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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5
차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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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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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중에 경원선 차를 타보신 이가 계실 거 같으면 강원도 선로 중에 철원역이 있는 것을 잘 아실 것이올시다. 이 철원역은 지금에는 별로 보잘 것 없는 한 산읍(山邑)이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천여 년 전에는 태봉국이라 하는 당당한 큰 나라의 국도(國都)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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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태봉 국왕의 성명은 김궁예니 신라 헌안왕의 서자입니다. 그는 5월 단옷날에 나셨는데 날 때에 흰 무지개 같은 이상한 빛이 온 집안을 휩싸고, 나면서부터 이가 났으니 일반이 모두 이상히 여기는 중 어떤 점쟁이가 말하기를 5월 단오에 낳은 아이는 부모에게 이롭지 못할 뿐 아니라 나면서부터 이가 있으면 장래 국가에 또한 해가 되리라 하니 왕이 그 말을 듣고 의심하여 신하로 하여금 그를 다락 아래다 던져버리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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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의 유모는 그를 매우 불쌍하게 생각하고 남모르게 다락 밑에 가서 가만히 있다가 떨어져 내려오는 궁예를 받아가지고 도망하는 중에 잘못되어 손가락으로 그의 눈을 찔러 가엽게도 한 눈을 멀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원래에 크게 될 사람이라 생명에는 관계가 없이 잘 자랐습니다. 그럭저럭 10여 살이 되매 그는 여러 아이들과 같이 천진난만하게 함부로 뛰어다니며 장난을 몹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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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유모는 그의 함부로 장난하는 것과 또 그 사실이 발각될까 염려하고 하루는 궁예를 불러놓고 일러 말하되 당신이 나면서 즉시 나라에 버림을 받아 죽게 된 것을 내가 차마 볼 수 없어서 남모르게 숨겨 길러서 오늘에까지 이르렀는데 지금에 당신의 하는 행동이 그와 같이 광패하니 그러다가 만일에 다른 사람에게 발각이 되는 날이면 당신과 내가 다 죽기를 면치 못할 것이니 그 일을 장차 어찌하겠느냐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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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까지도 자기가 어찌된 사람인지도 알지 못하고 날마다 천진스럽게 장난만 하든 그는 그 유모의 말을 듣고는 자기 신세의 불쌍한 것과 또 유모의 은혜의 갸륵한 것을 생각하고 감격의 눈물이 비 오듯 흘렀습니다. 이렇게 한참동안을 엎드려 울다가 다시 일어나서 목이 매인 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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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봅시오 유모님. 그러면 저는 오늘이라도 이 집을 떠나서 어디로던지 가겠습니다. 이미 길러주신 은공도 백골난망이온데 저로 말미암아 유모님이 화까지 입으시게 된다면 그러한 죄악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죽든지 살든지 오늘로 가겠사오니 부디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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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눈물을 서로 흘리면서 유모와 작별을 하였습니다. 그는 그 길로 바로 세달사라는 절에 가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이름을 선종(善宗)이라고 고치었습니다. 그는 비록 중이 되었으나 원래에 인물이 비범한 사람인 까닭에 다른 중들과 같이 구구스럽게 절간의 규칙을 지키지 않고 자기의 마음대로 행동을 하였습니다. 하루는 법당으로 재를 올리려고 바릿대(鉢)를 가지고 가는데 공중으로 까마귀 한 마리가 지나가면서 나무쪽 한 개를 그 바릿대 속에다 떨어트리었습니다. 그는 이상이 여겨서 자세히 살펴보니 그 나무에는 임금 왕(王)자가 뚜렷이 쓰여 있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보고 마음에 홀로 기뻐하여 아무에게도 그러한 말을 하지 않고 항상 자기의 장래를 생각하여 스스로 자기 몸을 아끼고 함부로 행동을 하지 않으며 공부도 또한 열심히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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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진성왕 5년이었습니다. 그때에 신라는 나라가 매우 어지러워서 각처에서 여러 도적의 무리가 벌떼 같이 일어났습니다. 궁예는 그 틈을 보고 혼자 생각하되 이렇게 어지러운 때를 타서 무슨 큰 사업을 못하고 다만 산 속에 들어 엎드려 구구하게 중노릇만 하는 것은 사내대장부의 할 일이 아니라고 그 길로 목탁과 장삼 같은 것을 모두 불 질러 없애고 그 대신에 장검을 차고 그때 도적 중에 제일 유명하다는 죽주의 도적 기훤(箕萱)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기훤은 궁예를 그다지 반갑게 여기지 않고 항상 천대를 함으로 다시 북원(지금 원주)의 도적 양길(梁吉)을 찾아갔더니 양길은 그를 특별히 후대하고 또 군사를 나눠주어 동쪽의 여러 지방을 쳐서 노략하게 하니 이것은 궁예가 처음으로 출세하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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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는 그 길로 떠나서 단번에 주천, 내성, 울오, 어진 등 여러 고을을 쳐서 빼앗고 또 강릉까지 쳐서 들어가니 그 때에는 벌써 부하의 군사가 3천500여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불과 몇 해 동안에 강원, 경기, 충청의 여러 도를 차지하고 남으로 후백제 왕 견훤(甄萱)과 싸워서 크게 승전을 하고 또 원주에서는 양길을 쳐서 파하여 30여 성을 점령하며 서북으로는 황해, 평안, 성경 등 고구려의 옛 땅을 다 정복하니 그의 위엄이 조선 전국에만 떨칠 뿐 아니라 멀-리 중국과 일본에까지 미쳐서 여러 나라가 모두 사신을 보내어 치하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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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는 이와 같이 세력이 커지매 족히 왕 노릇을 할만하다 하고 신라 효공왕 8년-(갑자)에 새로 나라를 창건하여 나라 이름을 첨에는 마진이라 하였다가 다시 태봉이라 고치고 연호는 무태라 하였다가 또 성책 수덕만세, 정개로 여러 번 고치며 국도는 철원에다 정하고 대궐과 성벽을 쌓으니 그 굉장하고 화려함이 신라의 서울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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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임금이 된 뒤에는 너무도 자만심이 많고 행락하기를 좋아한 까닭에 일반 백성이 모두 원망을 하며 또 바른 말하는 신하와 처자를 다 죽여서 여러 가지의 잘못이 많으니 그의 부하장수 신숭겸, 배현경, 홍유 등 여러 사람들이 혁명의 난리를 일으키어 왕건으로 새로 임금을 삼으니(왕건도 본래 궁예의 장수입니다) 궁예는 그만 도망을 하여 평강으로 가다가 그곳 백성에게 맞아 죽고 태봉국은 무릇 18년만에 그만 망하고 말았습니다. 태봉은 이와 같이 얼마 아니 되어 망하였으나 그 땅을 왕건이 차지하여 고려라는 큰 나라를 새로 세우게 되고 또 고려의 모든 제도를 이 태봉국의 제도를 본받은 것이 많았습니다. 어찌하였던 이 궁예는 북쪽 조선을 통일하고 고려를 새로 건설하는데 큰 공이 있는 위인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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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상찬(車相瓚)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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