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정은 청웅면 남산리 868-2번지 발산마을 입구 좌측 작은 동산위에 있다. 청웅면 소재지의 농협에서 우회도로 밑을 지나 우측으로 향하면 다리가 나오는데, 다리를 지나 다시 직진하면 이 정자가 보인다. 이 성석정(醒石亭)은 해주오씨의 재실 겸 모정이다. 상량을 지붕 안쪽으로 향하게 하여 정자의 내력을 쉽게 알아 볼 수 없으나, 다만 현판에 걸린 오석렴(吳錫溓)과 오석홍(吳錫洪)의 ‘성석정기(醒石亭記)’ 내용을 통해 1916년 병진(丙辰)에 세운 것임을 알 수 있다. 팔작 기와지붕에 겹치마를 두르고 정면 2칸, 측면 2칸으로 되어 있으며, 천정은 우물정(井)자로 만들어져 있다. 또한 그 옆에는 편액이 1개가 있고, ‘성석정(醒石亭)’이란 편액은 앞과 뒤에 각각 2개가 걸려 있다. 현재는 관리 소홀로 붕괴 위험이 있어 대대적인 보수가 요망된다. 【개요 - 2014.11 자료 추가】
石乎有醉人焉有醒人焉 陶公之石李相之 石是耳 然石奚能醒醉人乎哉 以人得名者 石也 人奚能醒醉石乎哉 以石而寓名者人也 則人與石豈苟然而已哉 今玉田鉢山村 惟我 族菊史兄家焉 性不嗜酒 酷好文史 尤精於 養生之道 頗有惺心之工 而見其家後百步 許有一石焉 狀如棊盤 但上廣而下狹 平而膩 滑 可容坐三四人而少倚之 雖無奇怪之狀 亦非賤棄之姿 況茂樹庇其上 細草藉其後 幽逕穿其前 不但爲一時休息之所 而蓮山芝 峀對聳而前後之 鷗汀鶴溪縈回而左右之 亦足爲風詠之所也 閒與四五同志 或床焉而 坐 或枕焉而臥 雖醉而易醒 醒醉之樂樂莫 樂矣 與其醉以爲名也 不若醒也 故名之曰 醒石 仍起一亭而揭扁曰醒石 以其原韻屬 余求和 余自愧久荒于酒 花樹之朝風月之夕 每受箴規者屢矣 今以此示 余者 不獨爲 自醒 抑將以醒余 余因而爲警省者亦 多 謹記始末如右 而幷次韻酬之云爾 居然我石在山西 十載琴書寄一樓 栗里陶翁非不樂 平泉李老願同携 坐時靜對胡僧鉢 枕下淸聞道士溪 憐爾三生塵夢悟 嘉名始得主人題 歲在丙辰仲冬下浣 族弟 月洲 錫濂謹記
성석정기(醒石亭記)
돌에 취하는 사람도 있고 돌에 깨닫는 사람도 있으니 도연명(陶淵明)의 돌과 이씨(李氏) 재상(宰相)의 돌이 이것이다. 그러나 돌이 어찌 능히 사람을 깨닫게 하고 취하게 하겠는가. 사람에게 명(名)을 얻는 것은 돌인데 사람이 어찌 능히 돌에게 깨닫고 취하고 하겠는가. 돌에 명(名)을 붙인 것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사람과 돌이 어찌 진실로 ‘그렇게 하자.’라고 했겠는가. 지금 옥전(玉田) 발산촌(鉢山村)에 우리 종족이신 국사(菊史)형님 집이 있다. 성품이 술을 즐겨하지 않고 문(文)·사(史)를 혹되게 좋아하고 더욱 양생지도(養生之道)에 정통하여 자못 마음을 일깨우는 공부를 했다. 그런데 그 형님집 뒤 백보쯤에 한 돌이 있으니 모양은 장기판 같은데 위쪽은 넓고 아래쪽은 좁고 평평하면서도 매끄러워서 사람 세 네 명이 앉아서 얼마 동안 기댈만하다. 비록 용모에 기괴한 곳은 없지만 또한 천해서 버릴만한 모양도 아니다. 더구나 무성하게 나무가 그 위에 가려있고 잔잔한 풀들이 그 뒤에 깔려있고 아늑한 오솔길이 그 앞에 나 있으니 잠시 휴식할 장소뿐만이 아니었다. 