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諺文創制(언문창제) 反對上疏文(반대상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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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宗實錄(세종실록) 券一百三(권일백삼) 十九張(십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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臣等伏覩諺文制作(신등복도언문제작) 至爲神妙(지위신묘) 創物運智(창물운지) 出千古(출천고) 然以臣等( 연이신등) 區區管見(구구관견) 尙有可疑者(상유가의자) 敢布危懇(감포위간) 謹疏于後(근소우후) 伏惟聖裁(복유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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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등(臣等)이 엎드려 언문의 제작을 살피옵건데, 지극히 신묘(神妙)하와 창물운지(創物運智). 창물운지(創物運智)가 멀리 천고에 뛰어나나, 신등의 구구(區區)한 관견(管見). 관견(管見)으로는 오히려 의심스러운 바가 있사옴으로, 감히 위간(危懇)을 베풀고 삼가 뒤에 조목(條目)을 드는 바입니다. 엎드려 생각하옵는 바, 거룩한 재결(裁決)을 바라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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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我朝自祖宗以來(아조자조종이래) 至誠事大(지성사대) 一遵華制(일준화제) 今當同文同軌之時(금당동문동궤지시) 創作諺文(창작언문) 有駭觀聽(유해관청) 曰(왈) 諺文皆本古字(언문개본고자) 非新字也(비신자야) 則字形雖倣古之篆文(칙자형수방고지전문) 用音合字(용음합자) 盡反於古(진반어고) 實無所據(실무소거) 若流中國(약류중국) 或有非議之者(혹유비의지자) 豈不有愧於事大慕華(기불유괴어사대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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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조종조 이래로 지성으로 사대(事大)하고, 한결같이 중화의 제도를 준수하여 지금 동문동궤(同文同軌)의 때를 당하옵는데 언문을 창작하신 것을 듣고 봄에 이상히 여길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럴 때 혹시 말하기를 언문은 모두 옛글자를 근본으로 삼은 것으로 새로운 글자가 아니라고 하신다면 곧 자형(字形)은 비록 옛날의 전문(篆文)을 모방하였더라도 용음(用音)과 합자(合字)가 옛것과 반대되는 일이며, 실로 근거할 바가 없는 바입니다. 만약 중국에 흘러가서 혹시 옳지 못함을 의논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어찌 사대모화(事大慕華)에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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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自古九州之內(자고구주지내) 風土雖異(풍토수이) 未有因方言而別爲文字者(미유인방언이별위문자자) 惟蒙古(유몽고) 西夏(서하) 女眞(여진) 日本(일본) 西蕃之類(서번지류) 名有其字(명유기자) 是皆夷狄事耳(시개이적사이) 無足道者(무족도자) 傳曰(전왈) 用夏變夷(용하변이) 未聞變於夷者也(미문변어이자야) 歷代中國(역대중국) 皆以我國(개이아국) 有箕子遺風(유기자유풍) 文物禮樂(문물예악) 比擬中華(비의중화) 今別作諺文(금별작언문) 捨中國而自(사중국이자) 同於夷狄(동어이적) 是所謂棄蘇合之香(시소위기소합지향) 而取(이취) 螳螂之丸也(당랑지환야) 豈非文明之大累哉(기비문명지대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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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예로부터 구주(九州)의 안에 풍토가 비록 다르나, 방언으로 말미암아 따로 문자를 만든 일은 없었습니다. 다만 몽고, 서하, 여진, 일본 서번의 무리들이 각각 문자를 가지고 있으나, 이는 모두 이적의 일일뿐 족이 말할 것이 못되옵니다. 전(傳)에 이르기를 오랑캐를 중화(中華)로 변(變)케 한다고는 하였으되, 중화로 하여금 오랑캐로 변케 한다는 말은 듣지 못 하였습니다. 