그놈의 모가지도 매 모가지와 같이 임장군의 손에 뽑혀 떨어졌습니다. 다른 놈들은 그제야 혼비백산하여 제발 살려달라고 애걸복걸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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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장군은 그 무서운 눈을 더 부릅뜨고 호령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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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내 말만 들으면 살려두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모조리 모가지를 뽑을 터이니 꼼짝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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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호령을 하였습니다. 그때에 어느 놈이던지 감히 눈이나 뜰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배를 등짝이 모래 턱에 대이니 날은 벌써 어두웠는데 장군은 제각기 그놈들을 꼼짝 못하게 모조리 결박을 하여 모래톱에 꿇려 놓고 그 뽑은 모가지는 보자기에 여러 겹 단단히 싸서 짊어지고 그 매 임자 집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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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매 임자는 당시에 정승으로 있고 또한 벼슬을 팔고 세도를 부려 돈을 모으는 못된 놈이고 그 모가지 뽑힌 놈은 그 정승의 처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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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놈이 청지기들을 데리고 꿩 사냥을 갔다가 오던 길에 임 장군에게 그러한 봉변을 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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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충주 목사의 하인인데 봉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대감께 여쭈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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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청지기한테 말하였습니다. 대감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봉물 가져왔다는 바람에 좋아라고 덮어놓고 사랑에다 장군을 들여앉히고 저녁밥을 잘 차려 주었습니다. 임 장군은 시장한 김에 간장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휩쓸어 먹고 안사랑으로 들어가니 정승은 바로 반가이 맞아 주었습니다. 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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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그 처남의 대가리를 대감 면상에 뒤집어 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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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대감, 이 대가리 알겠소! 네 이 대가리 알겠느냐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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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을러대었습니다. 그 정승은 별안간 청천벽력을 맞은 것 같이 앞이 캄캄해지며 간이 콩만 해져서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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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알겠습니다. 아아 알고 말고…… 알! 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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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감 집 청지기 놈과 매 새끼가 사람을 무시하고 능욕을 할 적에야 대감 죄는 내가 미리 다 알겠소. 대감 모가지도 이리 내놓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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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호령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정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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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빌었습니다. 그래서 임장군은 노기를 풀고 천천히 오늘 지난 일을 이야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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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을 죽인 사람이니 나를 살릴 터이요? 죽일 터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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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감이 만일 나를 죽이려면 나는 대감의 대가리를 먼저 뽑고야 죽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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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을러대었습니다. 그러니까 정승은 그제야 겨우 숨을 돌려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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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같은 호한을 어찌 죽일 리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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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도리어 사죄하였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서로 화해하는 악수를 할 때 임 장군의 무쇠 같은 굳센 힘이 대감의 손을 어찌나 힘 있게 쥐었던지 손가락 사이에 피가 흘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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