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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 전집 간행의 사회적 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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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9.5~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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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전집 간행의 사회적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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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리사의 발행으로 춘원 이광수 씨의 전집이 계획되어 홍명희, 한용운씨 등 열두 분의 편집으로 그의 제1회 배본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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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의 신문학 있은 이래 문학자의 전집 간행은 이것이 처음이매 광고 선전문에 인용된 각계 명사와 문호 제위의 말씀을 기다릴 것도 없이 조선의 문학계를 위하여서나 또한 출판계를 위하여서나 한가지로 경하하여 마지않을 바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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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계획이 신문학 생긴 이래 초유사이고 또한 출판계에 있어서도 용단을 요하는 쾌사이어서 그가 기여하는 바 의의는 외국이나 일본 내지의 그것과 비할 수 없을 만치 큰 것이 있음으로 과장적인 미사여구만을 가지고 이것을 대할 수 없을 것이니 단순한 열광적인 찬양사의 뒤에 있는 것은 혹은 뒤에 올 것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바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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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면 우리들이 지금 겪어 나가면서 있는 사회적 문학적 정세 속에서 이 전집 간행이 갖는 바 사회적 의의를 객관적으로 구명하여 이를 각계 명사의 ‘나팔’ 소리 뒤에 있는 것이 무엇이며 12문호의 편집 방침이 기도하고 있는 목적의 사회적 성격은 무엇인가 - 통틀어 이광수 전집 간행의 사회적 의의를 명확히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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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외람되나마 이곳에서 이에 대한 약간의 시감을 적는 소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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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곳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나 춘원 문학의 역사적 가치를 규정하여 보자는 것도 아니요, 또한 그의 작품을 일일이 음미하여 보자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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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업은 필자의 천식과 비재의 탓만이 아니라 준비와 자료에 있어서의 미력의 관계로 지금의 나로서는 태반 불가능에 속하는 일이어서 이곳에서는 이 전집 간행이 갖는 사회적 계급적 의의만을 약간 이야기하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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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인 이광수씨는 이 전집 간행에 제(際)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지극히 미소를 가지게 하는 선언을 발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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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사람을 향하여 내 속을 호소하느라고 소설과 노래와 평론을 씁니다. 나는 세계적으로 칭찬을 받는 소설가나 평론가라는 말 듣기를 위하는 마음은 터럭끝만큼도 없습니다. 내 소원은 오직 조선사람들이 내 쓰는 글을 읽어주어서 내가 하려는 말을 또 뜻을 알아 들어주었으면 하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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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리』8월호 광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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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칭찬을 받는 소설가나 평론가 운운은 광고문인 성질상 반드시 씌어져야 할 문구인지는 모르나 사십의 고개를 훨씬 넘으신 대사상가의 입에서도 또한 이런 치기스러운 자존심과 명예욕에서 해탈치 못한 말이 나오는가 하여 장백산인의 일사일언에 흔히 듣는 설교와는 천양의 감이 없지 않다. 