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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보시(宁波市) # 감진화상
최근 3개월 조회수 : 2 (5 등급)
【문화】
(게재일: 2023.09.07. (최종: 2023.11.03. 19:34)) 
◈ 일본불교계, 감진 화상 조각상 제작, 대명사 기증
공덕 보은 차원... 덩사오핑, 후진타우 감진 화상 삼배 올려 / 일본 불교계는 당나라 때 일본 쇼무 천황의 초청을 받고 여섯 차례 항해 끝에 65세 고령의 나이로 일본에 건너가 동대사에서 400여 명에게 수계를 한 공덕(功德)을 영원(永遠)토록 보은(報恩)하기 위해 1980년 감진 화상 조각상을 특별 제작하여 선사가 주석하셨던 대명사에 기증하였다.
공덕 보은 차원... 덩사오핑, 후진타우 감진 화상 삼배 올려
 
 
일본 불교계는 당나라 때 일본 쇼무 천황의 초청을 받고 여섯 차례 항해 끝에 65세 고령의 나이로 일본에 건너가 동대사에서 400여 명에게 수계를 한 공덕(功德)을 영원(永遠)토록 보은(報恩)하기 위해 1980년 감진 화상 조각상을 특별 제작하여 선사가 주석하셨던 대명사에 기증하였다.
 
 
일본에서 대명사 감진화상(鑑眞, 688년-763년) 기증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2008년 5월 나라 시 唐招提寺 어영당(御影堂)을 부인과 함께 방문했다. 후 주석은 30년 전 덩 샤오핑(鄧小平) 중국 국무원 부총리가 감진 화상에게 3배의 절을 올렸던 것처럼, 감진 화상에게 절을 하였다.
 
「三十年前鄧小平到日本時曾向鑑真和尚像拜三拜,這次胡錦濤向鑑真和尚塑像鞠了躬。」
 
사찰 회랑에서 악사들이 은은한 아악을 연주했다. 마쓰우라(松浦俊海) 唐招提寺 주지는 후진타오 주석에게 "이 아악은 중국 당나라에서 건너온 당악(唐樂)입니다. 이곳에는 한반도의 백제에서 건너온 음악도 있습니다. 오늘 옛날 아악을 연주하는데, 감진 대사님도 분명 우리가 여기에 온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후진타오 주석은 당나라 시대의 배 모형 ‘우정의 배(友誼之舟)’을 唐招提寺 주지에게 전달하며 “감진 화상의 정신을 승계하는 것이 양국 관계 발전에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胡錦濤以仿造唐代船隻的模型「友誼之舟」贈送給唐招提寺,繼承(創建唐招提寺的唐代高僧)鑑真和尚的精神,對發展兩國關係非常重要。」
 
 
우정의 배(友誼之舟) 唐招提寺 기증 (사진:新華社, 2008.5.10.)
 
 
2009년 10월 14일(수)부터 10월 16일(금)까지 양주시 대명사와 인근 대회의장에서 한중일 불교도대회가 ‘평화로운 동북아, 평화로운 세계’란 주제로 개최되어 많은 승려들이 모여서 대법회를 가졌다. 또한 이 행사에는 중국 한국 일본의 지식인, 문화인, 승려들이 함께 모여 향후 미래를 조망하는 제5회 한중일 문화교류포럼도 개최되었다. 부대행사로 한중일 서예·회화 교류회, 최치원의 날(10월 15일) 행사 등이 함께 진행되어 1만여 명이 참관했다.
 
최치원 기념관은 2016년 촉강-수서호풍경구관리위원회 소속으로 이관되어 최치원 광장을 조성하고 녹지 환경을 새롭게 조성했다. 매년 10월 15일에 최치원의 날이 성대하게 펼쳐진다.
 
세계에서 3대 이벤트로 올림픽, 월드컵, 세계박람회를 꼽는다. 일본은 1962년 도쿄 올림픽을 개최하고, 1970년에 오사카만국박람회를 유치했다. 한국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통하여 성장을 과시했다. 중국은 이웃나라들의 발전상을 눈여겨보면서 1985년부터 세계박람회를 유치하려고 조직위를 구성하여 준비하면서 1993년 5월에 46번째 국제박람회 회원국이 되었다.
 
