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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고려 가요(高麗歌謠)
고려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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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가요(高麗歌謠) 쌍화점(雙花店) 악장가사(樂章歌詞)
최근 3개월 조회수 : 6 (4 등급)
【학습】
(게재일: 2019.06.08. (최종: 2019.06.08. 17:46)) 
◈ 쌍화점(雙花店)
고려 때의 속요. 《악장가사》에 실려 전한다.
목   차
[숨기기]
만두집에 만두 사러 갔더니만
회회(몽고인) 아비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소문이 가게 밖에 나며 들며 하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새끼 광대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 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 같이 답답한 곳 없다 (난잡한곳이 없다)
 
삼장사에 불을 켜러 갔더니만
그 절 지주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소문이 이 절 밖에 나며 들며 하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새끼 상좌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 같이 답답한 곳 없다(난잡한 곳이없다)
 
두레 우물에 물을 길러 갔더니만
우물 용이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소문이 우물 밖에 나며 들며 하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두레박아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 같이 답답한 곳 없다 (난잡한곳이 없다)
 
술 파는 집에 술을 사러 갔더니만
그 집 아비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소문이 이 집 밖에 나며 들며 하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시궁 박아지야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 같이 답답한 곳 없다(난잡한곳이 없다)
 

 
 

1. 요점 정리

• 작자 : 미상
• 갈래 : 고려 속요
• 연대 : 고려 충렬왕 대
• 성격 : 직설적, 향락적
• 형식 : 전 4연의 분연체
• 표현 : 상징, 풍자, 은유
• 제재 :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여자의 밀애
• 주제 : 남녀간의 애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유녀(遊女)의 노래로 자유분방한 여인의 사랑
• 구성 :
1연 회회아비와의 밀애
2연 절의 사주와의 밀애
3연 우물 용과의 밀애
4연 술집 아비와의 밀애
 
• 특징 : 후렴구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다양한 표현 기법을 사용했고, 당시 고려 사회의 자유분방한 성윤리를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출전 : <악장가사>, <시용향악보>
 
 

2. 내용 연구

만두집[쌍화점 : 첫째 연 첫구에서 따온 것으로 만두가게를의미로 쌍화는 만두를 뜻하는 음차의 말이다]에 만두 사러 갔더니만
회회(몽고인) 아비[회회 : 몽고인, 혹은아랍 상인] 내 손목을 쥐더이다[주여이다 : 쥐더이다. 잡더이다].
이 소문이 가게 밖에 나며 들며 하면[소문이 나면, 소문이 퍼지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새끼 광대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 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 같이 답답한 곳 없다 (난잡한곳이 없다)
 
삼장사에 불을 켜러[불을밝히러] 갔더니만
그 절 지주 내 손목을 쥐더이다[내 손목을 쥐더이다 : 적나라하고, 적극적인 구애의 표현].
이 소문이 이 절 밖에 나며 들며 하면[소문이 나면, 소문이 퍼지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새끼 상좌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 같이 답답한 곳 없다(난잡한 곳이없다)
 
두레 우물에 물을 길러 갔더니만
우물 용[봉건 시대의 금기이던 왕궁을 우물로, 제왕을 용으로 은유한 것으로봉건사회에서 왕궁은 모든 권력을 갖고 있는 곳으로 화수분과 우물처럼재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우몰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추측됨 ]이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소문이 우물 밖에 나며 들며 하면[소문이 나면, 소문이 퍼지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두레박아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 같이 답답한 곳 없다 (난잡한곳이 없다)
 
술 파는 집에 술을 사러 갔더니만
그 집 아비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소문이 이 집 밖에 나며 들며 하면[소문이 나면, 소문이 퍼지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시궁 박아지야[싀구바가 : 바가지야. '싀구박'은원래 시궁을 치는 바가지인데 여기서는 '술독에서 술을 퍼내는 도구의바가지'를 말한 것같다.]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 같이 답답한 곳 없다(난잡한곳이 없다)
 
 