앞뒤에는 연하봉[蓮山]과 지수(芝峀)가 마주보고 우뚝 솟았으며 좌우에는 구정(鷗汀)과 학계(鶴溪)의 시냇물이 돌아나가니 또한 음풍농월하기에 적합한 정소이다. 한가할 때 네 다섯 동지(同志)와 혹 평상삼아 앉고 혹 베개 삼아 누우면 비록 취했더라도 쉽게 깨니 깨고 취하는 낙(樂)을 즐기는 것이 이보다 즐거운 곳이 없다. 그 취할 ‘취(醉)’ 자로 이름 짓는 것 보다는 깰 ‘성(醒)’ 자로 이름 짓는 것이 나았다. 그러므로 ‘성석(醒石)’이라고 하였다. 이어 한 정자를 건립하고 편액을 ‘성석(醒石)’이라 내걸고 그 원운(原韻)을 가지고 나에게 화답을 요구했다. 내 자신이 부끄러운 것은, 오랫동안 술에 빠져서 아침에는 꽃과 나무에, 저녁에는 바람과 달에 빠져 살면서 늘 잠규(箴規)를 받은 것이 여러 번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로써 나에게 보여주니, 자성(自醒)할 뿐만 아니라, 또한 장차 나를 깨우쳐서, 내가 인하여 경계하고 각성하는 것 또한 많을 것이기 때문에, 삼가 시말(始末)을 위와 같이 기록하고 아울러 차운(次韻)하여 수답(酬答)한다. 여전히 우리 돌은 산서(山西)에 있어, 居然我石在山西 금서(琴書) 10년을 한 누각에 맡겼네. 十載琴書寄一樓 율리(栗里)에서 도옹(陶翁)은 즐겁지 않았을까, 栗里陶翁非不樂 평천(平泉)에 이노(李老)는 함께 만나려했노라. 平泉李老願同携 앉아서 간혹 호승(胡僧)의 바리때를 보고, 坐時靜對胡僧鉢 누워서 아래 도사(道士)의 시냇물 소리 듣네. 枕下淸聞道士溪 가련하다, 삼생(三生)의 티끌 꿈에서 깨어나, 憐爾三生塵夢悟 가명(嘉名)으로 처음 주인의 표제(標題)얻었네. 嘉名始得主人題
병진(丙辰) 중추(仲冬) 하완(下浣) 족제(族弟) 월주(月洲) 석렴(錫濂)은 삼가 기(記)한다.
余自少夙抱泉石之癖 竊有幽棲之願 而 遭家多艱 爲世故所醉 東西奔汨 不遑啓 處者久矣 往在癸未 僑居于玉田之鉢山 地無湖山之勝 人少文物之雅 但淳樸之 風 不遜於古矣 明年夏搆一茅亭於東 山之麓 不徒爲避暑之宜 下有一石 平而膩 滑如狀簟 坐臥俱便 可使元章拜之 坡 老友之 而惜乎其見賤於樵牧之場 無 一題品者 物之有遭 亦有時而然歟 噫萍 根未託 復移於上雲 而未幾還接于鉢 則亭已墟矣 而石顧自如矣 人事之嬗移 良可浩嘆 於是不量家力之薄弱 爲遂 宿昔之志願 始於丙辰秋 拓舊墟加新制 竪 數椽於盤石之右 風欞月榭 軒豁洞暢 可 觴可詠 正合棲息之所也 於是擧酒於亭 上 速衆賓而落之 酒半余乃整襟而問客 曰 今吾之亭爲愛此石而成 則將何以爲標 榜 客曰 栗里之石 得陶翁而曰醉 平泉之 石得李相而曰醒 可謂千古奇遇也 君請 擇於斯二者 余啞然而笑曰 石則均也 而人 非其人 則吾何敢妄擬 雖然顧余一生 乃 塵臼中沈酣者 今得此石而頓醒 則因以醒 石名吾亭 可乎 遂爲之記 有石盤之枕峴西 醒心始得暮年棲 爽襟不被壺觴困 列坐何煩簟席携 野闊晴烟籠遠樹 山底明月印前溪 此庄倘似平泉否 愛余摩挲爲一題 丁巳仲春上弦 吳錫泓稿
성석정기(醒石亭記)
