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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난후제장공적(論亂後諸將功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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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복
1
論亂後諸將功蹟 (논난후제장공적)
2
- 임진 전란 후 여러 장군의 공적을 논함.
 
 
3
吾東方 (오동방)
4
文獻不足 (문헌불족)
5
雖有大事業大是非 (수유대사업대시비)
6
數歲之後 (수세지후)
7
卛昧昧不傳 (솔매매불전)
8
徵之無所 (징지무소)
9
余甞恨之 (여상한지)
 
10
우리 동방에는
11
문헌이 부족하여
12
아무리 큰 사업이나 큰 시비 있었더라도
13
몇 년 만 지나고 나면
14
깜깜하게 전하지 않아서
15
고증할 데가 없게 되므로,
16
내가 일찍이 이것을 한스럽게 여겼다.
 
 
17
壬辰之亂 (임진지란)
18
余扈駕至平壤 (여호가지평양)
19
超拜兵判 (초배병판)
20
出入七年 (출입칠년)
21
常主中兵 (상주중병)
22
凡諸將功罪 (범제장공죄)
23
施爲事功 (시위사공)
24
槩已領略矣 (개이령략의)
 
25
임진년의 변란 때에
26
내가 어가(御駕)를 호종하여 평양에 이르러서
27
병조 판서에 초배(超拜)된 이후
28
7년 동안 중외(中外)를 드나들면서
29
항상 중병(中兵)을 주관하였으므로,
30
제장의 공죄(功罪)와
31
시위(施爲)와 사공(事功)에 대해서
32
대략 이미 알고 있었다.
 
 
33
厥後奉使南藩 (궐후봉사남번)
34
參以記聞 (참이기문)
35
質之公論 (질지공론)
36
尤爲明著 (우위명저)
37
而世無有明知其實狀而能言之者 (이세무유명지기실상이능언지자)
 
38
그 후 사명(使命)을 받들고 남번(南藩)에 나가서
39
기억나는 것과 들은 것을 참작하여
40
공론(公論)에 질정해 본 결과
41
더욱 그 사실이 밝게 드러났으나,
42
세상에는 그 실상을 분명하게 알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43
往往聞諸士大夫之論 (왕왕문제사대부지론)
44
則動相矛盾 (칙동상모순)
45
有情跡倒置者 (유정적도치자)
 
46
그러나 이따금 사대부들의 논의를 들어 보면
47
번번이 서로 모순을 일으켜서
48
정적(情跡)이 도치된 자가 있었다.
 
 
49
今猶如是 (금유여시)
50
若傳之悠久 (약전지유구)
51
則其不爲紫之亂朱 (칙기불위자지란주)
52
而是非霄壤者希幾矣 (이시비소양자희기의)
 
53
지금도 이러한데
54
만일 이 일이 전해진 지 오래되면
55
자색(紫色)이 주색(朱色)을 어지럽히는 격이 되어
56
시비가 천양지차로 달라지지 않기가 어려울 것이다.
 
 
57
上甞論水陸諸將之功曰 (상상론수륙제장지공왈)
 
58
상(上)이 일찍이 수륙(水陸)제장의 공을 논하여 이르기를,
 
 
59
李元海上之鏖 (리원해상지오)
60
權慄幸州之捷 (권률행주지첩)
61
當爲首功 (당위수공)
62
此不易之定論 (차불역지정론)
 
63
“이순신과 원균이 해상에서 왜적을 크게 무찌른 것과
64
권율의 행주대첩을
65
의당 수공(首功)으로 삼아야 한다.” 하였으니,
66
이것은 바꿀 수 없는 정론(定論)이다.
 
 
67
然其間曲折 (연기간곡절)
68
有未盡露者 (유미진로자)
 
69
그러나 그 사이의 곡절(曲折)은
70
다 드러나지 못한 것이 있다.
 
 
71
權聘君甞言於余曰 (권빙군상언어여왈)
72
世以我幸州之事爲功 (세이아행주지사위공)
73
此固可謂功也 (차고가위공야)
 
74
*권빙군(權聘君)이 일찍이 나에게 이르기를,
75
“세상에서는 내가 행주에서 한 일을 공으로 삼는데,
76
이는 참으로 공이라 이를 만하다.
 
77
* 권빙군(權聘君) - 장인어른. 즉 항복의 장인 권률 장군을 말한다.
 
 
78
然我起自行間 (연아기자행간)
79
積功至此 (적공지차)
80
大小之戰 (대소지전)
81
不爲不多 (불위불다)
 
82
그러나 나는 항오(行伍) 사이로부터 일어나서
83
공을 쌓은 것이 여기에 이르는 동안
84
크고 작은 전쟁을
85
적잖이 치렀다.
 
 
86
而全羅熊峙之戰爲㝡 (이전라웅치지전위최)
87
幸州次之 (행주차지)
 
88
그 중에 전라도(全羅道) *웅치(熊峙)에서의 전공(戰功)이 가장 컸고
89
행주의 전공은 그 다음이다.
 
