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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박태원(朴泰遠)
박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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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 (朴泰遠)
[1909.12.7 ~ 1986.7.10] 일제 강점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친일 사회주의 계파 시인, 문학평론가, 소설가이다. 본관은 밀양(慶州)이며 호(號)는 구보(丘甫, 仇甫, 九甫), 몽보(夢甫), 박태원(泊太苑)이다.
▣ 지식지도
◈ 지식지도
박태원 (朴泰遠)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 1933년 김기림 김기진 김동인 김동환 김소운 김억 김유정 노천명 모윤숙 박영희 박팔양 백철 유진오 유치진 이광수 이무영 이서구 이헌구 이효석 정비석 정인섭 정지용 조연현 주요한 채만식 최남선 최재서 최정희 이태준 이종명 김해강 구인회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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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씨 저 지나소설집 근/현대 수필 채만식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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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희 (3) 백과 김기림 (2) 백과 유치진 (2) 백과 이기영 (2) 백과 이무영 (2) 백과 이태준 (2) 백과 임화 (2) 백과 정지용 (2) 백과 채만식 (2) 백과
▣ 백과사전
[1909.12.7 ~ 1986.7.10] 일제 강점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친일 사회주의 계파 시인, 문학평론가, 소설가이다. 본관은 밀양(慶州)이며 호(號)는 구보(丘甫, 仇甫, 九甫), 몽보(夢甫), 박태원(泊太苑)이다.
 

생애

1909년 한성부에서 출생하였으며 숙부와 숙모가 의사, 교사로 일하는 개화적인 집안 분위기에서 자랐다. 경성제1고등보통학교 재학 중이던 1926년 《조선문단》에 시 〈누님〉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일본 호세이 대학 유학 이후 귀국한 1931년부터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33년 이태준, 정지용, 이재범, 이상, 김유영, 김기림 등과 함께 순문학적, 유미주의적 성향의 구인회를 결성했다.
 
광복 후인 1946년 좌익 계열의 문학인 단체인 조선문학가동맹의 중앙집행위원을 맡는 등 잠시 남로당 계열의 문예 운동에 몸을 담았다가, 1948년 보도연맹에 가입하며 전향했다.
 
1950년 한국 전쟁 발발 후 서울에 온 이태준, 안회남, 오장환, 정인택, 이용악 등을 따라 월북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자세한 정황은 분명치 않다. 이해 7월경 조용만에게 목격된 것이 남쪽에서 박태원을 보았다는 마지막 증언이다.
 
1950년대 중반부터 지방과 평양을 오가다가 말년에 열병치레를 하다가 완전 실명하고 전신 불수가 되는 등 병마에 시달렸다. 병상에 누워서 역사 소설을 집필하며 여생을 보냈다. 《갑오농민전쟁》은 북한에서 재혼한 아내 권영희가 구술을 받아적어 완성했으며, 마지막 3편은 구술 능력마저 잃은 후에 권영희가 대신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영희는 박태원의 경성 제일고보 동창이자 구인회 시절 동료였던 정인택의 아내로, 정인택 사후인 1956년 박태원과 재혼한 것이다. 특히 권영희는 박태원과 막역한 문학적 교류를 나누었던 이상의 연인이었다는 설이 있다.
 
작품으로는 일제 강점기 지식인의 자의식을 모더니즘적인 기법으로 묘사한 중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년)를 비롯하여 둘째 남동생 박문원(朴文遠)이 장정을 맡은 소설집 《천변풍경》(1936년), 월북 후 북한에서 집필한 대하 역사 소설 《계명산천은 밝아오느냐》, 《갑오농민전쟁》 등이 있다.
 
한국 전쟁 중 1951년 월북한 아우 박문원(朴文遠)은 사회주의 계열의 미술평론가로 유명하다.
 
1973년 4월 28일에는 함께 월북하여 지낸 아우 박문원을 심근 경색으로 잃었다. 아울러 박태원은 사망 시기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남로당 계열 문인들과는 달리 1986년 7월 10일에 고혈압으로 사망을 한 즉시 《조선문학》에 부고 기사가 실렸다. 또한 정인택과 권영희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딸로 현재 북한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정태은이 2000년 평양에서 〈나의 아버지 박태원〉이라는 글을 발표하여, 다른 월북 작가들에 비하여 월북 이후 행적이 비교적 소상히 알려져 있다.
 
박태원은 서울에 2남 3녀와 부인 등 가족을 모두 두고 단신 월북했다. 이중 중학생이던 맏딸은 1951년 월북했으며, 대한민국에 남은 가족 중 둘째딸의 막내 아들이 영화감독 봉준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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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