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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한국전쟁의 영웅 제주마, 레클리스
◈ 26. 나라 큰 변란 발생할 때 제주마 수 천말 국가 헌납
헌마공신 김만일(獻馬功臣 金萬鎰)
한국전쟁은 산악이 많은 지역에서 전쟁을 수행하여 현대 장비들을 갖춘 군대는 정상적으로 작전을 수행하기가 어렵고 힘들었다. 그래서 전쟁이 발발하고 다양한 부대가 등장했다. 군번이 없이 근무한 지게 부대 병사와 말을 타고 싸우는 기병(騎兵) 부대가 대표적이다.
헌마공신 김만일(獻馬功臣 金萬鎰)
 
 
한국전쟁은 산악이 많은 지역에서 전쟁을 수행하여 현대 장비들을 갖춘 군대는 정상적으로 작전을 수행하기가 어렵고 힘들었다. 그래서 전쟁이 발발하고 다양한 부대가 등장했다. 군번이 없이 근무한 지게 부대 병사와 말을 타고 싸우는 기병(騎兵) 부대가 대표적이다.
 
미 해병대의 레클리스(Reckless) 상병도 최전선에서 탄약을 수송하며 해병대원을 돕고 맹활약했지만, 한국군에도 독립기갑연대가 있었다. 기마대대는 적진을 쉽게 교란하고, 부상자들을 빨리 실어 날랐다. 통신이 안 되는 지역에서는 파말마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장철부(張哲夫, 1921~1950) 소령이 이끄는 기병대대는 청송 지역 야간 전투에서 탁월한 전과를 많이 올렸다.
 
말은 지능이 매우 높고, 귀소 본능이 있다. 특히 사람을 잘 따라 옛날부터 군마(軍馬)로 많이 활용했다. 전쟁터나 사냥터에서 자신의 등에 올라탄 사람을 믿어 적이나 호랑이 같은 맹수를 만나도 절대 물러나거나, 도망치지 않았다. 수천 년을 내려오며 군마로 활용되었다.
 
 
▲ 태조가 탄 응상백(사진:국립중앙박물관)
 
 
조선왕조 숙종은 도화서 화원에게 명하여 태조 이성계가 탔던 여덟 마리 말을 모두 그리게 하였다. 위의 그림은 〈팔준도첩〉 중 ‘응상백’이다. 말이 마치 서리가 엉긴 것처럼 흰 백마여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말 이름 옆의 화제(話題)는 "순백색(純白色) 오자(烏觜) 오안(烏眼) 오신(烏肾) 오제(烏蹄) 산어제주(産於濟州) 회군시어(回軍時御)"이다. 응상백은 갈기와 꼬리를 비롯해 털빛이 모두 희고 부리와 눈, 발굽이 검은 제주산 말이라고 했다.
 
 
▲ 헌마공신 김만일 특별전(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2019.10.30.)
 
 
2019년 10월에 <광해 제주에 유배 오다> 특별전 소식을 접했다. 다음 날 아침 7시 첫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향했다. 제주도 방문 목적은 제주도에서 키운 말들을 어떤 방법으로 한양과 중국 닝보(寧波)까지 운송했는지 의문점을 풀려고 간 것이다.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특별전시장 입구에는 헌마공신 김만일(獻馬功臣 金萬鎰 1550~1632)에 대한 전시가 함께 전시하고 있었다. 말의 고장 제주에서 태어난 김만일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성장하도록 형편이 좋지 않았다.
 
김만일은 너무 가난하여 늦게 혼례를 치르고, 처가에서 내준 말 한 마리를 겨우 얻어와 정성껏 키웠다. 몇 년이 지나자, 김만일과 처는 한라산 동쪽 100여 리의 땅에 말들을 엄청나게 많이 만들었다. 이제까지 가난뱅이라고 비웃고 왕래도 안 한 처가 식구들은 모두 놀래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말들이 많아 말문이 꽉 막혔다.
 
 
▲ '光海 제주에 유배 오다' 특별전(2019년)
 
 
김만일은 나라에 큰 변이 생길 때마다 육지로 나아가 수천 마리의 말을 나라에 헌납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나라 안의 좋은 말은 모두 김만일이 기른 것'이란 기록이 남아있다. 임진전쟁(壬辰戰爭)이 발생하자 김만일은 1594년 제주에서 출발해 한양까지 말을 끌고 와서 조정에 바쳤다.
 
선조 대왕은 이에 중추부 소속 종 2품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내렸다. 하루는 목장의 말들을 점검하기 위해 임시로 파견된 관원 점마관(點馬官)이 김만일을 초대해 특별히 말을 부탁했다.
 
그런데 김만일은 개인적인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광해군 10년 (1618년)에 김만일은 점마관에게 끌려가 큰 봉변을 당했다. 치욕을 당한 김만일은 남쪽 푸른 바다를 바라보면서 바다에 빠져 죽을까 하다가 생각을 고쳐먹었다. 내가 맞아서 죽을지언정 매번 제주를 찾는 탐관오리들에게 말을 공짜로 내줄 수는 없어 오래 고민하다가 제주도에서 말 500여 필을 배에 싣고는 한양으로 갔다.
 
한양에 도착해 임금님에게 말을 전달했다. 상인들은 김만일이 정성을 다해 키운 말이 체격도 좋고, 아주 튼튼해 비싼 가격에 거래하여 육지에서는 더 비싸게 팔았다. 관리들은 제주의 좋은 말들을 돈도 안 받고, 험난한 바닷길을 스스로 헤쳐나가 왕을 찾아가 선물한 일을 전해 듣고 모두 놀랬다.
 
