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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이중경(李重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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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경 (李重慶)
[1599 ~ 1678] 조선 중기의 문신. 청도 출신. 시조문학사의 소중한 자료인 「오대어부가」 「어부사」 「어부별곡」 등 다수를 남겼다
▣ 지식지도
◈ 지식지도
이중경 (李重慶) 윤원형 김안로 문정 왕후 윤임 정난정 을사사화
▣ 백과사전
[1599 ~ 1678] 조선 중기의 문신. 청도 출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경숙(慶叔) 호는 수헌(壽軒 ) 오대산인(梧臺散人) 봉옹(鳳翁) 증조부 흥지가 청도의 소요당(逍遙堂) 박하담(朴河淡)의 딸과 혼인을 하면서 경기도에서 청도로 이사를 하였다
 
1546년(명종 1) 생원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548년 예문관 검열로 처음 벼슬길에 들어섰다. 1549년 정언으로 언론활동을 하였고, 1550년 수찬이 되었고, 문재에 뛰어나 예문관과 홍문관에서 주로 활약하였다.
 
1550년 병조 좌랑을 역임하면서 춘추관기사관으로 『중종실록(中宗實錄)』과 『인종실록(仁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552년에는 헌납이 되었고, 1553년 대사간을 거쳐, 1561년 예조참의·부제학이 되었다. 1563년 이조참판을 지내고 1564년에 대사헌을 겸하는 등 여러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윤원형(尹元衡)의 소윤파가 득세하여 권세를 마음대로 하자, 이를 내심 두려워한 명종은 이량(李樑)으로 하여금 이를 대적하게 하려고 총애를 베풀어 이조판서 벼슬까지 주었으나 도리어 주어진 권세로 반역을 꾀하다 탄핵받아 1563년 이량은 강계로 귀양 가고 관련자들도 멀리 귀양 갔다. 이때 이중경도 일당으로 몰려 파직되었으나 1565년 풀려나와 부호군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 이튿날 다시 양사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으며, 뒤에도 여러 차례 정쟁에 휘말려 치폐가 거듭되었다.
 

 
이중경의 나이 45세에 운문산(雲門山)을 유상(遊商)하다가 발견해둔 동창천 하류의 경승지에 초옥(草屋)으로 오대정사(梧臺精舍)를 지어 우거(寓居)하였는데 초옥 앞으로 흐르는 동창천에서 어옹을 즐겼는데 이러한 체험을 기반으로 시조문학사의 소중한 자료인 「오대어부가9곡」 「어부사5장」 「어부별곡 전후3장」 등 다수를 남겼다
▣ 원문/전문 (인기순, 1~10 위)
오대어부가 구곡 梧臺漁父歌九曲 시조 이중경(李重慶) (17) 어부별곡 漁夫別曲 시조 이중경(李重慶) (11) 어부사 오장 漁父詞五章 시조 이중경(李重慶) (5)
 
▣ 참조 카달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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