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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관백(關白)이 새롭게 옹립(擁立)되었을 때의 일이다. 새로운 관백은 저축(儲蓄)을 늘리고, 궁전과 관사(館舍)를 보수하고, 선박을 수리하고, 여러 섬을 나라에 복속시켰다. 뛰어난 선비, 무사, 책략가, 음교(淫巧), 그리고 서화(書畵)나 문학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을 도읍에 모아서 그 지닌 재주를 갈고 닦기를 완전히 끝낸 지 수년이 지났다. 그는 우리나라에 사신을 보내 줄 것을 간곡히 청하였는데, 마치 신하가 임금의 조명(詔命)을 기다리는 것처럼 공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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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朝廷)에서도 삼품(三品) 이하의 문신 중에서 엄선하여 삼사(三使)를 뽑아 보냈다. 그 수행원들도 모두 글을 잘하고 학식이 풍부한 사람들로서, 천문(天文)․지리(地理)․산수(算數)․복서(卜筮)․의술(醫術)․관상(觀相)․무력(武力) 등에 능한 사람에서부터, 퉁소를 잘 부는 사람, 거문고 잘 타는 사람, 해학(諧謔)을 잘하는 사람, 연극을 해서 웃기는 사람, 노래를 잘하는 사람, 술을 잘 마시는 사람, 장기와 바둑을 잘 두는 사람,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하는 사람 등 한 가지 기술로 나라에서 이름을 날리는 사람은 모두 따라가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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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문장이나 서화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일본인들은 조선 사람의 글을 한 자만 얻으면 양식을 가져가지 않아도 천 리를 다닐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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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사를 따라간 일행들이 거처하는 관사는 하나같이 푸른빛이 감도는 구리기와로 지붕을 덮고, 감문석(嵌文石)으로 층계를 쌓았다. 기둥과 난간은 붉은 옻칠을 했고, 휘장에는 화제(火齊)․말갈(靺鞨)․슬슬(瑟瑟)을 장식했고, 밥그릇도 금과 은을 도금한 화려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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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치스럽고 호사하고 진기하고 화려한 것들을 천릿길에 교묘하게 설치해 놓았으니, 포정(庖丁)이나 역부(驛夫)와 같은 비천한 사람들까지 평상에 걸터앉아 비자나무로 만든 통에 발을 담그고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아이들로 하여금 씻기게 하였다. 일본인들이 우리 사신을 겉으로 떠받드는 체하는 모양이 이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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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 통역들이 호랑이․표범․초서(貂鼠)의 가죽이나 인삼과 같은 교역을 금하고 있는 물건들을 몰래 아름다운 구슬이나 보도(寶刀)와 바꿔치며, 교활한 거간꾼의 흉내를 내어 탐욕스럽게 재물을 탐낼 때면 일본인들은 겉으로는 공경하는 체하지만 속으로는 문명국에서 온 사람에게 대한 앙모의 마음을 지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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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虞上)은 한어(漢語) 통역관으로 사신의 일행을 따라갔다. 그 홀로 문장으로써 일본에 이름을 크게 떨쳤으니, 그 나라의 이름있는 승려나 귀족들은 입을 모아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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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선생(虞我先生)이야말로 둘도 없는 국사(國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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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판(大坂) 동부에는 승려가 기생처럼 많고 사찰들은 여관처럼 많았다. 사람들은 우상에게 시문을 받기 위해 수전(繡箋)과 화축(花軸)을 평상이나 서안(書案)에 수북히 쌓아놓고, 도박이라도 하듯 서로 재촉했다. 대개 어려운 시제(詩題)나 맞추기 어려운 운(韻)을 불렀는데, 이는 우상을 궁지에 빠뜨리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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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은 매번 창졸간에 입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미 지어논 글을 외는 것처럼 차근차근했고, 운을 맞추는 것 또한 어색함이 없이 평탄하였다. 또한 자리를 마치고 사람들이 물러가도 피로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으며, 보잘것없는 문장 따위는 찾아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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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지은 ‘해람편(海覽篇)’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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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盤上)에 깔린 바둑알인가, 하늘에 놓인 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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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齊)나라 노(魯)나라 사람 겨드랑이 꿰맨 옷 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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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사는 여러 군상(群像)들 끼리끼리 모아 놓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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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산품이야 마땅히 등자(橙子)와 귤이겠지.
