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일본의 항복으로 조선총독부가 해체된 이후, 1945년 9월 8일부터 1948년 8월 15일까지 한반도 남부(북위 38도선 이남)를 통치한 미국의 군사정부 시기를 의미한다.
미군정(USAMGIK, United States Army Military Government in Korea)은 제24군단장
존 R. 하지(John R. Hodge) 중장을 최고책임자로 하여
조선총독부의 관료 조직을 일부 계승하며 행정을 운영하였다. 미군정은 초기에는 행정 공백을 막기 위해 총독부 관료와 일본인 관리들을 그대로 활용하였으나, 한국인의 반발로 인해 점진적으로 한국인 중심의 행정체계를 구축하였다.
정치적으로 미군정은 친미 성향의 단체를 지원하며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좌우 대립을 심화시켰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와
조선인민공화국을 인정하지 않고,
이승만을 비롯한 우익 인사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였으며, 이에 따라 좌익 세력과의 갈등이 격화되었다. 1946년 10월에는 ‘
대구 10월 사건’을 포함한 전국적인 민중 봉기가 발생하였으며, 이후
제주 4·3 사건(1948),
여수·순천 사건(1948) 등 사회 혼란이 지속되었다.
경제적으로는 일본의 통치기구 해체 이후 발생한 생산력 감소와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물가 폭등과 심각한 실업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미군정은 ‘남조선과도정부’를 구성하여 경제 정책을 시도했으며, 토지 개혁을 부분적으로 추진하였으나 근본적인 개혁에는 이르지 못했다.
교육 부문에서는 미국식 교육제도를 도입하고 친미 성향의 교육 정책을 펼쳤다. 1946년 9월에는 ‘조선교육심의회’를 조직하여 학제 개편을 논의하였으며, 초·중등 교육을 6·3·3 체제로 개편하고 대학 설립을 추진하였다.
1948년 5월 10일, 유엔의 감시하에 남한에서 단독
총선거가 실시되었으며, 이를 통해
제헌국회가 구성되고 7월 17일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되었다. 이어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 출범하면서 미군정은 종료되었으며, 행정 권한이 대한민국 정부로 이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