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35] 통일 신라 하대의 왕손 출신 문신으로,
원성왕의 손자이자,
혜충태자 인겸의 아들이다. 집사부 시중(執事部侍中)과 상대등 등을 역임하였으며, 823년(헌덕왕 15년)
김헌창의 난을 진압하는 데 참여하였다.
소성왕,
헌덕왕,
흥덕왕의 동생이며,
애장왕의 숙부였다.
아들 김명은 838년(희강왕 3) 1월 정변을 일으켜 희강왕을 죽이고 자립하여 민애왕이 되었다. 딸 정교(貞矯)는 희강왕비 문목부인(文穆夫人)이 되었다. 아들인 민애왕이 즉위하면서 선강대왕(宣康大王) 또는 갈문왕(葛文王)으로 추봉되었다. 일설에는 흥덕왕의 비 정목왕후가 그의 딸과 동일인이라는 설도 있다.
원성왕의 손자이며, 민애왕의 아버지이고, 혜충태자(惠忠太子) 인겸(仁謙)의 넷째아들이다. 아버지 인겸은 형 소성왕이 즉위하면서 왕으로 추봉되어 혜충대왕이 되었다. 808년(애장왕 9) 당나라로부터 문극(門戟)을 하사받았다. 817년(헌덕왕 9년) 이찬(伊湌)에서 시중(侍中)으로 승진하였다. 823년(헌덕왕 15년) 토벌대에 참여하여 왕위계승에 불만을 품은 김헌창(金憲昌)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가담했다. 817년(헌덕왕 9)부터 821년까지 집사부시중을 지냈다. 그뒤 각간을 거쳐 822년부터 835년까지 상대등(上大等)을 역임하였다.
헌덕왕과 흥덕왕 때의 실권자로 헌덕왕 때는 정사당(政事堂)에서 내외관(內外官)의 전주(銓注)를 맡아보면서 인사문제의 실권을 맡는 등 당시 최고의 정치적 실력자로 군림하였다. 835년 여름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출생년대는 알려져있지 않으며 사망 원인도 역시 미상이다.
그의 딸은 희강왕의 비인 문목왕후(文穆王后)이고, 아들인 김명(金明)은 희강왕을 추대했다가 나중에 희강왕을 자살하도록 위협하고 스스로 민애왕으로 즉위한 것이다. 민애왕이 즉위한 뒤 아버지인 김충공은 선강대왕(宣康大王)으로 추봉하고, 어머니인 귀보부인(貴寶夫人)을 선의태후(宣懿太后)로 추봉하였다. 일설에는 갈문왕으로 추봉했다는 설이 있다. 《삼국유사》에는 선강갈문왕(宣康葛文王)이라는 칭호도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