더구나 세계적인 소설가가 되겠다는 것을 희망하였다면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청년적 기상을 가상타 할 것이나 언구의 표면과는 반대되는 내용을 교묘히 돌려 꾸며놓은 기술을 역시 대가의 솜씨라고 우리들 약관으로 하여금 오직 경탄을 마지않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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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모두에서 말한 바 소설과 평론을 쓰는 목적을 조선사람 2천만 동포를 향하여 자기의 사상(속)을 선전(호소)하기 위함이라고 당당히 선언한 것 역시 지난 날 예술과 정치와의 관계를 절리(切離)시키기 위하야 가증한 ‘프로 문학’을 그렇게 공격하고 심지어는 ‘예술은 재주외다’ 하고 말하던 것과는 격세의 감이 없지 아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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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가리켜 춘원에 있어서의 사상상 진전이라고 해석할 것인지 또는 단지 예의 수단에 의하여 책을 많이 팔자는 방책으로 또 한 번 ‘조선사람’을 팔아보자는 의도로 볼 것인지는 알 수 없으되 아마도, 이것이 최근 정치적 모책(謀策)에 있어서 비상한 활기를 띤 이광수씨의 능하여진 수법의 일단인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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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일보』, 1935년 9월 5일, ‘문예시감(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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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작가는 다시 자기 문학의 공과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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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년 동안에 나 자신이 한 일 쓴 글을 돌아보면 비록 죄된다고 생각되는 것까지는 별로 없다 하더라도 부끄러움과 기막힘이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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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과 기막힘이 무엇으로 인함인지는 모르지만 죄 되고 안 되다는 것은 결국 이광수씨가 항상 자도 깨도 잊지 못한다는 조선의 2천만 ‘민족’의 생활을 그의 예술이 정당히 반영하였는가 또는 이른바 이광수씨의 ‘속’을 ‘민족’에게 ‘호소’함에 ‘민족’을 향상의 길로 이끌기 위하여서였던가 혹은 ‘조선사람’이 역사적인 움직임을 따라 정당한 길을 밟으려 할 때 그들의 수레의 바퀴를 거꾸로 밀려고 하지는 않았던가 등등의 엄밀한 문학사적 내지는 사상사적 평가를 단정하자는 의사이니 이에 있어서 이광수 씨 자신이 ‘죄된다고 생각되는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하든 안 하든 이미 냉정한 ‘역사’는 이광수 씨의 예술과 인간적 내지는 정치적 행동에 결정적인 단안을 내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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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리는 춘원 문학이 조선 신문학의 초창기에 있어서 언어예술의 황무지를 닦아준 공로와 또한 부르주아적인 진보적인 사상이 봉건적인 낡은 인습타파에 공헌한 바라든가 대부분 자유연애를 통하여서이지만 그 시대의 조선적인 객관적 진실을 어느 정도까지 반영해 준 예술적인 공적에 대하여 결코 무심하려는 자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그의 초기작품 예컨대 「무정」과 「개척자」등등을 그 시대에 있어서 진보적인 역할을 다한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것을 낳게 한 시대적 환경의 엄정한 분석 다시 말하면 15년대로부터 20년대의 시대적 제약성이 동시에 춘원 문학의 제약성이라고 이해하는 데서 오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그대로 35년대인 지금에서 본다면 역사적 의의밖에는 가기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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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조선사람의 생활이 역사적인 움직임을 따라 20년대의 시대적 제약을 뿌리치고 새로운 한○를 내놓으며 지난 날의 모든 것에 대하여 비판자로서 다시금 등장할 때에 춘원 문학은 그의 쌍과 함께 시대적 민중생활의 전면으로부터 미끄러져서 이미 조선 청년의 마음을 떠났고 계급 분열 격동 속에서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는 ‘조선의 얼’을 붙들고 「민족개조론」을 세상에 권하게 되었으니 이 때에 벌써 춘원 문학의 진보성은 조종을 울린 것이며 그의 문학과 그의 아류들의 문학은 동인, 상섭, 빙허의 자연주의 문학을 거쳐서 23, 4년 신경향파에게 유산을 상속하고 그 후로부터의 그의 문학적 사상적 업적은 거개가 역사의 바퀴를 후퇴에로 이끌려는 노력에 의하여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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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근년에 이르러서는 「혁명가의 아내」와 「흙」등의 작품에서 새로운 민중의 움직임에 대하여 쉐파트와 같이 고약스럽게 발악하는 한편 「단종애사」와 「이순신」등에서 국수열을 고취하기에 여념이 없었으니 이광수 씨가 선전문 속에서 ‘죄가 없노라’고 한 것은 우리들 젊은 사람들로 하여금 고소를 금치 못하게 하는 바 없지 아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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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춘원 문학에 대한 문학적인 평가가 이러하매 그의 전집 간행의 가부 등은 스스로 논해 (論解)의 피안에 있을 것이니 춘원의 전집을 간행함은 지극히 좋은 것이로되 그의 편집방침이 춘원 문학의 시대성을 정당히 파악하지 않아서는 안 되리라는 것이 우리들의 주장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전집의 편집방침의 밑을 흐르고 있는 사상이 무엇인가. 