역대(歷代)로 중국에서는 우리나라를 기자(箕子)의 유풍(遺風)이 있다고 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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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악(禮樂)과 문물이 중화에 견줄만하다고 하였는데, 이제 따로 언문을 지어 중국을 버리고 스스로 이적(夷狄)과 함께 하니 이야말로 소합(蘇合)의 향(香)을 버리고 당랑(螳螂)의 환(丸)을 취하는 것이라, 어찌 문명의 큰 누(累)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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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新羅薛聰吏讀(신라설총이두) 雖爲鄙俚(수위비리) 然皆借中國通行之字(연개차중국통행지자) 施於語助(시어어조) 與文字元不相離(여문자원불상리) 故雖至胥吏僕隷之徒(고수지서리복례지도) 必欲習之(필욕습지) 先讀數書(선독수서) 粗知文字(조지문자) 然後乃用吏讀(연후내용이두) 用吏讀字(용이두자) 須憑文字(수빙문자) 乃能達意(내능달의) 故因吏讀而知文字者頗多(고인이두이지문자자파다) 亦興學之一助也(역흥학지일조야) 若我國元不知文字(약아국원부지문자) 結繩之世(결승지세) 則姑借諺文(칙고차언문) 以資一時之用猶何(이자일시지용유하) 而執正議者(이집정의자) 必曰與其行諺文以姑息(필왈여기행언문이고식) 不若寧遲緩而習中國通行之文字(불약녕지완이습중국통행지문자) 以爲久長之計也(이위구장지계야) 而況吏讀行之(이황이두행지) 數千年(수천년) 而簿書期會等事(이부서기회등사) 無有防礎者(무유방초자) 何用改舊行無弊之文(하용개구행무폐지문) 別創鄙諺無益之字乎(별창비언무익지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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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신라 설총의 이두(吏讀)는 비록 비루(鄙陋)하고 속(俗 된다고 하더라도 모두 중국에서 통용하는 글자를 빌려서 어조사에 쓰는 까닭에 문자(文字)와 더불어 본시 서로 떨어진 것이 아니옵니다. 그런 까닭에 서리(胥吏)나 하인의 무리들까지도 반드시 이를 배우자면 먼저 몇 가지의 글을 읽고, 얼마만큼의 문자를 안 연후라야, 이두를 쓰게 되옵고 이두를 쓰는 사람은 모름지기 한자에 의지해야만, 이에 능히 뜻에 통달할 수 있으므로 이두로 말미암아 한자를 알게되는 일이 매우 많아 역시 학문을 일으키는데 일조(一助)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처음부터 글자를 알지 못하고 결승(結繩)의 세상과 같다면 곧 비로소 언문을 빌려서 한때의 쓰임으로 삼는 것은 오히려 가당하겠다고 할 수 있으나, 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언문을 써서 고식적(姑息的)인 편의를 도모하기보다는 차라리 늦고 느리더라도 중국에서 통행하는 문자를 익히어 오래고 긴 계책을 삼는 것보다 못하다고 할 것입니다. 하물며 이두가 통행된 지 수천 년에 관청의 문서기록(簿書)나 약속으로 쓰임(期會) 등의 일에 탈이 없었거늘 무엇 때문에 예로부터 행함에 폐단(弊端)이 없는 글을 고치어서 따로 비언(鄙諺)하고 이익됨이 없는 글자를 창작하고자 하시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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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行諺文則爲吏者(약행언문칙위이자) 傳習諺字(전습언자) 不顧學文(불고학문) 文字吏員岐而爲二(문자이원기이위이) 苟爲吏者以諺文而宦達(구위이자이언문이환달) 則後進皆見基如此也(칙후진개견기여차야) 以爲二十七字諺文(이위이십칠자언문) 足以立身於世(족이입신어세) 何須苦心勞思(하수고심노사) 窮性理之學哉(궁성리지학재) 如此則數十年之後(여차칙수십년지후) 知文字者必少(지문자자필소) 雖能以諺文而施於吏事(수능이언문이시어이사) 不知聖賢之文字(부지성현지문자) 則不學墻面(즉불학장면) 昧於事理之是非(매어사리지시비) 徒工於諺文(도공어언문) 將何用哉(장하용재) 我國家積累右文之化(아국가적누우문지화) 恐漸至掃地矣(공점지소지의) 前此吏讀(전차이두) 雖不外於文字(수불외어문자) 有識者尙且鄙之(유식자상차비지) 思欲以吏文易之(사욕이이문역지) 而況諺文與文字(이황언문여문자) 暫不于涉(잠불우섭) 專用委巷俚語者乎(전용위항리어자호) 借使諺文(차사언문) 自前朝有之(자전조유지) 以今日文明之治(이금일문명지치) 變魯至道之意(변로지도지의) 尙지循而襲之乎(상지순이습지호) 必有更張之議者(필유경장지의자) 此約然可知之理也(차약연가지지리야) 厭舊喜新(염구희신) 古今通患(고금통환) 今此諺文(금차언문) 不過新奇一藝耳(불과신기일예이) 於學有提(어학유제) 於治無益(어치무익) 反覆籌之(반복주지) 未見其可也(미견기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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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언문이 통행하게되면 관리된 