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197] 고려 시대의 무신. 본관은 우봉이다. 최충수의 아버지는 이군과 육위의 으뜸가는 장수로서 정3품 벼슬인 상장군을 지낸 최원호이며, 고려 무신 정권기의 집권자인 최충헌(1149~1219)이 형이다.
최충수는 1196년(명종 26)에 벼슬아치 밑에서 일을 보던 동부(東部) 녹사 로 있었는데, 이 때 국정을 잡고 있던 이의민(?~1196)의 아들인 이지영에게 비둘기를 빼앗기게 된 일이 벌어졌다. 최충수는 형 충헌을 설득하여 그와 함께 이의민과 그 아들을 죽이고 권력을 장악하였다.
이의민은 1170년 정중부의 난에 가담하여 공을 세우고, 1173년 의종 복위 음모, 1174년에는 조위총의 난을 평정하여 상장군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나, 만년에 횡포를 자행하였다.
최충수는 뒤이어 형 충헌과 함께 이의민의 일당을 모두 죽이고 반대파를 숙청하였다. 그리고 그 동안 폐단이 많았던 정치를 개혁할 것을 요구하는 '봉사십조'를 명종에게 올리고, 1197년 수충찬화 공신이 되었다. 같은 해 9월 형 충헌과 함께, 자신들이 올린 '봉사십조'를 지키지 않고 국고를 낭비한다고 하여 명종을 창락궁에 가두어 두고, 태자 도를 강화로 몰아 냈다. 명종을 폐한 뒤 명종의 동생인 평량공 민을 왕위에 오르게 하였는데, 그가 바로 신종이다.
최충수는 그 공으로 수성제란 공신 삼한정광중대부 응양군상장군 위위경도성지사 주국이 되었다. 그 후 최충수는 태자 비인 창화백 우의 딸을 폐하고 자신의 딸을 태자 비로 삼으려 하였다. 그러나 형 충헌과 충돌하여 흥국사에서 싸우다가 최충헌의 군사에게 패하였다.
그는 임진강 남쪽에서 다시 군사를 일으키기 위하여 강을 건너 도망치다가, 경기도 파주에 있는 금강사에서 최충헌이 보낸 추격병에게 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