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영웅 제주마-1
전북 임실 문화원장을 지낸 최성미 원장(76세)이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했다. 원장의 따님이 서울 송파에 사는데, 주소를 물어보니 필자 집과 아주 가까웠다. 필자는 새마을 시장 입구 작은 카페에서 최 원장을 신현근 대표와 같이 만나 차를 마셨다. 헤어질 시간 무렵에 필자가 지나가는 말로 “원장님! 내일 시간이 나면 바람을 쐬러 연천을 구경 가실까요?”하고 물었다. 최 원장은 “그렇게 해주면 저는 고맙지요!” “혹시 연천에 아는 분이 계시나요?” “내가 삭령 최 씨인데. 형님네 식솔들이 아직 연천에 살지요.” 등의 대화를 나누었다. 삭령군은 지금은 철책선 안에 있던 곳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삭령군 땅들이 연천군과 철원군에 분리되며 지명이 폐지되었다.
▲ 경기도 삭령군 약도(사진:위키미디어)
다음 날 아침 일찍 최 원장을 지하철에서 만났다. 우리는 경기도 연천군 전곡선사박물관에 전시된 프랑스 쇼베 동굴 벽화(Chauvet Cave)를 보러 출발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 중간에 1번 갈아타고 소요산역에 내렸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는 〈벨기에 · 룩셈부르크 참전 기념탑〉을 방문하여 참배하고 영령(英靈)들을 위로(慰勞)했다.
연천행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창문을 통해 ‘삼팔선 경계 표지석’을 스치듯 보았는데, 38선을 보는 순간 외면하고 싶었지만 군대 시절이 한순간 떠올랐다. 필자는 임진강과 감악산이 있는 철책선 사단에서 근무했는데, 시간이 날 때마다 임진강과 고랑포, 연천군 백학 지역을 방문하여 나무 아래 정자에서 장기를 두는 어르신과 자주 대화를 나눴다. 동네 어르신들은 젊은 장교에게 마을 전설과 한국전쟁에서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슬픈 이야기를 수시로 들려주셨다. 군번이 없는 민간인 이야기, 타이거 여단, 30만 명의 지게 부대 병사 이야기, 고랑포 전설, 경순왕릉과 나룻배, 한반도 고유종인 임진강 황복, 임진강 참게, 화신백화점 분점, 제주말 등을 들려주셨는데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제주말 이야기는 어르신에게 들은 이야기 중 하나이다.
▲ 벨기에 · 룩셈부르크 참전 기념탑
1950년 6월 25일 북한은 무력으로 남한을 침공했다. 유엔은 북한의 침공을 좌시하지 않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로 대한민국을 방어하고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유엔군을 참전시켰다. 미국, 프랑스, 에티오피아 등 16개국의 군인들이 대한민국을 지키러 왔다. 한국전쟁 영웅 제주말 이야기는 1952년의 한국전쟁 당시 미국 해병사단의 군인들과 제주마 〈아침 해, Reckless〉에 대한 이야기다.
▲ 제주마〈Reckless〉와 미국 해병대 (사진:미국국립해병대박물관)
필자가 근무했던 보병 제25사단에 가려면 의정부에서 덕정 지역을 지나 작은 길을 따라 신산리로 들어간다. 군사경찰 검문소 가기 전에 은현면에는 군부대에 두부를 납품하는 두부 공장과 ‘육군 제3군견훈련소’가 있었다. 100여 마리의 군견들은 병사들과 함께 생활하며 고유 이름과 계급이 있었다. 그 당시는 여름철에 철책선 하천이 범람하면 북쪽에서 간첩이 사미천이나 철책선을 뚫고 침투해 혼란을 일으켰다.
간첩이 침투하면 후방 병력이 전방으로 올라와 차단 작전을 펼쳤다. 본격적 수색이 시작되면 훈련을 받은 군견이 앞장을 섰다. 군견은 병사보다 만 배나 뛰어난 후각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낯선 냄새를 놓치지 않았다. 군견이 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장애물 극복 등 4개월에 걸친 기본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추적, 수색, 탐지, 경계 등의 주특기를 부여받고 약 10개월간의 고된 훈련을 통과해야 선발되었다. (계속)
▲ 노무대(勞務隊) 활약상(사진:국가기록원)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