3. 이해와감상

충렬왕 때의 작품으로 작자와 연대 미상으로 알아 왔으나 '고려사' 악지에 한역된 '삼장'이라는 노래의 내용과 꼭같아 그 제작 연대가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당시 왕이 연악을 좋아하여 오잠, 김원상, 석천보, 석천경 등을 시켜 자주 노래를 짓게 했다는 점으로 보아 이 '삼장', 즉 '쌍화점'도 그들의 작품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노래를 고려시대의 속요라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전 4절로 된 이 노래는 퇴폐한 당시의 성윤리를 잘 나타냈으며 나아가 그것을 풍자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표현면에 있어서도 유창한 운율과 아울러 봉건 시대의 금기이던 왕궁을 우물로, 제왕을 용으로 은유한 것은 뛰어난 표현이라 하겠다. 이조 성종 때 음사(음탕한 노래)라 하여 가사를 약간 고쳐 '악장가사'에 전하고 있고, 어떤 문헌에는 '상화점(霜花店)이라 한 곳도 있는 데 쌍화점(혹은 상화)은 만두라는 뜻이다.
 
고려시대의 가요 문학( 새문사, 1982.)에서는쌍화점 노래는 "고려 충렬왕 때 궁중악의 하나로 상연되었던 가극의 대본이었다. 지은 사람은 충렬왕 5년에 승지였던 吳潛이었다. 이 노래를 불러야 했던 사람은 궁중에 적을 둔 男粧別隊였다. 남장별대는 노래기생, 춤기생, 얼굴기생으로 편성된 여자배우다. 무대 이름은 香閣이었다....(중략)...무대가 뒤로 물러났으며, 장막을 지니고 있는 것. 고려 사회의 질서가 흐트러지면서 어지럽게 된 것은 충렬왕조부터였으며, 충렬왕조에 두드러진 것은 몽고풍이 들어온 것이다. 쌍화점 가극도 몽고풍의 물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언급했다.(출처 : <쌍화점>노래 연구, 여증동, 고려시대의 가요 문학, 새문사, 1982)
 
 

