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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이무영(李無影)
이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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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이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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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영 (李無影)
[1908 ~ 1960] 소설가로 본명은 갑용(甲龍), 아명은 용구(龍九)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오리골 출생으로 이덕여(李德汝)의 아들이다.
▣ 지식지도
◈ 요약정보
이무영 (李無影) [1908 ~ 1960] 소설가 본명은 갑용(甲龍), 아명은 용구(龍九)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오리골 출생 이덕여(李德汝)의 아들이다.
◈ 지식지도
이무영 (李無影)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 1931년 김기진 김동인 김동환 김소운 김억 김진섭 노천명 모윤숙 박영희 백철 유진오 유치진 이광수 이서구 이헌구 정비석 정인섭 조연현 주요한 채만식 최남선 최재서 최정희 박태원 홍해성 김해강 극예술 연구회 극연좌
▣ 원문/전문 (인기순, 1~10 위)
(총 52 작품) [모두보기]
젊은 사람들 근/현대 소설 이무영 (103) 제1과 제1장 근/현대 소설 이무영 (68) 희곡 이무영 (66) 죄와 벌 근/현대 소설 이무영 (62) 흙의 노예 근/현대 소설 이무영 (49) 목석 부인 근/현대 소설 이무영 (46) 톨스토이 희곡 이무영 (39) 며느리 근/현대 소설 이무영 (38) 기차와 박 노인 근/현대 소설 이무영 (37) 만보 노인 근/현대 소설 이무영 (32) 두 훈시 근/현대 소설 이무영 (30) 사의 행렬 근/현대 소설 이무영 (29)
◈ 참조 원문/전문
비평적 모랄과 방법 근/현대 수필 고석규 (17) 1933년 문단총결산 - 소설계의 동향 근/현대 수필 김동인 (5) 문예시평 근/현대 수필 김남천 (4) 타락된 창작 풍조에 반성 - 『취향』 독후감 - 근/현대 수필 김남천 (3)
▣ 참조 카달로그
◈ 주요 언급 키워드
소설 (49) 백과 1934년 (6) 백과 1955년 (6) 백과 1959년 (5) 백과 1940년 (4) 백과 1953년 (4) 백과 문학평론 (4) 평론 (4) 백과 1949년 (3) 백과 1957년 (3) 백과 신동아 (3) 1933년 (2) 백과 1935년 (2) 백과 1942년 (2) 백과 1950년 (2) 백과 1952년 (2) 백과 김남천 (2) 백과 사상계 (2) 신가정 (2) 희곡 (2) 백과
◈ 참조 키워드
모윤숙 (2) 백과 박태원 (2) 백과 유치진 (2) 백과 정비석 (2) 백과
▣ 백과사전
[1908 ~ 1960] 소설가로 본명은 갑용(甲龍), 아명은 용구(龍九)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오리골 출생으로 이덕여(李德汝)의 아들이다.
 
1920년 휘문고보에 입학, 1925년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고학으로 세이죠오중학교(成城中學校)에 다니다가 일본작가 가토오다케오(可藤武雄) 문하에서 4년간 작가 수업을 하였다. 1926년 5월 처녀장편 「의지없는 영혼」을 간행했고, 1927년 장편 「폐허(廢墟)」를 간행하고 ‘무영(無影)’이란 아호를 쓰기 시작하였다. 1931년 동아일보사가 모집한 희곡현상공모에 「한낮에 꿈꾸는 사람들」이 당선되었다. 1932년 중편 「지축을 돌리는 사람들」을 동아일보에 연재하면서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였다. 한때 극예술연구회 동인으로 참여했고 1933년에는 이효석·정지용·유치진 등과 구인회의 동인으로 활약하였다.
 
1936년 송진우 선생 주례 아래 고일신(高日新)과 결혼해 2남 4녀를 두었다. 1937년 소년 장편소설 「똘똘이」를 동아일보에 연재하였다. 이해 일장기 사건으로 동아일보가 정간되자 친우 이흡과 함께 『조선문학』을 창간하였다. 1939년 7월 동아일보를 사직하고 의왕면 궁촌(의왕시 이동 궁말)으로 낙향, 직접 농사에 종사하면서 단편 「제1장과 제1과」, 「궁촌기(宮村記)」 등과 장편 「먼동이 틀 때」, 「명일의 보도」를 간행한데 이어 이듬해 중편 「흙의 노예」 등을 발표하는 등 본격적인 농촌소설 창작에 몰두하였다.
 
1942년 9월 일제 말기 본격적인 친일 파시즘 문학을 위해 조직한 문학인들의 단체인 조선문인협회 문학부 소설·희곡부회의 임원으로 활동하였다. 1942년 장편 「청기와 집(靑瓦の家)」, 「향가」 등을 연재하였는데, 1943년 3월 전시체제하 전쟁과 황민화운동에 협력한 각 방면의 예술활동을 표창하기 위하여 제정된 조선예술상에서 「청기와 집」으로 문학부문 대상을 수상하였다. 같은 해 6월 ‘조선에 세계 최고의 황도문학을 수립’한다는 목표 아래 조직된 친일문학단체인 조선문인보국회의 소설·희곡분회 간사로, 1945년 8월 같은 단체의 소설부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43년 8월 해군특별지원병제도의 실시에 따라 일본의 해병단, 해군학교 및 기타 시설을 시찰케 한 뒤 강연회와 문학, 그림으로 해군 사상을 인식 보급시키고자 국내의 문화관계자들을 파견하였는데 김사량과 함께 이에 참가하였다.
 
8·15 해방 후에는 1946년 서울대학교 강사,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최고위원을 지내면서 장편 「3년」을 발표하고 단편집 「흙의 노예」를 간행하였다. 1948년에는 군포에 손수 청엽사(廳葉舍)를 지었고 이곳에서 「농민」을 썼다. 1957년 4월 단국대학교 국문과 교수에 취임, 중편 「맥령(麥嶺)」을 발표하였고, 1960년 중편 「목석부인(木石夫人)」을 발표한 뒤 4월 21일 뇌일혈로 세상을 떠났다. 문총장(文總葬)으로 장례를 지냈다. 묘는 천주교 창동 묘지에 있다.
 
1985년 4월 20일 25주기를 맞아 충청북도와 음성군의 후원으로 음성문화원에서 음성읍 문확동에 「이무영선생문학비」를 세웠다. 이후 1990년 음성 설성공원 안으로 옮기고 1991년 추모송비를 나란히 세웠다. 군포시에서도 1991년에 능내공원에 「이무영작품비」를 세웠다.
 
충청북도 음성군에서는 매년 4월에 ‘무영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2000년 4월 21일 40주기를 맞아 ‘무영문학상’을 제정하였다. 2002년에는 생가터에 ‘무영정’을 짓고 생가 표징비를 세웠다.
 
□참고문헌 : 『한국현대문학사』, 『국문학전사』, 『이무영전집』, 『한국문학전집』(이무영, 삼성출판사, 1978), 『韓國人名大辭典』, 『시흥군지』(1988), 『이무영문학전집』(2000), 『일제협력단체사전-국내 중앙편-』(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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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