상하이시는 2002년 12월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4차 투표 끝에 한국의 여수시와 경합하여 최종 개최지로 뽑혔다. 중국 정부는 상하이를 미국 뉴욕,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도시로 만든다는 의지로 7년 동안 도시 건설, 공항 등에 약 76조 억 원을 상하이 시 낙후된 도심 공장지대에 투입하고 18,000가구와 272개 공장이 이전시켰다. 역대 국제박람회를 개최한 다른 나라들이 도심에서 떨어진 지역을 골라 새롭게 건설했는데 상하이 시는 거꾸로 도심을 재개발했다. 2010년 상하이국제박람회(2010.5.1.-10.31)에 참가한 나라들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세계박람회에 보낼 물자와 전시품목을 선정하고 대규모 투자와 지원을 하였다. 상하이국제박람회의 슬로건은 ‘더 나은 도시와 더 나은 삶(Better City, Better Life)’으로 전 세계 190개국, 56개 국제기구, 50개 도시가 참가했고, 박람회를 참관한 사람은 7540만 명이었다.
 
 
상하이국제박람회 한국관(사진: 성지이엔씨)
 
 
일본 정부는 중국 상하이 엑스포(2010.5.1.-10.31) 일본관에 전시할 품목을 선정하다가 일본 불교의 시조로 존숭을 받는 ‘감진화상좌상’을 선택했다. 일본 나라 시 동대사에 천 년 동안 잘 보존하던 승상은 30년 만에 큰 바다를 건너 상하이 엑스포관에서 세상 사람들과 만났다. 2010년 일본 나라(奈良) 시장이 중국 양저우 시를 방문하여 우호도시 체결 각서를 교환했다. 양저우 시민들은 감진 화상의 승상을 다시 만나기를 간절하게 원해, 승상은 일본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고향인 양주 대명사에서 2010년 11월 26일부터 12월 7일까지 전시하였다. 양저우 시민들은 모두 길에 나와 감진 화상 좌상을 모신 차량 행렬을 환영하고 운송차량을 따라 대명사 감진 도서관까지 따라갔다. 양저우 시는 큰 스님이 지나간 길을 감진로로 명명하고, 도로에 5만 그루의 벚나무를 심었다.
 
 
양저우 감진화상좌상 행렬(사진: 양저우시 인민정부, 2010년)
 
 
중국 불상 공방에서 탈활 건칠 기법(脱活干漆技法)으로 1년에 걸쳐 두 개의 감진 상을 제작하였다. 그중 1개를 2016년 5월 16일 운송하기 시작했다. 주홍색 승의 위에 노란색 가사를 걸치고 있는 감진 화상 신좌상이 상하이 항에서 배로 운송되어 오사카 항구에 배로 도착했다. 이운 예식은 율종 사찰인 임생사(壬生寺) 신도들이 맡아 일본 율종총본산인 당초제사 금당 앞까지 정성껏 이운하였다. 그리고 당초제사에 천 이백 년 전에 제작된 감진 건칠상과 나란히 전시했다. 중국 불상 공방에서에서 만든 승상 중 하나는 일본 교토시 주쿄(中京)구 임생사에 모시고, 다른 승상은 당초제사 우호 사찰인 중국 양주시의 문봉사(文峰寺)에 봉안했다.
 
 
일본 나라 唐招提寺 감진화상 건칠상(2016년 5월 16일)
 
 
당나라 고승 감진 스님이 두 번째, 네 번째, 여섯 번째 이곳에서 배를 타고 동쪽으로 건너 장강(長江)으로 향했다. 문봉사는 1582년(명 만력 10년)에 세워진 사찰로 《강희양주부지 (康熙扬州府志)》 권19(卷十九) 에 의하면 문봉사는 우덕엽(虞德晔)이 이곳에 부도를 세웠는데 주지승 진옥(真玉)이 문봉(文峰)의 이름을 따랐다고, 왕세정(王世贞)은 기록했다고 되어있다. 승려 진존(镇存)이 소림사에서 출가하면서 강가에 탑을 세우겠다고 발원했다는 기록도 있다. 진존 승려가 양저우 시내에서 탁발에 나선 지 3년 만에 탑을 완성했다. 당시 어사가 탑을 "문풍이 융성하고 문맥이 순통하다,“라는 의미로 이름을 문봉탑으로 지었다는 기록도 있다.
 
