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장편 소설계 ◈
카탈로그   본문  
1939년
김남천
1
장편 소설계
 
 
2
지난 년 간에 있어서 1 장편 소설에 대한 논의가 가장 큰 토픽의 하나였다는 것은 저널리즘이 이를 솔직하게 시인하고 있다. 비단 저널리즘이 아니라, 문학의 당사자, 또는 문학의 관심자가 한가지로 이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장편 소설의 논의가 여하한 의의를 갖고 있는가, 또는 일 장르의 문제가 어떠한 근거에 의하여 이처럼 치성〔熾盛〕히 논의되었는가 하는 데 대하여) 그들의 의견이나 인식이 일치한다거나 또는 투철하다거나를 의미하지 못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그들의 혹자는 이 논의가 갖는 의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고, 그들 중의 다른 혹자의 간에는 이에 대한 전혀 상반되는 견해조차 나타나 있었다. 그러나 여하한 토픽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아무러한 근거나 필요나 이해 없이, 저널리즘 위에 오르는 일은 극히 드물다. 이리하여 나의 보는 바에 의하면 장편 소설에 관한 무인(戊寅)년 간의 토론은 대충 범연(泛然)한 대로 다음과 같은 연유와 상태 하에서 시행되어 졌다고 생각한다.
 
 
3
1. 단편 형식의 제약성에 대한 불만.
4
(동시에 인간과 사회와 자연을 전체성에 있어서 개괄 창조하려는 욕망의 표시로서의 장편 소설에의 요망)
 
5
2. 장편 소설(로만)의 발생과 발전과 붕괴 현상에 대한 사적 고찰.
6
(이에 의하여 19세기적 로만의 기본 성격이 명백해지는 동시에, 이 전통을 이탈하고 파괴하려는 서구의 20세기적 로만의 신형태의 본질도 성찰되었다.)
 
7
3. 조선적 장편 소설의 생성 과정과 현존 장편에 대한 분석.
8
(조선적인 특수 성격 - 그것은 일반적으로는 사회적 제관계의 동양적 후퇴성에 유인(由因)되면서, 특수적으로는 출판 제관계와 조선의 미미한 발달과 제약에 의하여 장편 소설이 신문 소설로서 성장하였는 데 표현되어 있다 - 이 명백히 되는 동시에, 현재의 장편 소설이 환경과 성격, 내햐오가 외향, 세태 묘사와 심리 내성, 플로트와 세부 묘사 등의 분열상을 노정하고 있음이 명백한 사실로 되어, 드디어 이의 통일을 꾀하는 로만 개조설이 대두함에 이르렀다)
 
9
4. 통속 문학의 유혹과 대두 앞에, 순수 문학의 문제가 해결을 절규하면서, 이것은 특히 ‘금후의 신문 소설의 문제’로서 나타나게 되었다.
 
10
5. 전작 장편의 논의가 특히 원리를 확립하기 곤란하고, 통일된 문학의 이념을 세우 기 힘든 시기에 치성(熾盛)했다는 것은 일고를 요함에 족하다.
11
(프린시플의 확립을 기술적인 곳에서 찾아보려는 경향의 표시이며, 따라서 로만 의 문제가 결코 일 장르의 문제만이 아닌 것을 나타낸 소이〔所以〕이다)
 
12
7. 장편 소설의 논의가 리얼리즘의 연구와 서로 보조를 같이 하였다는 것은 주목을 요한다.
13
(성격의 창조와 정황히 묘사에 대한 문제는 리얼리즘이 당면한 과제였다)
 
 
14
이상과 같은 것이 무인(戊寅)년도에 있어서 장편 소설 논의가 거쳐 온 것의 대충의 핵심이다. 그것을 특히 7개 조항에 나누어 벌여 본 것은, 지나친 간략에 떨어져서 독단을 범할까 저어한 때문이며, 그것을 다시 상세에 긍(亘)하여 논하지 않음은 이 곳이 그 자리가 아님으로써이다(평론계 개관을 참조하라). 이리하여 나는 상기한 것을 이론의 기축을 삼아, 금년 정월부터 12월에 걸쳐서, 한 회 이상 신문이나 잡지상에 발표된 것, 또는 전작으로 발표 상재된 것을 종합하여 이 곳에 하나의 분포도를 그려볼까 한다.
 
15
그러나 지금과 같은 현상에서 명쾌한 분포도를 그리기는 대단히 곤란하다.
 