4. 심화자료

• 쌍화점
고려 충렬왕 때 지어진 고려가요 또는 향악곡. ≪악장가사≫·≪대악후보≫·≪악학편고≫에 실려 있다. 또한, ≪고려사≫ 악지(樂志)에는 제2장만이 발췌되어 ‘삼장(三藏)’이라는 제목으로 한역되어 전하고, ≪시용향악보≫에는 한시로 개작한 〈쌍화곡〉이 전한다.
이 노래의 제목인 ‘쌍화점’은 첫째 연 첫구(句)에서 따온 것으로 만두가게를 의미하며, 한역가의 제목인 ‘삼장’도 제2장 첫구에서 유래한다. 쌍화는 만두를 뜻하는 음차(音借)의 말이다. 조선시대에는 이른바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의 대표적인 노래로 지목되기도 하였다.
이 노래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즉, 이것을 당시 유행하던 속요로 보는가 하면, ≪고려사≫의 기록에 등장하는 승지 오잠(吳潛)의 창작물, 혹은 궁중에서의 다수에 의한 합작물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당시 연락(宴樂)을 즐기는 등 방탕한 기질이 농후하던 충렬왕의 기호에 부합하기 위하여 만들어졌을 점을 감안한다면, 대체로 당시 원나라의 간섭과 왕권의 동요로 혼란스럽고 퇴폐적으로 된 사회상을 반영하는 속요를 채취하여 오잠의 무리가 왕의 기호에 맞게 손질을 가하였을 가능성이 유력시되고 있다.
이 노래는 여느 고려가요와 마찬가지로 악무(樂舞)와 더불어 연행되었을 것인데, 독특하게 이 노래의 경우는 연극적인 성격이 강하였을 가능성도 아울러 논의되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이 노래는 남장별대(男粧別隊)에 의하여 불렸다.
이들은 수도인 개성과 전국 8도에서 차출된 여자기생들이 남자복색을 한 집단으로, 노래기생·춤기생·얼굴기생으로 나뉘었다. 이들은 1279년(충렬왕 5) 오잠의 지휘하에 왕 앞에서 이 노래를 대본으로 연희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희는 충렬왕의 상설무대였던 수령궁(壽寧宮)의 향각(香閣)에서 있었다고 한다. 특히, 충렬왕을 대상으로 이 연극이 행하여졌다는 점과, 충렬왕은 이미 30대에 몽고풍에 익숙한 상태였고, 그 몽고풍의 하노가 연극이었다는 점과 연관되어 이 노래가 연극의 대본이었을 가능성이 뒷받침되고 있다.
이 노래는 ≪악장가사≫와 ≪대악후보≫의 〈쌍화점〉은 전 4장으로 그 내용이 같으나, ≪대악후보≫의 〈쌍화점〉은 3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술집아비와 관련된 제4장이 없다. 노래 대상에 따라 장이 바뀌고 있는데. 곧,회회(回回)아비, 삼장사의 사주(社主), 우물의 용, 술집아비에 대한 노래로 이어진다.
제1장의 원문만을 보면 다음과 같다.
“솽화○雙花店에 솽화雙花 사라 가고신居/휘휘回回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이 말寄미 이 ○店밧桔 나명들명/다로러 거디러/죠고맛간 삿기광대 네 마리라 호리라/더러둘셩 다리러 디러 다리러 디러/다로러 거디러 다로러/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위위 다로러 거디러 다로러/긔 잔 倨佳티 炬거츠니 업다”
제1장 제1행의 “솽화○雙花店에 솽화雙花 사라 가고신居/휘휘回回아비” 부분을 제2장은 “삼장嗜三藏寺애 블혀라 가고신居/그 뎔 샤쥬社主”로 되어있다.
제3장은 “드레 우므레 므를 길라 가고신居/우믓룡龍이”로, 제4장은 “술劉 지槐 수를 사라 가고신居/그 짓 아비”로 각각 바꾸고, 제1장 제5행의 “삿기광대”를 제2장은 “삿기샹좌”로, 제3장은 “드레바가”로, 제4장은 “桔구비가”로 각각 바꾸고, 나머지 부분은 제1○2○3○4장이 모두 같다.
일어난 사건의 장소와 대상이 서로 다를 뿐, 사건의 성질은 모두 똑같은 성적 불륜의 것이다. 충렬왕조의 퇴폐적인 시대상을 포괄하는 노래 외적인 상황과, 이 노래 내부의 고유한 구조 사이의 관련이 밀접함은 분명하되, 그 구체적인 양상에 대해서는 좀더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呂增東〉
〈쌍화점〉의 음악적 내용은 ≪대악후보≫에 전하는 〈쌍화점〉과 ≪시용향악보≫의 〈쌍화곡〉은 모두 5음 음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악조를 표기한 ≪시용향악보≫에 의하면 〈쌍화점〉의 선법(旋法)은 평조이다. 또한, 종지형은 궁(宮)에서 하오(下五)까지 순차적으로 하행으로 진행된다.
특히, 한글가사를 담은 ≪대악후보≫의 〈쌍화점〉과 한문가사를 가진 ≪시용향악보≫의 〈쌍화곡〉은 특히 사설붙임법에서 많은 차이를 보여 주는데, 〈쌍화점〉은 일자다음식(一字多音式, melismatic style)의 사설붙임법으로 되어 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列傳, 高麗史節要, 樂章歌詞, 大樂後譜, 時用鄕樂譜, 쌍화점노래연구(呂增東, 새문社, 1982), 쌍화점고(鄭炳昱, 한국고전시가론, 신구문화사, 1977), 雙花店硏究(宋政憲, 충북대학교논문집 17, 1979), 雙花店의 性格硏究(崔東國, 문학과 언어, 문화과 언어연구회, 1984), 雙花店과 反轉의 意味(金大幸, 高麗詩歌의 情緖, 開門社, 1985), 雙花店의 解釋(崔美汀, 韓國文學史의 爭點, 集文堂, 1986), 雙花店의 재조명(朴魯 , 高麗歌謠의 硏究, 새문社, 1990), 雙花店과 雙花曲의 偏向과 江湖歌道의 論議 再考(鄭雲采, 高麗歌謠硏究의 現況과 展望, 成均館大學校 人文科學硏究所, 1996), 雙花店(崔龍洙, 高麗歌謠硏究, 계명문화사, 1996).(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작성】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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