내가 소싯적부터 일찍이 마음에 천석(泉石)을 좋아하는 성벽(性癖)이 있어서 은근히 그윽한 곳에 사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러나 집안이 곤란하여 세고(世故)에 빠져서 동서로 분주하다가 겨를을 내지 못한지가 오래 되었다. 지난 계미(癸未)년 옥전(玉田) 발산(鉢山)에 교거(僑居)하여 살았는데 이 지역에는 이름난 호수와 산도 없고, 인물로 본다면 문장이 훌륭한 인물도 드물었으나, 순박(淳樸)한 풍속만은 옛날에 뒤지지 않았다. 이듬해 여름 한 채 모정(茅亭)을 동쪽 산기슭에 얽었으니 피서(避暑)하기에 마땅할 뿐만이 아니었다. 아래에 한 돌이 있었는데 반반하면서도 매끄러워 마치 모양이 대자리처럼 앉고 눕기에 모두 편리해서, 원장(元章)이 봤으면 배례(拜禮)도 할 만하고, 소동파(蘇東坡)가 봤으면 벗을 삼을만했다. 그러나 아깝게도 땔나무하고 가축을 기르는 장소로 전락해서 한 번도 품평을 받은 적이 없었으니 사물(事物)의 만남이 있는 것 또한 시기(時機)가 있어서 그런 것인가. 아아, 부평초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다시 뜬구름처럼 옮겨가서 얼마 안 되어 다시 바리때로 돌아오게 된다. 그렇다면 정자는 이미 폐허가 되었으나 석(石)은 돌아보니 여전히 그 자리에 있으니 인사(人事)의 변천이란 참으로 크게 탄식할만하다. 이에 가문의 재력이 옹색한 것도 헤아리지 않고 예전부터 바라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비로소 병진(丙辰)년 가을에 옛 집터를 확장하고 새 제도로 더 넓혀 두어 서까래를, 반석(盤石) 오른쪽에 세웠다. 바람 부는 난간과 달뜨는 정자는 시원하게 확 트여서 술을 마시기에 좋고 시(詩)를 노래하기에 좋으며 거처하면서 휴식할 장소로 적합했다. 이에 정자에서 술잔을 들어 많은 손님을 초청하여 낙성연을 가졌다. 술이 한창 취하자, 내가 이내 옷깃을 단정하게 여미고 손님에게 물었다. “지금 우리정자는 이 돌을 아끼기 위하여 지은 것이니 장차 어떻게 표방(標榜)해야겠습니까.” 했더니, 손님이 대답하기를, “율리(栗里)의 석(石)은 도옹(陶翁)을 만나서 ‘취(醉)’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고, 평천(平泉)의 석(石)은 이씨(李氏) 재상(宰相)을 만나서 ‘성(醒)’이라 이름을 받았으니 천고(千古)에 기이한 만남이라 말 할 만합니다. 그대는 이 둘 중 선택하십시오.” 하였다. 내가 껄껄 웃으면서 말하기를, “석(石)은 균등하나 사람이 그 사람이 아닌데 내가 어찌 감히 경거망동하게 선택하겠습니까. 비록 그러나 나의 일생을 돌아보니 바로 풍진세상을 술독에 푹 빠져 산 사람입니다. 지금 이 석(石)을 얻어서 각성하였으니 인하여 성석(醒石)으로 우리정자를 이름 지어도 좋겠습니까.” 하고, 마침내 기(記)를 쓰노라.
반반한 돌이 언덕을 베게하고 있어서, 有石盤盤枕峴西 마음 깨달아 모년에야 깃들 곳 얻었네. 醒心始得暮年棲 상쾌한 회포는 동이 술을 마셔도 노곤치 않고, 爽襟不被壺觴困 줄지어 앉으니 어찌 번거롭게 대자리 가져오랴. 列坐何煩簟席携 널은 들에 비 개이니 멀리 나무에 연기 끼고, 野闊晴烟籠遠樹 산 밑에 밝은 달뜨니 앞 시내에 반사했더라. 山底明月印前溪 이 별장이 혹여 평천(平泉)과 흡사한가, 此庄倘似平泉否 내 아껴서 어루만지며 한번 시를 적노라. 愛余摩挲爲一題
정사(丁巳) 중춘(仲春) 상현(上弦)에 오석홍(吳錫泓)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