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보름 집단민속놀이 정월 초부터 시작되는 동래 지신밟기는 굿거리 장단에 덧배기 춤이 일품이고 또 하동과 포수의 해학적 대사로 사대부를 조롱하는 풍자성이 있는데, 이때 희사 받은 돈과 곡식을 기금으로 대보름이면 남녀가 모여 동부와 서부로 나뉘어 줄다리기를 하여 그 승부로서 흉풍을 점치는 민속이 전래하고 있다. 또 줄다리기와 밀착하여 동래야류가 길놀이로서 전래된다. 보름날 시작했던 줄다리기가 끝나는 17일 밤에 연희하기도 하였으니, 길놀이의 순서는, 풍악대 → 중군 → 길군악대 → 팔선녀 → 야류패 → 할미광대 → 한량 → 5개동 풍물패→ 일반군중으로 장사진을 이루어 1시간쯤 행진하며 즐긴 후에 놀이판에 당도하여 인근 동민들이 어울려 군무에 도취하는데, 몇 시간 즐기던 군무패가 물러가면 들놀음의 배역들이 모두 등장하여 탈놀음을 시작하는 것이다. 탈놀음은 문둥이과장, 양반과장, 영노과장, 할미영감과장을 하고 뒷놀이로 오독독이타령, 고사리꺾자타령, 요동춤놀이를 하기도 한다.
◈ 동래학춤 동래야류의 길놀이가 끝나면 연희의 마당에는 춤의 명수들이 한바탕 질탕하게 학춤, 곱추춤, 요동춤, 두꺼비춤 등을 추어 댔고, 한편 줄다리기가 끝나면 명무수들이 학춤을 추어 승리를 축하했다. 그리고 동래는 천연 온천을 끼고 있고 사신의 왕래가 잦은 곳이라 자연히 놀이를 좋아하는 풍류객이 모여들어 동래의 기녀와 더불어 한량의 흥취는 고조되었으니, 들놀음춤과 사랑방춤이 어우러져 학춤을 이룬 것이다.
◈ 동래고무 동래학춤이 지방의 관속이나 기방의 한량에 의하여 추어진 춤이라면 동래고무(鼓舞)는 동래감영의 교방청(敎坊廳) 기녀들에 의하여 추어진 춤이다. 고무는 북춤으로 검무·승무와 함께 특별한 행사 때만 추었다.
◈ 백록(白鹿)의 동래온천 금정산 중턱에는 소하라는 선인(仙人)이 금구(金龜)선인과 함께 백록을 타고 노닐었다는 소하정(亭)이 있었다고 한다. 아득한 신라 때, 다리를 쓰지 못하는 노파가 그 부근에 살고 있었는데 마침 절룩거리는 백록이 나타나 소하정 주위를 배회하더니 사흘만에 완쾌되는 것을 보고 신기하여 노파도 절룩거리는 다리에 몇 십 번이고 샘물을 찍어 발랐더니 다리가 자유롭게 되어 마침내 온천이 알려졌다고 하였다.
개항(開港) 이후 일본인도 김선근 동래부사에게 온천 사용을 강력하게 요구하므로 부사는 힘에 밀려 여탕 자리의 목욕탕 한 칸을 빌려주고 사용료 40원을 받게 하였다. 이때 일본인들이 욕실 밖 도배를 해달라고 졸라 무심코 오래된 동래부민의 호적부를 내주었더니 이 소문이 퍼져 부민(府民)이 격노하여 소요가 일어났는데 관민이 충돌하여 약간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다. 이것이 동래민란의 경위이다.
