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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4 ~ 1656]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호는 신독재(愼獨齋)이고,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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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기순
(1 ~ 4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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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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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돈암서원은 1634년(인조 12)에 창건되었으며, 사계 김장생(金長生,1548~1631)과 그의 아들 김집(金集,1574~1656)의 문하에서 동춘당 송준길(宋浚吉,1606~1672), 우암 송시열(宋時烈,1607~1689)을 비롯하여 이유태, 유계, 윤원거, 윤문거, 윤선거 등 수많은 명유(名儒)들을 배출하였다. 이들의 활동으로 돈암서원은 호서지역의 사림과 예학의 산실이자 본거지로서 17세기 동안 충청도 서인계의 으뜸 서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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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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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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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돈암서원은 1634년(인조 12)에 창건되었으며, 사계 김장생(金長生,1548~1631)과 그의 아들 김집(金集,1574~1656)의 문하에서 동춘당 송준길(宋浚吉,1606~1672), 우암 송시열(宋時烈,1607~1689)을 비롯하여 이유태, 유계, 윤원거, 윤문거, 윤선거 등 수많은 명유(名儒)들을 배출하였다. 이들의 활동으로 돈암서원은 호서지역의 사림과 예학의 산실이자 본거지로서 17세기 동안 충청도 서인계의 으뜸 서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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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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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4 ~ 1656]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호는 신독재(愼獨齋)이고,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1610년(광해군 2년)에 재랑이 되었으나 광해군의 문란한 정치를 보고 관직을 사퇴하여 아버지 장생(長生)을 모시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인조 반정 후 다시 등용되어 공조의 참의 등을 지내고, 효종이 즉위한 뒤 이조 판서가 되어 효종과 함께 북벌을 계획하였다. 이 때 실각한 김자점이 이 계획을 청나라에 밀고하여 사태 가 시끄럽게 되었으므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만년에는 예학을 대성하여, 그의 아버지와 더불어 예학의 기본적 체계를 완성시켰다.
저서에 《신독재유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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