90
* 웅치(熊峙) - 남원군(南原郡) 주촌면(朱村面) 웅치리(熊峙里)지역. 곰재 또는 웅치(熊峙)
 
 
91
我終以幸州顯 (아종이행주현)
92
事有不可知者 (사유불가지자)
 
93
그런데 나는 끝내 행주의 전공으로 드러났으니,
94
일에는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95
盖熊峙之戰 (개웅치지전)
96
在首事之初 (재수사지초)
97
賊氣方銳 (적기방예)
98
我軍單弱 (아군단약)
99
且無健卒 (차무건졸)
100
軍情洶洶 (군정흉흉)
101
難以爲恃 (난이위시)
 
102
대체로 웅치의 싸움은
103
변란이 처음 일어날 때에 있었으므로,
104
적(賊)의 기세는 한창 정예하였고,
105
우리 군사는 단약(單弱)한데다
106
또 건장한 군졸도 없어서
107
군정(軍情)이 흉흉하여
108
믿고 의지하기가 어려웠다.
 
 
109
乃能出死力血戰 (내능출사력혈전)
110
以不能滿千之弱卒 (이불능만천지약졸)
111
當十倍之悍賊 (당십배지한적)
112
卒保湖南 (졸보호남)
113
爲國家根本 (위국가근본)
114
此其所以難也 (차기소이난야)
 
115
그런데도 능히 죽을힘을 다하여 혈전(血戰)을 벌여서
116
천 명 도 채 안 되는 단약한 군졸로
117
열 배나 많은 사나운 적군을 막아 내어
118
끝까지 호남(湖南)을 보존시켜
119
국가의 근본으로 만들었으니,
120
이것이 바로 어려웠던 이유이다.
 
 
121
而當是之時 (이당시지시)
122
西路阻絶 (서로조절)
123
聲聞不通 (성문불통)
124
本道潰散 (본도궤산)
125
人多竄匿 (인다찬닉)
126
我雖有功 (아수유공)
127
無人褒奬 (무인포奬)
128
朝廷無由得聞 (조정무유득문)
 
129
그러나 이때에는
130
서로(西路)가 꽉 막히어
131
소식이 통하지 않았고,
132
본도(本道)가 패하여 흩어져서
133
사람들이 대부분 도망쳐 숨어 버렸으므로,
134
내가 비록 공은 있었으나
135
포장(褒獎)해 줄 사람이 없어
136
조정에서 그 소식을 들을 길이 없었다.
 
 
137
比如無人暗夜 (비여무인암야)
138
自相擊殺 (자상격살)
139
故功不能顯 (고공불능현)
 
140
그러니 비유하자면 마치 사람이 없는 깜깜한 밤에
141
자기들끼리 서로 격살(擊殺)한 것과 같았으므로,
142
공이 드러날 수가 없었다.
 
 
143
幸州之役 (행주지역)
144
在我立功之後 (재아립공지후)
145
權位已重 (권위이중)
146
士心已附 (사심이부)
147
湖南精兵猛將 (호남정병맹장)
148
盡屬手下 (진속수하)
149
而兵過數千 (이병과수천)
150
地利亦險 (지리역험)
151
賊之數 (적지수)
152
雖過熊峙 (수과웅치)
153
其氣已衰 (기기이쇠)
154
此易與爲功 (차역여위공)
 
155
그러나 행주의 싸움은
156
내가 공을 세운 뒤에 있었으므로,
157
권위(權位)가 이미 중해져서
158
사심(士心)이 귀부(歸附)하였고,
159
호남의 정병(精兵)과 맹장(猛將)이
160
모두 휘하에 소속되어
161
군사가 수천 명을 넘었고
162
지리(地利) 또한 험고하였으며,
163
적의 숫자는
164
비록 웅치에서보다는 많았으나
165
그 기세가 이미 쇠해졌으니,
166
이것이 공을 세우기가 쉬웠던 이유이다.
 
 
167
而政當天兵壓臨 (이정당천병압림)
168
我國諸路勤王兵 (아국제로근왕병)
169
碁布畿甸 (기포기전)
170
都城士民之在江華者 (도성사민지재강화자)
171
引領以待 (인령이대)
172
而我之成功 (이아지성공)
173
適先於諸陣 (적선어제진)
174
此其功之所以易顯也云 (차기공지소이역현야운)
175
此說深得其要 (차설심득기요)
 
176
게다가 마침 *천병(天兵)이 나와서 주둔하고
177
우리나라 제로(諸路)의 근왕병(勤王兵)들이
178
바둑알처럼 기전(畿甸)에 포치(布置)되었을 때,
179
강화(江華)로 피란 가 있던 도성(都城)의 사민(士民)들이
180
우리의 승전(勝戰)을 학수고대하던 터에
181
나의 승전이
182
마침 다른 여러 진영(陣營)보다 먼저 있었으니,
183
이것이 바로 공이 쉽게 드러날 수 있었던 까닭이다.”라고 하였으니,
184
이 말이 매우 요점을 얻었다.
 
185
* 천병(天兵) - 중국 명나라 군사
 
 
186
至於元均 (지어원균)
187
特因人而成事者 (특인인이성사자)
188
固不敢與李舜臣抗衡 (고불감여리순신항형)
 
189
그리고 원균(元均)의 경우는
190
다만 남을 의지해서 일을 성취시킨 자이니,
191
진실로 감히 이순신(李舜臣)과는 공을 겨룰 수가 없다.
 
 
192
舜臣之功 (순신지공)
193
當冠水軍矣 (당관수군의)
 
194
따라서 이순신의 공은
195
당연히 수군(水軍)에 으뜸이다.
 
