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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한루기(廣寒樓記) ◈

해설본문  1626년 (인조 4)
象村 申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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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과 영남의 언저리에 끼어 하나의 큰 도회(都會)가 되고 있는 곳이 이름하여 남원(南原)이다. 산과 물이 모여드는 곳으로 광한루는 더욱 산수의 전경을 다 갖추고 있는 곳이다. 그 누대가 헐린 지 몇 해 만에 부백(府伯) 신공(申公)이 복구를 하였는데, 그곳 승경을 살펴보자면 그 누대를 중심으로 하여 서쪽에는 교룡성(蛟龍城)이 있고, 남쪽에는 금계산(金溪山), 동쪽에는 방장산(方丈山)이 있으며, 물은 방장산에서 발원, 구불구불 멀리멀리 흘러내려 요천(蓼川)이 되고 다시 꺾어져서 광한루 앞에 와서는 하나의 호수로 변하여 깊고 맑기 마치 하늘의 은하수가 기성(箕星)ㆍ미성(尾星) 사이에서 발원하여 남으로 부열성(傅說星)을 거치고 북으로는 귀수(龜宿)을 거쳐 깃과 띠처럼 두르고 있는 것과 같다. 호수 밖에는 넓은 평야, 긴 모래밭, 낭떠러지, 기이한 바위 그리고 도서(島嶼)ㆍ화죽(花竹)이 있어 흡사 청성산(靑城山)의 동천(洞天) 속과 같다. 숨겨진 그 고장을 처음 개척했을 때는 아름다운 구슬, 수정 같은 돌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붉은 물 붉은 언덕이 황홀하여 끝이 없었으리라.
 
2
호수 위에는 공중에 걸치어 있는 다리 넷이 있는데, 흡사 무녀(㜈女)별이 은하를 건너가게 하기 위하여 신선들이 모여 일하여 그 다리가 놓여지자 하늘이 평지로 변해버린 것과도 같은 것이다. 이름을 오작교(烏鵲橋)라고 한 것은 그와 비슷하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 그 여러 승경을 총망라하여 그 어름에다 누대를 세웠는데, 무지개 같은 대들보에 단청한 두공과 진주 발에 구슬 창문은 마치 오성십이루(五城十二樓 곤륜산 위에 있는 신선이 산다는 곳)를 붉은 구름이 가리우고 있어 비록 진짜 신선이라도 찾을 수가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름을 광한(廣寒)으로 한 것도 아마 그런 뜻이었으리라. 그런데 광한이라는 그 뜻을 알기가 어려운 것이다. 항아(嫦娥)가 달로 도망가서 게서 살고 있다지만 일백 발의 계수나무, 삼천의 도끼, 절구공이 지키는 토끼 등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호호망망한데, 그것을 취하여 이 누대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 과연 그런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인가? 또 그것이 옳은 것인가, 옳지 않은 것인가? 알 수 없는 일이다.추연(鄒衍 전국(戰國)시대 제(齊)의 사람)의 말을 빌면, 구주(九州) 밖에 또 다른 구주가 있다고 하였고, 불씨(佛氏)는 말하기를,“항하(恒河) 내에 삼십삼천(三十三天)이 있다.”하였으며, 선가(仙家)에서는 말하기를,“세상 고해를 건너는 곳에 동천(洞天)이 36개가 있다.”하였다.
 
3
이 모두가 비록 황당무계한 말이기는 하겠지만 그러나 무작정 해괴망측하다고만 말할 것도 아닌 것이다. 지금 천상(天象)을 두고 말하더라도 삼공(三公)ㆍ구경(九卿)ㆍ주기(酒旂)ㆍ시루(市樓) 하는 것들이 우리 인간이 쓰고 있는 말들이지만 따라서 별들의 이름도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늘 위의 광한이 남원의 광한은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인간이니 천상이니를 따질 것도 없고, 풍진생애와 신선놀이를 구분할 것도 없는 것이다.
 
4
희미꾸레한 이슬기가 걷히고 흰 달이 빛을 발할 때 질펀한 호수를 내려다보고 곁에 있는 오작교를 갈라치면 산과 바다와 대지가 모두 눈 앞에 모일 것이니 이때 손에다는 금굴치(金屈巵)를 들고 입으로는 명월편(明月篇)을 외우며 자리에는 소복단장한 계집이 있어 얇은 비단옷을 입고 세모시옷을 끌어당기면서 노래를 화답하고 술을 권하고 하면 그때도 천상과 인간이 구별이 있을지 내 모르겠다. 나씨(羅氏) 집 늙은이가 천보황제(天寶皇帝)를 모시고 잠시 환상 속에서 놀며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을 듣다가 은교(銀橋)를 끌어당겨 버리자 신선이 살고 있는 봉해(蓬海)와는 소식이 단절되어 버렸으면서도 그것이 큰 자랑거리인 양 호언장담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그 차이가 어느 정도이겠는가. 사리에 달한 사람은 사물을 관찰하는 데 있어 검정말 누른말 암컷 수컷을 따지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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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내가 30년 전에 원수(元帥)의 종사관으로서 그 누대에 모여 놀 때 그 이 마침 견우ㆍ직녀가 만나는 밤이었는데, 계원(桂苑)의 그윽한 향기가 이미 꿈속 일이 되고 말았다. 나도 불로초를 훔쳐먹고 젊은 나이를 그대로 가지고 있지 못하고 이제 백수로 시간이 다하기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부백(府伯)은 바로 내 아우로 이름은 감(鑑)이고 자는 명원(明遠)인데, 방백(方伯)ㆍ시랑(侍郞)을 역임하고 남원부를 맡아 다스리면서 치행(治行)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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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天啓) 6년(1626 인조 4) 7월 우의정(右議政) 정배도인(停盃道人) 신흠(申欽)은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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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6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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