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남원에 정생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퉁소를 잘 불렀고 노래도 잘했다. 의기가 호탕해서 사사로운 예절에 얽매이지 않는 반면 학문에는 게을렀다.
3
장가 들 때가 되어, 그는 같은 고을에 사는 양가의 규수 홍도라는 처녀에게 구혼했다. 두 집에서는 혼사를 정하고 날짜를 기다렸다.
4
그러나 홍도의 아버지는 달가와하지 않았다. 정생이 글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속으로는 거절하기로 작정하고 있는데...
5
홍도는 아버지의 결심을 전해 듣고 부모님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6
"혼사는 하늘이 정하는 것입니다. 이미 날짜까지 정했으니, 마땅히 처음에 정한 사람과 예식을 행할 일이지, 중도에서 배신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7
홍도의 아버지는 그 말에 느낀 바 있어, 드디어 정생과의 결혼을 허락했다.
8
다음해에 홍도는 아들을 낳았고, 몽석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9
만력 임진년에 왜란이 터졌다. 정생은 활쏘는 군사로써 종군하여 왜적을 막았다.
10
정유년이 되어 명나라 총병 양원이 남원을 지키게 되자, 정생은 성안에 있게 되어 아내 홍도는 남장을 하고 남편을 따랐다. 군중에서는 아무도 그녀가 여자인 줄을 몰랐다, 그 아들 몽석은 할아버지를 따라 지리산으로 들어가 피난하고 있었다.
11
마침내 성이 함락되었다. 정생은 총병을 따라 탈출에 성공하였으나, 혼란 중에 아내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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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아마 명나라 군사를 따라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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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생은 이렇게 생각하고, 역시 명나라 군사 속에 섞여서 이리저리 전전하다가 중국으로 들어갔다. 그의 모습은 거지나 다름이 없었다. 절강에까지 이르는 동안 줄곧 밥을 빌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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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면 아내를 찾을까 하고 방황하던 중, 하루는 명나라 군사의 도주와 함께 배를 타고 절강을 건너게 되었다. 많은 배가 왕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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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생은 뱃머리에 나와 달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겨 있다가 퉁소를 꺼내어 한 곡조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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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에서 달리던 다른 배에서 한 사람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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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퉁소 소리는 전날 조선에서 듣던 노래의 곡조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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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생은 이 소리를 듣고 부쩍 의심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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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가운데 내 처가 있는 게 아닐까. 내 처가 아니라면 어찌 이 곡조를 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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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생은 곧 옛날 아내와 함께 부르던 노래를 읊으면서 상대방의 반응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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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과연 손뼉을 치면서 큰 소리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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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생은 크게 놀라면서 즉시 작은 배를 내어 타고 그 배의 뒤를 좇으려고 하였으나, 명나라의 도주가 굳이 말리면서
24
"이 배는 남만의 상선이요, 게다가 왜인과 서로 섞여 있는 모양이니 당신이 간다면 이롭지 못할 것은 물론, 도리어 해가 있을 것이오. 내일 날이 밝으면 내가 선처해 줄 것이니 아직 참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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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날이 밝자, 집에서 부리는 하인들에게 돈 수십 냥을 주어 상선으로 가서 찾아오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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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고 온 사람은 과연 정생의 아내 홍도였다.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 안고 소리 내어 울었다. 뱃사람들도 모두 신기하게 여기면서 슬퍼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27
처음 남원성이 함락되었을 때, 홍도는 왜적에게 사로잡혀 일본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왜인들은 남장을 한 홍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장정으로 용역에 종사시켰었다. 이곳저곳을 전전하는 동안 몸이 팔려 마침내 상선에서 일하게 되었으나, 남자들이 하는 일을 서슴지 않고 해냈다. 여자인만큼 하지 못하는 일도 있었으나 다행히 키잡이를 잘하여 의심을 면할 수 있었다. 남만에서 절강으로 오게 된 것은 조선으로 나갈 길을 찾고자 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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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생은 아내 홍도와 더불어 정강 땅에서 우선 살림을 차렸다. 그 고장 사람들은 두 사람의 딱한 처지를 동정하여 은전과 곡식을 거두어 주어서 호구를 하게 되었다. 여기서 둘째 아들 몽진을 낳았다, 몽진의 나이 열 일곱이 되어 혼처를 구하게 되었으니 그가 조선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곳 사람들은 상대하려 하지를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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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님은 동쪽으로 출정하여 조선으로 나갔으나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분에게 시집가겠어요. 이분을 따라 조선으로 나가서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곳을 찾아서 초혼제라도 올리겠어요. 그리고 만일 아버님께서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혹시 다시 만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31
처녀는 몽진에게 시집을 왔고, 두 사람은 살림을 차렸다.
