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3세(1216~1272)의 맏아들로 영국 플랜태저넷 왕가의 왕(재위 1272~1307)이었던
에드워드 1세(1239~1307)가 1295년 11월에 소집한 의회.
웨일스와 스코틀랜드 및 대륙의 위기에 대처하고자, 재정적인 필요 때문에 이 의회를 소집하였다. 귀족과 고위 성직자 약 120명, 각 주교관구의 하급 성직자 2명, 각 주의 기사(騎士) 2명, 각 도시의 시민 2명 등이 출석하였다. 그 이후로 의회를 구성하는 데 이 의회가 모범이 되었다고 하여 19세기에 모범 의회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에드워드 1세는 이처럼 유능한 국왕으로 이름을 떨쳤고, 여러 가지 입법을 단행하였다. 의회의 한 전형이 이루어지게 될 모범 의회를 소집한 외에 오랜 세월에 걸쳐 발달하여 온 관습법을 체계적으로 정비하는 한편, 귀족의 세력을 견제하고 그들의 군사력을 약화시키는 법률을 많이 제정하였다.
또 입법· 사법· 행정의 기능이 분명하지는 못하였지만 분리되기 시작하였고, 국왕 재판소가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대외적인 발전에도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