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병대 특급병사 제주마 레클리스(Reckless)-1
신설동 경마장을 출발해 무악재를 넘은 에릭 페터슨 중위 일행은 중간에 날이 어두워 이름도 모르는 작은 마을에 들려 하룻밤 따뜻한 방에서 신세를 졌다. 다음 날 아침 제주말은 예전과 같이 마을을 돌아다녔다. 에릭 페터슨 중위는 말을 운송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생각하며, 말이 다치면 큰일이라 생각해 말에서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해가 지고 나서 어두울 때 부대에 도착했다.
작은 말을 본 해병대 병사들은 신기해서 말 등에 올라타고 만지고 난리를 쳤다. 에릭 페터슨 중위는 부대 지휘관에게 출장 다녀온 것에 대하여 보고하고, 여러 날 함께 고생한 운전병과 통역자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밤이 늦었지만, 에릭 페터슨 중위는 중대 본부에서 밀린 일들을 처리했다. 제주말은 부대에 도착하여 변두리 넓은 땅을 지정받았다.
제주마 아침 해는 김혁문이 며칠 동안 보이지 않자 조금은 불안했는지, 병사들이 머리를 쓰다듬고 좋은 사료와 물을 주어도 본체만체하면서 눈만 계속 껌벅였다. 에릭 페터슨 중위는 신설동 경마장에서 어렵게 구해온 말이 사료를 잘 먹지 않는다는 보고를 받았다. 어렵게 구한 말을 소홀하게 둘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전담해서 돌보고 관리할 책임자가 꼭 필요하다가 생각했다. 병사 중에 말을 키우거나 다를 줄 아는 대원이 있는지 중대 본부에 조사를 시켰다. 중대원 개인 자료표를 보니 소대장 조셉 라담 병장(Sgt. Joseph Latham)이 전에 경주마를 다룬 적이 있어 적합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 조셉 라담 병장과 레클리스 병사(사진: 미국 해병대박물관)
에릭 페터슨 중위는 조셉 라담 병장과 면담을 한 후 병장에게 “제주마를 잘 부탁한다.”라고 말했다. 에릭 페터슨 중위는 말에게 붙일 새로운 이름은 어떤 것이 좋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했다. 한글 이름 ‘아침 해’을 발음하기가 너무 어려워, 에릭 페터슨 중위는 중대원을 모아 놓고 “새로 데려온 제주 조랑말 이름을 무엇으로 정하면 좋겠냐?”라고 물었다. 아무도 답변하지 않는데, 뒤편에 앉아있던 병가가 “Reckless”하고 외쳤다. 레클레스는 한글로 ‘무모하다’는 뜻이다. 해병대원들은 ‘75mm 무반동 소총’을 ‘Reckless Gun’이라고 불렀다. 동료 병사가 “Reckless”라고 제안하자 중대원은 모두 동의했다. 한 해병 병사는 말의 목에 ‘Reckless’ 영문 이름표를 만들어 주고, 목에 환영 꽃다발을 걸어주었다.
그날부터 키가 작고 귀여운 제주마 레클리스는 병사들과 전쟁터 동료가 되었다. 중대원들은 레클리스를 축하해주는 파티를 열었다. ‘아침 해 2세 Reckless’는 1952년 10월 26일 자로 미 1사단 5연대 2대대 중화기 중대의 해병대원이 되었다. 그날부터 레클리스 병사는 말뚝에 묶여있지 않고, 캠프의 막사를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자유롭게 기웃거렸다.
레클리스는 맛있는 냄새가 나는 조리실이 제일 좋아해 자주 기웃거렸다. 레클리스는 사과, 당근, 귀리를 좋아했다. 병사들이 주는 초콜릿도 잘 먹었다. 레클리스는 겁도 없이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먹으려고 했다. 하루는 병사의 팔에 있던 담배 뭉치를 통째로 먹으려고 한 적도 있어 병사들이 가서 뜯어말렸다. 그런 광경을 자주 목격한 소대장 조셉 라담 병장은 레클리스 병사가 정식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에릭 페터슨 중위에게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을 상세하게 보고했다.
