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돌프 맥콜 페이트(Randolph McCall Pate) 해병대 사령관
해병 레클리스 병장을 하사로 진급시켜 준 랜돌프 맥콜 페이트 장군은 1918년에 해병대에 입대하여 전투 중에 부상으로 퍼플 하트(Purple Heart)를 받았다. 페이트 장군은 중앙아메리카 및 카리브해의 바나나 전쟁(Banana Wars, 1898~1934)과 과달카날 전투(Battle of Guadalcanal, 1942.8.7.~1943.2.9.)에 참전했다. 태평양 전쟁 말기에 벌어진 이오지마( Iwo Jima, 1945.2.19.~3.16) 전투에서는 일본군과 5주간 힘든 전투를 하였다.
▲ 바나나 전쟁(Banana Wars)(사진:WIKIMEDIA)
▲ 이오지마 전투(Battle of Iwo Jima)(사진:WIKIMEDIA)
페이트 장군은 1951년 7월 미국 합동참모본부에서 부국장으로 근무했다. 그는 1951년 11월에 해병대 예비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1952년 8월에 소장으로 승진하고, 1952년 9월 대서양 쪽에 위치한 노스캐롤라이나주 Camp Lejeune에서 해병대 제2사단을 지휘했다. 1953년 6월에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1954년 5월까지 해병대 제1사단을 지휘했다.
1953년 7월 한국전쟁 정전협정을 앞두고 벌어진 치열한 전투 승리와 부대 장병 복지에 힘쓴 공로로 육군 무공훈장과 대한민국 무공훈장을 받았다. 1954년 7월에 중장으로 진급하여 미 해병대의 부사령관과 참모총장으로 임명되어 18개월 동안 임무를 수행했다. 1956년 1월 1일 대장으로 승진하여 르뮤엘 C. 셰퍼드 장군의 뒤를 이어 미 해병대 제21대 사령관으로 취임하여 4년 동안 해병대 사령관으로 성실하게 근무하였다.
▲ 미 해병대 제21대 사령관(1958년) (사진:USMC 미국해병대 사진작가)
캠프 펜들턴(Camp Pendleton) 해병대 기지에서 4년간 사령관 책무를 훌륭하게 마친 랜돌프 맥콜 페이트 대장은 1959년 12월 31일 퇴역식에서 미국 정부에 대한 탁월한 공로로 해군 공로 훈장을 받았다.
▲ 캠프 펜들턴(Camp Pendleton)기지 (사진:WIKIMEDIA)
한국전쟁에서 훌륭한 업적을 쌓은 장군은 은퇴 후 평안한 삶을 지내다 갑자기 질병이 발생하여 짧은 기간 치료를 받았으나, 1961년 7월 31일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 있는 미국 해군 병원에서 사망했다.
▲ 포트 마이어 기념 예배당(Fort Myer Memorial Chapel, built in 1934) (사진:The U.S. Army Chaplain Corps Museum)
미 해병대 사령관의 장례식은 1961년 8월 3일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있는 포트 마이어 기념 예배당(Fort Myer Memorial Chapel)에서 열렸다. 군목이 주재한 장례 예배가 끝난 후, 페이트 해병대 사령관을 모신 관은 여섯 마리의 백마(白馬)가 끄는 마차 위에 놓여 알링턴 국립묘지(Arlington National Cemetery)까지 운구되었다.
▲ 미 해병대 사령관 운구 행렬 (사진: 사진가 Edward Clark)
장례 운구 행렬은 맨 앞에 군목이 앞장서고, 부대기가 뒤따르며 기마병이 인도했다. 마차 뒤에는 애처롭고 숙연한 모습의 레클리스 하사가 뒤따라갔다. 레클리스 하사는 자기를 항상 사랑하고, 보듬어 주고, 미국까지 데려온 장군이 어느 날 갑자기 안 보여 걱정했다. 그런데 어느 날 군용기를 태워 먼 곳까지 데려왔다. 장례식장인 예배당 교회에서 장군의 영정 사진을 보았다.
레클리스 하사는 순간적으로 장군의 죽음을 감지하고 눈물을 흘렸다. 한국전쟁 때도 많은 주검을 보았지만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은 말이 그만 큰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예배를 마치고 마차 운구 행렬을 따라가는 동안 레클리스 하사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알링턴 국립묘지에 도착하여 21발의 예포가 발사되고, 나팔수의 진혼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해병대 사령관이 모셔진 관은 의장대의 사열을 받고 운구되어 영현병(英顯兵)이 안장하였다. 관 위에 올렸던 성조기는 의장대원이 미망인에게 전달하여 엄숙하게 조의를 표했다.
▲ 미 해병대 사령관의 유해를 따라가는 레클리스 하사 (사진: 사진가 Edward Clark)
안장식이 끝났지만, 레클리스 하사는 페이트 미 해병대 사령관 묘비 앞에서 계속 눈물을 흘리며 맴돌았다. 꿈에도 그리던 제주마(濟州馬) 레클리스 하사를 만난 페이트 미 해병대 사령관은 그제야 안심하며 전우들이 잠들어 있는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영면(永眠)에 들었다.
▲ 랜돌프 맥콜 페이트 미 해병대 사령관 묘비 (사진:WIKIMEDIA)
(계속)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