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3 ~ 1519] 조선시대 전기, 중기의 문신, 정치인, 성리학자이다. 본관은 고령(高靈)으로 초명은 백악(白岳), 자는 개지(漑之), 백악(白岳), 재유(纔踰)이고, 호는 이요정(二樂亭), 송계(松溪), 휴휴자(休休子), 수옹(睡翁)이다. 시호는 문경(文景)이다.
할아버지
신숙주와 사림파의 종주 점필재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483년(성종 14) 사마시에 합격하고 1488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후 승문원에 등용되어 관직에 나갔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당시 김종직의 문인의 한 사람이라 하여 한때 투옥되었으나 곧 석방되어 직제학을 거쳐 도승지가 되었다. 그 뒤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전라도 영광에 유배되었으나 1506년(중종 1)
중종 반정 후 풀려나 홍문관, 예문관대제학을 지내고 중종의 책봉고명을 받아온 공로로 원종공신에 책록되었다.
그 뒤 의정부우참찬, 사헌부대사헌, 이조판서, 병조판서, 우찬성 등을 지내고 1516년 우의정, 1518년 좌의정에 이르렀다. 기품이 높고 총명하여 문명을 떨쳤을 뿐만 아니라, 문무를 겸비하여 활쏘기 등 무예에도 뛰어났으며 술을 좋아하였다. 성종과 중종때 강상을 바로 잡기 위해 '
속삼강행실도'를 펴낼 때 그 책임을 맡기도 했다.
신숙주,
김종직,
정효항(鄭孝恒)의 문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