자는 오로지 언문자만 익히고 학문을 돌아보지 않게 되어 한자와 관리는 갈라져 둘이 될 것이오며, 진실로 관리된 자가 언문만으로 환달(宦達)하게되면 곧 후진들도 모두 이와 같이됨을 보고 스물 일곱 자의 언문만으로도 능히 세상에 입신할 수 있다 할 것이니 무엇 때문에 고심 노사(勞思)해서 성리의 학을 궁구하려고 하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여 수십 년이 지낸 다음에는 한자를 아는 사람이 반드시 적을 것이오며 비록 언문으로서 관공서의 일을 수행할 수 있다고 하온들 성현의 한자를 알지 못함은 곧 배우지 못함이 담장을 면대한 것과 같아, 사리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데 어두울 것이오니 부질없이 언문에 힘쓴들 장차 무엇에 쓰겠나이까? 우리나라는 누대(累代)로 쌓여온 우문(右文)의 풍화가 점차 땅을 쓴 듯 없어져 버릴지 두렵나이다. 앞서 쓰여온 이두는 비록 문자에 벗어남이 없음에도 유식자들은 아직도 이것을 비루이 여겨 이문(吏文)으로써 이것을 바꾸고자 생각하거늘 하물며 언문은 한자와는 조금도 상관함이 없는 것이며 시장거리의 속된 말만을 쓰는 것임에 있어서야(더 무엇을 말하겠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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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假使) 언문이 전조(前朝)에서 있어온 것이라 하더라도 오늘날 같은 문명의 정치에 있어서 變魯至道로 아직도 옳다고 여기어 그대로 이어받아 습용할 만한 것이오리까? 반드시 다시 의논할 자가 있을 것임은 작연히 알 수 있는 이치이옵나이다. 옛것을 싫어하고 새것을 좋아하는 것은 고금의 통환이라 하겠거니와 지금 이 언문도 신기한 재주에 지나지 않을 따름입니다. 학문에 손해됨이 있고 정치에 이익이 없는 것인바, 뒤엎어 이를 헤아려도 옳은 점을 발견할 수가 없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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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若曰(약왈) 如刑殺獄辭(여형살옥사) 以吏讀文字書之(이이두문자서지) 則不知文理之愚民(칙불지문리지우민) 一字之差(일자지차) 容惑致寃(용혹치원) 今以諺文(금이언문) 直書其言(직서기언) 讀使聽之(독사청지) 則雖至愚之人(즉수지우지인) 悉皆易曉而無抱屈者(실개역효이무포굴자) 然自古中國(연자고중국) 言與文同(언여문동) 獄訟之間(옥송지간) 寃枉甚多(원왕심다) 借以我國言之(차이아국언지) 獄囚之解吏讀者(옥수지해이독자) 親讀招辭(친독초사) 知其誣而不勝楚(지기무이불승초) 多有枉服者(다유왕복자) 是非不知招辭之文意(시비불지초사지문의) 而被寃也(이피원야) 明矣(명의) 若然則雖用言文(약연칙수용언문) 何異於此(하이어차) 是知刑獄之乎不乎(시지형옥지호불호) 在於獄吏之如何(재어옥이지여하) 而不在於言與文之(이불재어언여문지) 同不同也(동불동야) 欲以諺文而乎獄辭(욕이언문이호옥사) 臣等未見其可也(신등미견기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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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혹시 말하기를 형살(刑殺)과 옥사(獄辭)같은 것도 이두로써 이를 쓰게 되면, 문리(文理)를 알지 못하는 우민(愚民)도 한글자의 차이로 말미암아 간혹 원통하게 될 것도 이제 언문으로써 그 말을 바로 쓰고서 읽어 듣게 한다면 비록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다 쉽게 알아듣게 되어 억울하게 당할 사람이라도 다 쉽게 알아듣게 되어 억울하게 당할 사람이 없다고 할 것이오나, 자고로 중국은 말이 글과 같은데도 옥송(獄松)간에 원통하게 당하는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만일에 우리나라로 말할 것 같으면 옥수(獄囚)중에 이두를 해득하는 사람이 몸소 초사(招辭)에 이기지 못하여 왕복(枉服)하는 사람이 많이 있사오니, 이는 곧 초사의 글 뜻을 몰라서 원통하게 당하는 것이 아님은 명백한 일입니다. 그러하온즉 비록 언문을 쓴들 무엇이 이것과 다르겠습니까. 이로써 죄인을 다스리는 일의 공평함과 불공평함은 옥리(獄吏)의 여하에 있고 말이 글과 같고 같지 않음에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옵니다. 