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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남동쪽 약 80km의 해상에 있는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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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지역 > 한국
울릉도 남동쪽 약 80km의 해상에 있는 섬. 동경 131°52′22″, 북위 37°14′18″에 자리잡고 있다.
울릉도에 딸린 화산도로서 동도, 서도와 그 주변에 흩어져 있는 수십 개의 암초로 이루어져 있다.
기본현황
행정구역상으로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1∼37번지(37필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표상의 위치로는 『북위 37도 14분 동경 131도 52분』에 자리잡고 있다.
면적은 총 0.18㎢(54,450평)이며 東島는 0.07㎢(21,175평) 높이 98m이고 西島는 0.11㎢(33,275평) 높이 168m이다.
인구는 경찰경비대 등 44명이 현재 거주하고 있으며 호적등재는 155가구 545명(2001.2.26현재)이 등재되어 있다.
주요 시설물로는 동도에는 회전등대 1기와 접안시설 234평, 등산로 1160m, 헬기장, 케이블카 1식 300m, 경비대 막사 및 부속건물 등 9동, 한국령 및 태극기 표시 구조물, 위령비, 담수화시설 1식, 식품저장시설 1기, 발전기 1식 등이 있으며, 서도에는 독도 어민숙소 1동(2층 36평)이 있다.
동도는 화산암질 안산암, 서도는 안산암, 현무암 으로 이루어진 응회암으로 되어 있는데, 동도에는 분화구 흔적이 있다. 바닷물에 깎여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장관을 이루는데, 바위 틈에서 약간의 잡초가 자랄 뿐 한 그루의 나무도 없고, 또 집을 지을 만한 평지도 없다.
자원으로는 동식물 20여종(괭이갈매기, 바다제비, 왕거미풀, 소피쟁이풀, 비쑥, 김외털, 왕초장 등)의 자연자원이 있으며, 수산자원으로는 전복, 소라, 해삼, 문어, 미역 등이 있다. 기온은 연평균 14.3℃이며 강우량은 연평균 1,300㎜이다.
이 섬 주변에 가제(강치)가 살고 있어서 1794년(정종 18년)경부터 가지도(可支島)라 불리다가, 1881년(고종 18년)경부터 독도로 이름을 고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역사적 배경
1952년 1월 28일에 일본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섰지만, 독도는 1945년에 우리 나라의 광복과 더불어 회복된 엄연한 우리의 영토인 것이다. 1952년 1월 18일에 포고한 ‘인접 해양 주권에 대한 대통령 선언’에서 정부는 독도를 포함한 우리 영토의 한계를 명백히 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신라 지증왕 13년(512년)에 于山國(현 울릉·동도)이 우리나라에 귀속(삼국사기 기록)되었고, 《 세종실록지리지》 《 동국여지승람》 《 성종실록》 《 숙종실록》 등에 조선 초기부터 우산도(于山島) 또는 삼봉도(三峯島)로 불리면서 울릉도와 함께 강원도 울진현에 딸리어 있었다.
특히 17세기에 한·일 간에 울릉도 영유 문제가 야기되었을 때는, 안용복 일행의 외교 활동으로 1696년(숙종 22년)에 일본으로 하여금 울릉도와 함께 독도가 우리 나라 영토임을 인정하게 하였다.
1809년 일본제작 지도에 동해를 조선해로 獨島를 于山島로 표기하고 있어 우리나라영토임을 명시하였으며, 1900.10.25(광무4년) 관보 제1706호 칙령 제41호에는 現 울릉군 관할구역을 울릉 全島와 竹島, 石島(獨島)로 한다고 공식 명문화 되어 있다. 1906년에는 울릉군수가 "本郡 소속 獨島"라는 명칭을 사용하였으며, 1952년 「이승만 라인」(국무원고시 14호)으로 獨島主權宣言을 하였다.
지리적으로도 우리 영토의 최동단에 위치하여 일본과 인접해 있으나 거리상 한국측에 가깝다. 육지로는 울진군 죽변면에서 216㎞이고 일본 시마네현에서 226㎞이며, 근접섬으로는 울릉도에서 92㎞이고 일본 오끼섬에서 178㎞이다.