춘원 문학을 역사적으로 정당히 파악한 과학적 입장에서 편집은 시행되었는가 혹은 이것 역시 시대적 동향의 차륜을 뒤로 이끌려는 기도에 의하여 고려되었는가 하는 것의 관찰에서 이 전집 간행의 사회적 의의는 자신의 결정을 찾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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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집 10권의 내용에서 보는 바이지만 우리는 이 내용의 발표에 의하여서는 하나도 정당한 과학적인 태도를 간취할 길이 없으니 문학사적으로 가치 있다고 인정되는 「무정」과 「개척자」「재생」등등은 미간행물을 제1기로 출판한다는 이유에 의하여 배제되고 「민족개조론」등이 제1권으로 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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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일보』, 1935년 9월 6일, ‘문예시감(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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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만 미간행물이라고 하는 「민족개조론」이 미간행물이 아니고 제6권에 들어 있는 「혁명가의 아내」도 이미 단행본으로 되어 수백 부가 매진된 것일뿐더러 제5권의 단편집에서도 「가실」등이 이내 발간된 것이요 기타에도 처처에서 이미 출판된 자가 들어 있음을 보게 되나니 제1기로 미간행물을 발간하노라는 이유는 편집방침의 기본을 흐르고 있는 비과학적 태도를 변명할 이유로는 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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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민족개조론」등 발표 당시에 굉장한 물의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맹목적으로 이광수 씨를 앙모(仰慕)하던 일부 청년들에게 우심(尤甚)한 그릇된 영향을 준 것이니 그것을 지금 다시 제1권으로서 출판하고자 하는 것은 ‘비상한 현재의 시기’를 틈타서 다시금 ‘조선의 얼’을 가미한 개량주의적 사상을 세상에 산포(散布)하자는 심사로밖에 이해할 길이 없으매 이 전집의 편집방침의 기본을 흐르고 있는 의도를 단지 상략적(商略的)인 영리책에서 나온 것이라고만 호의적으로 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시 이것을 편집위원으로도 되어 있는 문호 제위들과 각계의 명사들의 군악 소리와 또한 현금의 사회적 문학적인 옹색한 사정과 이밖에 이광수 씨 자신의 선전문 또는 전지구 떼어리누를 도도히 흐르고 있는 파쇼적 탁류와 연결시켜 생각해 볼 때에는 이 편집방침의 기도하는 바 본의가 나변에 있는가는 스스로 맹백한 것이라 아니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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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이광수씨가 말하는 바 이미 지난날에 한 일 쓴 글이 ‘죄 되지 않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지금 다시 전집을 간행하는 의도와 행동까지를 ‘죄 된 것’으로 단정하여야 할 결론에 도달하게 되나니 이 전집 간행의 사회적 의의는 이곳에서 스스로의 제단(制斷)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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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우리들이 이 편집방침에서 보는 바는 이 전집 간행(이) 조선의 문화재를 정당한 추의에 의하여 늘리는 것이 아니라 흥사단적인 ‘고린’ 사상을 민중 속에 전파하자는 심사이니 이 간행의 사회적 의의는 ‘조선 사람’의 생활 목표를 그의 전면에다 설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 후방에 다 옮기자는 ‘비상시 풍경’의 일현상인 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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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백골을 땅 속에서 들추어서 그것을 혀끝으로 핥는 사람, 단군을 백두산 밀림 속에서 찾아다가 사당간에 모시는 사람, 정다산을 하수구 속에서 찬양하는 사람, 장백산맥과 한라산의 울울한 산 속에서 ‘조선 반만년일’을 져다가 소독수처럼 뿌리는 사람, 춘원 문학과 그의 사상을 「민족개조론」에서 다시 찾는 사람 - 이리하여 일찍이 괴테를 바이마르의 속물에서 헤겔을 국가론에서 찬미하기를 비롯한 독일 나치스의 창안은 이 곳 이 땅에서 그의 무수한 동지와 모방자를 발견하고 있다. 더구나 삼천리사는 그의 설립의 시초부터 이것을 그의 기본적 임무로 한 것이며 자기의 사상과 또한 영리적인 창자를 불리기 위하여는 여하한 비열한 수단도 가리지 않는 것을 상투로 하는 자로서 이미 수개의 출판물이 이것을 증명하고 있거니와 이번 전집 간행에서도 듣자하니 12 편집위원 중에는 아무 승낙도 또한 외합해 본 일도 없다는 분이 많고 각계 명사의 축언에도 수차 거절하매 자기가 마음대로 만들어서 아무 통지도 없이 광고문에 이용한 것까지 있다 하니 이러한 비양심적인 출판사에게서 문화적인 기대를 가진다는 것은 오히려 이 편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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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일보』, 1935년 9월 7일, ‘문예시감(7)’]
【원문】이광수 전집 간행의 사회적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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