언문으로써 옥사를 공평하게 하고자 하신다면 신등은 그 타당함을 찾지 못하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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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凡立事功(범립사공) 不貴近速(불귀근속) 國家此來措置(국가차래조치) 皆務速成(개무속성) 恐非爲治之體(공비위치지체) 曰諺文不得已而爲之(왈언문불득이이위지) 此變易風俗之大者(차변역풍속지대자) 當謀及宰相下至百僚(당모급재상하지백료) 國人皆曰可(국인개왈가) 猶先甲先庚(유선갑선경) 更加三思(경가삼사) 質諸帝王而不悖考諸中國而無愧(질제제왕이불패고제중국이무괴) 百世以俟聖人而不惑(백세이사성인이불혹) 然後乃可行也(연후내가행야) 今不博採群議(금불박채군의) 驟令吏輩十餘人訓習(취령이배십여인훈습) 又輕改古人已成之韻書(우경개고인이성지운서) 附會無稽之諺文(부회무계지언문) 聚工匠數十人刻之(취공장수십인각지) 劇欲廣布其於天下(극욕광포기어천하) 後世公議如何(후세공의여하) 且今淸州椒水地幸(차금청주초수지행) 特慮年?(특려년?) 扈從諸事(호종제사) 務從簡約(무종간약) 比之前日(비지전일) 十減八九(십감팔구) 至於啓達公務(지어계달공무) 亦委政府(역위정부) 若夫諺文(약부언문) 非國家緩急(비국가완급) 不得已及期之事(불득이급기지사) 何獨於行在(하독어행재) 而汲汲爲之(이급급위지) 以煩聖躬調燮之時乎(이번성궁조섭지시호) 臣等尤未見其可也(신등우미견기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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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무릇 일의 공(功)을 세움에 있어서 가깝게 속히하는 것을 귀히 여기지 않사온데 국가의 근래의 조치(措置)가 모두 속성으로 힘쓰시오니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에 어긋날까 두렵습니다. 만약 이르기를 언문을 부득이 쓰지 않을수 없다 하오면 이는 풍속을 바꾸는 큰 일이라, 마땅히 재상(宰相)에게 상의하셔야 하옵고 아래로 백관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사람들이 모두 옳다고 이를지라도 선갑선경(先甲先庚)으로 거듭 생각을 더 하시옵고 여러 제왕에게 물어 어그러지지 않고 중국에 상고하여 부끄러움이 없으시옵고 백세에 성인이 나타나셔도 의심스러운바가 없은 연후에야 이에 가히 행하실 것이옵나이다. 이제 여러 사람의 의논을 널리 들으시지도 않으시고 갑자기 하급관리(吏輩) 십여인으로 하여금 익히어 배우게 하옵시며, 또 경솔히 옛사람의 이미 이루어 놓은 운서를 고치어 근거 없는 언문으로 부회(附會)하고 공장(工匠) 수십인을 모아 이를 새기어 급히 천하에 광포하고자 하시니 후세에 공의(公議)가 어떠하겠습니까. 또 지금 청주(淸州) 초수(椒水)의 행차에 있어서는 염려하시어 호종(扈從)하옵는 공무(公務)까지도 대신들에게 위임하고 계시온데, 저 언문은 국가의 완급함이 부득이 기한(期限)에 미칠 일도 아니온데, 어찌하여 유독 행재(行在)에서 급급하게 하시어 성궁의 조섭(調燮)하실 때를 번거롭게 하시나이까. 신등이 더욱 그 타당함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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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先儒云(선유운) 凡百玩好(범백완호) 皆奪志(개탈지) 至於書札(지어서찰) 於儒者事最近(어유자사최근) 然一向好着(연일향호착) 亦自喪志(역자상지) 今東宮(금동궁) 雖德性成就(수덕성성취) 猶當潛心聖學(유당잠심성학) 益求其未至也(익구기미지야) 諺文縱曰有益(언문종왈유익) 特文士六藝之一耳(특문사육예지일이) 況萬萬無一利於治道(황만만무일리어치도) 而乃硏精費思(이내연정비사) 竟日移時(경일이시) 實有損於時敏之學也(실유손어시민지학야) 臣等(신등) 俱以文墨末技(구이문묵말기) 待罪侍從(대죄시종) 心有所懷(심유소회) 不敢含黙(불감함묵) 謹(근) 肺腑(폐부) 仰瀆聖總(앙독성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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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옛 유학자가 이르기를 법백의 완호(玩好)가 모두 뜻을 빼앗는다고 하였는데 서찰에 이르러서는 유학자에게 가장 가까운 일이나 오로지 그 일만을 좋아해서는 또한 스스로 뜻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동국(東宮)께서는 비록 덕성이 성취되었다 하시더라도 오히려 성학(聖學)에 잠심(潛心)하시어 더욱 그 이르지 못한 것을 구함이 마땅할 것이옵나이다. 언문이 비록 유익하다고 이르더라도 특히 문사의 육예(六藝)의 하나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하물며 만만으로 치도에는 조금도 이(利)가 없는 것이온데 이에 정신을 연마하시고 생각을 허비하심에 날을 다 하고 때를 옮기시나이까. 실로 현시점에서 학문의 손실됨이 있는 것이옵니다. 신등은 다함께 문묵(文墨)의 말기(末技)를 가지고 상감을 모심에 대죄하옵는 터이므로 마음에 품은 바를 감히 함묵(含黙)할 수가 없어 삼가 마음에 있는 말씀을 다 아뢰어 우러러 성총(聖總)을 더럽히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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