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0 ~ 1620] 조선 중기의 왕족출신 무신으로,
임진왜란 때의 장군이다.
군인으로 본관은 전주이며 자(字)는 자수(子綬) 또는 중유(仲裕)이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과 맞서싸운 훈공으로 선무원종공신 3등에 녹선되었다. 무과에 급제하여 영암과 단천, 선천군수, 평안도병마우후 등을 지냈다.
1583년(선조 21년)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지내고 선전관, 좌랑, 무장현감, 1593년(선조 26) 영암군수 등을 역임했다. 임진왜란 때는 조선군 지휘관의 한사람으로 참전하여 일본군을 격퇴했으나, 임금에게 바치는 공물 진상의 실수와 인명피해 등이 발생하자 한때 탄핵을 당하기도 했다. 이후 봉산군수, 1601년(선조 34) 충청도 수군절도사를 거쳐 1603년(선조 36) 한성부 판윤, 충청도수군절도사를 역임하였다. 사후 증 가선대부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가 후일 서자
이기축(李起築)이 1623년(광해군 15) 3월
반정에 참여한 공로로 다시 증 순충보조공신(純忠補祚功臣)에 추증되고 증 자헌대부 병조판서 완원군(完原君)에 추증되었다.
효령대군 보의 7대손으로 통정대부 오위장
이간(李幹)의 아들이며 군수
이광윤의 손자이다. 임진왜란 때의 장군
이경록의 이복 동생이고 완풍부원군
이서의 숙부이다. 문무자 이옥 (文無子 李鈺)의 5대조이고, 현종, 숙종 때의 남인 문신 이서우의 외조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