47
서각(犀角)은 물소의 머리에서 잘랐겠지.
53
추어(鰌魚) 꼬리는 깃발들처럼 이어져 있네.
62
홀연 변하면 세상을 물들이는 염료가 되어
64
홀연 변하면 모든 것을 녹이는 도가니가 되어
68
물풀 속 사선(蛇鱓)은 마갑주(馬甲柱)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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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상하고 방자함 숨기니 그 모습 흐릿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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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차한 이익 위해 물여우처럼 사람을 쏘고
79
살생을 즐기는 주제에 부처에게는 아첨하는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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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고 읊는다마는 올빼미 우는 것 같아.
85
통역하는 사람 또한 다 알아들을 재주 없네.
89
역생(酈生)은 항아리 바닥의 멸몽(蠛蠓).
91
형용키 어려우니 도설(圖說)로나 그려 볼까.
101
속국(屬國)으로 맺은 평화 다시는 잃지 말게.”
102
우상이야말로, 어찌 이른바 나라의 명예를 빛낸 사람이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103
신종(神宗) 만력(萬曆) 임진년(壬辰年)에 왜인 수길(秀吉)이 은밀히 군사를 내어 우리나라를 침범하였다. 삼도를 짓밟고 우리 동포들의 코를 베어 욕보였으며 척촉(躑躅)과 동백(冬柏)을 삼한(三韓)에 옮겨 심었다.
104
우리의 소경대왕(昭敬大王)께서는 왜병을 피하여 용만(龍灣)까지 올라가셔서 중국의 천자께 그 사실을 말씀드리셨다. 천자께서는 크게 놀라시어 천하의 병사들을 모아 동방을 구원케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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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군 이여송(李如松), 제독 진린(陣璘)을 비롯하여 마귀(麻貴)․유정(劉綎)․양원(楊元) 등에게는 옛 명장의 풍도(風道)가 있었고, 어사 양호(楊鎬)․만세덕(萬世德)․형개(邢玠) 등은 그 재주가 문무를 겸비하여 귀신도 놀랄 지경이었다. 그 병사들은 모두 진(秦)․봉(鳳)․섬(陝)․절(浙)․운(雲)․등(登)․귀(貴)․래(萊) 등지의 장정들로서,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쏘았다. 대장군의 가동(家僮) 천 명 중에서 유(幽)나 계(薊) 같은 검객도 있었다. 그러나 왜병들과 더불어 호적수를 이루는 정도밖에는 되지 않아, 가까스로 왜적들을 나라 밖으로 몰아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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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수백 년 사이 사신들의 행차가 여러 차례 강호(江戶)에 이르렀지만, 일본인들이 체모(體貌)를 삼가고 사신의 대접에 엄중하였기 때문에 그 풍습․문화․인물․험새(險塞)․강약 등의 정세에 대해선 마침내 털끝만치도 알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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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우상은 그 힘이 부드러운 털 하나도 이기지 못할 듯이 약해 보인다. 하지만 그 지니고 있는 정화를 뽑으면, 만 리나 떨어진 섬나라 도읍의 나무를 말라죽게 하고 강물이 바닥나게 만든 것이다. 그야말로 ‘붓으로써 산과 강을 뽑았다.’라고 하더라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108
우상의 이름은 상조(湘藻)였다. 그는 일찍이 자신의 초상화에 쓰기를,
109
“공봉(供奉) 백(白)과 업후(鄴侯) 필(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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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괴(鐵拐)를 합해 창기(滄起)가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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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하였으니, 이(李)는 그의 성이요, 창기(滄起)는 그의 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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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선비라 함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면 뜻을 펼칠 수 있지만,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뜻을 굽힐 수밖에 없다. 교청(鵁鶄)이나 계칙(鸂鶒)은 날짐승 중에서도 보잘것없는 족속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깃털을 사랑하여 물 위의 그림자를 비춰보며 뒤를 돌아본 후에야 모여든다. 사람에게는 문장(文章)이 있으니, 어찌 깃털의 아름다움 따위가 미칠소냐.