 
196
若究其心 (약구기심)
197
亦必有分其功者 (역필유분기공자)
198
而事不明著 (이사불명저)
199
不見於文書 (불견어문서)
200
余亦得之於道路 (여역득지어도로)
201
亦難傳信 (역난전신)
 
202
그런데 만일 그 심적(心迹)을 추구해 본다면
203
또한 반드시 그 공을 나누어 가질 자가 있으나,
204
일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205
문서(文書)에 나타나지 않았고,
206
내가 길에서 얻어 들은 말들도
207
꼭 믿기 어려운 실정이다.
 
 
208
余往來海陣 (여왕래해진)
209
見人必問諸將用兵如何 (견인필문제장용병여하)
210
海陣之人 (해진지인)
211
言之頗詳 (언지파상)
 
212
내가 해진(海陣)을 왕래하면서
213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제장(諸將)들의 용병(用兵)이 어떠했는가를 물었는데,
214
해진 사람들이
215
꽤나 상세하게 그 사실을 말해 주었다.
 
216
* 해진(海陣) - 수군의 진이 있는 곳
 
 
217
當嶺南陷敗之日 (당령남함패지일)
218
舜臣在水營 (순신재수영)
219
不知所以爲計 (불지소이위계)
220
欲列艦露梁口 (욕렬함로량구)
221
遏賊來路 (알적래로)
222
修城自守 (수성자수)
223
又欲固守本道 (우욕고수본도)
224
不窺閑山之口 (불규한산지구)
225
猶豫未决 (유예미결)
 
226
영남(嶺南)이 함몰되던 날
227
이순신은 수영(水營)에 있으면서
228
어찌할 계책을 몰라서
229
노량(露梁)의 입구에 전함(戰艦)들을 죽 배열시켜
230
적이 오는 길을 차단하고
231
성(城)을 수리하여 스스로 지키려 하였고,
232
또 본도(本道)만을 굳게 지키고
233
한산(閑山)의 어귀는 엿보지 않으려고 하여
234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였다.
 
 
235
順天府使權俊 (순천부사권준)
236
光陽縣監魚泳潭 (광양현감어영담)
237
移書起之 (이서기지)
238
身自馳往 (신자치왕)
239
力贊下海之計 (력찬하해지계)
240
乃始起兵云 (내시기병운)
 
241
그런데 당시 순천 부사(順天府使) 권준(權俊)과
242
광양 현감(光陽縣監) 어영담(魚泳潭)이
243
이순신에게 편지를 보내 그를 일어나게 하고
244
몸소 스스로 달려가서
245
바다로 내려갈 계책을 극력 협찬해서야
246
비로소 이순신이 군대를 일으켰다고 한다.
 
 
247
此說若然 (차설약연)
248
則俊與泳潭 (칙준여영담)
249
當分其功 (당분기공)
250
論其功則舜臣實是首功 (론기공칙순신실시수공)
251
語其心則於兩人 (어기심칙어량인)
252
差有愧焉 (차유괴언)
 
253
만일 이 말이 사실이라면
254
권준과 어영담이 의당
255
그 공을 나누어 가져야 하겠거니와,
256
그 공을 논하자면 이순신이 실로 수공(首功)에 해당하지만,
257
그 심적으로 말하자면 이순신이 이 두 사람에게
258
약간 부끄러운 점이 있다고 하겠다.
 
 
259
守城之功 (수성지공)
260
世人獨稱延安李廷馣 (세인독칭연안리정암)
261
而不及晉州金時敏 (이불급진주금시민)
262
此亦倒置 (차역도치)
 
263
그리고 성을 지킨 공으로 말하자면
264
세상 사람들이 유독 연안(延安) 전투에서 공을 세운 이정암(李廷馣)만 일컫고
265
진주(晋州)에서 순절한 김시민(金時敏)은 언급하지 않으니,
266
이 또한 도치(倒置)된 일이다.
 
267
* 이정암(李廷馣) -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황해도에서 의병을 모아 연안성을 지켰다.
268
* 김시민(金時敏) -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면오(勉吾).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269
廷馣之功 (정암지공)
270
固可嘉奬 (고가가奬)
271
至與時敏並論 (지여시민병론)
272
則亦不無差等 (칙역불무차등)
 
273
이정암의 공은
274
진실로 칭찬하고 장려할 만하나,
275
김시민과 똑같이 놓고 논하는 데에 이르러서는
276
또한 차등이 없지 않다.
 
 
277
盖廷馣之所敵者 (개정암지소적자)
278
長政而兵不滿萬 (장정이병불만만)
279
廷馣所領 (정암소령)
280
又過數千 (우과수천)
281
義兵諸將來會者 (의병제장래회자)
282
亦多可與頡抗 (역다가여힐항)
 
283
대체로 이정암이 상대했던 적은
284
흑전장정(黑田長政)으로서 그 군대는 만 명도 채 되지 않았고,
285
이정암이 거느린 군대는
286
또 수천 명을 넘었으며,
287
여기에 와서 회합한 여러 의병장들
288
또한 이정암의 군세(軍勢)와 서로 맞먹을 만한 이가 많았다.
 