국제법상으로도 1946년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훈령(SCAPIN) 제677호(맥아더 라인)에 일본 통치구역을 本州와 그 인접도서로만 국한하고 독도, 울릉도, 제주도는 명시적으로 제외하여 독도의 한국영토임을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
獨島 入島承認問題
현재 문화재청이 자연보호, 환경보호 등의 측면에서 入島를 제한하고 있는 섬은 10여개에 달하고 있다. 환경부도 독도를 포함한 48개 섬을 특정도서로 지정하여 입도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독도도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제33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독도입도승인은 문화재청의 독도관리지침에 근거하며 국가행정목적 수행, 학술연구조사, 어민피항 및 조업준비 등 특별한 경우 이외는 입도를 제한하고 있는데 문화재청과 협의후 도지사의 승인을 득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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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전문
(인기순, 1~10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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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 원문/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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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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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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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세종실록지리지 - 강원도 > 울진현】본래 고구려의 우진야현(于珍也縣)인데, 신라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서 군(郡)으로 하였고, 고려에서 울진현이라 일컬었으며, 본조에서도 그대로 따랐다. (현의 사람들이 전하기를, “옛 이름은 半伊郡, 또는 仙槎郡이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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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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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제가 2005년부터 14년 독도를 매년 들어가서 독도 주민 김성도 이장 댁에서 약 70여 일간 채류, 계절별로 독도를 조사하면서 독도에 새겨진 암각 글자를 보면서 누가 언제 왜 이런 글을 많이 남겼을까. 궁금하여 늘 무거운 짐처럼 의문을 가지고 현지 조사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최근 독도의 암각 글자 분석과 영토 인식이란 글을 서투른 글솜씨로 완성하여 한국지도 학회지 제17권 제3호(2017년 12월 31일)에 단보로 게재하여 발표하였습니다. 독도에 많은 사람이 살면서 여러 가지 글을 남겨졌다는 것이 영토 인식에 중요한 점이었습니다. 이제 짐을 하나 벗은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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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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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17회 동해왕 이사부 항로탐사 (11)- 독도의용수비대의 생명수 물골
독도의용수비대가 독도를 수호하면서 힘든 것은 물을 구하고 땔감을 구하는 일이었다. 땔감은 울릉도에서 운송했다. 물은 독도의 서도 물골에 있어 이곳에서 식수를 해결했다. 1954년에 주둔지를 동도 정상으로 옮겨와 물골에서 물을 길어 정상으로 오르는 것은 엄청난 고생이었다. 그러나 바다 날씨가 나빠지면 이마저 힘들어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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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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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17회 동해왕 이사부 항로탐사 (12) -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
독도의용수비대는 독도에서 영토를 수호하려고 배 1척 삼사선호와 전마선 3척을 보유했다. 그러나 바다 날씨가 태풍으로 여러 날 안 좋아 울릉도에서 원활하게 추진되던 식량이 다 떨어지면 굶기도 하였다. 1955년에 의용수비대원들이 식량 부족으로 10일씩이나 굶어 아사 직전이라는 보고를 접한 해경은 독도에 있는 의용수비대원들에게 식량을 전하려고 배 3척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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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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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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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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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17회 동해왕 이사부 항로탐사 (15) - 독도의용수비대와 비둘기 3
일본 교토대 학사산악회(AACK)는 1931년에 창설되었다. 대학산악회에서 조선의 백두산 동계 등정을 준비하면서 중국과 조선의 근대 이전 40종, 근대 이후 98종 총 138종의 문헌을 검토하여 원정 준비 보고서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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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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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17회 동해왕 이사부 항로 탐사 (20) - 조지 클래이튼 포크 영사와 셔먼호 배상문제
미국 정부는 1885년 미 상선 제너럴 셔먼호(General Sherman)와 관련해 조선 정부에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훈령을 조선 주재 조지 클래이튼 포크(George Clayton Foulk) 총영사 대리에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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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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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우리나라에는 보빙사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그것은 보빙사의 주역인 홍영식과 서광범이 갑신정변을 일으켰다가 거사가 실패하여 역적으로 몰리는 바람에 행적이 모두 말살되었기 때문이다. 로웰은 보빙사의 일원으로 미국에 남은 유길준에게 미국 유학을 권유하고 주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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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등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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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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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17회 동해왕 이사부 항로 탐사 (21) - 신미양요와 사진가 펠리체 베아토
