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방문한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3
1954년 2월 17일. 날씨는 영하 2도로 조금 쌀쌀했다. 한국에서 영하 20도를 경험한 병사들은 이런 날씨는 아주 따뜻한 날씨로 생각했다. 멀리 떨어진 부대 병사들은 공연장 맨 앞줄에 앉기 위해 새벽부터 공연장을 가려고 준비하기도 했다. 철원에 주둔한 미 보병 제45사단 공연에서는 7시간을 모포를 뒤집어쓰고 공연을 기다린 병사도 있었다.
▲ Marilyn Monroe의 특별 무대(사진:핀터레스트)
마릴린 먼로는 미 제10군단 예하의 미 보병 제2사단에서 공연을 하였다. 미 제10군단 사령부에서는 본부중대 배식을 하였다. 마릴린 먼로는 한국에서 병사들을 위문하러 다닐 때 항상 군용 잠바를 입었다.
잠바는 영어로 Jumper이다. 일본에서는 이 옷을 ‘잔바(ジャンバ─)’로 불렀고, 한국전쟁 때 외래어 잠바가 되었다. 이 옷의 기원은 중세 영국에서 커틀(kirtle) 이라는 옷으로 남성과 여성이 입었던 일상 의복이었다.
▲ Marilyn Monroe의 배식하는 사진(사진:핀터레스트)
드레스처럼 긴 옷은 매우 흔한 노동 계급의 옷으로 조금 길었다. 이 옷은 유럽에서 16세기 중반까지 유행 복장이었고, 17세기 중산층 의류의 대명사였다. 1600년대 이 옷이 불편하여 옷을 아래와 위로 나누었는데, 상의 옷을 Jumper라 하였다. 가볍고 작은 점퍼는 많이 개선되고, 여성들이 좋아하여 외출 시 많이 이용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군용으로 개선되고 널리 유행되었다. 공군 전투기 조종사들이 평소에 많이 입고, 낙하산을 가진 훈련병들이 수송기에 올라 고공 점프 훈련할 때 많이 입어 용어가 군대에서 생긴 단어로 알지만, 실제로는 중세 영국에서 비롯되었다.
▲ 마릴린 먼로(사진:핀터레스트)
위문 공연을 보기 위하여 연병장에 모인 병사들은 마릴린 먼로가 대단한 카리스마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무대에 오르면 모두 집중했고,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적막감이 흘렀다. 만 명의 병사가 있는데도 다른 소리가 나지 않았다. 평소에 부릉부릉하던 트럭 엔진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두가 집중해서 그녀를 지켜보았다. 먼로가 걸어가면 따라서 걸어가고, 먼로가 가다 멈추면 사단장도 가던 길을 멈추고 마릴린의 다음 동작을 기다렸다.
▲ 마릴린 먼로(사진:핀터레스트)
마릴린 먼로가 한국을 방문하여 공연하러 왔을 때 병사들이 여배우의 사진을 찍으려고 필름을 모두 구매해 육군 PX에 있는 필름이 모두 팔렸다. 필름을 구할 수가 없게 되자, 병사들을 필름을 구하려고 부대마다 난리가 났다. 당시 병사들이 찍은 사진이 지금도 새롭게 등장한다.
필자는 마릴린 먼로의 한국 방문 70주년을 기념하여 글을 쓰면서 핀터레스트에서 진귀한 사진을 많이 보았다. 새로운 사진을 보면서 신기롭기도 하고 마릴린 먼로의 노력하는 마음과 위대함을 동시에 깨닫고 있다.
▲ 마릴린 배우를 마중 나온 최은희, 백성희(대구 동촌비행장)(사진:이인석)
할리우드 스타 마릴린 먼로의 한국 최초 도착지는 ‘여의도 비행장 K16 설’과 ‘대구 동천 공항 설’로 두 가지 설이 있다. 이것은 당시 한국전쟁이 끝나고 정전이 되고 나서 얼마 안 돼 많은 사람이 할리우드 스타를 보기 위해 한꺼번에 몰리는 것을 우려한 유엔군 측이 정확한 장소를 공개 안 한 이유와 안보상에 문제점 때문이라고 한다. 필자는 대한 뉴스에 등장하는 서울 ‘여의도 비행장 K16 설’을 따른다.
▲ 대구 동촌(K-2)비행장 1954년 2월 19일(사진:핀터레스트)
당시 대구 동촌 비행장에는 대한민국 공군본부가 있었고, 시민들은 환영 행사를 열었다. 마릴린 배우를 환영한 한국의 배우는 최은희, 백성희(1925~2016)로 나이가 비슷해 서로 좋아했다. 마릴린 먼로와 최은희는 동갑이고 백성희는 한 살이 더 위였다.
배우들은 처음 만나 금방 친해졌다. 대구 동촌 비행장에서 세 배우를 촬영한 동영상은 유튜브에 많이 있다. 최근에 배우 세 사람이 같이 찍은 사진이 새롭게 발굴되었다. 이때 촬영된 사진은 핀터레스트에 많이 공개되어 있다.
▲ 마릴린 배우를 마중한 최은희, 백성희(1925~2016)(대구 동촌비행장)
백성희는 본명이 이순이로 17세에 빅터 무용연구소에 연습생으로 시작하여 1950년 창단한 국립극단의 창립 단원으로 평생을 연극에 바쳤고 배역을 가리지 않고 작품활동을 하여 400여 편의 연극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였다. 2번 국립극장 단장을 한 백성희 배우는 한국 연극의 산증인이며 살아있는 역사였다.
1954년 2월 19일. 아침에 마릴린 먼로는 춘천 k-47 비행장, 캠프페이지를 방문했다. 이날 아침 기온은 영하 6.5도로 매우 추웠지만, 마릴린 먼로는 다른 공연 때처럼 공연복을 입고 공연을 하였다. 춘천 캠프페이지는 시내 한복판에 있는데, 2007년에 춘천시에 반환되었다.
(계속)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