16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1년간의 장편 소설을 돌아보아 그 곳에 명확한 조류나 경향이나를 포착하기가 지난한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문학을 이끌고 나가는 프린시플이 확립되어 있지 않는 때문이다. 물론 내향 외향이라든가, 심리 내성이라든가, 혼돈이라든가, 침체라든가, 사상성의 결필이라든가를 말할 수 있으나, 이 자리는 그것을 되풀이하고 앉았을 곳이 못된다. 더구나 금년에서 겨우 장편 소설 논의는 그의 단초에 올랐고, 따라서 일개(一槪)로 작품을 휩쓸어 가르는 데 여러 가지 위험과 독단이 따르기 쉽다 일개(一個) 필자의 사상적 대두를 발견하는 데 성급하여, 작품의 실제가 보이고 있는 각종의 뉘앙스를 무시해 버릴 수는 없다. 이러한 시기에 있어서의 용의주도는 반드시 이론적 준순(浚巡)만은 아닐 것을 확신한다. 역시 나는 다음과 같이 그것을 여러 항목에 나누어서 금후의 전망에 자(資)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17
1. 순전한 통속 소설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것.
 
18
김말봉 씨의 「밀림」(『동아일보』), 한용운 씨의 「박명」(『조선일보』), 박종화 씨의 「대춘부」(『매일신보』), 윤백남 씨의 「사변 전후」(『매일신보』), 김동인 씨의 「제성대」(『조광』), 복면자(覆面子), 윤효정 씨의 「만향(晩香)」(『동아일보』), 방인근 씨의 「새벽길」(『매일신보』)과 「선혈」(『조광』) 등.
 
19
2. 순수한 통속 소설은 아니라고, 작자 내지는 일부의 평가, 독자에 의하여 생각되어 왔음에 불구하고 장편 소설 논의의 분석과 결론에 비추어, 그의 통속성이 명확히 드러난 것.
 
20
엄흥섭 씨의 「행복」(『매일신보』), 함대훈 씨의 「무풍지대」와 「방파제」(이상 『조광』), 현진건 씨의 「무영탑」(『동아일보』), 박태원 씨의 「우맹(愚氓)」(『조선일보』). 주요섭 씨의 「길」(『동아일보』) 등.
 
21
3. 통속성의 유혹 앞에서 순문학을 완강히 주장하기 곤란한 것. 이광수 씨의 「사랑」(박문서관), 유진오 씨의 「수난의 기록」(『삼천리』)
 
22
4. 이직도 순문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23
채만식 씨의 「탁류」(『조선일보』)와 「태평천하춘」(『조광』), 홍명희 씨의 「임꺽정」(『조선일보』), 이기영 씨의 「신개지」(『동아일보』)와 「청년」(『삼천리』) 등.
 
24
5. 1항에 넣어도 무방하겠으나 그 곳에조차 넣기 곤란한 것. 그러므로 이름이 소설이지 소설이라기조차 곤란한 것.
 
25
이보상(李輔相) 씨의 「오전기차(五轉奇釵)」와 「백운연운(百雲煙雲)」, 혹은 최금동(崔琴桐) 씨의 「해빙기」(이상 전부 『매일신보』) 등.
 
 
26
이상과 같은 분포도에 대하여 약간의 주석이 없을 수 없다. 첫째로 분포의 근거에 대하여서다. 나는 상술한 바 무인년간에 장편 소설 논의의 과정과 성과를 참작하여, 분포도의 작성을 기도하였음에 불구하고, 실상은 통속 문학과 순문학과의 관계, 다시 말하면 후자의 전자에의 유혹, 내지는 이행 과정을, 이 곳에 그려 놓았음에 불과하다. 나는 명년도(기묘〔己卯〕)의 장편 소설의 논의와 그 동향을 이 분포도에 의하여 전망하고자 한 때문이다.
 
27
둘째로 이 곳에서 사용한 바 ‘통속성’‘순수성’의 구분은 무엇으로써 개념을 삼았는가 하는 문제다. 그것을 상세히 이야기하려면 장황을 면키 힘들고, 그것이 또한 금후의 장편 소설 논의의 중요한 임무의 하나이므로, 이 자리에서는 이야기를 철저히 전개할 수는 없으나, 여태까지 우리가 토의한 것의 성과로서, 우리 장편 소설이 갖고 있는 모든 모순, 분열, 이괴(離乖) (장편 논의의 성과를 총괄한 개조(個條) 중 제3항을 참조하라)에 대하여 고민하거나 초극할 방향에서 노력치 아니하고, 출판 기관의 상업주의에 영합하여, 그대로 안이한 해결 방법으로 몸을 던진 것, 그리하여 흥미 본위, 우연과 감상성의 남용, 구성의 기상천외, 묘사의 불성실, 인물 설정의 유형화 등등에로가 버린 것을 ‘통속성’이라고 불러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그것은 마치 흥행극과 신극의 차이, 유행가와 시의 구별과도 흡사하다(이 문제는 앞으로 충분한 토론이 있어야 할 것이다).
 