 
▲ 헌마공신 김만일(獻馬功臣 金萬鎰) 영정 이명복 作
 
 
김만일은 제주 탐관오리들에게 말을 모두 수탈을 당해 훌륭한 준마들이 아예 멸종되느니, 아예 나라에 바쳐서 말을 보호하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광해군(1575~1641)은 제주에서 올라와 말을 바친 김만일에게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도총관(都摠管)에 임명했다. 그러나 김만일은 주변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가 너무 싫어 81일 만에 벼슬을 사직하고 제주로 곧장 돌아온다. 벼슬을 받았지만, 목동으로 말들을 돌보며 묵묵히 들판을 돌아다녔다. 9년 후 1627년(인조 5년)에 정묘호란이 발발하자, 김만일은 다시 말을 바쳐 종 1품 숭정대부가 되었다. 김만일은 아주 몸이 건강했으나, 고령으로 인조 10년(1632) 84세에 제주마를 타고 승천했다.
 
 
▲ 김만일 묘(사진:디지털서귀포문화대전)
 
 
1659년부터 김대길을 시작으로 김만일 후손 83명은 218년 동안 제주도 산마감목(山馬監牧) 직을 세습하면서 제주 사람들을 구휼(救恤)하고 제주마를 키워냈다. 200여 년이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말을 키운 놀랍고 경이로운 집안이다.
 
김만일의 고손인 김남헌(金南獻, 1676~1727)은 숙종 34년(1708)에 무과에 급제했다. 그는 1720년 전남 장흥군의 벽사찰방(碧沙察訪)으로 장흥-강진-해남-진도에 이르는 역로(驛路)를 관리했다. 경종 4년(1724) 제주도에 흉년이 들었을 때 육지에서 곡식 1,340여 섬을 사서 배편에 제주도로 보냈다.
 
아무도 모르게 행한 일이 여러 사람에게 알려졌다. 소식을 접한 영조대왕은 1726년에 옷 한 벌(表裏)을 특별 하사하였다. 제주 사람들은 김남현이 살던 동네 이름을 의귀리(衣貴里)로 불렀다.
 
육지 사람들은 모두 제주마 육성에 적극 앞장을 선 김만일의 탁월한 지도력과 용기에 감동했다. 김만일의 김 씨 문중 목장은 1750년에 제작한 《海東地圖濟州三縣圖》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면적이 제주도의 1/5 정도였다. 제주도 동쪽 의귀리에서 표선면 가시리 위쪽 지역이 김만일의 산마장이었다.
 
 
▲ 《해동지도 제주 삼현도》(1750년 作)
 
 
제주도 산간에 가보면 많은 담이 보이는데 이것은 말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장치로 제주 사람들은 이 담을 제주어로 ‘잣’이라 부른다. 상잣성, 중잣성, 하잣성은 옛 풍속이 남긴 말이다. 하잣성은 말들이 해안마을 농경지가 있는 곳으로 못 내려가게 길게 쌓은 성으로 산간에 많이 남아있다. 따라비(多羅非, 높은 산) 오름의 갑마장(甲馬場)이란 곳은 말 중에서도 으뜸가는 말을 키우던 목장이란 뜻이다.
 
조선 시대 제주도에 뛰어난 명마가 있어 임금에게 진상되었는데, 좋은 말들은 제주성 남쪽 25리에 있는 오름에서 많이 나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왕이 타는 말이라 하여 어승마(御乘馬)라고 불렀다. 제주 한라산 탐방객이 한라산을 오를 때 즐겨 찾는 코스가 바로 어승생악(御乘生岳1,169m) 길이다. 헌마공신 김만일이 제주 탐관오리들을 피해 직접 한양까지 말을 몰고 와 조정에 바친 말들이 전국에서 다시 늘어나 1950년 한국전쟁 때 놀랍게 힘을 발휘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2019년 헌마공신 김만일의 애국충정을 재조명하고, 제주마의 문화적, 산업적 가치를 드높일 목적으로 기념관 건립을 추진했다. 예산 30억을 편성하여 남원읍 의귀리에 기념관을 2020년 5월에 준공하고, 유물수집을 거쳐 2021년 9월 13일 ‘헌마공산(獻馬功臣) 김만일(金萬鎰) 기념관’을 개관했다. 현재 기념관은 의귀리 마을에 위탁 경영을 맡겨 주민들이 운영하고 있다.
 
 
▲ 헌마공신(獻馬功臣) 김만일(金萬鎰) 기념관
 
 
헌마공신 김만일의 영정을 그린 이명복 화백은 서울에서 살다가 2009년 운명처럼 제주에 내려왔다. 2010년 12월 17일 화가는 한림읍 저지리에 갤러리 노리(Gallery nori)를 열었다. 화가는 제주마를 많이 그려 ‘조랑말 화가’라는 애칭을 얻었다. 갤러리를 방문해 화가의 말 그림을 보고 싶다.
 
봄이 시작되는 3월에 빨간 동백을 보러 제주도에 구경 간다. 368개의 오름 중에 3~4개의 오름을 선정하여 말 목장에 있는 제주마(濟州馬, 천연기념물 제347호)를 마냥 쳐다볼 생각이다.
 
(계속)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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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