미국 그랜트 대통령의 조선 원정 승인을 받은 아시아 함대사령부는 1년간의 전쟁 준비를 마치고 1871년 5월에 전함 5척, 20척의 보트, 함재 대포 85문, 해군과 육전대원(水海兵) 1,230명을 동원하여 나가사키(長崎) 해상에서 15일간 해상 기동훈련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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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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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17회 동해왕 이사부 항로 탐사 (20) - 조지 클래이튼 포크 영사와 셔먼호 배상문제
미국 정부는 1885년 미 상선 제너럴 셔먼호(General Sherman)와 관련해 조선 정부에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훈령을 조선 주재 조지 클래이튼 포크(George Clayton Foulk) 총영사 대리에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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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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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17회 동해왕 이사부 항로 탐사(19) - 고래 포경선과 독도
조선 정부는 이양선(異樣船)이 조선 연안에 표류하여 도착하거나 어려움을 당하면 우호적인 정책으로 식량을 제공하고, 부서진 배를 수리하여 돌아갈 수 있도록 온갖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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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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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우리나라에는 보빙사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그것은 보빙사의 주역인 홍영식과 서광범이 갑신정변을 일으켰다가 거사가 실패하여 역적으로 몰리는 바람에 행적이 모두 말살되었기 때문이다. 로웰은 보빙사의 일원으로 미국에 남은 유길준에게 미국 유학을 권유하고 주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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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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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17회 동해왕 이사부 항로탐사(16) - 독도 보찰바위와 거문도 어민
필자가 거북손을 조사해 보니 흑산도에서는 ‘보찰’이라 말하고, 여수에서는 ‘부채손’이라고도 불렀다.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이 흑산도에 유배되어 저술한 『자산어보』에는 “거북손을 보살굴(오봉호)이라 하였고, 형태는 다섯 봉우리가 나란히 서 있는데 바깥쪽 두 봉은 낮고 작으나 안쪽 두 봉은 크며 가운데 봉우리(중봉)를 안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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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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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17회 동해왕 이사부 항로탐사 (15) - 독도의용수비대와 비둘기 3
일본 교토대 학사산악회(AACK)는 1931년에 창설되었다. 대학산악회에서 조선의 백두산 동계 등정을 준비하면서 중국과 조선의 근대 이전 40종, 근대 이후 98종 총 138종의 문헌을 검토하여 원정 준비 보고서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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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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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17회 동해왕 이사부 항로탐사 (14) - 독도의용수비대와 비둘기 2
경인아라뱃길 남쪽에는 국립생물자원관이 있어 우리나라에 있는 520여 종의 새들을 공부하면서 지하철을 이용해 자주 방문한다. 국립생물자원관은 자연사를 비롯한 모든 생물 연구의 기초가 되는 소중한 생물 표본을 320만 점이 넘게 수집, 관리하고 있다. 정말 대단한 전시관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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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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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17회 동해왕 이사부 항로탐사 (13) - 독도의용수비대와 비둘기 1
독도의용수비대 홍순칠(1929~1986) 대장은 독도의용수비대가 해산되고 나서 대원들을 모아 ‘독도의용수비대 동지회’를 결성했다. 그는 독도개발계획을 세우고, ‘푸른 독도 가꾸기회’ 를 설립하는데 앞장을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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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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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17회 동해왕 이사부 항로탐사 (12) -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
독도의용수비대는 독도에서 영토를 수호하려고 배 1척 삼사선호와 전마선 3척을 보유했다. 그러나 바다 날씨가 태풍으로 여러 날 안 좋아 울릉도에서 원활하게 추진되던 식량이 다 떨어지면 굶기도 하였다. 1955년에 의용수비대원들이 식량 부족으로 10일씩이나 굶어 아사 직전이라는 보고를 접한 해경은 독도에 있는 의용수비대원들에게 식량을 전하려고 배 3척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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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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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17회 동해왕 이사부 항로탐사 (11)- 독도의용수비대의 생명수 물골