조셉 라담(Sgt. Joseph Latham) 병장은 레클리스 병사를 ‘말굽(hoop) 캠프’에 입소시켰다. 미 해병 제1사단에는 말들이 3마리 있는데, 그냥 단순한 일만 시켰다. 소대장 조셉 라담 병장은 오랜 시간을 레클리스 병사와 언덕에서 지냈다. 라담은 말에게 대화하면서 통신선을 구별하고, 안장이 없이 눕는 법, 철조망을 넘는 법, 철조망을 우회하여 돌아가는 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레클리스가 초대 없이 병사들의 텐트에 들어가고 나오는 법과 중대 벙커에 출입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먹는 음식물과 못 먹는 물건을 구별하게 했다. 레클리스는 기억력이 뛰어나 조셉 라담 병장이 알려주는 것을 한 번에 모두 기억하고 그대로 실행했다.
▲ 철조망 우회 훈련(사진: 미국 해병대박물관)
라담 소대장은 레클리스가 철조망을 피해 우회하는 것을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말이 하나씩 이해하도록 시간을 주어 도와주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중대원들이 적에게 공격받았을 때 바로 숨을 곳을 찾아 즉각 대피하는 것을 반복해서 가르쳤다. 레클리스 병사 등위에 안장이 없으면 눕도록 가르쳤고, 얕은 벙커를 대비하여 무릎을 꿇고 기어가도록 반복 훈련을 시켰다. 이렇게 훈련을 받은 레클리스 병사는 아주 기억력이 좋아 라담 병장이 시키는 것을 모두 그대로 재현했다.
레클리스는 시간이 지나자 전 주인인 김혁문을 찾는 횟수가 점점 줄었다. 멀리 바라보고 머리를 흔드는 습관이 완전하게 사라졌다. 이제 레클리스 병사는 라담 소대장과 완벽한 친구가 되었다. 라담 소대장이 제주말 레클리스 병사에게 자유 시간을 주자, 레클리스 병사는 부대 주변을 마음껏 돌아다녔다. 특히 새로 온 신입 병사를 만나 금방 친구가 되고 거수경례 인사를 받았다.
▲ 에드윈 폴락(Edwin A. Pollock) 미 해병 제1사단장(1952년 겨울)
심지어 미 해병 제1사단의 신임 지휘관인 에드윈 폴락(Edwin A. Pollock, 1899~1982) 소장도 레클리스 병사를 만나러 왔다. 에드윈 폴락 사단장은 1951년 10월 소장으로 진급하여, 1952년 8월 미 해병 제1사단을 지휘하러 처음 한국에 도착했다. 에드윈 폴락(Edwin A. Pollock) 미 해병 제1사단장은 부임한 지, 얼마 안 돼 한국 해병대 제1연대가 1952년 3월 17일부터 맡아 지키고 있는 장단(사천강) 전투지역을 돌아보았다. 이 지역은 판문점에서 사천강에 이르는 약 11km로 중공군 2개 사단과 치열하게 공방 중인 지역이었다.
1952년 10월 16일~17일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을 때 에드윈 폴락 미 해병 제1사단장은 항공기를 지원하여 5,000명의 한국 해병대가 끝까지 고지를 사수할 수 있게 하였다. 장단 사천강 전투는 1952년부터 이듬해까지 495일 동안 임진강 북쪽 장단지역에서 한국 해병대와 미 해병 1사단이 중공군의 4개 사단 52,000명과 맞서 싸워 한국 해병대는 전사 776명, 부상 3,214명, 중공군은 전사 14,017명, 부상 11,011명, 포로 42명이었다.
▲ 해병대 장단 사천강 전투 전승 기념비, 2014.11.13. 제막 (사진: 해강석재)
에릭 페터슨 중위는 미국에서 아내가 보낸 말 안장을 혹시나 하면서 레클리스 등에 올렸더니 크기가 약간 맞지 않아 조셉 라담 병장을 시켜 사단에 수리를 요청했다. 며칠 후 안장이 중화기 중대에 도착했다. 중대원들이 모인 가운데, 레클리스 병사에게 안장 검사를 했다. 정말 완벽한 안장으로 레클리스 병사는 한결 편안해 보였다. 해병대원들은 조심스럽게 레클리스 병사에게 짐을 싣고 걷는 연습을 시켰다. 해병대원들은 신기해서 자꾸 말을 쳐다보았다.(계속)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