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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한국전쟁의 영웅 제주마, 레클리스
◈ 23. 68년 울타리 뛰어넘다가 크게 다쳐... 미 언론 안락사 특집 다뤄
미 해병 제주마 레클리스 하사 기념비-1
군마 레클리스 하사는 1960년 미국 해병대 캔들턴 기지에서 전역했다. 전역한 후 해병대 마스코트인 레클리스와 사진을 촬영하려는 방문객이 늘어 항상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제주마 레클리스는 1959년에 피어리스(Fearless)를 낳고, 이후에 Dauntless, 체스티(Chesty)를 낳았다.
미 해병 제주마 레클리스 하사 기념비-1
 
 
군마 레클리스 하사는 1960년 미국 해병대 캔들턴 기지에서 전역했다. 전역한 후 해병대 마스코트인 레클리스와 사진을 촬영하려는 방문객이 늘어 항상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제주마 레클리스는 1959년에 피어리스(Fearless)를 낳고, 이후에 Dauntless, 체스티(Chesty)를 낳았다. 1968년 레클리스 하사는 울타리를 뛰어넘다가 크게 다쳐 해병대 수의사들이 말의 부상을 치료했는데 회복이 무척 더뎠다. 말의 나이 1년은 사람으로 치면 2.5년이다.
 
말은 약 30년을 사는데, 레클리스 하사는 벌써 19년이나 살았고 한국전쟁 때 장기간 부산에서 피난 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전방 최전선에서 힘든 탄약 수송을 하며 파편으로 인한 부상이 많았다.
 
수의사들은 말의 상처를 치료하고 최선을 다해 정성껏 돌보았지만, 나이가 많은 말이 더욱 고통스러워 고민했다. 수의사들은 해병대 사령관에게 한국전쟁 영웅인 군마 레클리스 하사의 안락사를 건의하고 승인받아 군마 레클리스는 1968년 5월에 숨을 거뒀다.
 
 
▲ 레클리스 하사가 낳은 새끼, 캠프 펜들턴(Camp Pendleton)(사진:USMC 미국해병대 사진작가)
 
 
요즘은 컬러사진이 흔하지만, 1950년대는 대부분 흑백사진이었다. 사진의 역사가 160주년이나 넘지만, 1945년에 전문가용 컬러필름이 처음 판매되기 시작하여 1963년대 이후에는 컬러사진이 많이 등장한다. 캠프 펜들턴에서 뛰어노는 레클리스와 피어리스가 함게 하는 사진이다. 갖 태어난 피어리스는 엄마 말이 떠나자 많이 슬퍼했다.
 
 
▲ 레클리스 하사 순직 신문 기사(사진:USMC 미국해병대 사진작가)
 
 
미 해병부대 제주마 레클리스가 안락사했다는 공식 발표문이 전해지자, 미국 신문 기자들은 모두 한국전쟁의 영웅 레클리스 하사 특집 기사를 편성했다. 미국에서 해병대 군마가 죽어 전국적으로 추모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이때가 역사상 처음이었다.
 
미 해병대는 부대의 전투력 향상에 큰 보탬이 되었던 레클리스 하사의 장례식을 성대하게 거행했다. 그리고 해병대원의 기념비를 마구간 옆에 건립했다. 레클리스 하사가 안락사했다는 신문 보도를 접한 에드윈 앨런 폴록(Edwin Allen Pollock, 1899~1982) 해병대 사령관은 군인 중에 가장 슬퍼한 군인이다. 폴록 장군은 한국전쟁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해병 제1사단을 지휘하고, 1953년 7월 미국으로 돌아와 사우스캐롤라이나 패리스 섬에 있는 해병대 신병교육대의 지휘관을 맡았다.
 
1956년 1월 중장으로 승진하고, 해병대 학교(Base Quantico)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 폴록 장군은 1956년 8월에 콴티코를 떠나 태평양, 호놀룰루, T.H.에 있는 태평양 함대 해병대 캠프 H. M. 스미스에서 지휘관으로 근무했다. 1957년 12월부터 1959년 11월 1일에 은퇴할 때까지 버지니아 노퍽, 대서양, 함대 해병대 사령관으로 일했다. 폴록 사령관은 레플리스가 떠난 후 말을 추모하며 10년간 순직 기념비를 방문하며 헌화했다.
 
 
▲ 레플리스 하사 기념비(사진:USMC 미국해병대 사진작가)
 
 
미국의 시사 월간지 LIFE는 1997년 특별호에서 미국을 빛낸 100명의 영웅을 선발했다. 100명의 영웅 중에 조지 워싱턴 장군, 에이브러험 링컨 대통령, 레클리스 하사 등이 선정되었다.
 
 
▲ 월간지 라이프(LIFE) 특별호(사진:위키백과)
 
 
유럽의 이민자들은 큰 꿈을 가지고 미국에 건너왔다. 당시 북아메리카에는 원주민인 인디언이 살았는데 그들은 야생마 무스탕을 길들여 타고 다녔다. 무스탕은 북아메리카가 스페인 식민지가 되었을 때 이베리아반도 말이 건너와 야생화된 스페인 말이다.
 
 
▲ 머스탱(mustang, 무스탕)(사진:위키백과)
 
 
무스탕의 어원은 오래되었다. 영어 사전 편찬자인 ‘존 민쇼’는 1599년 영어사전에서 ‘메스텡고’는 ‘사나운’, ‘야생의’, ‘주인이 없는 가축’으로 적었다. 강인한 말 무스탕은 식민지 시대에 야생으로 사라졌던 스페인 말에서 진화한 말이다. 인디언들은 말 위에서 싸우기 위해 매우 효율적으로 조종하는 법을 배워 무스탕을 발 빠른 말로 조련하였다. 미국 인디언 전쟁은 1609년부터 1924년까지 간헐적으로 전투를 하다가, 유럽 이민자의 증가와 식민지 전쟁과 연관되어 나중에 북미식민지 전쟁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많은 인디언이 살해되고, 일부 종족만 겨우 살아남았다. 현재 북미 인디언 고유의 문화와 정체성은 대부분 사라졌다.
 
 
▲ 티크널(Ticknall) 운송열차와 말(사진:위키피디아)
 
 
티크널(Ticknall)은 영국 사우스 더비셔(South Derbyshire)에 있는 작은 마을로 이 마을의 운송 열차는 1802년부터 1913년까지 말이 끌었다. 영국과 식민지 광산에서 사람들은 레일을 바닥에 설치하고 말이 광물을 실어 나르게 했다. 200여 년 전의 미국은 영국에서 신기술이나 신제품이 발명되면 곧바로 미국에 도입했다. 산업혁명 초기에는 많은 상품을 모방하기도 하고, 독자 개발하기도 했다. 영국에서 1825년 증기기관차가 개통하자, 미국은 1830년에 철도를 바로 설치했다. 1800년 초 운하를 개발할 때 운하 옆에 있던 말들이 배를 끌었다. 본격적인 증기기관이 출현하기 전에는 대부분 철도 운송을 말에 의존했다.
 
(계속)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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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1. 11:24) 
【작성】 궁 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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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