 
289
當是之時 (당시지시)
290
本道諸將 (본도제장)
291
皆不能立功 (개불능립공)
292
唯廷馣獨能如此 (유정암독능여차)
293
陣中且多士子 (진중차다사자)
294
易以鋪張 (역이포장)
295
行在不遠 (행재불원)
296
聲問易達 (성문역달)
 
297
게다가 이때
298
본도의 여러 장수들은
299
모두 공을 세우지 못했는데,
300
오직 이정암만이 이런 공을 세운데다가
301
진중(陣中)에는 또 선비들이 많아서
302
이정암의 전공(戰功)을 꾸며 작성하기가 쉬웠고,
303
행재소도 멀지 않아서
304
소식을 쉽게 전할 수 있었다.
 
 
305
廷馣平生聲望 (정암평생성망)
306
亦足以服人心 (역족이복인심)
307
故其功大著 (고기공대저)
 
308
또한 이정암은 평소의 명성이
309
인심을 충분히 복종시킬 만하였으므로,
310
그 공이 크게 드러났던 것이다.
 
 
311
至於時敏 (지어시민)
312
只卛所領 (솔란소령)
313
而援兵甚少 (이원병심소)
314
所敵者 (소적자)
315
行長而非長政之比 (행장이비장정지비)
 
316
그러나 김시민의 경우는
317
자기에게 소속된 군대만을 거느렸고
318
구원병은 매우 적은데다
319
상대했던 적은
320
소서행장(小西行長)으로 흑전장정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321
各寨諸賊 (각채제적)
322
擧陣合勢 (거진합세)
323
賊兵之數 (적병지수)
324
彌漫於四郡 (미만어사군)
325
不可以十數萬計 (불가이십수만계)
326
比如擧山壓卵 (비여거산압란)
327
而時敏卒能嬰城固守 (이시민졸능영성고수)
328
能却大敵 (능각대적)
329
其勢之難易 (기세지난역)
330
遠過廷馣 (원과정암)
 
331
그리고 각채(各寨)의 여러 적들이
332
진영(陣營)을 통틀어 합세(合勢)함으로써
333
적병(賊兵)의 수가
334
사군(四郡)에 널리 퍼져서
335
십 수만으로 헤아릴 수도 없었으니,
336
비유하자면 마치 산(山)을 들어서 새알[卵]을 누르는 것과 같은 실정이었다.
337
그런데도 김시민은 끝내 성문을 닫고 굳게 지켜서
338
능히 거대한 적을 물리쳤으니,
339
그 형세의 난이도(難易度)가
340
이정암의 처지에 비하면 월등히 어려웠다.
 
 
341
而當是之時 (이당시지시)
342
本道渙散 (본도환산)
343
無人見知 (무인견지)
344
行在絶遠 (행재절원)
345
聲聞未及 (성문미급)
346
至與延安之事 (지여연안지사)
347
等而比之 (등이비지)
348
亦非定論 (역비정론)
 
349
그러나 이때는
350
본도가 패하여 흩어져서
351
그것을 보아서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고,
352
행재소는 워낙 거리가 멀어서
353
그 소식이 미치지 못했으니,
354
이 일을 연안(延安)의 일과
355
동등하게 놓고 비유하는 것은
356
또한 정론(定論)이 아니다.
 
 
357
世以趙憲高敬命之死爲節義 (세이조헌고경명지사위절의)
358
若曰死於王事則可 (약왈사어왕사칙가)
359
至稱節義則未也 (지칭절의칙미야)
 
360
세상에서 조헌(趙憲)과 고경명(高敬命)의 죽음을 절의(節義)라고 하는데,
361
만일 왕사(王事)에 죽었다고 한다면 괜찮겠지만,
362
절의라고까지 칭하는 것은 안 될 말이다.
 
 
363
當板蕩之日 (당판탕지일)
364
憲等以一介書生 (헌등이일개서생)
365
奮臂决起 (분비결기)
366
糾合義徒 (규합의도)
367
志存王室 (지존왕실)
368
忠義可賞 (충의가상)
 
369
나라가 어지러운 때를 당해서
370
조헌 등은 일개 서생(書生)으로
371
팔뚝을 걷어붙이고 급히 일어나서
372
의병(義兵)을 규합하여
373
왕실(王室)을 보존하는 데에 뜻을 두었으니,
374
그 충의(忠義)는 가상하다.
 
 
375
至於錦山之役 (지어금산지역)
376
諸軍因暗潰敗 (제군인암궤패)
377
賊挺劍突出 (적정검돌출)
378
地勢險狹 (지세험협)
379
自相蹂躙 (자상유린)
380
憲死於亂兵 (헌사어란병)
381
敬命適乘醉 (경명적승취)
382
不能控馬 (불능공마)
383
亦死於軍 (역사어군)
 
384
금산(錦山)의 싸움에 이르러서
385
제군(諸軍)이 어둠으로 인해 패하여 무너져서
386
적들이 칼을 뽑아 들고 튀어나오자,
387
지세(地勢)가 험하고 협착하여
388
자기들끼리 서로 짓밟는 와중에
389
조헌은 난병(亂兵)에게 죽었고,
390
고경명은 마침 술에 취해
391
말고삐도 잡을 수 없게 되어
392
그 또한 군중(軍中)에서 죽었다.
 
