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립해병박물관 레클리스 동상 제막
미 국립해병박물관(National Museum of the Marine Corps)은 미 해병대와 비영리기관 헤리티지재단이 공동으로 미국 워싱턴 DC 인근 버지니아주 셈퍼 피델리스 기념공원(Semper Fidelis Memorial Park)에 박물관을 착공하여 2006년 11월 1일에 개관했다. 소속은 국가이지만, 모든 재원은 민간에서 기부받은 돈으로 운용하고 있다.
▲ 미 국립해병박물관 내부(사진:미 국립해병박물관)
미 국립해병박물관 안에 들어서면 위로 유리 천장이 보이고, 미 해병대가 전투에서 사용했던 전투기, 장갑차, 헬리콥터 등 다양한 무기들이 전시되고 있다. 한국관 전시실에는 장진호 전투, 인천상륙작전을 비롯하여 많은 유물과 사진을 전시되어 관람객에게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미 국립해병박물관은 1년에 42만 명의 관람객이 찾아오는 명소이다.
한국관 전시실에는 눈에 뜨이는 사진이 있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올리버 P. 스미스(Oliver P. Smith) 소장이 지휘하는 해병 제1사단은 인천 월미도에 상륙해 인천-서울 작전을 시작했다. 상륙 작전 사진은 해병대 1사단 중위 발도메로 로페즈(Baldomero Lopez, 1925~1950)가 방파제 너머로 부하들을 이끄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다.
로페즈 중위는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에는 농구선수로 활약했다. 그의 아버지는 스페인에서 살다 미국에 이민을 왔다. 로페즈는 1943년 7월에 미국 해군에 입대하여 1944년 6월까지 복무하였다.
▲ 인천상륙작전 사진(사진:위키백과)
세계 제2차 대전 중에 미 해군사관학교에 선발되어 3년 속성과정을 마치고 1947년 소위로 임관했다. 1949년에 중국으로 파견되어 박격포 포 반장을 하였고, 칭다오와 상하이에서 근무하다 미 해병대 팬들턴 기지로 복귀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군인의 본분을 다하기 위하여 한국 파병을 지원하였다.
1950년 6월 16일에 진급한 로페즈 중위는 미 해병 1사단 5연대 1대대 A중대 소대장으로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어 부하들을 이끌고 수많은 장애물과 벽을 넘고 돌진하여 북한군 벙커에 도달해 수류탄 투척을 하려는 찰나 북한군의 자동화기 사격으로 가슴과 오른쪽 어깨에 피격을 당했다.
이때 손에 들고 있던 수류탄 핀이 빠져 수류탄이 부하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로페즈 중위는 다친 몸을 이끌고 재빨리 기어가서 몸을 구부려 수류탄을 감싸 안았다. 미 해병대 로페즈 중위는 나이 25세에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했다. 전우들 사이에 소대장 죽음 소식은 금방 퍼져나갔다. 이런 모습을 본 해병대원들은 눈물을 흘리며 앞으로 계속 전진해 북한군 벙커를 돌파했다. 70여 년 전에 인천상륙작전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다.
▲ 발도메로 로페즈 중위 (사진:위키백과)
종군기자 스크립스 하워드는 로페즈 중위의 죽음을 추모하는 기사에서 “용기가 있는 죽음은 인간을 위대하게 만든다.”라고 신문에 글을 발표했다. 1951년 8월 30일 해군 장관 댄 A. 킴벌은 위성턴 D.C 훈장 수여식에서 로페즈 중위 아버지에게 명예훈장(Medal of Honer)을 수여하였다. 로페즈 중위는 템파(Tampa) Centro Asturiano Cemetery에 안장되었다.
미 해군은 수송선을 건조하여 한국전쟁 인천상륙작전 때 공헌한 발도메로 로페즈의 이름을 배 이름으로 명명했다. 발도메로 로페즈(Baldomero Lopez) 호는 2020년 2월 14일 메이포트 해군 기지에서 플로리다 해안에 있는 해상 사전 배치군 훈련(MPFEX) 2020의 일환으로 장비와 보급품을 운반하고 하역했다. 한국전쟁에 참여한 미 해병은 총 13만 명에 달한다. 4,268명이 사망하고 23,744명이 전투에서 부상으로 후송되었다.
▲ 발도메로 로페즈(Baldomero Lopez) 수송선(사진: 미 해군)
미 국립해병박물관 한국관 전시실에는 함경남도 장진호 전투(1950.11.26.~1950.12. 13)를 알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이 공간에 입장하면 영하 40도의 혹독한 추위를 느낄 수 있도록 매서운 바람이 불어온다. 냉동고보다 더 심한 추위에 전시실에 있는 기관총, 차량, 군용 장비, 옷들은 모두 꽁꽁 얼어있다. 윤활유는 젤리처럼 변했고, 의료용 모르핀도 모두 얼었다.
▲ 미 국립해병박물관 한국관 전시실(사진:미 국립해병박물관)
한국전쟁 당시 개발된 강화 조끼는 파편과 저속도 탄환으로부터 병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되어, 1952년 봄에 M1951 장갑 조끼가 병사들에게 제공되었다. 강화 조끼는 나일론과 도론 섬유 유리로 만들어졌으며 무게는 7.75 파운드이다. 해병대원 카메론(R. Cameron) 상병은 한국전쟁 때 해병대 5연대 2대대 D중대에서 복무하면서 강화 조끼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 한국전쟁 강화 조끼(the armored vest)와 지게(사진:미 국립해병박물관)
미 국립해병박물관 태평양 전쟁 전시실에는 해병대 나팔수인 로이 리크 일병(Private Roy F. W. Rieck)이 사용했던 나팔이 눈길을 끈다. 1941년 12월 7일 아침 일본군 항공기들이 진주만(Pearl Harbor) 해군기지 부대 위로 날아와 공습을 시작할 때 리크 일병은 나팔로 해병대원들에게 무장을 알렸다. 이 나팔은 동료 병사들의 장례식에서도 사용되었다.
▲ 진주만의 나팔(Bugle) (사진:미 국립해병박물관)
2013년 7월 26일 레클리스 하사 동상 제막식에서 미 해병대 사령관 제임스 아모스(James F. Amos) 장군은 제막식에 모인 귀빈들에게 강인한 네클리스 하사의 해병 정신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 미 국립해병박물관 레클리스 하사 동상 제막식(사진:미 국립해병박물관)
한국전쟁 네바다 전초기지에서 함께 복무했던 해럴드 와들리 (Harold Wadley) 병장은 제주마 네클리스의 위대함을 말했다. 셈퍼 피델리스 기념공원(Semper Fidelis Memorial Park) 누각(Pavilion)에는 역대 해병대 영웅과 상징물이 전시되어 있다.
(계속)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