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의 보헤미안 클럽(the Bohemian Club) 환영식
미국 서부 태평양에 있는 샌프란시스코 부두에는 굿인 나이트(1896~1970) 제35대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비롯한 해병대원과 많은 시민이 일본 요코하마항에서 출항한 레클리스 병장을 환영하려고 아침부터 모여들었다. 미 해병 제1사단 2대대 에릭 패터슨 중위는 화물선 SS 퍼시픽 트랜스포트 호에서 내려 미 해병대를 상징하는 빨간색 천을 한국전쟁 영웅 레클리스 병장에게 감싸주었다.
▲ 굿인 나이트(Goodwin Knight) 캘리포니아 주지사(사진: The Governors’ Gallery)
레클리스 병장은 사진을 찍기 위해 모인 시민들에게 포즈를 취했다. 레클리스 병장은 해병대 메모리얼 클럽 극장의 해병대 기념일 축하 리셉션장으로 이동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행사장으로 입장했다.
미국 해병대는 1775년 11월 10일 필라델피아에서 창설된 2개 대대 ‘Continental Marines’를 기원으로 보고 있다. 해병대는 독립전쟁 막바지인 1782년 조지 워싱턴 장군의 대륙군에 합류되어 해체되었다. 이후 1798년 7월 11일 프랑스와의 전투를 대비하여 재창설되었다. 초기에 육군을 통제하는 전쟁부 소속이었고, 1834년 6월 30일에 해군부로 이관되었다. 현재 미 해병대에는 2개의 기념일이 있다.
미 해병대 기념일 축하 행사를 마친 후, 미 해병대원 레클리스 병장은 에릭 패터슨 중위와 함께 10분 거리에 있는 1872년에 설립된 샌프란시스코의 보헤미안 클럽(the Bohemian Club)으로 향했다. 보헤미안 클럽은 문학, 예술, 음악, 드라마와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신사들이 클럽 활동을 통해 교류하는 장소로 초기에는 엄격하게 남성만 출입했다.
▲ 방명록 작성(사진:USMC 미국해병대 사진작가)
보헤미안 클럽에 도착하여 미 해병 제1사단 2대대 에릭 패터슨 중위와 미 해병대원 레클리스 병장은 보무당당(步武堂堂)하게 멋진 복장으로 기념식장에 입장하여 입구에 마련된 방명록에 서명했으며, 참석한 미 해병 사령관과 장성, 영관 장교 가족들이 모두 방명록에 자필로 기록을 남겼다.
에릭 패터슨 중위와 라이블리 장교가 레클리스 병장을 호위하며 400명의 해병대원과 군인 가족 부인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에 맞춰 기념식장으로 입장했다.
▲ 에릭 패터슨 중위, 레클리스, (Elmer) Lively 레클리스 해병대원 보헤미안 클럽(the Bohemian Club) 입장 (사진:USMC 미국해병대 사진작가)
▲ 레클리스 해병대원 보헤미안 클럽(the Bohemian Club)(사진:USMC 미국해병대 사진작가
레클리스 병장은 사회자가 내빈을 소개할 때 가만히 있지 못했다. 해병대원답지 않게 그만 음식 냄새에 이끌려 맛있는 케이크에 다가가서 몰래 맛보았다. 에릭 패터슨 중위가 나서서 제지하자, 이번에는 멀리 장식된 풀과 꽃을 보고는 다가가 장미와 카네이션을 뜯어 먹었다. 이를 바라본 참석자들은 너무 신나고 재미있어 소리를 지르고 환호했다.
샌프란시스코의 보헤미안 클럽의 해병대 사회자는 해병대원 레클리스 병장이 환영식에 들어서기 직전에 레클리스 해병대원이 네바다 전초 전투에서 실제로 행했던 놀라운 일들을 환영 식장에 꽉 들어찬 내빈들에게 두 번이나 상세하게 설명했다.
“미 해병 제1사단이 참전하여 5일간 전투 중 가장 치열했던 것으로 알려진 이 베가스 고지 전투(The Battle for Outpost Vegas)에서 해병대원 레클리스 병사는 온갖 위험 속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습니다. 5일간 밤낮없이 계속된 전투에서 키가 작은 제주마는 상상할 수 없는 기록적인 행보를 하였습니다.
1953년 3월 27일에는 하루 동안에 산 정상을 51번이나 오르내리면서 약 4~5T에 달하는 탄약을 실어 날랐고, 이것은 당시 함께 있었던 동료 해병대원이 낱낱이 기록해서 오늘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전투에서 사용한 무반동촌 포탄의 95%인 286발, 약 9,000파운드, 4,000kg을 레클리스 병사가 동료 해병대원에게 전달했고, 그 덕분에 해병대원들은 포신이 과열되어 녹아내릴 때까지 사격을 계속했다.”라고 말했다. 해병대 Babbit 상사는 무대로 나와 “암갈색 몸매에 하얀 얼굴을 한 말이 총탄을 뚫고 쉬지 않고 포탄을 날라주는 모습은 정말 기적이라는 말 외에 다른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의 보헤미안 클럽의 해병대 사회자는 “레클리스 해병대원은 비록 작은 말이지만, 적군으로는 커다란 위협요소였다. 북쪽 저격병들은 항상 말을 노렸다. 해병 전우들은 동료를 보호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저격수가 나타나 말을 조준하려고 시도하면 총을 바로 사격하여 물리쳤다. 해병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말은 머리에 산타처럼 빨간 모자를 쓰고 명랑하게 부대를 돌아다녔다. 놀라운 기적의 해병대원이었다.”라고 자세하게 설명했다.
▲ 제주마 레클리스 병장 환영식(사진:USMC 미국해병대 사진작가)
축하장에 모인 사람 중에는 함께 근무했던 해병 병사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은 한국전쟁에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털어놓았다. 1953년 7월 휴전이 체결된 후, 레클리스 병장의 친구들은 대부분 미국으로 돌아갔다. 남아있는 사람은 전직 해군 장교인 밥 로저스(Bob Rogers)가 남아있었다. 어느 날 에릭 패터슨 중위(lieutenant)와 밥 로저스 그리고 다른 병사가 원을 그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레클리스 병장이 한 명의 병사 뒤로 다가와서 코로 병사의 목에 살며시 비볐다(nuzzled). 이에 놀란 병사가 그만 겁먹고 말에게 이 “멍청한 작은 말”이라고 말하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It scared the guy, and he cussed Reckless, calling her a blanking ‘nag’. ”
에릭 패터슨 중위가 말에 놀란 병사에게 “레클리스 병장이 한국전쟁 영웅이고, 해병대를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는 것을 단호하게 성명했다. 그리고 레클리스 병장이 욕을 한 병사보다 계급이 높아 더 이상의 폭언(verbal)은 징계의 이유가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The lieutenant sternly let him know Reckless was a hero and had done more for the Marine Corps than he ever would. And since Reckless outranked him, any further verbal abuse would be cause for disciplinary action.”
환영식에서 에릭 페터슨 중위는 강인한 제주마 레클리스 병장의 놀라운 활동을 보고하며, 미 해병대의 오래된 전통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미국 해병대원이라면 해병대원이 전쟁터에서 중상당했거나, 전사를 했든 끝까지 미국에 데려오는 것이 해병대원의 영원한 임무입니다. 레클리스 병장은 미 해병대원이었기 때문에, 자랑스럽게 함께 미국 땅에 돌아와 영광스럽게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라고 힘찬 목소리로 연설했다.
(계속)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