 
393
其見敗不奔 (기견패불분)
394
卒死於王事 (졸사어왕사)
395
則果可褒奬 (칙과가포장)
396
而若曰節義則未也 (이약왈절의칙미야)
 
397
그들이 패한 것을 보고도 달아나지 않고
398
끝내 왕사에 죽은 것으로 말하자면
399
과연 포장(褒獎)할 만하나,
400
만일 절의라고 칭한다면 그것은 안 될 말이다.
 
 
401
其從容就死 (기종용취사)
402
不失所操 (불실소조)
403
唯金千鎰 (유금천일)
404
梁山璹二人而已 (량산숙이인이이)
 
405
조용하게 죽음을 당하면서
406
자기 지조를 잃지 않은 이로는
407
오직 김천일(金千鎰)과
408
양산숙(梁山壽) 두 사람뿐이다.
 
 
409
當晉州之圍 (당진주지위)
410
千鎰聞圍急 (천일문위급)
411
引兵馳入 (인병치입)
412
此其難也 (차기난야)
 
413
진주(晉州)가 포위되었을 때에
414
김천일은 포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415
급히 군대를 이끌고 그곳으로 달려 들어갔으니,
416
이것은 어려운 일이다.
 
 
417
事急之役 (사급지역)
418
軍中以爲千鎰士人 (군중이위천일사인)
419
勸使以兵屬副將 (권사이병속부장)
420
馳出城自全 (치출성자전)
 
421
일이 급해진 뒤에는
422
군중(軍中)에서 김천일이 사인(士人)이라는 이유로
423
그에게 군대를 부장(副將)에게 소속시키고
424
성을 급히 빠져나가서 자신을 보전하도록 권하였다.
 
 
425
則千鎰不聽 (칙천일불청)
426
終守矗石一面 (종수촉석일면)
427
至於賊兵登城 (지어적병등성)
428
猶顔色不變 (유안색불변)
429
從容北向再拜而死 (종용북향재배이사)
 
430
그러나 김천일은 그 말을 듣지 않고
431
끝내 촉석루(矗石樓) 일면(一面)을 굳게 지키다가
432
적병(賊兵)들이 성을 타고 올라옴에 이르러서도
433
얼굴빛도 변하지 않고
434
조용하게 북쪽을 향하여 재배(再拜)하고 죽었다.
 
 
435
若梁山璹 (약량산숙)
436
乃是壠畒布衣 (내시롱무포의)
437
特是千鎰參佐之人 (특시천일참좌지인)
438
雖從死可也 (수종사가야)
439
雖不死亦可也 (수불사역가야)
 
440
또 양산숙 같은 이는
441
바로 시골 구석의 포의(布衣)로서
442
다만 김천일의 참모인(參謀人)이었을 뿐이니,
443
비록 따라 죽어도 괜찮겠지만
444
설령 죽지 않더라도 또한 괜찮은 처지였다.
 
 
445
千鎰勸使出城 (천일권사출성)
446
毋令同死 (무령동사)
447
則以爲旣與同事 (칙이위기여동사)
448
當與同死 (당여동사)
449
卒從千鎰死 (졸종천일사)
 
450
그런데 김천일이 그로 하여금 성을 빠져나가서
451
함께 죽지 말도록 권하자,
452
그는 말하기를, “이미 일을 같이 하였으니,
453
의당 함께 죽어야 한다.” 하고,
454
끝내 김천일을 따라서 죽었다.
 
 
455
非素履篤實者 (비소리독실자)
456
能如是乎 (능여시호)
457
世之論者 (세지론자)
458
泛然以四人同科 (범연이사인동과)
459
亦非定論 (역비정론)
 
460
소행(素行)이 독실한 사람이 아니면
461
능히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462
그런데도 세상의 논변하는 자들은
463
범범하게 이상의 네 사람을 똑같은 등급으로 치고 있으니,
464
이 또한 정론이 아니다.
 
 
465
若朴晉前後從軍 (약박진전후종군)
466
只有黃山之敗慶州之敗二者而已 (지유황산지패경주지패이자이이)
467
別無摧鋒陷陣之事 (별무최봉함진지사)
 
468
그리고 박진(朴晉) 같은 사람은 전후로 종군(從軍)하는 동안에
469
황산(黃山)과 경주(慶州) 두 곳에서의 패배만 있었을 뿐이고
470
적봉(賊鋒)을 꺾거나 적진(賊陣)을 함락시킨 일은 별로 없다.
 
 
471
而諸將之論 (이제장지론)
472
每以晉爲稱首 (매이진위칭수)
473
莫敢與之高下者 (막감여지고하자)
 
474
그런데 제장(諸將)들의 논의가
475
매양 박진을 으뜸으로 칭하여
476
감히 그와 더불어 고하(高下)를 겨룰 자가 없게 되었다.
 