「御使邵公即题名“文峰塔。其意为文风昌盛、文脉顺达。」
 
우덕엽이 탑을 세웠고, 절을 세운 사람은 주지승 진옥이었다. 당시 문헌을 보면 문봉사의 건립 과정과 문봉탑의 건립 과정이 동시에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僧镇存托钵维扬三年而塔成。大中丞邵公榜曰:文峰塔。”仅从以上记载看,明万历十年,知府虞德晔建塔,建塔的资财由镇存募化,而建寺的却是住持僧真玉。」
출처: 《嘉庆重修扬州府志》卷二十八
 
 
현재 문봉탑은 양저우의 랜드마크로 10여 차례 엽서에 등장하였다. 2009년 8월 제3회 운하명성박람회 기간에 발행된 《중국대운하》 우표 6매 세트에 문봉탑이 5번째로 선정되었다. 문봉사는 양저우의 탑, 절, 원이 통합된 종교 장소가 되었으며 2000년에 이르러 개방이 승인되었다. 이후 시내의 명나라 건물, 만수사의 대웅보전, 장경루, 계대를 문봉사로 옮겨 복원하였다. 문봉탑은 양저우의 과거 명나라의 번영을 상징하는 중요한 상징이 되었으며, 지역 문인들이 문곡성에게 제사를 지내고 과거 번영을 강조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양저우 문봉사 문봉탑(사진:每日斗條 2019.1.15자 인용)
 
 
지도를 보면 47m의 문봉탑 아래에 문봉사 사찰이 있고 앞에는 징항운하가 지나간다. 문봉탑은 양저우로 들어가는 배들에게 등대가 되었다. 탑의 등불은 항로 표지판 역할을 하여 명나라 때부터 청나라까지 곡물선, 소금선, 선박이 탑 아래를 통과하고 돛대가 숲을 이뤘다. 문봉사 앞에는 고운하(古運河) 비석이 남아있다. 문봉탑은 7층 8면 벽돌 목조 누각식 보탑으로 탑신은 청색 벽돌과 기와로, 바닥은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다. 현재 양저우 사찰 중에 남아있는 유일한 고탑으로 멀리서 바라보면 영롱하면서도 매우 웅장해 뛰어난 기예를 보여준다. 청나라 강희제와 건륭제의 남순(南巡)할 때 배에 앉아 높은 탑을 보면서 지나갔다. 송대 둥관 성루 앞에 있는 둥관고도(東關古渡) 고대 나루터에서 유람선에 몸을 싣고 내려오면 왼쪽으로 문봉사 문봉탑이 보이고, 아래로 항해하면 과주고도(瓜洲古渡)에 이른다. 과주고도를 출항하면 바로 장강에 이르고 진짜 큰 바다에 도착한다.
 
당나라 고승 감진은 5번 일본으로 밀항을 시도하다 모두 실패하고, 20여 년의 세월이 지나서 제10차 일본견당선을 타고 일본에 건너가 많은 사람을 교화했다.
 
현재 일본과 중국 사이에는 많은 어려움이 놓여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역사인식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이성(理性)을 통해 대동(大同)을 구하고 상호존경(相互尊敬)과 상호신뢰(相互信頼)의 마음으로 작은 차이점을 찾아내 잘 살피고 구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일천 이백년 전의 감진 화상이 부처님의 마음으로 큰 바다를 건너와서 대자비(大慈悲)를 베풀었듯이 감진 화상(鑑真和尚) 정신(精神)을 올바르게 승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23.9.3 일요일 13시 47분
 
생활문화아카데미 궁인창
【작성】 궁 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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