115
옛날 경경(慶卿)이 야밤에 검술을 논할 때 합섭은 노하여 눈을 부릅떴다. 고점리(高漸離)가 축(筑)을 연주할 때에 형가는 화답하여 노래를 하다가 이윽고 서로 울기를, 마치 주위에 아무런 사람이 없듯이 하였다. 본디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다시 울게 마련이니 이것은 무슨 까닭일까? 마음이 격동하여 슬픔이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으니, 비록 그들에게 직접 묻는다 한들 역시 스스로 어떤 마음으로 그리 되었는지 모를 것이다. 사람이 문장으로 서로의 고하를 가리는 것은 어찌 구구한 검사(劍士)들의 한가지 기술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116
우상은 불우한 자이다. 그의 말은 어찌 이리도 많은 슬픔을 담고 있었을까?
117
“닭 머리에 이고 있는 벼슬은 높다란 머리싸개 같고,
118
소 목에 늘어진 멱살은 큼직한 자루 같네.
120
놀랍고도 놀랍구나, 저 탁타(橐駝) 불룩한 등.”
122
우상은 병이 생겨 죽음이 임박했을 때 그가 지은 글들을 남김없이 불사르며 말하기를,
124
라고 하였다. 그 뜻이 어찌 슬프지 않다고 하리요.
126
“재주는 얻기 어렵다더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관중(管仲)의 그릇은 작기도 하구나.”
132
라고 하였다. 대개 남들에게 아름답다고 칭송받는 것은 작은 것이다. 그러므로 덕은 그릇이며 재예(才藝)는 그 안에 담기는 물건과 같다.
137
“정(鼎) 다리가 부러지니 그 안의 음식이 엎어지네.”
139
덕만 있고 재주가 없다면 그 덕이란 빈 그릇과 같은 것이며, 재주만 있고 덕이 없다면 그 재주를 담을 곳이 없는 것이며, 그 그릇이 얕다면 넘치기 쉬운 것이다. 인간이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여 삼재(三才)를 이루었으니 귀신이 재주라면 천지는 커다란 그릇이 된다. 저 지나치게 고결한 척하는 자는 복이 붙을 여유가 없으며, 정상(情狀) 헤아리기에 능한 자에게는 사람이 붙으려 하지 않는 법이다.
140
문장이란 것은 천하의 지극한 보물이다. 확연히 드러나는 중추(中樞)로 쌓인 정화(精華)를 발휘하며, 형체가 없는 곳에 감추어진 그윽함을 찾는 것이다. 음양을 누설하면 귀신이 노할 것이다. 나무가 재(才 : 材木)로서의 가치가 있다면 사람은 그것을 베려한다. 자개가 재(才 : 財貨)로서의 가치가 있다면 사람은 그것을 빼앗으려 한다. 그러므로 ‘재(才)’라는 글자는 안을 향해 삐침이 있을 뿐, 바깥을 향해 날림은 없는 것이다.
141
우상은 일개 통역관에 불과하다. 나라 안에 있을 때에는 명예가 마을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행세깨나 하는 사람들이 그의 얼굴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해외 만 리나 떨어진 나라에서 그 이름을 떨쳐 빛낸 것이다. 그 몸은 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곤경룡타(鯤鯨龍鼉)의 집으로 이끌려 다녔다. 그 손은 해와 달을 윤택하게 만들고, 그 기상은 무지개와 신기루처럼 사방을 덮은 것이다. 옛말에 이르기를 ‘간직함을 게을리함은 도적을 가르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물고기는 연못을 떠나서는 안 되는 법이고 이기(利器)는 사람에게 내보이면 안 되는 법이다. 어찌 경계할 일이 아니겠는가. 그가 지은 ‘승본해(勝本海)’라는 시를 살펴보자.
143
오리 같은 옷 등짝엔 별․달을 그렸다네.
144
색동옷 오랑캐 여인 문 밖으로 뛰어가는데
145
빗질 채 마치지 않았는지 머리카락 뭉쳤다네.