 
477
盖晉以密陽府使 (개진이밀양부사)
478
政當賊路門戶 (정당적로문호)
479
臨亂不迷 (림란불미)
480
卛勵兵士 (솔려병사)
481
以一府之卒 (이일부지졸)
482
當大勢之賊 (당대세지적)
483
遏賊黃山 (알적황산)
484
親冒鋒刃 (친모봉인)
485
血戰而退 (혈전이퇴)
486
其所摧敗 (기소최패)
487
亦足示於諸將 (역족시어제장)
 
488
그것은 대체로 박진이 밀양 부사(密陽府使)로 있을 적에
489
정면으로 적로(賊路)의 문호에 위치했는데도
490
변란을 당해서 당황하지 않고
491
병사들을 독려하여
492
일부(一府)의 군졸로
493
대규모의 적군과 맞서
494
황산에서 적을 가로막아
495
직접 봉인(鋒刃)을 무릅쓰고
496
혈전(血戰)을 벌이다가 퇴각하였으므로,
497
그가 꺾여 패배한 상황을
498
또한 제장들에게 충분히 보여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499
及賊勢滔天 (급적세도천)
500
一道大小將官 (일도대소장관)
501
抱頭風靡 (포두풍미)
502
無敢出一聲撝呵者 (무감출일성휘가자)
503
晉終始一節 (진종시일절)
504
百折不廻 (백절불회)
505
奬卛孤軍 (장솔고군)
506
勉以忠義 (면이충의)
507
東西出沒 (동서출몰)
508
在在勦擊 (재재초격)
509
雖屢危殆 (수루위태)
510
而不避艱險 (이불피간험)
 
511
게다가 적의 기세가 충천하여
512
온 도내(道內)의 크고 작은 장관(將官)들이
513
머리를 부둥키고 바람에 쏠리듯이 무너져서
514
감히 적에게 대항하도록 군대를 강력히 지휘하는 소리를 한 마디도 내는 자가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도,
515
박진은 시종일관의 지조로
516
백 번 꺾여도 돌아서지 않고
517
고군(孤軍)을 독려하여
518
충의(忠義)로써 권면하고
519
동서(東西)로 출몰하면서
520
가는 곳마다 적을 쳐부수다가
521
비록 누차 위태로운 지경을 당하였으나
522
어렵고 험난함을 회피하지 않았다.
 
 
523
一面馳報 (일면치보)
524
一面收兵 (일면수병)
 
525
그리고 한편으로는 전황(戰況)을 치보(馳報)하고
526
한편으로는 군대를 수습하였다.
 
 
527
當時朝廷賴以探知者 (당시조정뢰이탐지자)
528
唯有晉之牒報而已 (유유진지첩보이이)
529
若晉死則嶺南聲息幾乎絶矣 (약진사칙령남성식기호절의)
530
上亦爲之嘉歎曰 (상역위지가탄왈)
 
531
당시에 조정에서 적정(賊情)을 탐지할 수 있는 수단은
532
오직 박진의 첩보(牒報)가 있을 뿐이었으니,
533
만일 박진이 죽었더라면 영남(嶺南)의 소식은 거의 끊어졌을 것이다.
534
그래서 상 또한 박진을 가상히 여기며 감탄하여 이르기를,
 
 
535
觀晉之所爲 (관진지소위)
536
直恐不免 (직공불면)
537
晉若死 (진약사)
538
國事去矣 (국사거의)
539
爲晉者 (위진자)
540
豈有死之道也 (기유사지도야)
541
當觀勢進退可也 (당관세진퇴가야)
542
晉無乃不量此勢而輕進耶 (진무내불량차세이경진야)
 
543
“박진의 행위를 보니
544
다만 죽음을 면치 못할까 염려된다.
545
박진이 만일 죽는다면
546
국사(國事)는 그만이다.
547
박진이
548
어찌 죽어야 한단 말인가.
549
의당 형편을 보아서 진퇴(進退)해야 하는데,
550
박진이 혹 이런 형편을 헤아리지 않고 함부로 진격하는 것이 아닌가?” 하였으니,
 
 
551
其愛惜之意 (기애석지의)
552
溢於言辭 (일어언사)
 
553
박진을 애석히 여기는 뜻이
554
이 말 속에 넘쳐흐른다.
 
 
555
卒能收拾道內將士 (졸능수습도내장사)
556
漸成陣形 (점성진형)
557
使一道氣脉 (사일도기맥)
558
旣絶而復蘇 (기절이부소)
559
人知賊之可擊者 (인지적지가격자)
560
晉之功也 (진지공야)
 
561
박진은 끝내 도내(道內)의 장사(將士)들을 수습하여
562
점차로 진영(陣營)의 모양을 이루어서
563
거의 끊어져 가는 온 도내의 기맥(氣脈)을
564
다시 소생시켰으니,
565
사람마다 적을 공격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566
박진의 공이었다.
 
 
567
權應銖 (권응수)
568
起於行伍 (기어행오)
569
未有遠名 (미유원명)
570
授晉節度 (수진절도)
571
能督卛鄕兵 (능독솔향병)
572
親冒矢石 (친모시석)
573
攻拔永川 (공발영천)
574
斬賊七百餘級 (참적칠백여급)
575
軍聲大振 (군성대진)
576
爲一道倡 (위일도창)
 
577
권응수(權應銖)는
578
항오(行伍) 사이에서 일어나
579
드러난 명성도 없이
580
박진의 절도(節度)를 받아서
581
능히 향병(鄕兵)을 독려하고 인솔하여
582
친히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583
영천(永川)을 공격하여 함락시켜서
584
적수(賊首) 7백여 급(級)을 베고 나니,
585
군성(軍聲)이 크게 떨쳐져서
586
한 도(道)의 수창자(首唱者)가 되었다.
 
