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9 ~ 1921]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이고 처음의 이름은 박(博)이다. 함경 북도 경성(鏡城) 출생.
1883년 통리 아문 박문국에 들어가 《한성 순보》 주필 이 되었다. 1884년 박문국 사사·교섭 아문 주사를 역임하였다. 1894년 법무 아문의 참의·협판 등을 거쳐 김홍집 내각의 법부 대신으로 각료가 되었다.
친일파였으며 을미사변 때 유길준 등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이 때 이름을 석주라고 바꾸었다. 1907년 귀국하여 궁내부 특진관·제실 회계 감사원경 등을 역임하고, 1910년 국권 피탈 후에는 일본 정부의 남작이 되었으며, 조선 총독부 중추원 고문 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