◈ 박권농(勸農)과 아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이전 박권농(勸農)이 동래의 미남 마을에 살았다. 어느 날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가다 서천교 밑 모래밭에 쓰러져 깊은 잠에 들었는데 도둑이 접근하여 바지 저고리까지 벗겨갈 작정이었다. 이때 순라군이 이 광경을 보고 도적을 잡으려 했으나 박권농은 “우리 마을 사람인데 나를 업고 가려는 것”이라 변호하고 그 도둑을 달래 양아들로 삼았는데 며칠 후 양아들이 찾아와서 말하기를 “제가 돈 200냥을 만덕고개에 묻어 두었으니 찾아 가용(家用)에 쓰십시오” 하였다. 처음엔 완강히 거절하였으나 간곡한 말에 못이겨 돈을 가져오니 이후 생계가 부유하여졌다.
이때 동래의 명문인 서동(書洞) 김씨(金氏) 집에는 출생시부터 얼굴에 보자기를 쓴 듯 껍질로 덮혀 입만 내어놓고 숨을 쉬던 괴물 같은 딸 하나가 있었다. 그런데 이 혼기를 놓친 노처녀에게 박권농의 친아들이 청혼을 하였으니 부모도 반가운 마음으로 허혼하였다. 혼인하던 날 밤에 신랑은 대칼(竹刀)를 만들어 신부의 껍질을 벗기니 놀랍게도 천하 절색이 탄생하였다. 이후 부부는 금슬도 좋았거니와 또 신랑은 무예(武藝)에 출중하여 벼슬하고 서동김씨의 세력에 힘입어 후손도 크게 번창하였다.
◈ 류심의 전생모자(前生母子) 동래 서문통(西門通) 좁은 길, 둘째 집 뜰에 동래부사 류심의 비석이 있는데, 옛날 이 집에는 과수 한 사람이 네 살 짜리 아들 하나에 의지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당시 동래부사가 도임할 때 행차는 매우 어리어리하여 이 과수도 아들을 업고 이 장관을 구경했는데 등에 업힌 아들이 “나도 커서 저렇게 할 수 있나요” 물으니, 과수가 “우리는 상놈이라 꿈에도 생각할 수 없다” 하자, 어린 아들이 크게 충격을 받아 밥도 먹지 않고 말도 하지 않고 며칠 뒤 죽었다. 과수의 슬픔은 말할 수가 없어 눈물로 날을 세웠는데 어느 날 꿈에 죽은 아들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어머니 울지 마셔요. 저는 서울 재상가의 류씨 가문에 태어나 잘 살고 있습니다” 하였다. 세월이 가도 아들을 잊을 수가 없는 과수는 아들이 죽은 날에 제상을 차려놓고 울기도 하였던 것이다.
한편 서울에 류심은 생일날이면 꼭 동래에 가서 제사 음식을 먹고 돌아오는 꿈을 꾸었다. 그 후에 장성한 류심은 동래부사에 도임 했는데 이상하게도 꿈속에서 찾아간 집과 같은 집이 있었다. 조심하여 마당에 들어서니 백발노파가 제상을 차려놓고 울고 있었다. 이날은 바로 과수의 아들이 죽은 날이요, 그리고 류 부사의 생일이었다. 류 부사는 직권으로 전생의 어머니에게 돈과 곡식을 내려보냈다고 한다.
◈ 민요 조사된 동래 지방의 민요는 대체로 1. 일할 때 부르는 노동요(勞動謠), 2. 여인들이 부르는 부요(婦謠), 3. 지신밟기 등 의식 때 부르는 의식요(儀式謠), 4. 어린이들이 부르는 동요(童謠), 5. 기타 등 5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다.
1) 노동요 : 모찌기 노래(4종), 모심기 노래(60종), 논매는 노래, 타작노래(2종), 밭매기 노래, 호미소리.
2) 부요 : 시집살이 노래(8종), 애원애기 노래(2종), 꼬대각시 노래, 댕기 노래, 첩 노래, 첩년 부고, 상사병에 죽었더라, 꽃노래(3종) 노랫가락(2종) 난감춤이, 옥다춘 노래, 섣달맏딸 노래, 쌍가락지 노래, 나 죽으면, 바느질 노래, 애기 어루는 노래, 주추캐는 저 처자야, 주머니, 이산 저산, 샛별 각시, 새미 처자, 분통같은 저 젖봐라, 염불선, 물레타령, 비단타령.