 
587
安衛 (안위)
588
以一縣令 (이일현령)
589
受舜臣分付 (수순신분부)
590
以一大艦 (이일대함)
591
乘潮順風 (승조순풍)
592
突衝賊陣於鳴梁之口 (돌충적진어명량지구)
593
血戰益力 (혈전익력)
594
摧却賊船五百餘艘於碧波亭下 (최각적선오백여소어벽파정하)
595
使賊不敢復窺全羅右道 (사적불감부규전라우도)
596
而直衝於忠淸者 (이직충어충청자)
597
衛之力也 (위지력야)
 
598
안위(安衛)는
599
일개 현령(縣令)으로
600
이순신(李舜臣)의 분부를 받아
601
큰 전함(戰艦) 한 척을 가지고
602
조수(潮水)를 이용하여 바람이 부는 방향을 따라
603
명량(鳴梁)의 어귀에서 적진(賊陣)에 충돌한 다음
604
더욱 강력하게 혈전(血戰)을 벌이어
605
끝내 적선(賊船) 5백여 척을 벽파정(碧波亭) 밑에서 격파하여 물리쳤으니,
606
적들로 하여금 감히 다시 전라 우도(全羅右道)를 엿보아서
607
곧장 충청도(忠淸道)로 진격하지 못하게 한 것은
608
안위의 힘이었다.
 
 
609
當時微衛之捷 (당시미위지첩)
610
賊乘閑山之勝勢 (적승한산지승세)
611
將直犯忠淸 (장직범충청)
612
順海而上 (순해이상)
613
無人呵禁 (무인가금)
 
614
당시에 안위의 승첩(勝捷)이 아니었다면
615
적들이 한산(閑山)에서 승리한 기세를 타고
616
장차 충청도를 곧장 범하여
617
바다를 따라서 올라오더라도
618
이를 물리쳐 금할 사람이 전혀 없었을 것이다.
 
 
619
變後十年 (변후십년)
620
永川鳴梁之戰 (영천명량지전)
621
㝡稱快壯 (최칭쾌장)
622
而衛之事 (이위지사)
623
比應銖何啻萬倍 (비응수하시만배)
 
624
그래서 변란이 일어난 이후 10년 동안에
625
걸쳐 영천과 명량의 전투를
626
가장 장쾌(壯快)하다고 칭하는데,
627
그러나 안위의 일은
628
권응수의 일에 비하면 또 어찌 만 배만 더 장쾌할 뿐이겠는가.
 
 
629
李時言金應瑞高彦伯李光岳 (리시언금응서고언백리광악)
630
大小百餘戰 (대소백여전)
631
未甞挫折 (미상좌절)
632
汗馬之勞 (한마지로)
633
斬獲之多 (참획지다)
634
常爲諸將先 (상위제장선)
 
635
이시언(李時言), 김응서(金應瑞), 고언백(高彦伯), 이광악(李光岳)은
636
크고 작은 싸움을 백여 차례나 치르는 동안에
637
일찍이 좌절한 적이 없었고,
638
한마(汗馬)의 노고와
639
참획(斬獲)한 것이 많기로
640
항상 여러 장수의 선두가 되었다.
 
 
641
朴名賢韓明璉洪季男具滉李楠等 (박명현한명련홍계남구황리남등)
642
㝡稱驍雄 (최칭효웅)
643
一時諸將 (일시제장)
644
無敢比肩 (무감비견)
 
645
그리고 박명현(朴名賢), 한명련(韓明璉), 홍계남(洪季男), 구황(具滉), 이남(李楠) 등은
646
가장 굳세고 용감하다고 일컬어져서
647
한때 여러 장수들이
648
감히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자가 없었다.
 
 
649
至於臨陣披甲 (지어림진피갑)
650
皆以名賢等爲首 (개이명현등위수)
651
而從戎十年 (이종융십년)
652
皆未有大段樹立可指而名者 (개미유대단수립가지이명자)
653
豈非所遭之機有不同耶歟 (기비소조지기유불동야여)
 
654
진영에 임하여 갑옷을 착용함에 이르러서는
655
모두 박명현 등을 으뜸으로 삼았으나,
656
그들이 종군(從軍)한 지 10년 동안
657
모두 특별히 지명(指名)할만한 큰 공훈을 세운 것이 없으니,
658
이것이 어찌 조우(遭遇)의 기회가 사람마다 서로 다름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659
當大駕西廵 (당대가서순)
660
人之視西路爲死地 (인지시서로위사지)
661
咸以爲終必爲賊所躡 (함이위종필위적소섭)
662
至於窮蹙而同歸於糜爛也 (지어궁축이동귀어미란야)
 
663
대가(大駕)가 서쪽으로 순행하던 때를 당해서는
664
사람들이 서로(西路)를 죽을 땅으로 보아서
665
모두 ‘끝내 반드시 적에게 유린당하여
666
심지어는 극도로 궁지에 빠져 모두가 아주 피폐한 지경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라고 여겼다.
 
 
667
諸將莫肯西路 (제장막긍서로)
668
卛皆翺翔躑躅於京畿黃海之間 (솔개고상척촉어경기황해지간)
669
以爲前却之計 (이위전각지계)
 
670
그래서 여러 장수들이 서로로 가려고 하지 않고
671
모두 경기(京畿)와 황해(黃海)의 사이에서 그럭저럭 배회하다가
672
형편을 보아서 전진하거나 후퇴하려고 생각하였다.
 
