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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7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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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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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중순께 시골을 다녀왔더니, 농업조선을 편집하시는 분이 어디서 그것을 알아 갖고 시골 이야기를 한 토막 써보내라고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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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가 다녀온 시골이라는 것이 바로 내 고향이어서, 평안남도의 작은 고을이라, 시골이라는 말에는 어딘가 적합하지 않는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원래 고을이란 농업과는 별로 관계가 없기가 쉽다. 다시 말하면 고을서 사는 사람들이란 농사 짓는 사람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도회의 사람들과도 다른, 따져서 말하면 일종 아무 모에도 치우치기 힘든 그러한 이들이다. 군청, 경찰서, 면소, 세무서, 우편소, 전매국 출장소, 금융조합 등기소, 경작조합…… 이런 데 다니는 사람이 중심이고, 그 밖에 몇 사람의 지주와 고리대의 재산가, 잡화상, 포목상, 음식점…… 이런 사람들이 사는 고장이 고을인데, 여기서 무슨 농업이 영위될 수 있을 것이며, 이런 데 다녀왔기로니 무슨 농사에 대한 재미있는 감상이 생길 수 있을 것이냐. 두루 된소리 안된소리 몇 마디 적어서 문채(文債)난 면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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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은 이틀이나, 늦어도 사흘 안짝으로 돌아올 생각으로 길을 떠났다. 그런 것이 고향서 꼬박 한 주일을 보냈다. 이것은 내가 가지고 갔던 용건이 끝나지 않았으므로 늦어지기도 하였지만, 다른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고기를 먹고 가라고 어머니와 일가집과 친구들이 붙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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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값은 고등한데, 소고기값은 9ㆍ18가격인지 몰라도, 어떻든 그것과 비례가 되지 않아서, 수육 판매업하는 분이 소나 도야지를 잡지 않는 것이다. 한 주일에 한 마리가량 잡는가 마는가, 그리고 잡아만 오면 한 시간 안짝에 팔려 버린다는 것이다. 내가 간 때는 소를 잡는 이튿날이어서 고기가 동이 났었다. 그래서 인제 장이 오래지 않으나 그 때 소를 잡으면 그것으로 대접을 받고 가라는 것이다. 비상시이기는 하지만 시골 갔다가 갈비도 한 대 뜯지 못하고 그대로 온다는 게 어쩐지 서운하던 터이라, 서울일이야 어떻게 되었건 이삼일 더 묵어서 곰국도 얻어먹고, 개장을 안쳐놓고 천렵도 해보고, 갈비대가 뜯어 소주잔이나 실히 축을 내어주고 돌아왔다. 고기는 이러하였지만, 쌀에는 아직 그다지 곤궁을 겪지 않는 모양 같았다. 하기는 내 고향은 작년에 그다지 큰 흉년이 들지는 않았었다. 물론 예년에 비하면 평작도 안되었지만 다른 남조선 같은 데와 비하면 풍년인 셈이다. 그리고 본시부터 쌀고장이 아니고 백성들은 조밥을 상식으로 하는 고장이다. 그러니까 절미 운동이니, 혼식이니 하는 건 권할 필요가 없지만 예전부터 백미만 먹는 버릇은 이 고장만은 없었다. 군수나 시장이나 그밖에 지주들 몇 분이 혼식인바엔 이 고을의 절미운동은 만점인 셈이다. 그런데 내가 다녀온 뒤엔 이곳도 식량 문제가 퍽 긴박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좁쌀이 모두 떨어졌는지, 아무도 배급이 원활치 못해서 일어난 현상일 것이므로, 단경기까지 이런 상태가 계속되진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실상은 어떤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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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통에 한 번 단단히 잡아야겠다는, 그럼 심보는 다른 데서와 일반으로 내 고향 사람에게서도 간취할 수 있었다. 경제 경찰이 무서워서 모두 입밖에 내진 않지만 속으론 그런 궁리가 늘 오락가락하는 모양이었다. 눈과 표정이 그것을 증명한다. 가난한 사람은 장사치들의 이러한 심보에 눌려서 그래도 이 물가고 시대에 어떻게 건실히 살아가려고 애들을 쓰고 있었다. 창 씨에 대한 관심도 상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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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때에 한 가지 명심해서 느낀 것이 있다. 중학교 세우겠다고 모두 열심하는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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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메마른 지방이고, 누가 한 묶음 뚝 잘라서 선심을 쓸 만한 분도 없는 곳이라, 한 푼 두 푼 모아야만 될 판이다. 종중재산을 제고하는 이, 가용을 줄여서 기부하는 이, 땅을 팔아서 바치는 이, 이렇게 해서 5, 60만원을 만들자니 장하지 아니하던가. 어떻게 되었든 자식에게 교육은 시켜야 된다는 생각들이 상당히 철저히 들어박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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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도 서고, 또 철로도 통하고 생활도 안정이 되고, 부자도 많이 생기고, 그래서 내 고향이 풍성풍성해져서 윤기가 흐르게 되면 좋겠다. 나는 그것을 먼데서 바라고 있다. (6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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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조선』1940년. 7월호)
【원문】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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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0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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