3) 의식요 : 동래지신밟기(4 마당), 지신밟기, 지신밟기 노래, 성주풀이, 상여 앞소리, 쾌지나칭칭(5종)
4) 동요 : 엄마 노래를 비롯하여 46종
5) 기타 : 각설이 타령(5종), 장타령, 화투놀이, 영화로세, 포수노래, 탕건노래가 전한다.
◈ 방언 동래를 풍자하는 말에서 대표적인 것이 ‘대구(大邱) 문둥이 동래 지랄이’와 ‘기장(機張) 장의(掌議) 몰장의 동래 사돈 몰사돈’이다. 이것이 누고? 이게 송아치가? 는 표준말에 없는 의문조사이다. 영남방언 중에 언지예·몰라예는 언지요·몰라요로 쓰고, 거시기·하모·에나·위습다는 잘 쓰지 않는다.
• 합니까, 합니다 / -넝기요, - 니더 • 아비, 어미 / 아배, 어매 • 여기, 저기 / 여개 · 여어, 조개 · 조오 • 콩나물, 두부 / 콩지름, 조피 • 어린애, 빨래 / 얼라, 서답
◈ 당산제(堂山祭) 현재 동래에서 지내고 있는 당산제로는 명륜주당산, 삼성대당산, 삼성대주당산, 옥봉산당산, 미남본동당산, 금정산주산신령각, 산저당산, 석사주산당, 여고주산당 등의 당산제가 있다. 당산제의 제사 주기는 대부분 1년이며, 제삿날은 음력 10월 초순인 산저당 당산제를 제외하고는 거의 음력 12월말부터 정월대보름 사이인데 몇 명의 제관을 선정하여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축문을 읽고 소지(燒紙)를 올리는 것이 보통이다.
■ 대표적인 종교단체
• 불교 금강사, 온천 1동 산 1 / 금정사, 온천1동 282
• 천주교 동래성당, 수안동 464-4 / 안락성당, 안락동 564
• 개신교 수안교회, 수안동 476 / 안락교회, 안락동 432-36
• 유교 동래향교, 명륜동 235 / 안락서원, 안락동 838
• 원불교 동래교당, 수안동 528-1
◈ 동래시장 상권 조선시대 동래읍장의 명맥을 이은 동래시장은, 동래의 중앙부에 위치하는데 옛날 동래부 객사가 있던 자리로서 일본이 허물어 시장으로 만들었다. 주변에 동래구청, 경찰서, 세무서, 교육청, 등기소 등이 있어 거대한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 온천시장 상권 동래 서부에 자리잡은 온천시장은 온천장, 허심청, 동래별장, 금강공원으로 이어져 위락시설·요식업소가 밀접해 있다. 북쪽은 산성유원지와 부산대학교 앞 상권과 연계되고 남쪽은 고속버스터미널·동부시외버스터미널과 연계되어 부산에서도 가장 강력한 상권으로 부상되고 있다.
◈ 안락시장 상권 동래 동부에 자리잡은 안락시장은 반송·기장과 재송·수영·해운대를 연결하는 중심으로 각광받고 있다. 주변에 충렬사, 예식장, 종합병원, 대형 아파트 단지 등이 포진되어 있다.
◈ 동래파전 봄철 동래지역에서 많이 나는 파, 미나리, 해산물 등 30여 종의 재료를 섞어서 만든 것으로 한방에서 유래되었으며 밀가루를 사용하지 않고 찹쌀 가루와 멥쌀 가루를 섞어 반죽하고 향긋한 파와 함께 연하고 달짝지근한 맛을 낸다. 음력 3월 3일 파전의 날, 임금 수라상에도 올려졌던 음식이다. 인근 동래 반탁집의 탁주와 곁들이면 더욱 맛이 좋아 지금도 많은 미식가의 왕래가 있다. 동래할매파전 : 복천동 367-2 ☎ (051)552-0792 김정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