독도의용수비대가 독도를 수호하면서 힘든 것은 물을 구하고 땔감을 구하는 일이었다. 땔감은 울릉도에서 운송했다. 물은 독도의 서도 물골에 있어 이곳에서 식수를 해결했다. 1954년에 주둔지를 동도 정상으로 옮겨와 물골에서 물을 길어 정상으로 오르는 것은 엄청난 고생이었다. 그러나 바다 날씨가 나빠지면 이마저 힘들어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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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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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독도 영토 표석은 외무부가 일본의 독도 불법 침범에 대응하여 관계관 회의를 거쳐 측량표를 설치하도록 결의하여 1953년 9월 24일 내무부에 공문을 보냈다. 내무부는 다시 경북도청에 공문을 보내 요청했다. 경북도청은 표석 제작비 70,000환, 표석 건립비용으로 315,000환, 잡비 15,000환을 집행하여 표석을 제작하여 울릉군에 보냈지만, 기상악화로 설치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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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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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홍순칠 독도의용수비대 대장과 대원들은 삼사호(선주 이필영, 선장 정이관)를 타고 독도를 항해 밤 12시경에 울릉도를 출항하여 다음 날 아침 독도 서도 물골에 상륙했다. 대원들은 야전용 대형 천막을 설치해 지휘본부를 설치하고 국기 게양대에 자랑스러운 태극기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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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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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17회 동해왕 이사부 항로탐사 (8) - 울릉경찰서 독도순라반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여 대한민국은 주권을 완전히 회복하였지만, 일본은 독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독도 해역을 침범했다. 1952년 1월 28일 이승만 대통령은 평화선을 선포하고 일본 어선이 대한민국의 영해를 침입하여 불법으로 어로 행위를 하면 나포하라고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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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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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17회 동해왕 이사부 항로탐사 (7) - 독도의용수비대
2024년은 매우 뜻깊은 해이다. 독도등대가 개설된 지 70주년을 맞이하였고, 국립경찰이 상주하면서 영토를 수호(守護)한 지 70주년이 되는 기념비적인 해이다. 국립경찰이 독도에 들어가 영토를 수호하기 전에 울릉도 주민들이 앞장을 서서 대한민국의 영토 독도를 자주 침범하는 일본의 순시선을 막기 위하여 1953년 4월 20일에 독도에 상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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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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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17회 동해왕 이사부 항로탐사 (6) - 독도등대 점등 70주년
1954년 5월에 일본은 항공기를 동원해 우리 영토 표석에 기총사격을 가했다. 대한민국 국회는 해양주권사절단을 결성해 독도를 답사하고 독도에 등대를 설치하도록 하였다. 1954년 5월 18일 대한민국 내무부는 석공을 파견하여 일본인들이 만든 표지판을 철거하고 독도 절벽 바위 4곳에 한국령이라는 글자와 태극, 경상북도 울릉군 남면 독도라는 대한민국 영토 표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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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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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17회 동해왕 이사부 항로탐사 (5)
2024년은 매우 뜻깊은 해이다. 독도등대가 개설된 지 70주년이 되었고, 국립경찰이 독도에 상주하면서 영토를 수호(守護)한 지 70주년이 되는 기념비적인 해이다. 경찰수비대가 공식적으로 파견되기 전에 울릉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독도를 적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독도의용수비대 33명의 활동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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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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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17회 동해왕 이사부 항로탐사 (4)
동해의 울릉도와 독도는 약 460만 년 전부터 5천 년까지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화산섬으로 지질 다양성(地質多樣性)이 뛰어나서 2012년 12월 27일에 제주도와 함께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받았다. 제주도는 섬 전체가 2010년 10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UGGp)으로 인증받은 이후 대한민국은 청송(2017.5), 무등산권(2018), 한탄강(2020), 전북 서해안(2023)이 추가로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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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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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17회 동해왕 이사부 항로탐사 (3)
지금의 ‘독도 조난 어민위령비’는 경북도지사 조재천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위령비 제막을 보고하며 보낸 사진 50장을 이승만 전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40여 년간 사진첩에 보관했다. 이를 며느리 조혜자가 2005년에 공개하면서 처음 알려졌다. 경상북도는 광복 60주년을 맞이하여 당시 위령비 제막식 사진에 근거하여 2005년 이의근 경상북도 도지사가 옛 자리에 위령비를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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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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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17회 동해왕 이사부 항로탐사 (2)
삼척 정라항을 출항해 울릉도 해역을 지나 독도로 가는 바닷길은 정말 힘든 항로이다. 옛날에 우리 선조들은 첨단 장비 없이도 먼 바다를 자유롭게 항해하였다. 탐사선에서 한참 자고 일어나 주변을 살펴보니 범선 코리아나 호는 8노트의 속력으로 우렁찬 엔진소리를 내며 열심히 나아가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 훨씬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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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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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17회 동해왕 이사부 항로탐사 (1)
동해 독도는 한반도를 가슴에 꼭 품에 안고 지켜주는 어머니 같은 성스럽고 거룩한 존재다. 사단법인 이사부기념사업회(이사장 김억연)는 신라시대 때 실직주 군주로 있으면서 우산국을 복속하고 울릉도와 독도를 우리나라 영토로 편입한 동해왕 이사부 장군의 항로 탐사를 재현하여 해양 개척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매년 탐사대원을 선발하여 독도와 울릉도를 항로 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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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애월읍, M 010-6693-3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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