 
673
及臨津之敗 (급림진지패)
674
各陣諸將 (각진제장)
675
一時潰散 (일시궤산)
676
各自逃生 (각자도생)
 
677
그러다가 임진(臨津)이 패하자
678
각진(各陣)의 여러 장수들이
679
일시에 궤멸하여 흩어져서
680
각기 스스로 도망하여 목숨을 보전하였다.
 
 
681
唯李薲自敗所 (유리薲자패소)
682
直入行在 (직입행재)
683
同守平壤 (동수평양)
 
684
그런데 오직 이빈(李薲)만은 패배한 곳으로부터
685
곧장 행재소로 들어가서
686
함께 평양(平壤)을 지켰다.
 
 
687
及平壤不守 (급평양불수)
688
皆以爲事無可爲 (개이위사무가위)
689
皆渡浿水而南 (개도패수이남)
690
至於文臣之有識者 (지어문신지유식자)
691
亦從而南歸 (역종이남귀)
 
692
급기야 평양이 함락되자
693
사람들은 모두 일을 어찌할 수가 없다 하여
694
다 대동강(大同江)을 건너서 남쪽으로 내려갔고,
695
심지어 식견 있는 문신(文臣)들
696
또한 그들을 따라서 남쪽으로 내려갔다.
 
 
697
薲又退還定州 (薲우퇴환정주)
698
收拾散兵 (수습산병)
699
復陣順安 (부진순안)
700
以爲遮遏之計 (이위차알지계)
 
701
그러나 이빈은 또 정주(定州)로 물러가서
702
흩어진 군졸들을 수합하여
703
다시 순안(順安)에 진(陣)을 치고
704
적을 차단할 계책을 세웠다.
 
 
705
行朝事急 (행조사급)
706
敎書羽飛 (교서우비)
707
日徵勤王 (일징근왕)
708
諸將疑畏 (제장의외)
709
無敢向西 (무감향서)
 
710
이때 행조(行朝)의 일이 급하여
711
교서(敎書)를 급급히 보내서
712
날로 여러 장수들을 근왕(勤王)하도록 불렀으나,
713
여러 장수들이 의심하고 두려워하여
714
감히 서쪽으로 가려는 자가 없었다.
 
 
715
或外托勤王 (혹외탁근왕)
716
領兵遡海 (령병소해)
717
尋見妾居 (심견첩거)
718
載與還歸者有之 (재여환귀자유지)
719
或下令軍中 (혹하령군중)
720
罷兵逃歸 (파병도귀)
721
以爲觀望之計 (이위관망지계)
722
見徵兵書 (견징병서)
723
對人冷笑者有之 (대인랭소자유지)
724
人心至此而極矣 (인심지차이극의)
 
725
그래서 혹은 겉으로 근왕한다 핑계하고
726
군대를 거느리고 바닷가로 내려가
727
첩(妾)이 사는 곳을 찾아 만나서
728
그를 말에 싣고 함께 돌아간 자도 있었고,
729
혹은 군중(軍中)에 명령을 내려
730
군대를 파하고 도망쳐 돌아가
731
관망(觀望)을 꾀하다가
732
징병(徵兵)하는 글을 보고는
733
다른 사람을 대하여 냉소(冷笑)하는 자도 있었으니,
734
인심이 여기에 이르러 극도에 달했던 것이다.
 
 
735
唯全羅兵使崔遠 (유전라병사최원)
736
卛所部西上 (솔소부서상)
737
軍情中道大變 (군정중도대변)
738
一日 (일일)
739
臨斬五十餘人 (림참오십여인)
740
以示必死之意 (이시필사지의)
 
741
그러나 오직 전라 병사(全羅兵使) 최원(崔遠)만은
742
자기 소속 부대를 인솔하고 서쪽으로 올라가는데,
743
군정(軍情)이 중도에서 크게 변하자,
744
하루는
745
자신이 지켜보는 앞에서 50여 인을 참수(斬首)하게 하여
746
필사(必死)의 뜻을 보였다.
 
 
747
終不可止 (종불가지)
748
則入據江華 (칙입거강화)
749
使軍不得逃 (사군불득도)
750
經年苦戍 (경년고수)
751
餓死相繼 (아사상계)
752
而終不變 (이종불변)
753
雖不能立功 (수불능립공)
754
其心亦足可嘉 (기심역족가가)
755
故吾常以爲亂後諸將 (고오상이위란후제장)
756
唯薲與遠 (유빈여원)
757
不失人臣之義也 (불실인신지의야)
 
758
그래도 끝내 금지할 수 없게 되자,
759
강화(江華)로 들어가 웅거하면서
760
군사들을 도망치지 못하게 하고
761
1년이 넘도록 애써 지키는 동안에
762
굶어죽은 자가 서로 잇달았으나
763
끝까지 마음을 변치 않았다.
764
그러므로 비록 공을 세우지는 못했으나
765
그 마음은 또한 충분히 가상하기 때문에
766
나는 항상 변란이 일어난 이후의 여러 장수들 중에는
767
오직 이빈과 최원만이
768
신하된 의리를 잃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원문】논난후제장공적(論亂後諸將功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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