32
무오년. 북쪽에서 청나라가 일어나자 명나라에서 정벌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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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생은 군사로 뽑혀 유정의 군에 편입되어 적과 싸웠다. 싸움 끝에 유공이 죽자 오랑캐 군사들은 명나라 병사들을 남김 없이 섬멸시켰다. 위기에 처한 정생은 고함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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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국인이 아니라 조선 사람이오."
35
그래서 겨우 목숨이 풀려 죽음을 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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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로 정생은 조선으로 도망쳐 나왔다. 실로 20여 년 만에 밟아 보는 고국 땅. 남원으로 내려오는 길에 공홍도 이산현에 이르러 다리에 종기가 나서 침을 놓는 의원을 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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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기를 다스리는 사이에 침의와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침의가 명나라 군사로서 조선으로 나와 눌러 사는 중국인임을 알게 되었다. 명나라 군사가 철수할 때 낙오되었노라고 했다. 서로 통성명을 하였을 때 정생은 크게 놀랐다. 침의는 바로 둘째 아들 몽진의 장인되는 사람이 아닌가. 서로 연유를 묻고 이야기하면서 두 사람은 손을 잡고 통곡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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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생은 침의인 사돈과 함께 남원으로 돌아왔다. 옛날의 집을 찾았을 때, 그곳에는 큰 아들 몽석이가 이미 장가를 들어 자식까지 낳고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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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생에게는 아들을 만난 기쁨과 사돈을 만난 기쁨이 겹쳤으나 그것은 약간의 위로가 되었을 뿐, 만났다 헤어진 아내와 자식을 생각하면 기쁜 일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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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홍도는 살림살이를 전부 팔아 가지고 작은 배 한 척을 마련하여 절강을 떠났다. 아들과 며느리와 함께. 도중에서 위장하기 위하여 중국옷과 일본옷, 조선 사람이 입는 복장도 각기 마련하였다. 도중에서 중국인을 만나면 중국인 행세를 하고, 왜인을 만나면 왜인 행세를 하면서, 한 달 25일만에 제주도의 추자도 밖에 있는 가가도에 이르렀다. 남은 양식이라곤 겨우 여섯 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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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배 안에서 굶어 죽는다면 마침내는 고기 밥이 되고 말 게다. 고기 밥이 되느니 차라리 저 섬으로 올라가서 목을 매는 것이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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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식구가 쌀 한 홉을 가지고 죽을 끓여 먹는다면 하루는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섯 홉으로 엿새는 살 수 있지 않습니까? 또 동쪽을 보면 아득하지만 육지가 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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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식구는 자기들이 고국의 해협에 와 있는 줄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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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진의 모자는 새댁의 말을 따라 바다에서 닷새를 더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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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그날 통제사의 사수선이 그곳을 순행하다가 홍도 모자의 배를 발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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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는 사수선의 사공에게, 남원에서 남편과 헤어진 사정과 절강에서 다시 만나 살았던 일, 그리고 남편이 북벌에 나가 죽은 일 등 모든 사정을 하소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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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사람들은 불쌍히 여긴 나머지 홍도의 작은 배를 척후선의 배 꼬리에 달고 순천 땅으로 끌어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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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는 아들과 며느리를 데리고 마침내 남원의 옛 집으로 찾아왔다. 그 집에는 남편은 물론, 큰 아들 몽석과 또 며느리의 아버지 되는 중국인까지 함께 살고 있지 않은가. 온 집안이 한곳에 모였을 뿐만 아니라, 사돈까지도 무사하게 살아 있으니 그들의 기쁨이 어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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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생은 동쪽 나라 사람이다. 난리에 처를 잃고 멀리 중국으로까지 찾으러 나섰고, 홍도는 또한 지아비를 싸움터에서 잃고 세 나라를 전전하며 남복으로 변장하여 살았고, 또 그 아들 몽진의 처는 이국인과 결혼하여 그 아비가 죽은 땅을 찾아 나섰다가 마침내는 일가가 한곳에 모이게 되었다. 여섯 사람이 합친 것이 모두 만리 떨어진 풍랑 밖에서 이루어진 일이므로, 이 일은 보통의 상식을 넘어선 일이요, 생각 밖의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옛 글에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였으니 이를 두고 한 말일까, 기특하고도 기이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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