146
아이 울어 목이 쉬니 유모는 젖 먹이고
148
잠시 북을 치자 관인(官人)이 나타나니
149
많은 사람들 둘러싸길 활불(活佛)이라도 온 듯하네.
150
오랑캐 벼슬아치 모배(膜拜)하고 침신(琛賮) 바치니
151
산호와 큰 패물이 쟁반 위에 올려 있네.
152
진실로 서로가 벙어리라 손님 주인 대충 앉아
153
눈치로 대화하니 붓에도 혀가 있는 격.
154
오랑캐 관아에도 정원 가꾸는 취미 있어
155
병려(栟櫚)와 파란 귤 뜰 안에 심어져 있네.”
156
배 안에서 치질(痔疾)에 걸렸을 때, 누운 채 매남노사(梅南老師)의 말을 생각하고 지은 시는 다음과 같다.
157
“선니(宣尼)의 도(道)와 마니(麻尼)의 교(敎)
159
일찍이 서양 사람 오인도(五印度)에 이르렀으니
164
생명을 잡혔으니 인율(人律)을 기만한 죄라.
165
독기 품은 불꽃은 진단(震旦) 동쪽까지 미쳤으니
166
수많은 절들이 고을마다 늘어설 수밖에.
167
경박스런 섬주민들 화복(禍福)을 두려워해
168
향불 사르고 공양미 바침이 쉴 새도 없다네.
170
그 부모 돌보는 격이니 이 어찌 말이 되랴.
171
육경(六經)은 하늘에서만 문명(文明)을 이루니
173
해뜨는 곳과 해지는 곳이 이치 다를 리 없을지니
174
이치를 따르면 성인이요 거스르면 도올(檮杌)이라.
176
한 수 시를 지어 금구목설(金口木舌)을 이루려네.”
177
이 시들은 모두 세상에 널리 전할 만한 것들이다. 급기야는, ‘갈 적에 한번 지나친 곳으로 다시 돌아오니, 지은 시들이 모두 이미 판목(版木)에 새겨져 있었다.’라는 말이 나올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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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상과 더불어 삶을 살았지만 직접 대면하지는 못했다. 우상이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 지은 시를 보이면서,
179
“오직 이 사람만이 나를 알아줄 수 있다.”
180
라고 하였지만, 나는 심부름꾼에게 장난삼아 말하기를,
181
“이것은 오(吳) 땅 녀석의 가는 침이군. 너무 자질구레한 것이 진품(珍品)이라고 하기엔 부족해.”
183
“미친 놈이 사람의 성질을 돋우는구나.”
184
라고 하였지만, 이윽고 탄식하며 말하기를,
185
“내 어찌 이 세상에서 오래 지탱할 수 있겠는가.”
186
라고 하며 두 줄기 눈물을 흘렸다. 나 역시 이 말을 전해 듣고 슬픈 마음이 들었다.
187
이미 우상은 죽었다. 그의 나이 이십칠 세였다. 집안 사람의 꿈에 술에 취한 선인(仙人)이 검은 구름이 드리운 곳에 푸른 고래를 타고 가는데, 우상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그 뒤를 따르더니, 이윽고 그가 죽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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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슬프도다! 나는 일찍부터 마음속에 홀로 그의 재주를 사랑하였지만, 몇 마디 말로써 그의 기운을 꺾은 것이다. 우상은 아직 젊으니 겸손으로써 도를 따른다면 훌륭한 글을 남겨 세상에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하니 우상은 필시 ‘나의 재주로는 그를 만족시킬 수 없다.’고 여겼던 것 같다.
191
어떤 사람이 우상을 위한 만사(輓辭)를 지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5
깜짝 놀라 일어서니 간 곳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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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상을 만나보지 못한 것을 항상 한으로 여겼다. 그의 문장은 이미 그의 손에 불살라져 남겨진 것이 없으니, 세상에선 더욱 그를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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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상자 안의 오래 된 글들을 꺼내어 그가 일전에 보여준 글 몇 편을 찾을 수 있었다. 이것들을 모두 옮김으로써 우상에 관한 전기(傳記)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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