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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임실문화원의 지식창고 임실의 정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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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임실의 정자 (2013)
◈ 13. 덕옥재(德玉齋) - 지사면 계산리
덕옥재는 지사면 계산리 옥산마을 입구 좌측에 위치해 있다. 팔작지붕 너와집으로 정면2칸, 측면2칸이며 난간이 있고, 바위 위에 자연스럽게 정자를 얹혔으며, 그 주위를 적송이 둘러싸고 있다. 너와 지붕으로 된 정자는 극히 보기 드문 것으로서, 너와는 성수면 왕방리에서 가져다가 지붕을 입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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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옥재는 지사면 계산리 옥산마을 입구 좌측에 위치해 있다. 팔작지붕 너와집으로 정면2칸, 측면2칸이며 난간이 있고, 바위 위에 자연스럽게 정자를 얹혔으며, 그 주위를 적송이 둘러싸고 있다. 너와 지붕으로 된 정자는 극히 보기 드문 것으로서, 너와는 성수면 왕방리에서 가져다가 지붕을 입혔다고 한다. 덕옥재 편액은 주자의 글씨를 집자 한 것이다. 정자 안에는 현판이 4개가 있는데 이연회, 권정악, 기우만 등이 쓴 현판이 있다.
 
덕옥정기(德玉亭記)에 의하면 덕옥재는 정미년 즉 1907년 8월에 지어졌다고 기록되어있다. 덕옥재는 조선조의 명재상이며 공신이었던 광주인(廣州人) 동고(東皐) 이준경의 10세손인 물재(勿齋) 이연회(李淵會)선생의 호이다. 선생께서는 남달리 학문이 뛰어나고 생활은 검소하여 이 정자를 건립하는데 1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덕옥재를 항구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억새와 토기도 마다하고 산넘어 성수면 왕방리의 30리나 되는 아침재 길을 9년 동안 걸어서 운반 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 정자는 상량문이 없는데, 상량식을 빌미로 주변 여러 학자들과 후학 유생들의 폐를 염려하였기 때문에 짓지 않았다고 한다.
【개요 - 2014.11 자료 추가】
 
 
 
 
 
 

1. 1. 德玉齋記

齋以德玉 取諸山而名之也 龍城之北 德
山之陽 古稱林壑之勝 而其鬱然而興 巍
然而秀者 玉山也 一區幽邃 群巒逶迆 宜
可以爲盤旋之地矣 是山也祖於德裕八
公 馳驟數百里 或珠貫璣連 又如有德者
端拱而儼立 寔我曾王考嘉遯逍遙之所
也 噫 不肖譾劣 雖不能紹述先懿 顧瞻桑
梓 每不禁羹墻之慕 於是乎建築焉 鮮原
則依乎盤石之固 燕落則在乎赤羊之秋
軒欄之不高華 述先世之儉德 扁楣之義
乃先師之所命名而比德於玉之意也 夫
玉之溫潤仁也 華光禮也 剛栗義也 淸越
智也 堅貞信也 玉乎玉乎 德斯備矣 雖然
材生乎天 用成乎人 竹非不直 括羽而後
利 金非不剛 淬礪而後精 玉何不然 禮稱
其琢 詩讚其功 欲吾將日夕磨礱 發其輝
而成其美 韞諸櫝而待其價 此先師之意
而小子之勉也 至若朝暮四時不同之景
與夫松翠滴簾 澗冷鳴枕 眼界之軒敞 胸
次之灑落 亦齋之俱 而今不盡焉
丁未八月下澣 勿齋 李淵會 書
 
 
덕옥재기(德玉齋記)
 
