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병대 군마 레클리스(Reckless)-1
한국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53년 미 해병 1사단 제5연대는 판문점 동쪽 18km에 있는 연천군 장남면 매현리 부근 네바다 전초 고지를 지키고 있었다. 네바다 전초는 베가스 전초, 레너 전초, 카슨 전초로 구성되었다. 네바다 전초 고지에 겨울이 찾아와 땅이 꽁꽁 얼자, 해병대원들은 군마 레클리스를 더욱 알뜰하게 보살폈다.
제주마는 털이 두꺼워 아무리 추워도 내부에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잔다. 조셉 라담 병장은 날이 너무 춥고 바람이 세차면 말을 슬며시 대형 텐트 안으로 유도하여 불을 쬐며 놀게 하였다. 해병대원들은 쉬는 시간에 카드놀이를 하다가 말의 등에 올라타고, 카우보이 목동의 흉내를 내며 신나게 놀았다,
▲ 연천군 장남면 매현리 네바다 전초
해병대 군마 레클리스(Reckless) 병사의 기억력이 뛰어나 에릭 페터슨 중위와 소대장 조셉 라담 병장(Sgt. Joseph Latham)은 400kg의 육중한 레클리스 병사를 군마(軍馬)로 활용했다. 군마 레클리스는 고지까지 한 번 갔던 길을 모두 기억하고 순서대로 이행했다. 전투가 없는 날에도 탄약 수송훈련을 반복했다.
5연대 2대대 75mm 무반동 소총 중화기 중대 병사들은 레클리스가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자 감탄하여 동료에게 맛있는 것을 계속 주었다. 레클리스 병사는 힘도 세고, 고집쟁이에다 욕심쟁이라 해병대원들이 주는 것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 레클리스 병사와 해병대원(사진: 미국 해병대박물관)
미 해병 제1사단 5연대장은 해병대원이 다칠까 봐 겨울 추운 날에는 절대로 말 위에 오르지 못하도록 엄한 명령을 내렸다. 레클리스 병사는 호기심이 아주 강해 가끔 깜깜한 밤에 목초지를 빠져나와 돌아다니다가 멀리 있는 다른 소대의 참호까지 간 적이 있었다, 다른 소대에서는 귀한 해병대원이 찾아왔다고 난리가 났다. 그래서 말이 찾아올 때마다 맛있는 것을 주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어 소문이 났다. 조셉 라담 병장은 말이 심심하여 신병과 친해지려는 것으로 단순하게 생각했다. 하루는 말의 행동이 수상하여 조셉 라담 병장은 말 뒤를 몰래 따라가 보았다.
호기심이 많은 군마 레클리스는 병사들이 주는 간식 C-레이션에 홀딱 반해서 다시 찾아간 것이었다. 해병대원들은 비상시에 대비하여 자기만의 간식을 몰래 감춰두었는데, 말이 소대를 방문한 날 그만 C레이션을 준 것이다. 1951년 배급된 ‘B-3 UNIT’에 잼, 쿠키. 크래커, 커피, 밀크, 설탕이 들어있어 맛있는 쿠키를 먹은 것을 기억한 레클리스 병사가 간식을 준 해병대원을 만나러 밤에 몰래 방문했다,
▲ 한국전쟁 때 배급한 C-레이션(1951년, B-3 UNIT)
말들은 뭐든 먹을 것처럼 보이는 것이 있으면 먹으려는 습성이 있어 조셉 라담 병장은 동료에게 종이, 담배, 과일 등 물건들을 함부로 놓아두지 말라고 부탁했다. 레클리스 병사는 아침이면 조셉 라담 병장이 주는 사과를 제일 좋아했다. 하루는 라담 병장이 바빠서 사과를 주지 않았다. 그날 이후 레클리스는 라담 병장이 사과를 안 주면 살며시 다가와 라담의 얼굴을 핥았다. 하루는 산 정상까지 탄약을 운반하고, 내려올 때 부상자를 산 아래로 이송했다. 레클리스 병사는 단순한 군마가 아닌 동료를 구한 미 해병 용사로 거듭났다.
▲ 군마 레클리스와 휴식중인 해병대원(사진: 미국 해병대박물관)
탄약 수송 작전 도중에 레클리스는 파편상을 입고 피투성이가 되어 피를 흘리며 중화기 중대로 돌아왔다. 부대원들은 전투 중이라 경황이 없어 말이 다친 것을 몰랐다. 전투가 끝나고 쉬고 있던 병사가 말의 피와 상처를 확인했다. 조셉 라담 병장은 말을 데리고 군의관을 찾아갔다. 레클리스의 상처는 예상보다 아주 처참하고 심각했다. 파편은 왼쪽 눈 위와 왼쪽 엉덩이 쪽에 상처를 입혀 많은 피를 흘리게 했다. 피는 이미 굳어있었다. 군의관은 말의 상처를 보고는 상처가 아주 심각하고 빠른 회복은 기대하지 말라고 조련사 조셉 라담 병장에게 말했다. 상처가 빨리 아물지 못하면 부대 밖으로 다시 내보내야 한다고 진료 일지에 기록했다. 군의관은 레클리스 병사를 치료하고 강제 휴식을 명했다.
조셉 라담 병장은 말의 치료를 마치고 에릭 페터슨 중위에게 말의 부상 상태를 정직하게 보고했다. 상처를 치료받고 돌아온 레클리스 병사는 다음 날 아침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활기차게 부대 막사 주변을 돌아다녔다. 그리고는 탄약수송을 하려고 탄약고 병사에게 다가왔다. 해병대원들은 말이 파편을 맞아 강제 휴식 명령을 받았다는 것을 통보받아 탄약을 실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고집이 센 말은 자꾸 병사를 따라다니고 괴롭혔다.
말을 진심으로 아끼는 병사는 할 수 없이 평소에 운반하던 무게를 절반으로 줄였다. 말은 고지까지 금방 탄약을 운반하고는 아무런 일이 없는 듯 태연하게 돌아와 건초를 먹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었다. 해병대원들은 말이 불쌍하고, 한편으로는 다칠까 봐서 걱정이었다. 자신의 방탄조끼를 벗어 레클리스 병사에게 입혀주기도 했다. 레클리스 병사는 휴식하라는 군의관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매일 주어진 임무를 완벽하게 완수하고 부대로 돌아왔다.(계속)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