28
셋째로 주석이 필요한 것은, 이상과 같이 막연하게나마 ‘통속 문학’이라는 준비 개념을 갖고 분류를 하였다면, 1항과 2항의 차이, 2항과 3항의 차이, 3항과 4항의 차이, 1항과 5항의 차이 구별은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일 것이다. 이것을 증명하자면은 작품의 하나 하나가 갖고 있는 모든 내용과 형식을 면밀히 분석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물론 제한된 지면에서 그것을 시행할 수는 없다. 오직 전기의 제작품의 세심한 독자는 1과 2, 2와 3, 3과 4, 1과 5의 구별이 불분명하고 그 차이가 불명확함에도 불구하고, 한 계단씩을 넘어서 1과 3, 1과 4, 혹은 4와 5의 구분이 얼마나 역연(歷然)한 것인가를 수긍할 수는 있을 줄 안다. 문학적으로 다소의 독서의 세련을 치른 이에겐 그것은 벌써 설명을 요치 않을 만큼 명료한 일이 되었다. 이에서 우리는 순문학이 얼마나 기묘하게 통속화되어 가고 있는가를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작자 자신조차 의식치 않는 동안에 우리들의 문학은 한 걸음 한 걸음 통속 문학의 침윤을 당하고, 이리하여 그들은 김말봉 씨나 윤백남 씨나 방인근 씨의 밑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29
이상과 같이 분포도를 그려보고, 다시 그 밑에 약간의 주석까지를 붙여 놓은 나로서, 이제 우리가 1년 동안 보아 온 장편 소설의 독후감에서, 새삼스러이 일정한 성격을 추출해 보려는 것 같은 그러한 색다른 노력을 거듭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분포도 스스로가 말하고 있는 것에 솔직하게 귀를 기울이면 그만일 것이다.
 
30
위선 이상의 분포도를 일별하면서 김동인 씨와 같은 소설 문학의 공로자가, 야담과 스스로를 구별하기 곤란한 ‘역사물’을 가지고, 제1항, 김말봉, 윤효정, 윤백남 등 제씨와 어깨를 비집고 나란히 해 있다는 사실이 적잖이 우리들을 놀라게 할 뿐 아니라, 여태껏 순문학의 효장(驍將)으로 자타가 믿어오던 현진건 씨나 기타 현역의 표한(慓悍)한 중견 작가가, 장편에 있어서는 스스로 제1항에 수록된 제씨의 아류를 희망하여, 한낱 통속성을 연마하기에 분주하고 있음을 보게 될 때에 우리들의 경이는 한 고비를 다시 넘어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31
다시 이광수 씨로 말하면 신문학 30년의 공로자요 현금에도 많은 숭앙자와 아류를 기르고 있는 분으로서, 누구보다도 좋은 조건과 전작의 기회를 갖고 「사랑」에 있어서와 같이 신문 소설적인 통속적 냄새를 그의 소설에서 완강히 거부하지 못하였다는 것은, 우리 장편 소설의 생성 과정의 약체성을 그대로 노현(露顯)한 것 같아서 우리로 하여금 적지 않은 주목을 끌게 하고 있다.
 
32
이 밖에 이 분포도가 표시하는 유일의 낙관적 자료라 할 수 있는 제4항의 작품에 대하여도, 그것이 우리가 상망하는 본격적인 로만이라고 보기에는 여러 가지 곤란을 느끼게 하는만큼, 금일 내가 작성한 분포도는 확실히 장편 소설의 아름다운 화원의 그림이랄 수는 없을 것이다. 오직 나는 이 분포도가 명년에 있어서는 더욱 명확한 구분에 의하여 그려질 것을 확신하고, 장편 작가와 장편 소설 논의에 약간의 참고 자료를 제공하는 것으로 만족하여 하였을 뿐이다.
 
 
33
(『조선 문예 연감』, 1939년, ‘소화 13년도 개관’ 중)
【원문】장편 소설계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평론〕
▪ 분류 : 근/현대 수필
▪ 최근 3개월 조회수 : 5
- 전체 순위 : 5038 위 (4 등급)
- 분류 순위 : 1020 위 / 1968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1)
• (1) 나의 집
• (1) 목석 부인
• (1) 어즈러움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장편 소설계 [제목]
 
  김남천(金南天) [저자]
 
  1939년 [발표]
 
  평론(評論) [분류]
 
  # 문학평론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수필 카탈로그   본문   한글 
◈ 장편 소설계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1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