재(齋)를 ‘덕옥(德玉)’이라고 한 것은 산(山)에서 뜻을 취해서 이름 지은 것이다. 용성(龍城)의 북쪽, 덕산(德山)의 남쪽은 옛날 임학(林壑)이 좋은 경치로 일컬어졌다. 그 빽빽이 우거지고 그 높이 빼어난 곳이 옥산(玉山)이다. 지경이 그윽하고 깊으며, 뭇 산이 구불구불 이어지니 마땅히 은자가 소요할 만한 땅이로다.
이 산은 덕유(德裕)와 팔공(八公) 두 산을 비조(鼻祖)로 수 백리를 치달려서 혹여 구슬을 꿰어 연달아 이어진 듯하고 또 덕이 있는 자가 단정히 팔짱끼고 의젓하게 서 있는 것 같으니, 바로 우리 증왕고(曾王考)께서 은둔하여 소요(逍遙)하셨던 곳이다.
아아, 불초하고 용렬한 내가 선대의 아름다운 자취를 소술(紹述)하지는 못했지만 상재(桑梓 : 고향)를 돌아보면 늘 갱장지모(羹墻之慕)를 금할 수 없었다. 이에 덕옥재를 건립하였으니, 좋은 터는 반석(盤石)에 의지하여 견고하였고, 낙성식은 적양(赤羊: 1907년) 가을에 하였다. 추녀와 난간이 높고 화려하지 않는 것은 선세(先世)의 검소한 덕을 계술한 것이고, 현판의 뜻은 선사(先師)께서 명명한 것으로 덕(德)을 옥(玉)에 비유하는 뜻이다.
저 옥의 온윤(溫潤)함은 인(仁)이며 화려하게 빛남은 예(禮)이며, 굳세고 단단함은 의(義)이며, 맑게 뛰어남은 지(智)이며, 튼튼하고 곧음은 신(信)이니, 옥이여, 옥이여, 덕이 이에 갖추어졌도다. 비록 그러나 재목은 하늘에서 낳지만, 쓰임은 사람에게서 이루어진다. 대나무는 곧지 않은 것이 아니나 깃털로 묶은 뒤에 예리해지고, 쇠는 강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담금질하여 갈아야 정(精)해지니 옥이라고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예기(禮記)에서는 그 쪼는 것을 칭찬하고 시경(詩經)에서는 그 공(功)을 찬미했다. 내가 장차 밤낮으로 갈고 닦아 그 빛을 발휘하고 그 아름다움을 완성하여 독에 감춰두고 그 값을 기다리려고자 하는 것이 이것이 선사(先師)의 뜻이고 그리고 소자(小子)가 힘써야 할 일이다. 아침저녁과 사시사철로 같지 않은 경치, 소나무 푸른 빛이 발에 방울지는 것, 차가운 시냇물 소리 베개머리에 들리는 것, 시야가 탁 트인 추녀, 가슴이 씻은 듯 상쾌한 것 등 이런 것들은 또한 덕옥재(德玉齋)가 갖추고 있어서 여기에서 다 거론하지 않는다.
 
정미(丁未) 팔월(八月) 하한(下澣)에 물재(勿齋) 이연회(李淵會)는 서(書)하노라.
 
 
 

2. 2. 德玉齋

卄載經營屋數間 蓊然林壑自幽閒
西南野色建天宇 十二崢形繞玉環
先靈陟降恒如在 小子盤旋久未還
晦翁講義曾何日 百世猶能仰此山
甲申八月晦日 李淵會 謹書
 
 
덕옥재(德玉齋)
 
20년 동안 경영하여 지은 집 두어 칸 卄載經營屋數間
무성한 임학(林壑)은 절로 아득하네 蓊然林壑自幽閒
서남쪽 들판은 푸른 하늘을 세운 듯 하고, 西南野色建天宇
열두 산봉우리는 옥을 다투어 에워싼듯 하네. 十二崢形繞玉環
선영(先靈)께서 오르락내리락 늘 계신 것 같아, 先靈陟降恒如在
소자(小子)는 배회하며 오래 되돌아오지 못했네. 小子盤旋久未還
회옹(晦翁)이 의(義)를 강론했던 것이 어느 때였던가, 晦翁講義曾何日
백세토록 오히려 이 덕옥재을 산처럼 앙모하리라. 百世猶能仰此山
 
갑신(甲申) 8월 그믐(晦日) 이회연(李淵會)은 근서(謹書).
【향토】 임실의 정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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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6.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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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